무궁화 (장혁주 소설 선집. 2)

무궁화 (장혁주 소설 선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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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번에 번역된 "아, 조선(嗚呼朝鮮)"(1952)과 "무궁화(無窮花)"(1954)는 모두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이다. 이 두 작품에서 장혁주는 당대의 한국소설에서는 다루기 어려웠던 소재―이를테면, 이승만 정부에 의한 양민 학살 사건, 부정 사건 등을 자세히 묘사한다. 당시 남한에서는 보도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사건들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일본어로 쓰였기에 당국의 검열을 피해 한국전쟁의 실상을 고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

장세진

한림대학교한림과학원교수.연세대학교국문과대학원에서공부했다.1945년이후미국이개입해서형성된동아시아의냉전문화에관해논문과책을써왔다.저서로는"상상된아메리카"(푸른역사,2012),"슬픈아시아"(푸른역사,2012),역서로는"냉전문화론-1945년이후일본의영화와문학은냉전을어떻게기억하는가"(너머북스,2010)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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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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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작품해제379

출판사 서평

식민과냉전,그리고이중적글쓰기
한국문학사에서장혁주(1905~1998)는그다지명예로운이름이아니다.1940년대전반그의전시협력물도비판의대상이지만더문제적인것은해방이후일본국적취득(1952)과일관된‘일본어글쓰기’이다.한국어로쓰인작품들을연구한다는한국문학사의‘자명한’관점에서본다면,그의일본어텍스트들은작가의친일전력을비판할때를제외하고는진지한연구의대상이되기어려웠던것이사실이다.
그러나2000년대이후,한국문학계에서는이중언어(bilingual)세대작가의창작이라는입장에서장혁주문학을재평가하려는시도가이루어지고있다.장혁주는김사량(1914~1950)과같은본격적인이중언어세대보다앞세대로사실상이중언어세대작가의원조격이라할수있다.물론,동일한이중언어작가이면서도민족적저항의이름으로종군하여한국전쟁중에일찍생을마감한김사량의경우를생각한다면,장혁주의일본어글쓰기에대한평가가쉽게바뀌기는어려워보인다.하지만장혁주의일본어텍스트,특히해방이후일본어텍스트를조금다른맥락속에놓아보면어떨까.더이상제국이아닌장소에서계속해서마이너리티로살아가야했던구(舊)식민지인들의삶과언어라는맥락속에서라면,그의소설은문학사뿐만아니라사회사적으로도다시한번살펴볼만한기록이분명하다.실제로장혁주의일본어글쓰기나귀화라는선택은장기간식민통치를겪은민족의경우라면,그수가많든적든나타날개연성이높은유형이다.특별히작가가아니더라도,자신이살던땅에계속남기를원한이들에게귀화라는생존방식이하나의선택지였던것만은틀림없는사실이기때문이다.
한편이중적글쓰기는두이데올로기가첨예하게대립하던냉전시대에민감한사안을객관적으로그릴수있는이점을가지고있었다.이번에번역된"아,조선(嗚呼朝鮮)"(1952)과"무궁화(無窮花)"(1954)는모두한국전쟁을소재로한장편소설이다.이두작품에서장혁주는당대의한국소설에서는다루기어려웠던소재―이를테면,이승만정부에의한양민학살사건,부정사건등을자세히묘사한다.당시남한에서는보도조차허용되지않았던사건들이었다.역설적이게도,일본어로쓰였기에당국의검열을피해한국전쟁의실상을고발할수있었던것이다.

해방기남북협상파정치가일가의몰락-"무궁화"
"아,조선"이후2년후에발표된"무궁화"(1954)는전쟁으로까지치닫게된한(韓)민족의비참이대체어디에서비롯되었는가를탐구한소설적시도이다.미국과소련의글로벌한세력다툼이라는외부적인요인이외에,장혁주가찾아낸해답은바로해방이후조선의정치난맥상이었다.특히,그는해방이후조선의정치실패를가장상징적으로드러내는사건이바로‘남북협상파’(당대에는‘중간파’,‘협상파’로도불린)의몰락이라고보았다.
실제로"무궁화"는남북협상파정치가인김명인일가의돌이킬수없는몰락에관한이야기이다.‘남북분리가민족의비극’이라는것,‘남북각각의배후에있는2대세력을배제하고민족자체의힘으로독립해야한다’는당시남북협상파의주장은대다수조선인들의상식이나희망과일치하고있었다.그럼에도불구하고그들은단정수립직후정권의대대적인정치적전향과숙청작업의대상이었다.남북협상파인사들이사람들의시야에서하나둘씩점점사라지고,미국과소련이라는외부권위에편승했던세력이남과북의정치적헤게모니를장악한이상황이야말로장혁주가?무궁화?를통해이야기하지않을수없었던,동족끼리의전쟁을야기한가장근본적인이유인셈이다.
주로중도자유주의정도의성향을보인남북협상파가1950년대한국소설에서거의등장조차할수없었던한국문학사의사정을환기해보자.비록몰락하는과정을그렸다할지라도,남북협상파를이정도로나마재현해낼수있었던것은장혁주의창작언어가일본어였기때문에가능한일이었다.

우리를비추는낯선거울,이중적글쓰기
전후의가장명민했던시인중한사람인김수영도개인의가장내밀한생각을적는일기를일본어로썼을만큼일본어의영향력은당시한국의문인들에게광범위하고일반적이었다.한국어로사유하고,사유한언어그대로창작하는일은우리가흔히생각하는것보다훨씬최근의일인셈이다.그렇다면이중언어세대작가와그들의글쓰기는오늘의우리에게어떤의미인가.그들의존재는식민지라는것,식민지인으로살아간다는일이구체적으로어떠했는가를곰곰이생각하게만든다.동시에한국근대문학의출발자체가우리가생각하는것이상으로‘혼종적’이라는사실도새삼자각하게만든다.
한편,1950년대일본어로쓰인장혁주의이작품들은우리에게익숙한한국전쟁의재현관습을상대화하는계기이기도하다.한국전쟁중가장큰사상자를남긴미군의공습이기존한국소설에서의외로과소재현되었다면,두소설에서공중폭격은유례가없을정도로자세하고세세하게묘사된다.언어를존재의집이라비유했던하이데거식으로말한다면,일본어에존재를의탁했던작가의시선은우리스스로의모습을낯설게응시하는기회가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