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언론(증보판추가내용)
올해는6ㆍ25전쟁70주년이다.전쟁중에북으로끌려간민간인은이름과주소를확인할수있는사람만8만2,959명이다.통계에따라차이가있지만12만명이넘는다는기록도있다.그가운데많은언론인과문화인이포함되어있다.정치인,법조인,의사,교수,종교인등넓은범주의문화인도많다.
광북직후좌익언론은남한에서합법적인활동을벌였던시기도있었다.조선인민보,해방일보,노력인민이대표적인좌익신문이었고,좌익신문이정부수립이후에자취를감추었지만6ㆍ25전쟁으로북한군이서울을점령한지4일후부터조선인민보와해방일보는다시발행되었다.
전쟁시기의언론과문학은정치의영향에서자유로울수없는숙명에처하게된다.전쟁은언론과문학에통제를가할수있는명분을지닌다.8ㆍ15광복이라는민족사의대변환점을가운데놓고그앞과뒤에태평양전쟁과6ㆍ25전쟁이있었다.두전쟁기간의언론과문학은적이통치하는지역에남겨진포로와유사한형태로위축되고절박한상황에처했다.식민지치하에서는‘친일’이후유증으로남았고,6ㆍ25전쟁시기에는이념문제가생과사를갈랐다.
한국언론사연구에독보적업적을쌓은정진석(한국외대명예교수)교수는일제식민지치하의태평양전쟁,민족사의대변환점이었던8ㆍ15해방,6ㆍ25전쟁기간의언론과문학을실증적으로탐구하는책을펴냈다.전쟁기의언론과문학(소명출판)은자진하여북으로올라간공산주의자들이어떤운명에처했는지,전쟁의와중에언론과문학은어떤역할을했으며동시에어떠한시련을겪었는지를사건중심으로풀어가며심층적으로규명하고재구성했다.2012년에펴낸초판을대폭적으로수정하고한장을새로써넣어완전히새로운책으로만들었다.
언론인과문인에게는고난의나날이었다.언론의자유,표현과창작의자유따위는사치스러운이야기였다.신변의안위를먼저걱정하지않을수없었던엄중한시기였다.남과북이치열한이념논쟁으로대립하면서총부리를맞대고처절한싸움을벌이던때에잘못선택한길로들어섰거나순간적인판단착오로영원히가족과이별하고생사를알수없게된언론인과문인이많았다.
저자는2차대전기간의일제고등경찰수사기록,6ㆍ25전쟁전과후의북한로동신문,민주조선,로동당이론잡지근로자,남로당숙청재판기록,로동당문헌등을실증적으로조사하여집필했다.전쟁기의언론과문학은특히북한에서휴전일주일뒤에남로당계열정치인과언론인이자문인들을숙청하는정치재판이어떻게진행되었는지를사실적,입체적으로추적하고,언론사와문학사의시각에서정치투쟁의핵심적인사건에접근하였다.
특히북한에서휴전일주일뒤인1953년8월에남로당계열정치인과언론인이자문인들을숙청하는정치재판이어떻게진행되었는지를사실적,입체적으로추적하고,언론사와문학사의시각에서정치투쟁의핵심적인사건에접근하였다.
북으로갔던남로당계열언론인과문인은숙청의비운을맞았지만남한에서는전쟁이끝난후에월북문화인들의작품이학술연구목적에국한하여단계적으로허용되다가,1988년서울올림픽을전후하여대폭해금되었다.소설가와시인등문인만아니라미술,음악,무대예술에이르는광범한분야예술인들이해금되어현재는제한없이활용되고있다.증보판은이같은변화까지를추적하고있다.
김일성은휴전직후에박헌영을추종하던남로당세력에게피의숙청을단행하였다.시인임화를비롯한남로당계열지식인들은남한에서도그랬지만북으로올라가서언론과문학을무기로남조선의‘해방’을외치며혼신을다해서투쟁했지만비참한말로가기다리고있었다.언론과관련이있는여러문인들이북한에서처참한최후를맞았던사건도,저자는언론역사연구의관점에서살펴보고있다.임화와이태준은1951년4월26일북한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회가최고등급국기훈장(제2급)을수여한문학·예술인7명의일원이었다.하지만불과2년뒤에두사람의문학은매도당했고임화는재판정에서서자신의입으로‘죄과’를자백하는치욕스러운수모를겪은뒤에네가지법률위반으로사형선고를받았다.북한의군사법정은그를네번죽어야마땅할인물로판결했다.
북한언론과문학에관련된자료는극히제한되어있고,접근도어려웠다.눈치보지않고연구할여건도아니었다.이책은시간과노력을담아한국언론사와문학사의지평을북한까지확대하는데선두를점할것이다.더불어전쟁기의문학과언론을다루는이책에서비단전쟁기의문제만을읽어낼수있지는않을것이다.역사와문학이그러하듯당대의사회적문제를담아내는데있어,이책을통해독자들은현재의어려운언론의문제를함께읽어낼수있을것이다.
언론과문학과정치의함수관계
(초판보도자료)
태평양전쟁에서6ㆍ25전쟁까지의기간동안,언론과문학은경계를긋기어려울정도로밀접했다.언론계에종사하는문인이많았고임화,이원조,김남천,설정식은문인이면서언론인이었다.좌익언론이남한에서합법적인활동을벌였던시기이기도했다.조선인민보,해방일보,노력인민이대표적인좌익신문이었고,좌익신문이정부수립이후에자취를감추었지만6ㆍ25전쟁으로북한군이서울을점령한지4일후부터조선인민보와해방일보는다시발행되었다.
한국언론사연구에독보적업적을쌓은정진석(한국외국어대명예교수)교수는일제식민지치하의태평양전쟁,민족사의대변환점이었던8ㆍ15해방,6ㆍ25전쟁기간의언론과문학을실증적으로탐구하는책을펴냈다.전쟁기의언론과문학(소명출판,2012)은북으로올라간공산주의자들이어떤운명에처했는지,전쟁의와중에언론과문학은어떤역할을했으며동시에어떠한시련을겪었는지를사건중심으로풀어가며심층적으로규명하고재구성했다.이는저자가일제고등경찰의수사기록,북한의로동신문,민주조선,로동당이론잡지근로자,재판기록,로동당문헌등을꼼꼼히조사하여집필한결과이다.전쟁기의언론과문학은특히북한에서휴전일주일뒤에남로당계열정치인과언론인이자문인들을숙청하는정치재판이어떻게진행되었는지를사실적,입체적으로추적하고,언론사와문학사의시각에서정치투쟁의핵심적인사건에접근하였다.
수필가김진섭은“전쟁은설사그것이정의를위한불가피의전쟁일경우에있어서도문화의두려운파괴자인것은두말할것이없다”는글을썼다가일본헌병대에불려가서곤욕을치렀다.1940년1월에있었던이필화는언론과문인의수난이겹치는사건이었다.소리없이진행된사건이었지만총독부기관지매일신보의편집간부들이연쇄적으로신문사에서물러나는사태가벌어지는필화로확대되었다.
전쟁기는언론인과문인에게는고난의나날이었다.언론의자유,표현과창작의자유따위는사치스러운이야기였다.신변의안위를먼저걱정하지않을수없었던엄중한시기였다.식민지치하에서는‘친일’이후유증으로남았고,6ㆍ25전쟁시기에는이념문제가생과사를갈랐다.남과북이치열한이념논쟁으로대립하면서총부리를맞대고처절한싸움을벌이던때에잘못선택한길로들어섰거나순간적인판단착오로영원히가족과이별하고생사를알수없게된언론인과문인이많았다.
북한은언론과문학을전쟁수행과정권유지를위한선전선동의도구로활용했다.저자는그증거로광복후남한에서발행된좌익지를개관하고언론과문학을전쟁의도구로활용한북한의신문을구체적인근거로제시하고있다.김일성은휴전직후에박헌영을추종하던남로당세력에게피의숙청을단행하였다.시인임화를비롯한남로당계열지식인들은남한에서도그랬지만북으로올라가서언론과문학을무기로남조선의‘해방’을외치며혼신을다해서투쟁했지만비참한말로가기다리고있었다.언론과관련이있는여러문인들이북한에서처참한최후를맞았던사건도,저자는언론역사연구의관점에서살펴보고있다.임화와이태준은1951년4월26일북한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회가최고등급국기훈장(제2급)을수여한문학ㆍ예술인7명의일원이었다.하지만불과2년뒤에두사람의문학은매도당했고임화는재판정에서서자신의입으로‘죄과’를자백하는치욕스러운수모를겪은뒤에네가지법률위반으로사형선고를받았다.북한의군사법정은그를네번죽어야마땅할인물로판결했다.
그밖에도이책은단파방송수신사건으로투옥되었던문석준의옥사(1943),총독부고등경찰사이가시치로암살사건(1945),한센병시인한하운의「보리피리」필화(1953),여운형의친일문제등이전쟁과관련된사건을추적하고있다.왕조시대의정보전달매체였던「조보」에관한논문을집필했던월북언론인이갑섭의이름은논문집에서삭제된사연역시돌아보고있다.모두전쟁이언론인의운명에어떤영향을미쳤는지를보여주는사건들이다.
북한언론과문학에관련된자료는극히제한되어있고,접근도어려웠다.눈치보지않고연구할여건도아니었다.어려운시간과노력을담아전쟁기의언론과문학이세상에나왔다.이책은한국언론사와문학사의지평을북한까지확대하는데선두를점할것이다.더불어전쟁기의문학과언론을다루는이책에서비단전쟁기의문제만을읽어낼수있지는않을것이다.역사와문학이그러하듯당대의사회적문제를담아내는데있어,이책을통해독자들은현재의어려운언론의문제를함께읽어낼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