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 일본과 조선: 제국 일본, 조선을 말하다 (양장본 Hardcover)

심포지엄 일본과 조선: 제국 일본, 조선을 말하다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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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 연구가 발족되었을 무렵, '일한회담'이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전전에 형성된 낡은 조선의 이미지는 이승만 치하의 남조선에 대한 이미지와 중첩되어 '뒤처진 조선'과 '선진 일본'이라는 의식을 낳게 되었다. 심포지엄은 이러한 정황 속에서 일본조선연구소의 주재로 이뤄진 것이다. 이 심포지엄은 전전 조선 연구의 비판과 검토야말로 새로운 조선 연구의 출발점이며, 일본인들의 조선관에 대한 변혁은 불가결한 요건이라는 취지하에 개최되었다.
저자

하타다다카시

旗田巍,HatadaTakashi
1908~1994.경상남도마산출신의동양사학자.도쿄제국대학문학부동양사학과를졸업하고호세이(法政)대학예과강사,동방문화학원(東方文化學院)도쿄연구소연구원으로재직했다.1940년에는만철조사부북지(北支)경제조사소조사원으로베이징으로건너가‘화북(華北)농촌관행조사’를담당하여중국농촌의실태조사를했다.1944년10월부터만철의관행조사사업중지로만철을그만두고북지개발회사조사국(北京)으로자리를옮긴뒤노동력급원(給源)조사를맡아했다.1946년에는중화민국정부의국제문제연구소연구원으로근무하다가1948년11월에일본으로귀국했으며,1950년9월에도쿄도립대학인문학부교수로부임했다.주요저서로는?朝鮮史?(岩波書店,1951)를비롯한?支那民族展史?,?日本人の朝鮮?,?朝鮮中世社史の究?,?後における日本の朝鮮史究?,?朝鮮と日本人?등이있고,편저로는?シンポジウム日本と朝鮮?,?古代日本と朝鮮の基本問題?,?古代朝鮮の基本問題?,?古代の朝鮮?,?朝鮮の近代史と日本?,?日本は朝鮮で何をえたか?등이있다.

목차

일본에서의조선사연구의전통5

조선인의일본관49
김달수(金達?)|안도히코타로(安藤彦太郞)|우부카타나오키치(幼方直吉)|도야마마사오(遠山方雄)|미야타세쓰코(宮田節子)

일본인의조선관93
나카노시게하루(中野重治)|박춘일(朴春日)|안도히코타로(安藤彦太郞)|오자와유사쿠(小有作)|고토다다시(後藤直)|우부카타나오키치(幼方直吉)|시카타히로시(四方博)|후지시마우다이(藤島宇內)|구스하라도시하루(楠原利治)|하타다다카시(旗田巍)|미야타세쓰코(宮田節子)

「경성제대」의사회경제사연구147
시카타히로시(四方博)|우부카타나오키치(幼方直吉)|하타다다카시(旗田巍)|안도히코타로(安藤彦太郞)|미야타세쓰코(宮田節子)

조선총독부의조사사업183
젠쇼에이스케(善生永助)|안도히코타로(安藤彦太郞)|오자와유사쿠(小有作)|하타다다카시(旗田巍)|미야타세쓰코(宮田節子)

조선사편수회사업227
스에마쓰야스카즈(末松保和)|하타다다카시(旗田巍)|우부카타나오키치(幼方直吉)|미야타세쓰코(宮田節子)

일본의조선어연구259
고노로쿠로(河野六郞)|하타다다카시(旗田巍)|미야타세쓰코(宮田節子)

아시아사회경제사연구299
모리타니가쓰미(森谷克己)|하타다다카시(旗田巍)|와타나베마나부(渡部孚)|미야하라도이치(宮原兎一)|무라야마마사오(村山正雄)|미야타세쓰코(宮田節子)

메이지이후의조선교육연구349
와타나베마나부(渡部孚)|아베히로시(阿部洋)|우부카타나오키치(幼方直吉)|오자와유사쿠(小有作)|니지마아쓰요시(新島淳良)|하타다다카시(旗田巍)|박상득(朴尙得)|에비하라하루요시(海老原治善)|미야타세쓰코(宮田節子)

조선의미술사연구419
나카기리이사오(中吉功)|하타다다카시(旗田巍)|오오쓰보세이지(大坪?仁)|미야타세쓰코(宮田節子)

조선의고고학연구467
미카미쓰기오(三上次男)|와타나베마나부(渡部孚)|고토다다시(後藤直)|미야타세쓰코(宮田節子)

일본과조선-총괄과전망501
하타다다카시(旗田巍)|안도히코타로(安藤彦太郞)|와타나베마나부(渡部?)|우부카타나오키치(幼方直吉)|가지무라히데키(梶村秀樹)|미야타세쓰코(宮田節子)

정약용(茶山)사상의이해를위하여557
다카하시신이치(高橋一)|니시준조(西順藏)|비토마사히데(尾藤正英)|박종근(朴宗根)|와타나베마나부(渡部孚)|가지무라히데키(梶村秀樹)|구스하라도시하루(楠原利治)

후기599
출석자소개602
해제_과거라는타자와의대화는가능한가603
역자후기626

출판사 서평

메이지이후일본인의조선사연구는상당한축적을이루어냈다.그러나이들선행연구가올바른조선인식의발전에얼마나기여했는지그점에대해서는여전히의문이다.물론역사적인개별사실들을인식하는데에는상당한성장이있었지만,그것이과연조선사상朝鮮史像의형성에있어얼마만큼도움이되었는지아직확신이서지않는다.연구를하면할수록어쩐지시들해지고마는조선사연구에는분명어딘가중대한결함이있음을부인할수없다.과거우에하라센로쿠上原??씨는심포지엄「일본에서의조선연구의축적을어떻게계승할것인가日本における朝鮮硏究の蓄積をいかに繼承するか」(?朝鮮硏究月報?5ㆍ6합병호,1962년6월)에서다음과같이언급했다.“인식의근거는대상에대한사랑(愛,Sympathy)이다.설령사랑하는태도나방식은다양할지라도대상에대한사랑그자체가결여된인식이란결코존재할수없다.허나메이지이후부터태평양전쟁까지의조선연구를놓고보면,바로그사랑을기반으로한조선인식이부재했다는것으로일괄할수있지않을까싶다.따라서그러한사랑이생겨나기위해서는조선민족과일본민족쌍방이동일한문제에봉착해있다는공통인식을형성하는것이중요하다”이제우리는이말이내포하고있는의미를숙고해야할것이다.-p.4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