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에 도전하는 문학 (식민지 조선의 모더니즘 문학과 재현의 위기)

재현에 도전하는 문학 (식민지 조선의 모더니즘 문학과 재현의 위기)

$30.00
Description
재현의 정치성
말은 의도를 품고 글은 현실을 품는다! 우리는 언어의 의사소통적 모델에 기대어 생활합니다. 언어란 투명한 매체여서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잉여 없고 누락 없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 ‘의사소통 모델’의 전제이지요. 이런 의사소통 모델에 바탕을 둔 언어를 ‘재현의 언어’라고 합니다. re-presentation, 즉 현실을 다시 드러내는 언어입니다.
이 언어관은 중요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이 모델 하에서 일어나는 일을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발화자는 자기 할 말의 내용을 먼저 확정하게 됩니다. 의도는 공공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알아서 마구 떠드는 것으로 ‘의사소통’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서로가 알만한 내용을 나눈다는 전제 하에서 그 의도의 진정성은 용인됩니다. 말과 글이 포착해야 할 것이 개인의 의도 이전에 미리 작동하는 것이지요. 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쓴다고들 하지만, 써야 할 현실은 정해져 있습니다. 동아시아 근대가 ‘번역된 근대’(리디아 리우)였던 점을 다시 한 번 환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19세기 이후, 서양 문학사가 규범으로 제시한 글쓰기는 두 가지입니다.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지요. 둘 모두 의사소통 모델에 입각한 것이고, 전자가 ‘있는 그대로’를 강조한 반면 후자는 ‘있는 그대로를 비틀고 변형시킨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둘 모두 현실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여, 이러한 전제를 자명하다고 받아들이게 되면 말하고 쓰는 사람은 ‘마땅한 현실’에 끌려다니게 됩니다. 재현하는 언어란 있어야만 하는 현실을 옹립하기에 바쁜 언어인 것입니다. 그런 언어에 사로잡혀 살게 되면, 당위와 의무로만 일상을 채워가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재현에 도전하는 문학』은 식민지의 언어적 정치성을 질문하는 책일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저자와 함께 보다 적극적으로 언어의 가능성, 읽어내고 표현할 수 있는 삶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저자

크리스토퍼P.한스콤

Christopher.P.Hanscom
UniversityofCalifornia,LosAngeles,아시아언어·문화학과교수.코넬대학교영문학과졸업,UCLA아시아언어·문화학박사.저서로는TheRealModern:LiteraryModernismandtheCrisisofRepresentationinColonialKorea(2013)가있다.현대동아시아의인종과인종이데올로기의역사에대한새로운관점을제공하는에세이모음TheAffectofDifference:RepresentationsofRaceinEastAsianEmpire(2016)의공동편집자를맡았고,일제강점기의주요문학비평과역사에세이를번역한모음집인ImperativesofCulture(2013)를공동편집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3
서론11
식민지조선에서모더니즘의실천과글쓰기풍경11
한국문학사에서의구인회,모더니즘,식민담론21

제1장제국의역설-1930년대경성문단에나타난재현의위기49
식민지비평가와재현의위기51
진리,언어,제국의역설60

제2장식민지의이중구속-박태원의「표현,묘사,기교」71
탈정치화하는모더니즘73
모더니즘의언어79
“표현,묘사,기교”87
이중구속과식민담론95

제3장모더니즘과히스테리-박태원,「소설가구보씨의일일」107
히스테리와모더니즘111
보존에서전환으로-신경쇠약자구보114
욕망그리고「소설가구보씨의일일」에나타난증후군해석120
히스테리환자구보씨의일일124
해석욕망135

제4장경험주의담론비판139
문학사에서의김유정144
경험주의담론비판151
윤리적문학실천을위하여158

제5장언어의아이러니-김유정의단편소설167
풍자에서아이러니로,아이러니에서유머로170
김유정단편소설에나타난안정적아이러니176
말에대해말하기-재현의형식비판을향하여187
「봄과따라지」에나타난확장적아이러니195
아이러니와모더니즘203

제6장발화의육화-이태준「문장강화」211
이태준과문장강화214
텍스트라는“생명체”-근대적표현으로서의문장작법227
재현의위기에맞서는문장작법231

제7장서정적서사와근대성의불협화음237
반근대성의언어-이태준작품의지배적인상241
즉흥적문장-「문장강화」의서정성255
서정적산문으로서의「까마귀」262
서사의비일관성과역사주의비판272

결론-식민지모더니즘과비교문학연구281

주석296
참고문헌328

출판사 서평

식민지모더니즘의이중구속
언어는정말투명한매체일까요?식민지조선의작가들이처한곤경의배면에는‘재현의언어’가강요하는제국주의화가있었습니다.언어자체가제국의일본어와모어인조선어로위계화된상황에서,작가들은식민의현실이란결코언어화되어서는안된다는사실에절망했습니다.더욱곤란한것은제국주의적재현이피식민자에게는원초적으로금지되어있었다는점입니다.제국주의담론은피식민자로하여금‘우리를닮아라!’라고명령합니다.즉근대화해서최대한제국일본을모방하라는것이지요.하지만조선인이근대담론을완전히학습해일본인이되면,일본과조선은동등해지고일본은더이상제국일수없습니다.그래서제국은그와동시에다음과같은명령을내립니다.‘너무우리처럼은말고!’『재현에도전하는문학』은이상황을식민지의이중구속이라고명명합니다.즉언어는절대로투명한매체일수없습니다.제국주의하에서공식적인국어가일본어였기때문이아니라,‘재현해야한다’는강박에내맡긴언어는현실정치의힘-논리에끄달릴수밖에없기때문입니다.
『재현에도전하는문학』은1930년대식민지조선의상황을재현의위기로진단했던세사람의모더니즘작가를다룹니다.박태원,김유정,이태준세사람은구인회맴버로서,제국주의적현실만을말하게끔하는언어적배치를뒤흔드는작업을했습니다.한동안한국근대문학연구가중요하게다룬논점은작품이얼마나억압된식민지현실을그렸느냐에있었습니다.하지만얼마나정확하게재현했든,재현되어야할현실은제국주의의음화(陰?)로서먼저주어집니다.이러저러한근대적제도가없었다,사람들은부족한물적자원때문에고통받았고정치적으로차별받았다등등.

TheRealModern
언어는투명한매체가아니라는크리스토퍼한스콤선생님의입장을따라가다보면,재현되어야하는것과그것을재현시키는방법을떠받치고있는상징자본의권력을충분히상상할수있습니다.중요한것은재현의정확성을따지는일이아닙니다.우리는재현되어야할것을결정하려는욕망의정치성을묻고,재현될수없는것들을향한언어적감수성을높이는과제에눈을돌려야합니다.
『재현에도전하는문학』은식민지모더니즘문학에나타나는재현의위기를다룹니다.하지만말할수있음과쓸수있음이도대체무엇을의미하는지를언어적가능성을놓고넓고깊게질문합니다.그래서‘언어’를둘러싼여러고민을하는우리에게많은영감을줍니다.문학이란작가적자의식의산물도아니고,시대의전형성을포착하는카메라도아닙니다.이책에따르면,현실의자명성을의심하고다른형태의삶을모색하려는시도속에서쓰인모든것은문학이됩니다.그렇게문학은시장과제국주의를초월해서,이책의원래제목처럼TheReal한것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