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은주로위에서선교사와서양인저자의문헌분석을통해이루어졌다.그들이저술한단행본들,선교잡지나학술지에기고한글들이주된분석대상이되었으며,선교사외에도한국을방문하여기록을남긴서양인들의기록들과선교사가활동하던당시에전개된종교학저서들,그리고이이론적성과를신학계에소개한책자들이참고자료가되었다.선교사에관한기존논문에서는선교사개인별로자료를소개하고분석되는경우가대부분이었지만,이책에서는개신교선교사를포함한서양인관찰자들을어느정도지적인식을공유하는하나의공동체로상정하여종합적으로분석하였다.서양인관찰자집단내에서개념적인식의추이가어떻게진행되는가에초점을맞추어분석하였으며,한국에서선교사들이종교를이해하는과정이이전부터축적되어있거나동시대유럽에서축적된방대한텍스트의망과분리되지않은상태에서이루어졌음을보이고자한다.
제2장은개신교선교사들의종교인식의전사前史에해당하는내용으로,선교이전에축적된한국종교에관한논의들이다.여기서등장하는하멜,귀츨라프,그리피스,달레,로스등은별도의맥락에서한국과인연을가졌기때문에그들의저작은각각분석될수밖에없었다.한국에서활동한선교사들은이들의저술을통해습득한지식을갖고서한국에입국하였다.이러한점에서선배관찰자들의한국종교에대한언급은선교개시이후의선교사들이한국을이해하는데사용된렌즈를제공한셈이었다.귀츨라프와그리피스는이후에선교사들이한국선교현장에서고민하게되는개신교적인종교개념을앞서적용하였다.달레는이후개신교선교사들이크게관심갖게되는민간신앙에대한묘사를제공하였다.그의묘사방식은개신교선교사의저술에도상당부분유지되었다.로스의종교서술은후배들에게직접적인영향을주지는않았지만,성서번역을통하여한국고유의유일신개념을각인시킴으로써후배선교사들이한국의원시유일신론을발달시킬발판을제공하였다.이들의저술을통해서우리는개신교선교사와한국과의실제만남이있기전에종교이해의틀이상당부분갖추어져있었음을확인할수있을것이다.
제3장에서는개항이후개신교선교사를포함한서양관찰자들과한국종교의첫만남을다룬다.1880·90년대들어한국종교에대한서양인의서술은폭발적으로증가하였는데,처음으로언급된내용은한국에서본것이자신이예상했던것과달랐다는것,종교를나타내는외형적인표지를찾을수없었다는것이었다.서양인들이일본에서체험했던것과달리,서울에서는그들이기대했던종교건물을쉽게볼수없었고,따라서종교가없다는결론에이르렀다.그들은장승,탑,불상등을통해차차한국종교를시각적으로파악해갔고,1900년이후에는서울의종교지형을이해할수있었다.그러나첫인상에의해만들어졌던‘종교없음’공론은나름대로생명력을지녀서,이후의서양인방문자들의기록을통해상당기간재생산되었다.
선교사들이한국종교를보편적인종교현상으로인식하게된계기는제4장에서다루게될귀신신앙과의만남이었다.타일러가애니미즘이론을통해‘영적존재에대한믿음’이라는종교정의를제시한배경에는,종교가없는민족은없으며보편적인종교개념을통해그들을연구할수있다는태도가뒷받침되어있었다.한국에있던서양인관찰자들은처음부터귀신신앙을중요한현상으로주목하고있었지만,처음부터그것을종교로인식한것은아니었다.처음에선교사들은‘귀신’을성서의‘악령’으로인식하는기독교적인해석에서벗어나지못했다.그러나귀신을중립적인‘데몬’으로해석하고더나아가‘정령’으로서번역하여새로운이해에도달하게된다.이제한국의귀신신앙은미신이아니라보편적인종교현상으로이해되기시작한것이다.이러한해석의변환은선교사들이종교개념을재설정하는바탕이되었다.
제5장에서다룰것은선교사들이한국종교를통해자신들의종교개념에대해되묻게되는과정이다.존스는한국민간신앙을정령숭배로해석한것을바탕으로종교정의를재검토하고한국종교의존재를선언할수있었다.헐버트는종교개념에대한반성을더진전시켜서한국종교와의만남에서얻은결실을종교정의에포함시킬수있었다.이들은당대의종교학적인용어들이나논리를사용하여한국종교를재료로새로운종교학적논의를개진하였다.선교사들이한국종교를인식하는데바탕이된또하나의주제는유일신론이었다.당시‘알지못하는신’이라는테제는종교학과자유주의신학이공유했던전제라는점에서주목할만하다.우리는막스뮐러가일반개념으로서의종교를말할때유일신개념을전제했고,그러한생각은선교사들도폭넓게공유한것이었음을살펴볼것이다.선교사들이한국고유의‘하느님’을강조했던것은그들이한국에서‘종교’를인식하는또하나의길이었음을확인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