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력야획편 (상) 1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292 (양장)

만력야획편 (상) 1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292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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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명대 초기부터 만력 말기까지 세세히 기록하다
이 책 〈만력야획편(상)〉은 명대 초기부터 만력 말기까지의 전장제도, 인물과 사건, 전고와 일화, 통치 계급 내부의 분쟁, 민족 관계, 대외 관계, 산천지리와 풍물, 경사자집, 불교와 도교, 신선과 귀신 등에 대해 다방면으로 기술되었다. 명대 역사를 살피는 데 기본서로 꼽힐 만큼 치밀한 고증과 정확한 사료를 담고 있다. 세종과 신종 두 조대의 전장제도 및 전고와 일화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국학 연구에 크게 일조할 것으로 기대하며, 조선 이외의 외국에 대한 입장과 정치적 관계를 비롯한 다양한 외교 관계 등을 조명해 볼 수 있는 사료가 풍부하게 내포되어 있다.

풍부한 견문과 학식을 가진 저자 심덕부
저자 심덕부는 증조부, 조부, 부친이 대대로 벼슬을 했던 관계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명대의 정치와 법률, 일문과 일사 등 다방면의 지식과 소식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이러한 박학다식한 견문과 학식은 저술의 충분한 자양분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과 책을 좋아하는 명문가의 면학 분위기는 어린 시절부터 그의 학문적인 성향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또 심덕부가 생활했던 북경은 명대 정치의 중심지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그는 당시의 황실과 관련된 일들을 들을 수가 있었다. 또한, 조부와 부친의 영향으로 공경대신과 사대부 등 유력인사들과 교류했으며, 학식 있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전대의 사건들과 법률, 제도 등에 대해 자세히 들을 기회가 많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저술에 도움이 될 만한 풍부한 자료들을 자연스럽게 축적했고 광범위하고도 탄탄한 지식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그는 만력 46년에 거인이 되어 국자감에서 학업에 열중했으며, 저서 「만력야획편」 외 「청권당집」, 「폐추헌잉어」, 「고곡잡언」, 「비부어략」, 「진새시말」 등을 남겼다.

치밀한 고증과 정확한 사료를 담은 보사적ㆍ야사적 성격이 강한 명대 필기
「만력야획편(상)」은 야사류로 분류되는 12권의 필기로, 명대 역사를 살피는 데 기본서로 꼽힐 만큼 치밀한 고증과 정확한 사료를 담고 있다. 중국 고대의 역사가들이 전통적으로 정사를 우수한 전통으로 여겼기 때문에 역사 기록 중의 많은 오류가 집적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폐단을 오랜 시간 방치해 왔다. 심덕부는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고 누락한 역사적 사실을 보완하고자 본서를 집필했다. 우선 「만력야획편(상)」은 제재와 구성 면에서 일반적인 필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당시 일반적인 필기는 문인들에게 일종의 소일하는 방식으로 여겨졌고, 기록한 내용들도 일상의 잡다한 일이나 알려지지 않은 흥미위주의 소재였다. 물론 「만력야획편(상)」도 기타 필기들과 마찬가지로 민간의 풍속이나 기이한 사건들, 불교와 도교의 귀신 이야기도 다루고 있지만, 국가의 법률, 제도, 정치, 역사 등에 관련된 분량이 전체의 70%에 달한다. 「만력야획편(상)」에서 언급한 자료들의 내원과 참고자료들을 살펴보면 왕세정의 「엄주산인론고」, 각 조대의 「실록」, 「입재한록」 등의 기록들, 개인 묘지명, 「호광통지」와 같은 각지의 통지류의 문장들이다. 또한, 심덕부가 자서에서 구양수의 「귀전록」의 체례를 따랐다고 밝힌 바, 정사의 누적된 폐단을 비판하고 역사를 책임지고 편찬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구양수의 「귀전록」은 사마천이 기전체 사서에서 시도한 인물과 제재의 선택과 집중, 호견법의 사용, 생동감 있는 구어로 된 대화체의 다용, 해학성과 풍자성 등이 선명하게 표출되어 있다. 따라서, 심덕부 스스로 「귀전록」의 체례를 따랐다고 한 것은 사마천과 구양수의 저술 동기와 목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만력야획편(상)」의 가치와 의의를 평가할 수 있다.

만력 연간 중심의 시기는 명나라뿐만 아니라, 당시의 조선과도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므로, 본서에 기록된 관련 자료는 국학 연구에도 크게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조선 이외의 외국에 대한 입장과 정치적 관계를 비롯한 다양한 외교 관계 등을 조명해 볼 수 있는 사료가 풍부하게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서에 대한 연구는 과거사의 조명을 통해 현재의 중국에 대한 전략적 이해와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점에서 또한 그 가치와 의의가 매우 크다.
저자

심덕부

李承信,LeeSeung-shin
현한국공학대학지식융합학부외래교수.이화여자대학교중문과를졸업하고고려대학교에서문학박사학위를취득했다.상하이푸단대학방문학자,UniversityofBritishColumbiavisitingscholar,고려대학교중국학연구소연구교수등을역임했다.저역서로「首屆宋代文學」(공저),「취옹문선역(醉翁文選譯)」,「이백시전집(李白詩全集)」(공역)등이있으며,대표논문으로「중국고전산문연구의시각과방법론모색」,「구양수「귀전록(歸田錄)」의체재와서술방식연구」등이있다.

목차

해제
만력야획편서萬曆野獲編序
속편소인續編小引
보유서補遺序
보유발補遺跋

권1
열조列朝
하늘에즉위를고하다
봉선전奉先殿
경사京師의제왕묘帝王廟
제왕帝王의배향配享
「효자록孝慈錄」
황제의문집文集
일서逸書를찾다
백관에게먹을것을하사하다
국초國初의실록實錄
실록을감수監修하다
피휘避諱
새문璽文
침원寢園의전례典禮에부족함이있다
황릉皇陵제사祭司
건문군建文君이도망가다
황제의잠저潛邸시기구택
연호年號
태묘太廟의공신功臣배향配享
외국에하사한시
악공樂工과이국夷國여인들을풀어주다
관인官印을하사하다
명절휴가
시「중추절에달이없네[中秋無月]」
선대의네마리준마
제왕을모신이에대한상과벌이판이하게다르다
강관講官에게금전을하사하시다
광한전廣寒殿
망의
천순연호
영종의즉위일
복벽에대한상벌의남발
경태景泰초변경邊境의신하에게조서를내리다
헌묘憲廟와효묘孝廟의성덕盛德
군주와재상의남다른자질
젓갈과차를바치다
대신을대면해정사政事에대한의견을나누다
회전會典을중수重修하다
홍치연간중기의정치
옥새를진상하다
황제의음식
선대先代의장서藏書
어가御駕
무종행차行差의시작
무종이이름을가탁하다
무종이작호를다시올리다
제왕의별호
황제와황후의별호
황제가옛재상에게내린시
흰옷의금기
돼지도축을금하다
살생을금지하는괴이한일
방죽위의마방
관직을받은예인藝人이정치에관여하다

권2
열조列朝
세종의제위를잇는의례
선조의유훈을인용하다
종묘宗廟
황상께서정월대보름날밤을시로읊다
황제옹립후의대우가판이하다
가정초대례大禮를논하다
황제의사직
경령궁景靈宮
하늘과상제上帝에게배향하다
「회전會典」에기재가누락되다
대례大禮의잘못을바로잡다
헌황제獻皇帝를헌종獻宗으로칭하다
소경방邵經邦이의례를비난하다
전각의명칭을바꾸다
옥지궁玉芝宮
재궁齋宮
무일전無逸殿
서내西內
대신제사를올리다
탄신일과기일이같다
세종의성스러운효심
강학講學에부족함이드러나다
시를바치고아첨해미움을받다
새와짐승을위로하는글
묘墓에대한의론에서아첨하는자를기용하지않다
봉록을바쳐공사를돕다
장인을알아주다
금기를어기다
정덕ㆍ가정연간어보御寶의소실燒失
관인官印의규격
가정연간의청사靑詞
가정연간에끝까지건청궁乾淸宮에납시지않다
대행황제大行皇帝와대행황후大行皇后의상례喪禮
「실록」에서일을기록하다
「실록」은근거로삼기어렵다
두황조의어질고너그러움
주상께서신하의이름을바꾸시다
훌륭한군주의명명命名
조정에서관리를만나예물을바치다
금상의지극한효성
금상의어서御書
정관정요貞觀政要
어린황제의일강日講
금상의풍보馮保에대한태도
임인壬寅년의불행
임인년에황상의장수를축하하다
백년동안의4대황제
북대北臺
개인적으로올리는글을궁궐에그대로보관하다
단오절
칠석날
시종들에게하사하다
육조六曹가조서에답하고경卿이라추대하다
어좌뒤의부채
광산
광산의해로움

출판사 서평

풍부한견문과학식을가진저자심덕부

저자심덕부는증조부,조부,부친이대대로벼슬을했던관계로어려서부터자연스럽게명대의정치와법률,일문과일사등다방면의지식과소식을접할기회가많았고,이러한박학다식한견문과학식은저술의충분한자양분이되었다.
경제적으로윤택한삶과책을좋아하는명문가의면학분위기는어린시절부터그의학문적인성향에깊은영향을주었다.또심덕부가생활했던북경은명대정치의중심지로,다양한경로를통해서그는당시의황실과관련된일들을들을수가있었다.또한,조부와부친의영향으로공경대신과사대부등유력인사들과교류했으며,학식있는집안어른들로부터전대의사건들과법률,제도등에대해자세히들을기회가많았다.이러한과정을통해서저술에도움이될만한풍부한자료들을자연스럽게축적했고광범위하고도탄탄한지식의기초를다질수있었다.그는만력46년에거인이되어국자감에서학업에열중했으며,저서「만력야획편」외「청권당집」,「폐추헌잉어」,「고곡잡언」,「비부어략」,「진새시말」등을남겼다.

치밀한고증과정확한사료를담은보사적ㆍ야사적성격이강한명대필기

「만력야획편(상)」은야사류로분류되는12권의필기로,명대역사를살피는데기본서로꼽힐만큼치밀한고증과정확한사료를담고있다.중국고대의역사가들이전통적으로정사를우수한전통으로여겼기때문에역사기록중의많은오류가집적돼왔음에도불구하고이러한폐단을오랜시간방치해왔다.심덕부는이러한오류를바로잡고누락한역사적사실을보완하고자본서를집필했다.우선「만력야획편(상)」은제재와구성면에서일반적인필기와는큰차이가있다.당시일반적인필기는문인들에게일종의소일하는방식으로여겨졌고,기록한내용들도일상의잡다한일이나알려지지않은흥미위주의소재였다.물론「만력야획편(상)」도기타필기들과마찬가지로민간의풍속이나기이한사건들,불교와도교의귀신이야기도다루고있지만,국가의법률,제도,정치,역사등에관련된분량이전체의70%에달한다.「만력야획편(상)」에서언급한자료들의내원과참고자료들을살펴보면왕세정의「엄주산인론고」,각조대의「실록」,「입재한록」등의기록들,개인묘지명,「호광통지」와같은각지의통지류의문장들이다.또한,심덕부가자서에서구양수의「귀전록」의체례를따랐다고밝힌바,정사의누적된폐단을비판하고역사를책임지고편찬하려했음을알수있다.구양수의「귀전록」은사마천이기전체사서에서시도한인물과제재의선택과집중,호견법의사용,생동감있는구어로된대화체의다용,해학성과풍자성등이선명하게표출되어있다.따라서,심덕부스스로「귀전록」의체례를따랐다고한것은사마천과구양수의저술동기와목적을염두에둔것이다.이러한점에서「만력야획편(상)」의가치와의의를평가할수있다.

만력연간중심의시기는명나라뿐만아니라,당시의조선과도매우밀접한연관성을지니므로,본서에기록된관련자료는국학연구에도크게일조할것으로기대된다.또한,조선이외의외국에대한입장과정치적관계를비롯한다양한외교관계등을조명해볼수있는사료가풍부하게내포되어있다.그러므로,본서에대한연구는과거사의조명을통해현재의중국에대한전략적이해와대응책을마련할수있는계기가되는점에서또한그가치와의의가매우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