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고문소증 3 (양장본 Hardcover)

상서고문소증 3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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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고증학의 불멸의 명작 『상서고문소증』
천년을 이어져 온 『상서』 금고문 논쟁을 종결하고 고문의 위작을 증명하다.
저자 염약거(1636~1704)는 장쑤성 회안에서 출생하였으며, 중국 청초의 고증학자이다. 『상서고문소증』을 통해 유가의 탄생과 한대 학관이 세워진 이래로 최고의 경전의 하나로 군림하면서 지존의 위상을 가진 『상서』가 위작임을 증명하였다. 이는 경학학술사상 최고의 과학적 성과로 평가되며, 그때까지 신성불가침으로 되어 있던 유교경전에 대해 객관적 실증적 연구 방법을 시도한 것으로 청초 고증학 발전의 초석을 이루는 것이다.
저자

염약거

李殷鎬,LeeEun-ho
성균관대학교유학대학유학과입학,동대학원졸업(철학박사)
중국산동사범대학외적(外籍)교수
현성균관대학교유교철학·문화콘텐츠연구소책임연구원

목차

머리말

상서고문소증권6하下
제89.제수濟水의물길이고갈되었다가다시통하게된것은왕망이후의일인데《공전》에도기록되어있음을논함
제90.《공전》의삼강三江이진택震澤으로유입된다는설의잘못을논함
제91.《공전》의“화산지양華山之陽”주해가옳지않음을논함
제92.《공전》의양산梁山과기산岐山이옹주雍州에있다는주해가옳음을논함
제93.《채전》옹수灉水,저수沮水를연주兗州에속하지않는것으로주해한것을논함
제94.《채전》이송조宋朝의여지輿地를외우지못함을논함
제95.《우공》전복甸服내에해당되는지역을논함
제96.《사기ㆍ하거서》“형양동남에서하수를이끌었다滎陽下引河”는《우공》이후의일임을논함

상서고문소증권7
제97.상商의“사祀”,주周의“년年”또한호칭互稱될수있었고,반드시《이아》의용례를따르지않았음을논함
제98.《태서》에서주紂의죄를비난한성토가매우심하여결코성인聖人의말이아님을논함
제99.《서》가드러나고숨겨짐에도시운時運이있으니,고문의성행이이미오래된이후에는당연히폐기되어야함을논함
제100.공안국《경명》전傳이《주례》태어大馭,태복大僕과합치하지않은오류가《한서ㆍ백관공경표》응소주注에근본한것임을논함
제101.《채중지명》“관숙을치벽하다致辟管叔”라는왕숙王肅의《금등》“벽辟”주해에근본한것임을논함
제102.[궐闕]
제103.《대우모》“사해곤궁四海困窮”앞에다른말들이삽입되어있는데,이는원래요堯의말을순舜의것으로잘못삽입한것임을논함
제104.태강太康실국失國당시에어머니는이미계시지않았고,다섯형제가어머니를모시고갔다는것이망언妄言임을논함
제105.백편소서小序는복생이보지못한것이나,실제로주진周秦연간에나온것임을논함
제106.만출고문古文의진고문眞古文과서로다른곳이오히려《석문釋文》과《공소孔疏》에드러나보임을논함
제107.공안국《대서大序》의“과두서科斗書가폐지된지는이미오래되었다”는말은허신의《설문해자ㆍ서序》에근거한것임을논함
제108.[궐闕]
제109.[궐闕]
제110.[궐闕]
제111.한대漢代에는진고문眞古文으로금문今文의탈오脫誤를교정할수있었음을논함
제112.위僞《공전》의《낙서洛書》수數인구九로써우禹가구류九類를만들었다는설이잘못임을논함

출판사 서평

최고의경전《상서》의위조를밝혀내다
《상서》는고대성왕과현신의언행을기록한유가의경전이자역사서로서,공자가《시》와함께필수교재로선택한교과서였다.유가의탄생과한대학관이세워진이래로최고의경전의하나로군림하면서지존의위상을가진《상서》를“위조된것”으로주장하고나서는것은결코쉬운일이아니다.더욱이천여년동안지속된공안국전《상서》의자체적모순과허점의노출그리고그것에대한합리적“의심”은공자이래한사람이라는주자에게도쉽지않은사안이었다.염약거는주자의의변을자기학설의보호막으로삼아자신의학문을반대하는사람들에게성법과경도를위배하였다는말을하지못하도록하는한편,선대학자들이주창한방법론과결과물을운용하여역사적인의변작업을완성한저작을편찬하게되었다.그것이바로고증학불멸의명작《상서고문소증》이다.비로소경전의지위에있던고문《상서》는위작으로판명되었고,위고문은아무런저항없이전복되고말았다.이는경학학술사상최고의과학적성과로평가된다.

문헌적증거와역사적증거로위작을고정하다
「상서고문소증」은“제1.전후《한서》에기록된고문편수가지금과다름을논함”을시작으로한가지문제에대해한가지의론을하여모두128편을입론하였는데,중간에28~30,33~48,108~110,122~129등총30조가빠져있다.염약거는매작의선행연구에서개창한증거수집방법을운용하여,문헌적증거와역사적증거두방면으로공씨본의위작을고정하였다.제1에서제80(권1~권5)까지는문헌적증거이고,제81에서제96(권6)까지는역사적증거이며,제97에서제112권7까지는위고문내용의모순을폭로하였고,제113에서끝권8까지는오역ㆍ주희ㆍ왕충운ㆍ매작ㆍ학경ㆍ정원ㆍ요제항ㆍ마숙등의의변설을인용한것이다.

‘고증학불멸의명작’손자염학림에의해다시세상에나오다
염약거의《상서고문소증》8권이세상에나왔을때,성경을모욕했다는이유로여러비난에서자유로울수없었다.뿐만아니라하마터면그불멸의연구성과는그대로역사에묻히고다음세대를기약할뻔했었다.염약거생존당시,《상서고문소증》은단지초본만유전되었고판각간행되지는못했다.염약거가세상을떠난40년후그의손자염학림에의해회안에서판각간행되었다.이것이바로건륭10년평음주씨권서당본이다.건륭37년《사고전서》가수찬되면서이판본이수록되었고,원각은수몰폐기되었다.그후가경원년오인기의천진각본,동치6년전당왕씨진기당중수본,왕선겸의《청경해속편》본이만들어졌다.각본이외에도초본2종이세상에전해지고있다.하나는항세준발문의청초본5권으로현재중국국가도서관에소장되어있고,다른하나는청심동초본5권으로현재호남성도서관에소장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