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책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비극을 초래하고 있는 좌·우 정치적 이념 대립의 뿌리와 그 흐름을 개항기 이후 정부수립기에 이르는 근대 한국사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이다.
접근 방법에서 저자는 근대 한국사회가 당면한 소위 ‘민족문제’를 ‘민생과 인간의 문제’로 보고, 이 문제를 ‘안에서 밖으로’가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보는 방식, 즉 당시 한반도를 둘러싸고 진행되던 주변 열강들의 이권 다툼과 동아시아를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들의 패권 경쟁이라는 시각에서 조명한다. 이 문제에 직면하여 저자는 당시 조선의 사정을 ‘한반도 역사의 연속과 불연속의 문제’로 파악하여 접근한다. 구한말 개항기는 한민족에게 역사상 최초로 ‘역사의 불연속’을 경험한 시기이다.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 한민족의 ‘동질적인 자기(自己)’를 지키려는 수구파와 ‘이질적인 타자(他者)’를 수용하려는 개화파의 대립으로 발전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내부 분열을 일으킨다. 조선을 지탱하던 조선중화주의에 서구계몽주의가 맞서는 형국이었다.
흔들리는 한민족의 운명 앞에서 한 편에서는 민족의 연속적 정체성을 체질화된 유교주의에서 찾고자 하는 계열과 과거 조상의 도덕과 윤리에서 찾고자 하는 계열이 목소리를 높였다면, 다른 한 편에서는 서구의 발전된 문물을 조속히 수용하여 과거와는 불연속적인 자립·자강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후자의 불연속을 주장하는 지식인들은 현실을 움직이는 구체적인 힘은 ‘과거의 정신적 윤리’가 아니라 ‘근대의 물리적 사실’이라는 점에 착안한다. 양자 간에 화해의 접점을 찾는 데 실패하면서, ‘어떤 길이 나라를 살리는 길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한민족 스스로 찾아 실행하지 못하고, 타민족에게 위임하여 급기야 국권상실이라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민족문제’ 해결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게 된다. 일제의 강점을 통한 반만년 한반도 역사의 단절은 관성적으로 역사의 연속을 염원하던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와 모욕으로 다가오면서 이에 대한 반대급부가 민족 저항운동으로 나타난다.
일제 식민지기의 조선은 ‘식민지 근대주의’라는 일그러진 자화상 속에 있었다. 여기서 ‘근대주의’는 조선이 조선총독부의 정치적 지배하에서 공산·사회주의의 이념과 자본·자유주의의 영향 속에 놓여 있는 상황을 뜻한다. 식민지 근대의 양면성은 이후의 한국사가 파행성을 면치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특히 러시아 혁명의 성공 직후 1920년대 소련의 코민테른은 한반도의 정치적 지형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코민테른의 사회주의와 조선의 저항 민족주의가 상호친화력을 띠고 결합하면서 조선의 대일 저항운동은 소련, 중국과 더불어 일본의 아시아 진출에 제동을 걸기 위한 공동전선을 펼쳐나간다. 하지만 조선 안팎에서 진행되는 독립/저항운동과는 별개로 조선 내부의 일부 계층은 일본이 조선에 파종한 ‘근대’의 정신과 기술에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근대적 태도의 습득’을 ‘민족문제’의 해법으로 간주하면서 현실에 대한 저항보다는 적응을 우선시하여 소위 ‘민족개량주의’의 노선을 택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항일·독립운동이라는 외향적 저항의 코드와 더불어 친(親)서구·교육이라는 내향적 적응의 코드가 식민지기 조선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해방 후 한국사회의 정치적 성격이 민족주의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넷으로 나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선 민족주의를 주체로 볼 것인가 아니면 수단으로 볼 것이냐, 다음으로 민족주의를 사회주의와 결합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의와 결합할 것인가에 따라 다음과 같은 구분이 가능하다.
민족주의를 주체로
민족주의를 수단으로
사회주의와 결합(좌파)
1.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여운형 계열)
2. 민족주의적 사회주의(박헌영 계열)
자유주의와 결합(우파)
3. 자유주의적 민족주의(김구 계열)
4. 민족주의적 자유주의(이승만 계열)
여기서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는 이후 역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반면,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적 자유주의는 각각 북한과 남한의 정부 수립에 근간이 되는 통치이념이었다. 그런데 민족적 사회주의는 소련의 코민테른에 입각한 정치이념으로서 조선의 의병/동학운동이나 식민지기 3·1운동 등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남로당의 활동을 비롯한 사회주의적 계급운동의 근간을 이루면서 이전의 저항운동들과 일정 부분 연속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족적 자유주의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이승만 정부 정체(政體)의 근간인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는 한국민에게 낯선 것이어서 그 도입에서부터 난항이 예상되었다. ‘자유민주주의’는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기에 기독교를 통하여 소극적으로 소개되다가 미군정기 후반에 들어 적극적으로 홍보했지만 (법)제도로 정착되어 운용되는 과정에서는 숱한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따랐다. 당시 미·소 냉전의 기류를 타고 자유민주주의가 반공주의의 성격을 띠면서 기존에 공산·사회주의에 기반을 둔 민족주의의 저항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 자유민주주의의 제도화와 더불어 과거지향적인 식민지기 친일청산 보다는 미래지향적인 근대적 국민국가의 창출이 더 시급한 민족문제로 부각하였다.
개항기 이후 한국의 근대사를 일별하면, 민족문제의 해법을 주체적 민족주의에서만 찾기는 어렵다. 조선 후기 국내외로 얽힌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국왕과 조정의 관리들이 서로에게 유리한 외세에 의존하려 했다는 사실이 망국의 원인이었다. 민족의 자립을 위해 타국에 의존해야만 했다는 아이러니가 암울한 미래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국력이 미약한 민족에게 다른 길은 열려 있지 않았다. 당시 중국(淸)에 의존하던 조선은 대륙진출을 노리는 일본과 팽창정책을 앞세운 러시아 앞에서 무력했다. 국제정세가 한민족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더구나 세계사적으로 소련의 코민테른이 확산 일로에 있었고, 이에 맞서는 미국의 반공주의 정책이 한반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한민족은 여전히 대외의존적으로 정책을 수립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지정학적 그리고 정치·경제적 특성상 ‘대외 의존’이 불가피하다면 이러한 현실 여건을 민족에게 유리하도록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국의 미래를 위해 저자는 전통적인 민족주의를 고수하기보다는 민족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성찰적 민족주의를 통한 개방적 분절성’을 제시한다.
지은이
접근 방법에서 저자는 근대 한국사회가 당면한 소위 ‘민족문제’를 ‘민생과 인간의 문제’로 보고, 이 문제를 ‘안에서 밖으로’가 아니라 ‘밖에서 안으로’ 보는 방식, 즉 당시 한반도를 둘러싸고 진행되던 주변 열강들의 이권 다툼과 동아시아를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들의 패권 경쟁이라는 시각에서 조명한다. 이 문제에 직면하여 저자는 당시 조선의 사정을 ‘한반도 역사의 연속과 불연속의 문제’로 파악하여 접근한다. 구한말 개항기는 한민족에게 역사상 최초로 ‘역사의 불연속’을 경험한 시기이다.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 한민족의 ‘동질적인 자기(自己)’를 지키려는 수구파와 ‘이질적인 타자(他者)’를 수용하려는 개화파의 대립으로 발전하면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내부 분열을 일으킨다. 조선을 지탱하던 조선중화주의에 서구계몽주의가 맞서는 형국이었다.
흔들리는 한민족의 운명 앞에서 한 편에서는 민족의 연속적 정체성을 체질화된 유교주의에서 찾고자 하는 계열과 과거 조상의 도덕과 윤리에서 찾고자 하는 계열이 목소리를 높였다면, 다른 한 편에서는 서구의 발전된 문물을 조속히 수용하여 과거와는 불연속적인 자립·자강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후자의 불연속을 주장하는 지식인들은 현실을 움직이는 구체적인 힘은 ‘과거의 정신적 윤리’가 아니라 ‘근대의 물리적 사실’이라는 점에 착안한다. 양자 간에 화해의 접점을 찾는 데 실패하면서, ‘어떤 길이 나라를 살리는 길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한민족 스스로 찾아 실행하지 못하고, 타민족에게 위임하여 급기야 국권상실이라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민족문제’ 해결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게 된다. 일제의 강점을 통한 반만년 한반도 역사의 단절은 관성적으로 역사의 연속을 염원하던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수치와 모욕으로 다가오면서 이에 대한 반대급부가 민족 저항운동으로 나타난다.
일제 식민지기의 조선은 ‘식민지 근대주의’라는 일그러진 자화상 속에 있었다. 여기서 ‘근대주의’는 조선이 조선총독부의 정치적 지배하에서 공산·사회주의의 이념과 자본·자유주의의 영향 속에 놓여 있는 상황을 뜻한다. 식민지 근대의 양면성은 이후의 한국사가 파행성을 면치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특히 러시아 혁명의 성공 직후 1920년대 소련의 코민테른은 한반도의 정치적 지형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코민테른의 사회주의와 조선의 저항 민족주의가 상호친화력을 띠고 결합하면서 조선의 대일 저항운동은 소련, 중국과 더불어 일본의 아시아 진출에 제동을 걸기 위한 공동전선을 펼쳐나간다. 하지만 조선 안팎에서 진행되는 독립/저항운동과는 별개로 조선 내부의 일부 계층은 일본이 조선에 파종한 ‘근대’의 정신과 기술에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근대적 태도의 습득’을 ‘민족문제’의 해법으로 간주하면서 현실에 대한 저항보다는 적응을 우선시하여 소위 ‘민족개량주의’의 노선을 택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항일·독립운동이라는 외향적 저항의 코드와 더불어 친(親)서구·교육이라는 내향적 적응의 코드가 식민지기 조선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양상은 해방 후 한국사회의 정치적 성격이 민족주의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넷으로 나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선 민족주의를 주체로 볼 것인가 아니면 수단으로 볼 것이냐, 다음으로 민족주의를 사회주의와 결합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주의와 결합할 것인가에 따라 다음과 같은 구분이 가능하다.
민족주의를 주체로
민족주의를 수단으로
사회주의와 결합(좌파)
1.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여운형 계열)
2. 민족주의적 사회주의(박헌영 계열)
자유주의와 결합(우파)
3. 자유주의적 민족주의(김구 계열)
4. 민족주의적 자유주의(이승만 계열)
여기서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는 이후 역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반면,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적 자유주의는 각각 북한과 남한의 정부 수립에 근간이 되는 통치이념이었다. 그런데 민족적 사회주의는 소련의 코민테른에 입각한 정치이념으로서 조선의 의병/동학운동이나 식민지기 3·1운동 등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남로당의 활동을 비롯한 사회주의적 계급운동의 근간을 이루면서 이전의 저항운동들과 일정 부분 연속성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족적 자유주의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이승만 정부 정체(政體)의 근간인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는 한국민에게 낯선 것이어서 그 도입에서부터 난항이 예상되었다. ‘자유민주주의’는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기에 기독교를 통하여 소극적으로 소개되다가 미군정기 후반에 들어 적극적으로 홍보했지만 (법)제도로 정착되어 운용되는 과정에서는 숱한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따랐다. 당시 미·소 냉전의 기류를 타고 자유민주주의가 반공주의의 성격을 띠면서 기존에 공산·사회주의에 기반을 둔 민족주의의 저항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 자유민주주의의 제도화와 더불어 과거지향적인 식민지기 친일청산 보다는 미래지향적인 근대적 국민국가의 창출이 더 시급한 민족문제로 부각하였다.
개항기 이후 한국의 근대사를 일별하면, 민족문제의 해법을 주체적 민족주의에서만 찾기는 어렵다. 조선 후기 국내외로 얽힌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국왕과 조정의 관리들이 서로에게 유리한 외세에 의존하려 했다는 사실이 망국의 원인이었다. 민족의 자립을 위해 타국에 의존해야만 했다는 아이러니가 암울한 미래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국력이 미약한 민족에게 다른 길은 열려 있지 않았다. 당시 중국(淸)에 의존하던 조선은 대륙진출을 노리는 일본과 팽창정책을 앞세운 러시아 앞에서 무력했다. 국제정세가 한민족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더구나 세계사적으로 소련의 코민테른이 확산 일로에 있었고, 이에 맞서는 미국의 반공주의 정책이 한반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한민족은 여전히 대외의존적으로 정책을 수립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지정학적 그리고 정치·경제적 특성상 ‘대외 의존’이 불가피하다면 이러한 현실 여건을 민족에게 유리하도록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국의 미래를 위해 저자는 전통적인 민족주의를 고수하기보다는 민족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성찰적 민족주의를 통한 개방적 분절성’을 제시한다.
지은이
근대 한국사회의 정치적 정체성 - 한국연구총서 116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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