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일제강점기의 고등교육, 경성제국대학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가 식민지에서 인정한 유일한 ‘대학’은 경성제국대학뿐이었다. ‘대학’에 가려면, 엄청난 경쟁을 뚫고 경성제국대학을 가던가, 일본 아니면 다른 해외 국가로 배움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고등교육을 ‘대학’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식민지 조선에서도 또 다른 고등교육의 길은 존재했다. 전문학교가 그것이었다.
‘전문학교’는 정의상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라고 하겠다. 그중 ‘사립전문학교’는 일제강점기 내내 식민지의 위계적인 고등교육 구조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식민지조선에서 사립전문학교는 꼭 그런 실용적인 직업교육, 전문교육에 국한된, ‘열등한’ 기관만은 아니었다. 많은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열망하며 이들 학교에 입학했고, 식민권력이 설립하고 운영했던 일본인 위주의 관립 고등교육과는 다른 이상과 열망을 여기서 꿈꾸었다. 일본인 주도의 아카데미즘 속에서 학술지식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던 조선인 지식인들에게도 사립전문학교는 그런 활동을 이어가게 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물론 사립전문학교가 후대의 신화처럼 마냥 ‘민족사학(民族私學)’으로서만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립전문학교가 식민권력의 자장(磁場)을 벗어나는 것은 용이하지 않았으며, 매 순간 ‘식민권력’과 ‘민족사학’ 사이에서 동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들이 직면한 엄연한 식민지의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 사립전문학교의 의미는 적지 않다. 해방 이후 이들을 모태로 유수의 사립대학교가 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남긴 인적, 제도적 유산이 한국 대학 전반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학, 사회학, 교육사 분야의 연구자들이 2019년부터 진행한 공동연구의 성과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일관된 체계나 관점을 미리 정하지 않았으며, 모든 사립전문학교를 다루지도 못했다. 사실 현재 우리 학계의 상황에서 식민지 고등교육 연구, 특히 사립전문학교에 관한 고찰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현재 우리 학계에 이 문제에 관해 도달한 지점을 보여주며, 사립전문학교의 제도와 조직, 학문과 지식, 그것이 남긴 인적 유산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할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실마리를 던져보려는 시도라고 하겠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시야를 넓혀서, 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가 한국 대학이 출발했던 ‘또 하나의 기원’이었다는 것, 따라서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경험을 톺아보는 것이야말로 한국 대학의 역사를 읽는 새로운 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를 통해 본 한국 대학의 ‘또 하나의 기원’ - 경성제국대학이 아닌 사립전문학교에서 출발한 한국 대학?
이 책은 식민지 사립전문학교를 한국 대학의 ‘또 다른 기원’으로서 주목하면서, 그와 관련된 전모를 세밀하게 검토하는 연구성과들을 묶은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 식민지기 조선에는 식민권력이 직접 세운 경성제국대학 이외에 어떤 대학의 설립도 허락되지 않았다.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한 고등교육을 지향했던 여러 집단은 끊임없이 ‘대학’의 설립을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사립’의 ‘전문학교’ 설립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대학체제의 역사적 기원을 다루는 연구들이 1945년 해방 이후의 대학을 주를 다루던가, 그 이전이라 하더라도 경성제국대학 정도를 분석하는 데 그쳤던 것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그러나 식민지 사립전문학교는 미처 ‘대학’이 되지 못한 미발(未發)의 기관, 그 이상이었다. 이는 비단 사립전문학교가 오늘날 유수의 사립대학교의 전신(前身) 기관이었다는 점만을 지적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경성제국대학은 그 운영에서 한국인이 철저히 배제된 기관에 가까웠다. 제국대학을 나온 ‘조센진’은 많았어도 제국대학에서 가르치고 학사를 운영해본 한국인은 전무했다. 결국 해방 이후 한국의 지식인들이 새로운 대학을 구상하고 운영하면서 참고했던 경험은 식민지 사립전문학교를 세우고, 가르치고, 운영하며 쌓아온 것들에 가까웠다. 저자들이 “한국의 대학은 경성제국대학이 아니라 차라리 사립전문학교의 후예는 아니었을까” 하는 다소 도발적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도와 조직, 학문과 지식인, 교육경험을 통해 본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현실
식민지 조선의 사립전문학교는 여러모로 독특한 조직이었다. 우선 대만이나 만주 등 제국 일본의 지배권역 어디에도 조선만큼 사립전문학교의 설립과 운영이 활발했던 곳은 없었다. 사립전문학교는 분명 식민지 고등교육체제 내부에 있었으나, 조선인 학생만을 받았으며, 조선어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사립전문학교가 일본인 중심의 경성제국대학이나 관립전문학교에 맞섰던 ‘민족사학’으로 드높여진 것도 이를 배경으로 한다. 저자들은 각각 제도와 조직, 학문과 지식인, 전문교육 경험의 측면에서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독특한 경험과 그것이 해방 이후 한국 대학에 남긴 유산들을 세밀하게 검토한다.
제1부에 수록된 연구들은 식민지 교육체제에 편입되어 있지만, 그에 완전히 통합되지 않았던 사립전문학교의 모순적 존재 방식을 다룬다. 이를 통해 때로는 식민권력에 저항하며 독자적 교육을 지향했으나, 빈번히 그에 순응, 포섭되기도 하고, 심지어 교세 확장을 명분으로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했던 사립전문학교의 복합성이 드러난다. 제1장에서 정준영은 식민지 전문학교체제의 특징을 개괄하는 한편, 중앙불교전문학교의 사례를 통해 ‘민족사학’(民族私學)의 신화를 해부한다. 2장에서 김일환은 보성전문학교 사례를 통해 그리고 재단법인이 사립대학 설립ㆍ경영의 주체가 되는 한국 사립대학제도의 기원을 확인하는 한편, 식민지 사회에서 사립학교재단이 공공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의 의미를 규명한다. 3장에서 조은진은 주로 관립전문학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전문학교의 입학자격과 내선공학(內鮮共學) 문제를 다룬다. 4장에서 강명숙은 1938년 이후 전시체제하의 조선총독부의 전문학교 정책을 분석하는 한편, 전문학교의 교육이 전쟁 준비의 와중에 형해화되는 양상을 분석한다.
제2부에서는 식민지에서 지식인이 된다는 것, 학문을 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사립전문학교라는 렌즈를 통해 보여준다. 사립전문학교는 끝내 ‘대학’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식민지 사회에서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을 위한” 학문하기가 제도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거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았다. 5장에서 김필동은 사립전문학교가 조선인 사회학자가 조선인 학생을 대상으로 조선어로 사회학을 교육하는 장소가 될 수 있었음을 방대한 사료를 통해 세밀하게 보여준다. 6장에서 윤해동은 전통적 지식체계이자 종교였던 유교가 전문학교에서 교육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체계로 재편되는 양상을 명륜학원, 명륜전문학교로 이어지는 유교 고등교육기관을 통해 규명한다. 7장에서 이경숙은 숭실전문학교의 사례로 교수채용의 경로와 교수진의 구성, 이를 통해 구성된 지식인 네트워크의 특징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제3부에서는 식민지 전문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의 의미를 따져본다. 사립전문학교에서 교육되었던 전문적 지식은 제국대학에 비해 낮은 위상이었다고 하더라도 많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접근 가능했던 최고 수준의 지식이었다. 여기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해방 이후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 대학의 초기 형성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열쇠다. 8장에서 김근배는 숭실전문학교의 이학과와 농학과를 통해 배출된 조선인 과학기술자들의 행보를 규명한다. 9장에서 김정인은 식민지 여성교육의 지향점 중 하나가 ‘교사 양성’이었던 것이 의미했던 바를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10장에서 최은경은 경성여자전문학교의 설립을 주도했던 - 하지만 완성할 수는 없었던 - 4인의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 출신 여의사들의 활동을 통해 식민지에서 여자 의사로 양성되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질문한다. 마지막으로 11장에서 장신은 해방 이후 한국 의학교육이 일본식도 아니고 미국식도 아닌, 독특한 형식의 의예과 형태로 제도화된 것의 배경을 추적하고 있다.
왜 지금, 사립전문학교인가? ‘대학 위기’의 시대에 읽는 사립전문학교의 역사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식민지기 사립전문학교의 역사적 경험이 해방 이후 한국 대학의 ‘또 하나의 기원’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사립전문학교의 역사를 다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사실 한국 대학의 ‘위기론’이 범람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게다가 산적한 위기에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그 방법론을 찾는 것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고등교육이 지나치게 사립대학에 의존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사립대학은 이미 대학기관 전체의 80%, 재적 대학생 수의 약 70%를 차지한다. 해방 이래 국공립 대학이 사립대학의 우위에 섰던 적은 없었으며, 갈수록 지방 국공립대학과 수도권 사립대학 사이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더구나 한국의 대학은 누구라도 그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는 공물(公物)처럼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사적으로 소유되고 운영되며 관리되는 사물(私物)로서 존재한다. 한국 대학의 대부분이 사립대학이라는 사실은 공적 개입을 통해 대학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원천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 연원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한국 사립대학의 역사는 너무나 쉽게 ‘민족사학’의 신화를 통해 윤색되거나, 일부 사립학교 교주(校主)의 전횡을 들어 ‘후진성’과 ‘퇴행성’의 역사로 단정되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말 필요한 것은 한국 사립대학체제를 구성하는 이질적 요소들의 다양한 유래와 원천을 추적하고, 그로 말미암은 효과를 세밀하게 이해하는 작업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본 저작이 한국 사립대학 문제의 기원을 ‘사립전문학교’를 통해 추적한 것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보다 발본적으로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전문학교’는 정의상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라고 하겠다. 그중 ‘사립전문학교’는 일제강점기 내내 식민지의 위계적인 고등교육 구조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식민지조선에서 사립전문학교는 꼭 그런 실용적인 직업교육, 전문교육에 국한된, ‘열등한’ 기관만은 아니었다. 많은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열망하며 이들 학교에 입학했고, 식민권력이 설립하고 운영했던 일본인 위주의 관립 고등교육과는 다른 이상과 열망을 여기서 꿈꾸었다. 일본인 주도의 아카데미즘 속에서 학술지식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던 조선인 지식인들에게도 사립전문학교는 그런 활동을 이어가게 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물론 사립전문학교가 후대의 신화처럼 마냥 ‘민족사학(民族私學)’으로서만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립전문학교가 식민권력의 자장(磁場)을 벗어나는 것은 용이하지 않았으며, 매 순간 ‘식민권력’과 ‘민족사학’ 사이에서 동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들이 직면한 엄연한 식민지의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 사립전문학교의 의미는 적지 않다. 해방 이후 이들을 모태로 유수의 사립대학교가 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남긴 인적, 제도적 유산이 한국 대학 전반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학, 사회학, 교육사 분야의 연구자들이 2019년부터 진행한 공동연구의 성과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일관된 체계나 관점을 미리 정하지 않았으며, 모든 사립전문학교를 다루지도 못했다. 사실 현재 우리 학계의 상황에서 식민지 고등교육 연구, 특히 사립전문학교에 관한 고찰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현재 우리 학계에 이 문제에 관해 도달한 지점을 보여주며, 사립전문학교의 제도와 조직, 학문과 지식, 그것이 남긴 인적 유산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할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실마리를 던져보려는 시도라고 하겠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시야를 넓혀서, 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가 한국 대학이 출발했던 ‘또 하나의 기원’이었다는 것, 따라서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경험을 톺아보는 것이야말로 한국 대학의 역사를 읽는 새로운 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를 통해 본 한국 대학의 ‘또 하나의 기원’ - 경성제국대학이 아닌 사립전문학교에서 출발한 한국 대학?
이 책은 식민지 사립전문학교를 한국 대학의 ‘또 다른 기원’으로서 주목하면서, 그와 관련된 전모를 세밀하게 검토하는 연구성과들을 묶은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 식민지기 조선에는 식민권력이 직접 세운 경성제국대학 이외에 어떤 대학의 설립도 허락되지 않았다.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한 고등교육을 지향했던 여러 집단은 끊임없이 ‘대학’의 설립을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사립’의 ‘전문학교’ 설립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대학체제의 역사적 기원을 다루는 연구들이 1945년 해방 이후의 대학을 주를 다루던가, 그 이전이라 하더라도 경성제국대학 정도를 분석하는 데 그쳤던 것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그러나 식민지 사립전문학교는 미처 ‘대학’이 되지 못한 미발(未發)의 기관, 그 이상이었다. 이는 비단 사립전문학교가 오늘날 유수의 사립대학교의 전신(前身) 기관이었다는 점만을 지적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경성제국대학은 그 운영에서 한국인이 철저히 배제된 기관에 가까웠다. 제국대학을 나온 ‘조센진’은 많았어도 제국대학에서 가르치고 학사를 운영해본 한국인은 전무했다. 결국 해방 이후 한국의 지식인들이 새로운 대학을 구상하고 운영하면서 참고했던 경험은 식민지 사립전문학교를 세우고, 가르치고, 운영하며 쌓아온 것들에 가까웠다. 저자들이 “한국의 대학은 경성제국대학이 아니라 차라리 사립전문학교의 후예는 아니었을까” 하는 다소 도발적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도와 조직, 학문과 지식인, 교육경험을 통해 본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현실
식민지 조선의 사립전문학교는 여러모로 독특한 조직이었다. 우선 대만이나 만주 등 제국 일본의 지배권역 어디에도 조선만큼 사립전문학교의 설립과 운영이 활발했던 곳은 없었다. 사립전문학교는 분명 식민지 고등교육체제 내부에 있었으나, 조선인 학생만을 받았으며, 조선어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사립전문학교가 일본인 중심의 경성제국대학이나 관립전문학교에 맞섰던 ‘민족사학’으로 드높여진 것도 이를 배경으로 한다. 저자들은 각각 제도와 조직, 학문과 지식인, 전문교육 경험의 측면에서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독특한 경험과 그것이 해방 이후 한국 대학에 남긴 유산들을 세밀하게 검토한다.
제1부에 수록된 연구들은 식민지 교육체제에 편입되어 있지만, 그에 완전히 통합되지 않았던 사립전문학교의 모순적 존재 방식을 다룬다. 이를 통해 때로는 식민권력에 저항하며 독자적 교육을 지향했으나, 빈번히 그에 순응, 포섭되기도 하고, 심지어 교세 확장을 명분으로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했던 사립전문학교의 복합성이 드러난다. 제1장에서 정준영은 식민지 전문학교체제의 특징을 개괄하는 한편, 중앙불교전문학교의 사례를 통해 ‘민족사학’(民族私學)의 신화를 해부한다. 2장에서 김일환은 보성전문학교 사례를 통해 그리고 재단법인이 사립대학 설립ㆍ경영의 주체가 되는 한국 사립대학제도의 기원을 확인하는 한편, 식민지 사회에서 사립학교재단이 공공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의 의미를 규명한다. 3장에서 조은진은 주로 관립전문학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전문학교의 입학자격과 내선공학(內鮮共學) 문제를 다룬다. 4장에서 강명숙은 1938년 이후 전시체제하의 조선총독부의 전문학교 정책을 분석하는 한편, 전문학교의 교육이 전쟁 준비의 와중에 형해화되는 양상을 분석한다.
제2부에서는 식민지에서 지식인이 된다는 것, 학문을 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사립전문학교라는 렌즈를 통해 보여준다. 사립전문학교는 끝내 ‘대학’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식민지 사회에서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을 위한” 학문하기가 제도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거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았다. 5장에서 김필동은 사립전문학교가 조선인 사회학자가 조선인 학생을 대상으로 조선어로 사회학을 교육하는 장소가 될 수 있었음을 방대한 사료를 통해 세밀하게 보여준다. 6장에서 윤해동은 전통적 지식체계이자 종교였던 유교가 전문학교에서 교육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체계로 재편되는 양상을 명륜학원, 명륜전문학교로 이어지는 유교 고등교육기관을 통해 규명한다. 7장에서 이경숙은 숭실전문학교의 사례로 교수채용의 경로와 교수진의 구성, 이를 통해 구성된 지식인 네트워크의 특징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제3부에서는 식민지 전문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의 의미를 따져본다. 사립전문학교에서 교육되었던 전문적 지식은 제국대학에 비해 낮은 위상이었다고 하더라도 많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접근 가능했던 최고 수준의 지식이었다. 여기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해방 이후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 대학의 초기 형성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열쇠다. 8장에서 김근배는 숭실전문학교의 이학과와 농학과를 통해 배출된 조선인 과학기술자들의 행보를 규명한다. 9장에서 김정인은 식민지 여성교육의 지향점 중 하나가 ‘교사 양성’이었던 것이 의미했던 바를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10장에서 최은경은 경성여자전문학교의 설립을 주도했던 - 하지만 완성할 수는 없었던 - 4인의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 출신 여의사들의 활동을 통해 식민지에서 여자 의사로 양성되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질문한다. 마지막으로 11장에서 장신은 해방 이후 한국 의학교육이 일본식도 아니고 미국식도 아닌, 독특한 형식의 의예과 형태로 제도화된 것의 배경을 추적하고 있다.
왜 지금, 사립전문학교인가? ‘대학 위기’의 시대에 읽는 사립전문학교의 역사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식민지기 사립전문학교의 역사적 경험이 해방 이후 한국 대학의 ‘또 하나의 기원’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사립전문학교의 역사를 다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사실 한국 대학의 ‘위기론’이 범람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게다가 산적한 위기에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그 방법론을 찾는 것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고등교육이 지나치게 사립대학에 의존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사립대학은 이미 대학기관 전체의 80%, 재적 대학생 수의 약 70%를 차지한다. 해방 이래 국공립 대학이 사립대학의 우위에 섰던 적은 없었으며, 갈수록 지방 국공립대학과 수도권 사립대학 사이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더구나 한국의 대학은 누구라도 그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는 공물(公物)처럼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사적으로 소유되고 운영되며 관리되는 사물(私物)로서 존재한다. 한국 대학의 대부분이 사립대학이라는 사실은 공적 개입을 통해 대학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원천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 연원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한국 사립대학의 역사는 너무나 쉽게 ‘민족사학’의 신화를 통해 윤색되거나, 일부 사립학교 교주(校主)의 전횡을 들어 ‘후진성’과 ‘퇴행성’의 역사로 단정되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말 필요한 것은 한국 사립대학체제를 구성하는 이질적 요소들의 다양한 유래와 원천을 추적하고, 그로 말미암은 효과를 세밀하게 이해하는 작업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본 저작이 한국 사립대학 문제의 기원을 ‘사립전문학교’를 통해 추적한 것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보다 발본적으로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 한국대학의 또 하나의 기원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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