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 한국대학의 또 하나의 기원 (양장)
Description
일제강점기의 고등교육, 경성제국대학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가 식민지에서 인정한 유일한 ‘대학’은 경성제국대학뿐이었다. ‘대학’에 가려면, 엄청난 경쟁을 뚫고 경성제국대학을 가던가, 일본 아니면 다른 해외 국가로 배움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고등교육을 ‘대학’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식민지 조선에서도 또 다른 고등교육의 길은 존재했다. 전문학교가 그것이었다.
‘전문학교’는 정의상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라고 하겠다. 그중 ‘사립전문학교’는 일제강점기 내내 식민지의 위계적인 고등교육 구조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식민지조선에서 사립전문학교는 꼭 그런 실용적인 직업교육, 전문교육에 국한된, ‘열등한’ 기관만은 아니었다. 많은 학생들이 고등교육을 열망하며 이들 학교에 입학했고, 식민권력이 설립하고 운영했던 일본인 위주의 관립 고등교육과는 다른 이상과 열망을 여기서 꿈꾸었다. 일본인 주도의 아카데미즘 속에서 학술지식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던 조선인 지식인들에게도 사립전문학교는 그런 활동을 이어가게 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물론 사립전문학교가 후대의 신화처럼 마냥 ‘민족사학(民族私學)’으로서만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립전문학교가 식민권력의 자장(磁場)을 벗어나는 것은 용이하지 않았으며, 매 순간 ‘식민권력’과 ‘민족사학’ 사이에서 동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들이 직면한 엄연한 식민지의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 사립전문학교의 의미는 적지 않다. 해방 이후 이들을 모태로 유수의 사립대학교가 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남긴 인적, 제도적 유산이 한국 대학 전반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학, 사회학, 교육사 분야의 연구자들이 2019년부터 진행한 공동연구의 성과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일관된 체계나 관점을 미리 정하지 않았으며, 모든 사립전문학교를 다루지도 못했다. 사실 현재 우리 학계의 상황에서 식민지 고등교육 연구, 특히 사립전문학교에 관한 고찰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현재 우리 학계에 이 문제에 관해 도달한 지점을 보여주며, 사립전문학교의 제도와 조직, 학문과 지식, 그것이 남긴 인적 유산을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할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실마리를 던져보려는 시도라고 하겠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시야를 넓혀서, 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가 한국 대학이 출발했던 ‘또 하나의 기원’이었다는 것, 따라서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경험을 톺아보는 것이야말로 한국 대학의 역사를 읽는 새로운 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를 통해 본 한국 대학의 ‘또 하나의 기원’ - 경성제국대학이 아닌 사립전문학교에서 출발한 한국 대학?
이 책은 식민지 사립전문학교를 한국 대학의 ‘또 다른 기원’으로서 주목하면서, 그와 관련된 전모를 세밀하게 검토하는 연구성과들을 묶은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 식민지기 조선에는 식민권력이 직접 세운 경성제국대학 이외에 어떤 대학의 설립도 허락되지 않았다.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한 고등교육을 지향했던 여러 집단은 끊임없이 ‘대학’의 설립을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사립’의 ‘전문학교’ 설립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대학체제의 역사적 기원을 다루는 연구들이 1945년 해방 이후의 대학을 주를 다루던가, 그 이전이라 하더라도 경성제국대학 정도를 분석하는 데 그쳤던 것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그러나 식민지 사립전문학교는 미처 ‘대학’이 되지 못한 미발(未發)의 기관, 그 이상이었다. 이는 비단 사립전문학교가 오늘날 유수의 사립대학교의 전신(前身) 기관이었다는 점만을 지적하는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경성제국대학은 그 운영에서 한국인이 철저히 배제된 기관에 가까웠다. 제국대학을 나온 ‘조센진’은 많았어도 제국대학에서 가르치고 학사를 운영해본 한국인은 전무했다. 결국 해방 이후 한국의 지식인들이 새로운 대학을 구상하고 운영하면서 참고했던 경험은 식민지 사립전문학교를 세우고, 가르치고, 운영하며 쌓아온 것들에 가까웠다. 저자들이 “한국의 대학은 경성제국대학이 아니라 차라리 사립전문학교의 후예는 아니었을까” 하는 다소 도발적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도와 조직, 학문과 지식인, 교육경험을 통해 본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현실
식민지 조선의 사립전문학교는 여러모로 독특한 조직이었다. 우선 대만이나 만주 등 제국 일본의 지배권역 어디에도 조선만큼 사립전문학교의 설립과 운영이 활발했던 곳은 없었다. 사립전문학교는 분명 식민지 고등교육체제 내부에 있었으나, 조선인 학생만을 받았으며, 조선어로 교육이 이루어졌다. 사립전문학교가 일본인 중심의 경성제국대학이나 관립전문학교에 맞섰던 ‘민족사학’으로 드높여진 것도 이를 배경으로 한다. 저자들은 각각 제도와 조직, 학문과 지식인, 전문교육 경험의 측면에서 식민지 사립전문학교의 독특한 경험과 그것이 해방 이후 한국 대학에 남긴 유산들을 세밀하게 검토한다.

제1부에 수록된 연구들은 식민지 교육체제에 편입되어 있지만, 그에 완전히 통합되지 않았던 사립전문학교의 모순적 존재 방식을 다룬다. 이를 통해 때로는 식민권력에 저항하며 독자적 교육을 지향했으나, 빈번히 그에 순응, 포섭되기도 하고, 심지어 교세 확장을 명분으로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도 했던 사립전문학교의 복합성이 드러난다. 제1장에서 정준영은 식민지 전문학교체제의 특징을 개괄하는 한편, 중앙불교전문학교의 사례를 통해 ‘민족사학’(民族私學)의 신화를 해부한다. 2장에서 김일환은 보성전문학교 사례를 통해 그리고 재단법인이 사립대학 설립ㆍ경영의 주체가 되는 한국 사립대학제도의 기원을 확인하는 한편, 식민지 사회에서 사립학교재단이 공공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의 의미를 규명한다. 3장에서 조은진은 주로 관립전문학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전문학교의 입학자격과 내선공학(內鮮共學) 문제를 다룬다. 4장에서 강명숙은 1938년 이후 전시체제하의 조선총독부의 전문학교 정책을 분석하는 한편, 전문학교의 교육이 전쟁 준비의 와중에 형해화되는 양상을 분석한다.

제2부에서는 식민지에서 지식인이 된다는 것, 학문을 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사립전문학교라는 렌즈를 통해 보여준다. 사립전문학교는 끝내 ‘대학’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식민지 사회에서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을 위한” 학문하기가 제도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거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았다. 5장에서 김필동은 사립전문학교가 조선인 사회학자가 조선인 학생을 대상으로 조선어로 사회학을 교육하는 장소가 될 수 있었음을 방대한 사료를 통해 세밀하게 보여준다. 6장에서 윤해동은 전통적 지식체계이자 종교였던 유교가 전문학교에서 교육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체계로 재편되는 양상을 명륜학원, 명륜전문학교로 이어지는 유교 고등교육기관을 통해 규명한다. 7장에서 이경숙은 숭실전문학교의 사례로 교수채용의 경로와 교수진의 구성, 이를 통해 구성된 지식인 네트워크의 특징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제3부에서는 식민지 전문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의 의미를 따져본다. 사립전문학교에서 교육되었던 전문적 지식은 제국대학에 비해 낮은 위상이었다고 하더라도 많은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접근 가능했던 최고 수준의 지식이었다. 여기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해방 이후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 대학의 초기 형성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열쇠다. 8장에서 김근배는 숭실전문학교의 이학과와 농학과를 통해 배출된 조선인 과학기술자들의 행보를 규명한다. 9장에서 김정인은 식민지 여성교육의 지향점 중 하나가 ‘교사 양성’이었던 것이 의미했던 바를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10장에서 최은경은 경성여자전문학교의 설립을 주도했던 - 하지만 완성할 수는 없었던 - 4인의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 출신 여의사들의 활동을 통해 식민지에서 여자 의사로 양성되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질문한다. 마지막으로 11장에서 장신은 해방 이후 한국 의학교육이 일본식도 아니고 미국식도 아닌, 독특한 형식의 의예과 형태로 제도화된 것의 배경을 추적하고 있다.


왜 지금, 사립전문학교인가? ‘대학 위기’의 시대에 읽는 사립전문학교의 역사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식민지기 사립전문학교의 역사적 경험이 해방 이후 한국 대학의 ‘또 하나의 기원’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사립전문학교의 역사를 다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사실 한국 대학의 ‘위기론’이 범람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게다가 산적한 위기에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 그 방법론을 찾는 것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의 고등교육이 지나치게 사립대학에 의존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사립대학은 이미 대학기관 전체의 80%, 재적 대학생 수의 약 70%를 차지한다. 해방 이래 국공립 대학이 사립대학의 우위에 섰던 적은 없었으며, 갈수록 지방 국공립대학과 수도권 사립대학 사이의 격차는 커지고 있다. 더구나 한국의 대학은 누구라도 그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는 공물(公物)처럼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사적으로 소유되고 운영되며 관리되는 사물(私物)로서 존재한다. 한국 대학의 대부분이 사립대학이라는 사실은 공적 개입을 통해 대학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원천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 연원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한국 사립대학의 역사는 너무나 쉽게 ‘민족사학’의 신화를 통해 윤색되거나, 일부 사립학교 교주(校主)의 전횡을 들어 ‘후진성’과 ‘퇴행성’의 역사로 단정되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말 필요한 것은 한국 사립대학체제를 구성하는 이질적 요소들의 다양한 유래와 원천을 추적하고, 그로 말미암은 효과를 세밀하게 이해하는 작업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본 저작이 한국 사립대학 문제의 기원을 ‘사립전문학교’를 통해 추적한 것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보다 발본적으로 돌아보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정준영,김일환,조은진,강명숙,김필동,윤해동,이경숙,김근배,김정인,최은경,

저자:정준영
서울대학교규장각한국학연구원교수.서울대학교사회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다.일본교토대학외국인공동연구자,한림대학교일본학연구소연구교수를역임했다.역사사회학과지식사회사가전공이며,한국에서근대학문이어떻게제도화된형태로지금에이르기까지발전할수있었는지에대해지속적으로연구해왔다.「피의인종주의와식민지의학」,「제국일본의도서관체제와경성제대도서관」,「한국전쟁과냉전의사회과학자들」등의논문을발표했으며,저서로는『경성제국대학법문학부와조선연구』,공저로는『식민권력과근대지식』,『팬데믹너머대학의미래를묻다』등이있다.동료연구자들과함께한국대학사에대한새로운연구가능성을지속적으로모색하고있다.

저자:김일환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인문사회교양학부교수.서울대학교사회학과대학원에서「한국사립대학체제의형성과재단법인의정치」로박사학위를받았다.지은책으로는『절멸과갱생사이-형제복지원의사회학』(공저)이,논문으로는「‘부재지주’,‘영리기업’에서‘기생적존재’로-1950년대문교재단의경제적실천과한국사립대학」등이있다.

저자:조은진
서울대학교역사학부강사.근대식민지기관립전문학교의형성에대한연구로서울대학교국사학과대학원에서문학석사학위를취득하였고,식민지기전문학교및근현대한국의고등교육과관련하여연구활동을지속하고있다.논문으로는「1920년대관립전문학교대학승격운동의추이와성격」이있다.

저자:강명숙
배재대학교교직부교수.교육학박사.한국근현대교육사전공자로대학에서교육학을가르치고있다.주요논저는『대학과대학생의시대』(서해문집,2018),『사립학교의기원』(학이시습,2015)등이있고일제침탈사자료총서가운데『교육정책(1),(2)』(동북아역사재단,2021)를공동편역하였다.

저자:김필동
충남대학교사회학과교수로재직했고현재는명예교수이다.
사회신분,사회조직,마을연구,비교사회학,고등교육,사회학사등의분야에관심을갖고연구를해왔다.주요저서로『한국사회조직사연구』(1992),『한국사회사의이해』(공편저,1995),『차별과연대』(1998),『충남지역마을연구-비교와종합』(편저,2011)등이있고,마을연구단의공동연구원들과함께「충남지역마을지총서」(전14권)를펴낸바있다.최근에는주로한국사회학사에관한연구를해오고있다.

저자:윤해동
서울대학교에서박사학위취득,현재한양대비교역사문화연구소교수이다.한국사와동아시아사를대상으로한저작으로『식민지의회색지대』(역사비평사,2003),『지배와자치』(역사비평사,2006),『植民地がつくった近代』(三元社,2017),『동아시아사로가는길』(책과함께,2018),『식민국가와대칭국가』(소명출판,2022)등이있다.주요관심분야는평화와생태를중심으로한융합인문학연구이다.

저자:이경숙
경북대학교교육학과강사로,근현대교육,지역,불평등문제에관심이많다.『시험국민의탄생』(2017),「모범인간의탄생과유통-일제시대학적부분석」(2007)등을쓰고,『프레이리의교사론』(공역,2000),『교사는지성인이다』(2001)등을번역하였다.

저자:김근배
전북대학교과학학과교수로재직중이며,한국과학기술사전공자로현대과학기술의사회사와남북한과학기술비교연구에관심이있다.대표저서로『한국과학기술혁명의구조』,『황우석신화와대한민국과학』,『한국근대과학기술인력의출현』,『근현대한국사회의과학』(공편)등이있다.

저자: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사회과교육과교수이자전한국역사연구회회장이다.주요저서는『민주주의를향한역사』(2015,책과함께),『독립을꿈꾸는민주주의』(2017,+책과함께),『오늘과마주한3·1운동』(2019,책과함께),『역사전쟁,과거를해석하는싸움』(2016,책세상),『대학과권력』(2018,휴머니스트)가있다.

저자:최은경
의과대학을졸업하고인문의학석박사과정을마쳤다.서울대학교병원의학역사문화원연구교수,국가생명윤리정책원선임연구원등을거쳐현재경북대학교의과대학의료인문학전공교수로재직중이다.의료의역사,윤리,인문학에관하여쓰고가르친다.지은책으로『감염병과인문학』(공저),『코로나팬데믹과한국의길』(공저)등이있다.

저자:장신
성균관대학교동아시아학과에서「1930·40년대조선총독부의사상전향정책연구」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한국교원대한국교육박물관한국근대교육사연구센터전임연구원을거쳐2020년9월부터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에서한국근대사를가르치고있다.최근의관심은한국근대의요시찰제도등국가의개인감시와통제,그리고한국근현대교육사를제도중심으로연구중이다.

목차


서문_한국대학의출발,식민지의사립전문학교를통해다시생각하기

제1부
민족사학(民族私學)이라는신화,식민지전문학교라는현실
정준영|식민지전문학교체제혹은‘민족사학’의이면(裏面)-중앙불교전문학교의사례
김일환|사립전문학교의재단법인화와공공성-보성전문학교의사례
조은진|관립전문학교의학제와내선공학(內鮮共學)
강명숙|전쟁과식민지전문학교-1938년이후의전문학교정책

제2부
전문학교에서학문하기와식민지에서지식인되기
김필동|일제하전문학교와사회학교육
윤해동|식민지시기유교와고등교육-명륜전문학교의사례
이경숙|전문학교교수,식민지지식인들의거처-숭실전문학교의사례

제3부
전문학교에서배운다는것-식민지현실과길항하는전문지(專門知)
김근배|숭실전문학교의과학기술자들-이학과,농학과,그리고졸업생들
김정인|교사양성,식민지여성교육의지향점-이화여자전문학교의사례
최은경|일제강점기의조선여의사들-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졸업부터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창설까지
장신|한국형의예과의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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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식민지의사립전문학교를통해본한국대학의‘또하나의기원’-경성제국대학이아닌사립전문학교에서출발한한국대학?
이책은식민지사립전문학교를한국대학의‘또다른기원’으로서주목하면서,그와관련된전모를세밀하게검토하는연구성과들을묶은것이다.잘알려져있듯식민지기조선에는식민권력이직접세운경성제국대학이외에어떤대학의설립도허락되지않았다.조선인들을대상으로한고등교육을지향했던여러집단은끊임없이‘대학’의설립을시도했으나,결과적으로는‘사립’의‘전문학교’설립에만족할수밖에없었다.한국대학체제의역사적기원을다루는연구들이1945년해방이후의대학을주를다루던가,그이전이라하더라도경성제국대학정도를분석하는데그쳤던것도이러한사정을반영한다.

그러나식민지사립전문학교는미처‘대학’이되지못한미발(未發)의기관,그이상이었다.이는비단사립전문학교가오늘날유수의사립대학교의전신(前身)기관이었다는점만을지적하는것만은아니다.예컨대경성제국대학은그운영에서한국인이철저히배제된기관에가까웠다.제국대학을나온‘조센진’은많았어도제국대학에서가르치고학사를운영해본한국인은전무했다.결국해방이후한국의지식인들이새로운대학을구상하고운영하면서참고했던경험은식민지사립전문학교를세우고,가르치고,운영하며쌓아온것들에가까웠다.저자들이“한국의대학은경성제국대학이아니라차라리사립전문학교의후예는아니었을까”하는다소도발적질문을던지는것도이때문이다.

제도와조직,학문과지식인,교육경험을통해본식민지사립전문학교의현실
식민지조선의사립전문학교는여러모로독특한조직이었다.우선대만이나만주등제국일본의지배권역어디에도조선만큼사립전문학교의설립과운영이활발했던곳은없었다.사립전문학교는분명식민지고등교육체제내부에있었으나,조선인학생만을받았으며,조선어로교육이이루어졌다.사립전문학교가일본인중심의경성제국대학이나관립전문학교에맞섰던‘민족사학’으로드높여진것도이를배경으로한다.저자들은각각제도와조직,학문과지식인,전문교육경험의측면에서식민지사립전문학교의독특한경험과그것이해방이후한국대학에남긴유산들을세밀하게검토한다.

제1부에수록된연구들은식민지교육체제에편입되어있지만,그에완전히통합되지않았던사립전문학교의모순적존재방식을다룬다.이를통해때로는식민권력에저항하며독자적교육을지향했으나,빈번히그에순응,포섭되기도하고,심지어교세확장을명분으로이에적극적으로협력하기도했던사립전문학교의복합성이드러난다.제1장에서정준영은식민지전문학교체제의특징을개괄하는한편,중앙불교전문학교의사례를통해‘민족사학’(民族私學)의신화를해부한다.2장에서김일환은보성전문학교사례를통해그리고재단법인이사립대학설립?경영의주체가되는한국사립대학제도의기원을확인하는한편,식민지사회에서사립학교재단이공공적으로운영된다는것의의미를규명한다.3장에서조은진은주로관립전문학교의사례를중심으로전문학교의입학자격과내선공학(內鮮共學)문제를다룬다.4장에서강명숙은1938년이후전시체제하의조선총독부의전문학교정책을분석하는한편,전문학교의교육이전쟁준비의와중에형해화되는양상을분석한다.

제2부에서는식민지에서지식인이된다는것,학문을한다는것이가지는의미를사립전문학교라는렌즈를통해보여준다.사립전문학교는끝내‘대학’으로인정받지못했으나,식민지사회에서“조선인에의한,조선인을위한”학문하기가제도적으로가능한유일한거처였다는점에서그의미가작지않았다.5장에서김필동은사립전문학교가조선인사회학자가조선인학생을대상으로조선어로사회학을교육하는장소가될수있었음을방대한사료를통해세밀하게보여준다.6장에서윤해동은전통적지식체계이자종교였던유교가전문학교에서교육될수있는전문적지식체계로재편되는양상을명륜학원,명륜전문학교로이어지는유교고등교육기관을통해규명한다.7장에서이경숙은숭실전문학교의사례로교수채용의경로와교수진의구성,이를통해구성된지식인네트워크의특징을세밀하게추적한다.

제3부에서는식민지전문학교에서배운다는것의의미를따져본다.사립전문학교에서교육되었던전문적지식은제국대학에비해낮은위상이었다고하더라도많은식민지지식인들에게접근가능했던최고수준의지식이었다.여기에서교육받은엘리트들이해방이후무엇을추구했는지를살펴보는것은한국대학의초기형성과정을규명하는중요한열쇠다.8장에서김근배는숭실전문학교의이학과와농학과를통해배출된조선인과학기술자들의행보를규명한다.9장에서김정인은식민지여성교육의지향점중하나가‘교사양성’이었던것이의미했던바를이화여자전문학교의사례를통해살펴본다.10장에서최은경은경성여자전문학교의설립을주도했던?하지만완성할수는없었던?4인의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출신여의사들의활동을통해식민지에서여자의사로양성되어살아간다는것의의미를질문한다.마지막으로11장에서장신은해방이후한국의학교육이일본식도아니고미국식도아닌,독특한형식의의예과형태로제도화된것의배경을추적하고있다.

왜지금,사립전문학교인가?‘대학위기’의시대에읽는사립전문학교의역사
이책에수록된글들은각기다른관점에서식민지기사립전문학교의역사적경험이해방이후한국대학의‘또하나의기원’이었음을보여준다.그런데왜지금시점에서우리는사립전문학교의역사를다시보아야하는것일까?

사실한국대학의‘위기론’이범람한지는이미오래되었다.게다가산적한위기에어떻게조치해야할지,그방법론을찾는것역시어려운상황이다.그중요한이유중하나는한국의고등교육이지나치게사립대학에의존한다는점에있을것이다.한국의사립대학은이미대학기관전체의80%,재적대학생수의약70%를차지한다.해방이래국공립대학이사립대학의우위에섰던적은없었으며,갈수록지방국공립대학과수도권사립대학사이의격차는커지고있다.더구나한국의대학은누구라도그중요성을부인하지않는공물(公物)처럼간주되지만,실제로는사적으로소유되고운영되며관리되는사물(私物)로서존재한다.한국대학의대부분이사립대학이라는사실은공적개입을통해대학의위기를근본적으로해결하는데원천적제약으로작용하고있다.

그런데우리는이러한문제의연원에대해얼마나잘알고있는가?한국사립대학의역사는너무나쉽게‘민족사학’의신화를통해윤색되거나,일부사립학교교주(校主)의전횡을들어‘후진성’과‘퇴행성’의역사로단정되어왔다고해도지나치지않을것이다.오히려정말필요한것은한국사립대학체제를구성하는이질적요소들의다양한유래와원천을추적하고,그로말미암은효과를세밀하게이해하는작업이아닐까.그런의미에서본저작이한국사립대학문제의기원을‘사립전문학교’를통해추적한것은우리가당면한문제를보다발본적으로돌아보는중요한계기를제공해줄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