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자서전

최승희 자서전

$25.00
Description
원조 한류스타, 조선의 리듬,무용가 최승희 자서전
1937년 초판본 오리지널 복각 한정판
“나는 조선의 리듬, 더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갖고 괴나리봇짐 짊어지고 지구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 보렵니다.”

1920년대 조선, 기생이 아닌 여성의 춤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기,
식민지 조선의 틀을 깨고 나온 무용가 최승희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럽, 북미, 남미까지 뻗어 나간 최승희의 행보와 성공.
20세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무용가, 일명 ‘세계의 무희’ 최승희의 자서전이 1937년 최초 출간된 형태와 활자 그대로 복원되어 출간된다.
월북 예술가인 최승희는 사회 분위기 속 오랫동안 금기시되며 그간의 많은 자료들도 함께 불태워 없어졌다. 1937년 발간된 『최승희 자서전』은 20대 후반의 젊은 최승희가 기록되었고, 친일 협력의 도구가 되기 전, 불운의 시간이 당도하기 전, 전통 춤과 민족 유산, 새로운 무용 예술에 심취해 있었던 무용가 최승희를 만날 수 있다.
저자

최승희

해방이후북한에서조선무용가동맹위원장,무용학교교장,최승희무용연구소소장등을역임한무용가.
1911년강원도홍천에서출생했다.최준현(崔濬鉉)의딸이며,어머니는박용자(朴容子)이다.영화제작자최승일(崔承一)의동생이다.1926년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졸업했다.최승일의권유로경성공회당(京城公會堂)에서일본현대무용의선구자이시이바쿠〔石井漠〕의공연을보고무용가가되기로결심하고도일했다.1926년5월본격적인무용수업을위해도쿄로건너간뒤약3년만에주역급무용수로발탁되었고,수석대교(首席代敎)로후진을지도할만큼급성장했다.1927년과1928년이시이바쿠의조선공연에참가하여호평을받았다.1929년귀국하여경성에무용연구소를설립했으며,이해12월찬영회가주최하는‘무용·극·영화밤’에출연했다.1930년부터본격적인무용공연을시작했다.이해2월개성에서무용대회,3월창작무용공연회,10월제2회공연회,11월대전에서무용대회를각각가졌다.1931년문학가안막(安漠)과결혼했다.이외에「파우스트」·「광상곡」·「그들의로맨스」·「그들의행진곡」·「흙을그리워하는무리」등가극과창작극을발표,공연했다.이시기전국을순회하면서신문사애독자공연,동정금모금공연등다채로운공연을했다.

1933년3월이시이문하로재입문하여약1년만에청년회관에서전통과현대무용을접목한창작극「에헤야노아라」를발표하여좋은평가를받았다.1936년영화「반도(半島)의무희」에출연했으며,이해말부터4년간세계무대로진출하여유럽에서는「초립동」·「화랑무」·「신로심불로」·「장구춤」·「춘향애사」·「즉흥무」·「옥저의곡」·「보현보살」·「천하대장군」등공연했다.1938년브뤼셀에서개최된제2회세계무용경연대회에서는심사위원을맡았다.1930년미국뉴욕에서는당시흥행계의제왕으로불리던휴록(Hurok.S.)의기획아래NBC전국체인과제휴하면서미국은물론,중남미여러나라에서공연했다.특히,뉴욕공연후‘세계10대무용가의한사람’이라는평을받았다.

중일전쟁이후전시체제기가형성되면서일제에협력했다.1941년10월일본오사카(大阪)회관에서협화회원을위로하는공연을했으며,11월에는도쿄극장에서조선군보도부가내선일체와지원병을선전하는영화「그대와나」시사회에서「화랑의춤」등을공연했다.이해11월도쿄에서공연한수익금을일본육군성휼병부(恤兵部)에헌금했다.1942년에는조선군사보급협회에서주최하는무용공연에서수익금전액을조선군사보급협회에기부했다.1944년에는도쿄에서24회연속독무공연을했다.이외에일본의전통예능인노(能)·가부끼(歌舞伎)등에서소재를얻어「부콘(武魂)」·「오이와케(追分)」·「이케니에(生贄)」·「시즈고젠(靜御前)」등을발표했다.

해방직전중국에서위문공연을하다베이징에서해방을맞고,1946년5월귀국했다.친일행적이문제가되어남편안막,오빠최승일과함께7월20일월북했다.월북후평양에최승희무용연구소를설립하고「반야월성곡」·「춘향전」등2편의무용극과소품「노사공」1편을공연하는등창작활동을했다.1950년베이징에중앙희극원무용반을설립해학생을지도했다.1950년대최고인민회의대의원,조선무용가동맹중앙위원회위원장,무용학교교장,국립무용극장총장등을역임했으며,1952년공훈배우·1955년인민배우칭호를받았다.1958년까지최승희무용학교에서안무가로활동했으나남편안막이반당종파분자혐의로체포되자,그영향을받아최승희무용연구소도폐쇄되었다.1년간자숙후1959년「영광스러운우리조국」을창작해조선무용가동맹위원장으로복귀,1967년까지활동했다.1967년숙청되어가택연금의처벌을받았으며,1969년8월8일사망했다.

목차

목차(目次)
사진(寫眞)

경성무용연구소시대(京城舞踊硏究所時代)_(7)
순천역에서(順天驛에서)_8
무여무(巫女舞)_9
희망을안고(希望을안고)_10
석정문하시대(石井門下時代)_11
소야곡(초야대)(小夜曲)(初夜臺)_12
희생(犧牲)_13
검무(劍舞)_14
오제의죽엄_15
승무(僧舞)_16
오리엔탈_17
메리-위도우_18
광상곡(狂想曲)_19
조선풍듀엣트(朝鮮風듀엣트)_20
가두예(街頭藝)_21
마음에흐름_22
○터에서(○攄에서)_23
에헤야노아라_24
무여무(巫女舞)_25
동형의씨스템(動形의씨스템)_26
동형의씨스템(動形의씨스템)_27
도약(跳躍)_28
섬라(태국)의춤(暹邏의춤)_29
인도인의비애(印度人의悲哀)_30
민요조(民謠調)_31
진양조(盡陽調)_32
도약(跳躍)_33
제일회향토방문시(무여무)(第一回鄕土訪問時)(巫女舞)_34
농부춤ㆍ스페인(서반야)춤(農夫춤ㆍ西班牙춤)_25
도약ㆍ폭풍우(跳躍ㆍ暴風雨)_36

학교를맟을때까지_1
나와서모(庶母)_5
나의결심과나의성격_10
논물의리별_16
고향을떠나새로운연구에_20
독립무용연구소건설_22
결혼전후_25
또다시동경에_27
출발전야(出發前夜)_30
누이에게주는편지_최승일(崔承一)_48
형제에게보내는글(兄弟)_최승희(崔承喜)_61
고뇌의표현(苦惱의表現)_최승희(崔承喜)_66
무용은마음의창(舞踊은마음의窓)_무용가석정막(舞踊家石井漠)_72
무희최승희론(舞姬崔承喜論)_소설가천단강성(小說家川端康成)_75
최승희에게기함(崔承喜에게寄함)_개조사사장산본실언(改造社社長山本實彦)_84
민족무용가로서의최승희(民族舞踊家로서의崔承喜)_평론가원지공방(評論家園池公坊)_88
최승희에게주문함(崔承喜에게註文함)_평론가중촌추일(評論家中村秋一)_90
한개의감상(한개의感想)_철학가류종열(哲學家柳宗悅)_93
최승희여사의무용을보고(崔承喜女士의舞踊을보고)_평론가신거격(評論家新居格)_95
최승희찬(崔承喜讚)소설가촌산지의(小說家村山知義)_99
미견최승희(조선파와서무파)(未見崔承喜)(朝鮮派와西舞派)_소설가강전삼랑(小說家岡田三郞)_103
최승희론(崔承喜論)_평론가삼산평조(評論家杉山平助)_107
최승희의무용예술(崔承喜의舞踊藝術)_소설가판원직자(小說家板垣直子)_110
최승희의무용세계에○하아(崔承喜의무용세계에○하아)_평론가청야계길(評論家靑野季吉)_114
동양의리듬(東洋의리듬)_이화여자전문학교교수박경호(梨花女子專門學校교수朴강浩)_118
육체의탄력(肉體의彈力)_조선중앙일보학예부장김복희(朝鮮中央日報學藝部長金復熙)_121
장쾌한진로를축복한다(壯快한進路를祝福한다)_평론가박영희(評論家朴英熙)_122
세련되어가는기예(洗鍊되어가는技藝)_동아일보학예부장서항석(東亞日譜學禮部長徐恒錫)_126
조선사람의자랑이되도록(朝鮮사람의자랑이되도록)_신동아주간최승만(新東亞主幹崔承萬)_127
최승희의인○(최승희의印○)_조광주간함대훈(朝光主幹咸大勳)_128
과거의추억과미래의기대(過去의追憶과未來의期待)_화가안석주(畵家安碩柱)_133
최승희무용(崔承喜舞踊)_최승일(崔承一)_137
최승희작품해설(崔承喜作品解說)_음악평론가산우충(音樂評論家山牛充)_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