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서의 똥 (연암에서 퀴어, SF까지 한국문학의 분변학)
Description
왜 똥과 문학인가?-‘밥-똥순환’의 차단과 감각의 차별적 배치
근대 이전 모든 문명권에서는 똥비료를 폭넓게 활용했다. 물론 똥독(毒) 등의 위험이 있으니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경험지(知)도 동시에 형성되었다. ‘밥-똥 순환’의 시기에 똥은 귀한 자원이면서 동시에 위험한 양가적 대상이었다. 뒷간의 신(측신: 廁神)을 섬기는 민간신앙은 바로 이 양가성(감사와 두려움)에 기반하는 것이었으리라. 점차 신분제 사회로 이행하면서 똥의 양가성 역시 특정 부류의 인간에게 나뉘어 배치되었다. 똥을 다루는 농부 등에게는 비천함이, 생산에서 면제된 귀족에게는 고상함이 각각 차별적으로 배정된 것이다.

근대 들어서면 똥은 극적으로 비천화된다. 과학은 똥이 콜레라 등 각종 감염병의 원천임을 밝혀냈으니, 인간의 똥 1그램에는 1천만 개의 바이러스, 1백만 개의 박테리아, 1000마리의 기생충이 있다는 식이다. 똥비료는 화학비료로 대체되고, 수세식 화장실이 급속하게 보급되었다. 이런 변화를 먼저 이룬 서구인들은 제국주의 시대 비서구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그곳의 똥더미들을 야만의 상징으로 여기게 된다. 동아시아지역은 똥비료를 활용하는 생태적 농법이 가장 활발했고 비교적 오래 유지되어왔지만, 서구인들의 비서구에 대한 야만화는 오늘 우리에게도 지배적인 인식이 되었다. 생태적 순환이 끊기면서 똥은 오염원으로 전락했으며 양가성을 잃고 비천화되었다. 우리가 매일 누는 똥은 이처럼 인류의 역사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에도 수세식 화장실이 본격 보급되었다. 오늘날 똥은 매끈한 흰 변기에 떨어뜨리면 그만인 쓰레기 정도로만 인식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해버린다고 모든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존재를 똥처럼 취급하면서 시각에서 차단시켜 버리는가. 그 감각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고정관념을 만드는가. 그것은 과연 정당한가. 감각의 차별적 배치는 사회적 차별을 즉각적으로 정당화하는 기제로서 매우 자주 활용되었으며, 문학작품은 이런 지점을 포착하는데 적절한 예술의 갈래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근대화과정에 비천화된 똥이 한국문학에는 어떻게 재현되어 있으며 우리의 인식을 만들었는지를 따져 묻는다. 다소 앞질러 말해두자면, 한국문학은 지배적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않으면서도 그 통념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반성하기도 했다. ‘똥 싸는 육체로서의 평등함’이라 할 만한 것이 그 핵심 중 하나이다.
감각은 즉각적이며 논리를 벗어난 곳에서 인식을 형성하며, 똥이란 대표적인 비천체로서 자주 소수자와 동일시되어 왔다. 따라서 문학 속의 똥을 점검하는 이 책은 소수자 연구에 의미 있는 진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저자

김건형,김용선,김철,박수밀,오성호,이경훈,이지용,정규식,정기석,황호덕

鄭基碩,JeongGi-seok
2018년중앙신인문학상수상으로문학평론을시작하였다.동국대국어국문학과에서「1980년한국시에나타난비인간형상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

목차

책머리에

김용선
‘분뇨서사’에굴절된대도시한양의팽창

박수밀
차등과숭고미의전복,똥의기호-연암박지원의‘똥’을중심으로

정규식
분뇨(糞尿)서사로읽는연암(燕巖)박지원(朴趾源)의개혁사상

한만수
감옥속의똥-비천화된자들은어떻게응수하는가-김동인의「태형」을중심으로

이경훈
냄새맡는인간,냄새나는텍스트-한국근대문학과냄새

황호덕
변비와설사,전향의생정치(生政治)-『무명無明』의이광수,식민지감옥의구멍들

김철
똥같은괴물,괴물같은똥-「분지」,「똥바다」를중심으로

오성호
똥과한국시의상상력-정호승과최승호의시를중심으로

정기석
최승호시에나타나는분변성에대한저급유물론적접근-1980년대최승호시를중심으로

김건형
역사의천사는똥구멍사원에서온다-김현론

이지용
한국SF에서똥/쓰레기가가지는의미


초출표기
필자소개

출판사 서평

한국문학에서똥의재현은어떻게변화되어왔나-고전문학에서현대문학까지시계열적배치로연구의흐름짐작하게
‘연암에서SF·퀴어까지,한국문학의분변학’이라는부제처럼이책은고전문학과현대문학을주제론적으로관통하는바,두분야사이의장벽이심화되어온분과학문체제속에서는매우이례적인편집이다.30대소장학자에서70대원로까지11명의필자들이다양한시기와작가를대상으로다양한시각으로접근하고있지만,개략적인흐름을요약하면다음과같다.

연암박지원의조선후기에한양역시다른근대도시들처럼인구집중에따라똥의처리에골머리를앓았다.넘쳐나는한양의똥을모아농촌으로옮기는똥장수가나타나지만사회적비천함의대명사처럼인식되었다.실학파의거두답게연암은「예덕선생전」에서똥장수를등장시키고그들을양반과대비시킨다.똥장수는똥을밥으로순환시켜세상을이롭게하며,엄행수를비천시하는양반들이야말로똥만도못한존재라는식이다.신분에따라귀하고천함,아름다움과추함의감각이차별적으로배치되는지배적인식을역전시키는것이다.

식민지시기이광수,김동인,심훈,김남천등의감옥서사에주목한논문도있다(황호덕,한만수).일본은조선인을‘인간과동물의중간적존재’로야만화함으로써식민지배의정당화논리를찾았는데,감옥이란똥과인간이잘구분되지않는장소이니이런야만화에적절한장소였다.감옥서사들은똥은비천화의주요기제로활용되는감옥의현장을적실하게묘사하지만,동시에비천화를숭고로반전시키고있다.‘말하는입’과‘먹는입’,그리고‘싸는구멍’의계서화및그반전이작품에서어떻게재현되었는지,그리고이광수와다른작가들의감옥서사가어떻게구분되는가등을분석하는것이다.
똥냄새와새상품의냄새를비교한논문도흥미롭다.자연,빈곤층,조선인등은후각적으로도타자화되었고이를통해서과학,부유층,일본인등은주체화되었음을확인한다(이경훈).감옥이나도시를배경으로삼은소설들의이런경향과는달리심훈의『상록수』를비롯한농촌소설에서두엄은된장,밥,고향냄새등과동일시되면서구수한것으로자주등장한다.이시기똥의문학적재현은‘불쾌’가‘쾌’보다지배적이었는데이는위생관념과화학비료가점차보급되는상황이었다는점,특히근대화에대한작가들의열망과관련될것이다.

해방이후일본인/조선인사이의감각적차별은수그러들지만민족내부에서는소수자들을똥과동일시하면서비천화했던지배자들의은유체계는여전했다.문학은여기에서자유롭지않으면서도‘너희야말로똥이다’라는식의되받아쓰기를구사하는것이대체적인추세였다.특히민중문학에서는‘똥=적’의동일시에의존하는이분법적인식이강력했는데,이는외부의적을통해민족,민중등의주체를형성하는과정이었고,그과정에서여성등의또다른소외를불러오기도했다는지적도주목할만하다(김철).

1980,90년대이후에는생태주의,도시문명비판,비인간(非人間)주체등에대한관심이늘어나면서똥의재현은상당한변화를보인다.정호승의시에서똥은육체를정화하고영혼을비상시키는성속(聖俗)의교차점에위치한사물이라고해석한다.한편최승호의시에서똥은인간의탐욕이농축된혐오스러운것으로,하얀색도기변기는문명의세련된매혹과공포를동시에상징하는것으로각각그려진다(오성호).최승호시에서배설물등아브젝트(abject)는근대적인간주체를형성하는과정에서폐기되고억압된것이라는해석도제기되었다(정기석).인간/비인간,생명/죽음의이분법적위계에대한,상품과쓰레기를동시에양산하는자본주의등에대한해체적비판이이작품들에서강력하다는것이다.
시인김현의작품에주목하여퀴어가똥이나항문섹스와연계되면서비천화되는과정을분석하고한국문학사서술에서정상가족의이데올로기를해체하는작업도흥미롭다(김건형).김동인부터김초엽까지100여년의SF를점검한논문도있었다.김동인의「K박사의연구」에서똥을식량으로전환하는모티프는단순히기발한상상에그치는것이아니라구시대의문제들을서구과학에의해해결할수있을것이라는기대를형상화한것이며,최근의SF들은인류세시대의상상적대안으로서똥의재자원화에대한상상력이본격대두된다는지적이다(이지용).

인문적분변학(糞便學;Scatology)3부작을한국최초로완간-소수자연구가감각의차원으로확대되길기대

분변학은한국에서매우부진한연구분야중하나로,의학이나환경공학등자연과학의차원에서조금씩다루고있을뿐이었다.이번에발간되는『은유로서의똥』(한만수편,소명출판,2023)은『종교와똥.뒷간의미학』(박병기편,씨아이알,2023)과거의동시에출간되는바,2년전출간된『똥의인문학』(한만수오영진편,역사비평,2021)까지포함하여‘똥3부작’이완간되는셈이라는점에서더욱주목할만하다.똥에대한인문학적집중점검으로는한국최초라할수있다.

‘똥3부작’은5년에걸쳐진행되었던융복합프로젝트‘사이언스월든’(연구책임자유니스트조재원교수)에크게힘입은것이었으니,이3부작에수록된논문들거의대부분은이프로젝트의학술대회에서발표된것이었다.사이언스월든인문학팀장인동국대한만수교수는“분변학이란연구자들에게도워낙낯선주제인데다학제적접근이필수적이므로어려움이적지않았다.연구에동참할분들을모시기도쉽지않았고,발표전에수차례사전집담회를거쳐야했는데중도에포기한연구자들도여럿이었다”면서“소수자연구가감각적차원에까지활성화되기위해서분변학에대한관심이높아지길기대한다”고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