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참군집주 2 (양장본 Hardcover)

포참군집주 2 (양장본 Hardcover)

$37.00
Description
준일(俊逸)한 시풍, 이백(李白)의 호방표일(豪放飄逸)을 열다
이 책은 유송(劉宋)의 시인 포조(鮑照, 414~466)의 시문에 청 말의 전진륜(錢振倫)과 민국 초의 황절(黃節), 전진륜의 손자 전중련(錢仲聯)이 주석을 가한 『포참군집주』에 대한 역주이다. 포조의 시는 다양성이 큰 특징이다. 수사 면에서 정교한 대우와 많은 전고를 활용하여, 경물을 형상화하고 정감을 구상화한 것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것은 원가(元嘉) 문단의 일반적 경향이었다. 반면 남조 민가에 흔히 사용되던 구어 속어 방언도 피하지 않고 활용하여 험속(險俗)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시의 제재도 사회의 여러 문제에서부터 자연 경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회를 제재로 한 시는 86수의 악부시와 18수의 의고시가 주로 해당하는데, 포부의 피력과 우국지심의 토로, 왕실과 주군에 대한 송양, 회재불우(懷才不遇)의 불평지명(不平之鳴)과 풍자 비판, 은퇴와 명철보신(明哲保身) 사상의 노정 등 세간의 다양한 현상과 개인적 감정을 남김없이 드러내 보인다. “목청껏 감회를 토로하여[抗音吐懷]” 우렁찬 가락을 이루는(陳祚明 『采菽堂古詩選』) 것도 이 부류의 특색이다. 자연을 제재로 한 것은 당시 성행한 산수시(山水詩)를 비롯하여 영물시(詠物詩)와 기행시(紀行詩) 등이 해당하는데, 안식 희구와 선계 동경, 고적감과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 진퇴의 갈등 등을 읽을 수 있다.
성당의 대시인 두보는 747년 봄 장안에서 강남에 머물던 이백(李白, 701~762)을 그리며 지은 「봄날 이백을 그리며」 시에서 “초일절속(超逸絶俗)한 천재성”을 지닌 이백에 성심으로 감복하여(楊倫 『杜詩鏡銓』) “이백의 시는 대적할 사람이 없으니, 표연한 시상은 범인들과 다르다[白也詩無敵, 飄然思不群]”라고 하면서, 이백 시의 “청신함은 유신(庾信)과 같고, 준일함은 포조와 같다[淸新庾開府, 俊逸鮑參軍]”라고 한 바 있다. 두보가 말한 준일함은 주로 사회시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시풍이다. 자연시의 주된 특색은 “경물의 형상을 잘 묘사하는[形狀寫物]”(鍾嶸 『詩品』) 것이다.
저자

포조

유송(劉宋)의시인이다.(鮑照,414~466)

목차

역자서문
머리말[前言]
책머리
전진륜서[錢序]
황절서[黃序]
우염서(虞炎序)
장부제사(張溥題辭)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
첨부:송본『포씨집』목차[宋本鮑氏集目錄]
포참군집
권3
악부(樂府)
뽕을따며[採桑]
「호리의노래」를본떠[代蒿里行]
「만가」를본떠[代挽歌]
「동문의노래」를본떠[代東門行]
「목놓아부르는노래」를본떠[代放歌行]
진사왕조식의「낙양의노래」를본떠[代陳思王京洛篇]
「대문밖에수레탄손님이있어」를본떠[代門有車馬客行]
「뱃노래」를본떠[代櫂歌行]
「흰머리될때까지」를본떠[代白頭吟]
「동무의노래」를본떠[代東武吟]
「짝잃은학의노래」를본떠[代別鶴操]
「계의북문을나서며」를본떠[代出自薊北門行]
육기의「군자가생각할것」을본떠[代陸平原君子有所思行]
「슬픔의노래」를본떠[代悲哉行]
진사왕조식의「백마의노래」를본떠[代陳思王白馬篇]
「승천의노래」를본떠[代昇天行]
송백의노래-서와함께[松柏篇-幷序]
「지독한무더위의노래」를본떠[代苦熱行]
「밝은달의노래」를본떠[代朗月行]
「당상의노래」를본떠[代堂上歌行]
「소년협객들의노래」를본떠[代結客少年場行]

권4
악부(樂府)
부풍의노래[扶風歌]
「소년에서노쇠하기까지의노래」를본떠[代少年時至衰老行]
「봄날형산에올라」를본떠[代陽春登荊山行]
「빈천의고통」을본떠[代貧賤苦愁行]
「변방생활의노래」를본떠[代邊居行]
「규가의노래」를본떠[代邽街行]
소사의노래[蕭史曲]
왕소군(王昭君)
오지방노래(1)[吳歌(1)]
오지방노래(2)[吳歌(2)]
오지방노래(3)[吳歌(3)]
마름을따며(1)[採菱歌(1)]
마름을따며(2)[採菱歌(2)]
마름을따며(3)[採菱歌(3)]
마름을따며(4)[採菱歌(4)]
마름을따며(5)[採菱歌(5)]
마름을따며(6)[採菱歌(6)]
마름을따며(7)[採菱歌(7)]
그윽한택란(1)[幽蘭(1)]
그윽한택란(2)[幽蘭(2)]
그윽한택란(3)[幽蘭(3)]
그윽한택란(4)[幽蘭(4)]
그윽한택란(5)[幽蘭(5)]
중흥의노래(1)[中興歌(1)]
중흥의노래(2)[中興歌(2)]
중흥의노래(3)[中興歌(3)]
중흥의노래(4)[中興歌(4)]
중흥의노래(5)[中興歌(5)]
중흥의노래(6)[中興歌(6)]
중흥의노래(7)[中興歌(7)]
중흥의노래(8)[中興歌(8)]
중흥의노래(9)[中興歌(9)]
중흥의노래(10)[中興歌(10)]
「흰모시춤의노래」를본떠(1)[代白紵舞歌辭(1)]
「흰모시춤의노래」를본떠(2)[代白紵舞歌辭(2)]
「흰모시춤의노래」를본떠(3)[代白紵舞歌辭(3)]
「흰모시춤의노래」를본떠(4)[代白紵舞歌辭(4)]
「흰모시의노래」를본떠(1)[代白紵曲(1)]
「흰모시의노래」를본떠(2)[代白紵曲(2)]
「기러기는우는데」를본떠[代鳴雁行]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1)[擬行路難(1)]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2)[擬行路難(2)]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3)[擬行路難(3)]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4)[擬行路難(4)]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5)[擬行路難(5)]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6)[擬行路難(6)]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7)[擬行路難(7)]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8)[擬行路難(8)]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9)[擬行路難(9)]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10)[擬行路難(10)]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11)[擬行路難(11)]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12)[擬行路難(12)]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13)[擬行路難(13)]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14)[擬行路難(14)]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15)[擬行路難(15)]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16)[擬行路難(16)]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17)[擬行路難(17)]
「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18)[擬行路難(18)]
매화는지고[梅花落]
「회남왕」을본떠[代淮南王]
「꿩은아침부터나는데」를본떠[代雉朝飛]
「북풍은쌀쌀하고」를본떠[代北風涼行]
「황성의참새」를본떠[代空城雀]
「밤에앉아읊조리며」를본떠[代夜坐吟]
「봄날의노래」를본떠[代春日行]

출판사 서평

칠언시의창작,잡목을뽑아평탄한길을개척하다
포조시의주목할만한또한가지의의는칠언시에있다.포조는칠언시가아직‘시가’로서제대로인정받기전에,누구보다도많은작품을지었을뿐만아니라,압운과구식면에서도진일보발전시켰다.특히「‘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擬行路難]」18수를위시한가행체(歌行體)는내용면에서도충실하여,성당의이백,두보,잠삼(岑參,715?~770)과중당의백거이(白居易,772~846)등의선구가되었다.그래서청대초기의왕부지는,포조칠언시의초창(草創)의의의를“갈참나무와백유나무같은관목을처음으로뽑아서막평탄한큰길을개척한[柞棫初拔,卽開夷庚]”것으로비유하고“칠언시는포조로부터나온것이아니라면,모두돌피와피같은잡초일뿐”이라고하였다.

산문의경물묘사의정밀함,이사훈(李思訓)의산수화를앞선다
포조는시인이면서산문가여서적잖은산문작품을남겼는데,모두당시성행한변체(騈體)로되어있다.그중에는문학성이뛰어난작품도더러있다.예를들면,「황폐한성부[蕪城賦]」는광릉성(廣陵城)의황폐한경물묘사에“호매하고황량한기운이넘쳐마음을놀래고혼백을감동케하여”“부가(賦家)의최고경지에올랐다”(姚鼐『古文辭類纂』)라는평가를받았고,「대뢰안에올라서누이에게부친편지[登大雷岸與妹書]」는비유과장대우의기교를동원하여여산(廬山)의산수를형상적으로묘사한대목이있는데,검푸른산자락과산허리를감싼푸른구름,붉은저녁놀을받아황금빛으로보이는봉우리,하늘을붉게물들인저녁놀이색동의층을이룬가운데,골짜기에서봉우리로종으로이어지는희뿌연안개가어우러진한폭의산수화를이룬다.이어지는골짜기물에대한묘사에서는,과장을통해냇물의갖가지자태를동적으로형상화하여,정적인산의묘사와묘한대조를이루게함으로써생동감을살리고있다.청대의허련은이에대해“이사훈(李思訓)이몇달을그려도그림으로그려내기가아마어려울것”이라고극찬하였다.

『포참군집주』는시와부의번역은가능한한음수율과운각(韻脚)을고려하여정형의글이라는원작의특성을살리고낭송에도편하도록주의하였다.저본의주석은전거(典據)는서명만제시하고인용문에도오류가적지않은데,번역에서는전거의편명까지도상세히밝히고내용상의오류를수정보완하여,전고의원의(原義)뿐만아니라포조시문에대한이해의깊이를더하도록하였다.포조시문에관심있는일반독자뿐만아니라연구자에게도적잖은참고가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