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참군집주 3 (양장본 Hardcover)

포참군집주 3 (양장본 Hardcover)

$27.00
Description
준일(俊逸)한 시풍, 이백(李白)의 호방표일(豪放飄逸)을 열다
이 책은 유송(劉宋)의 시인 포조(鮑照, 414~466)의 시문에 청 말의 전진륜(錢振倫)과 민국 초의 황절(黃節), 전진륜의 손자 전중련(錢仲聯)이 주석을 가한 『포참군집주』에 대한 역주이다. 포조의 시는 다양성이 큰 특징이다. 수사 면에서 정교한 대우와 많은 전고를 활용하여, 경물을 형상화하고 정감을 구상화한 것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것은 원가(元嘉) 문단의 일반적 경향이었다. 반면 남조 민가에 흔히 사용되던 구어 속어 방언도 피하지 않고 활용하여 험속(險俗)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시의 제재도 사회의 여러 문제에서부터 자연 경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회를 제재로 한 시는 86수의 악부시와 18수의 의고시가 주로 해당하는데, 포부의 피력과 우국지심의 토로, 왕실과 주군에 대한 송양, 회재불우(懷才不遇)의 불평지명(不平之鳴)과 풍자 비판, 은퇴와 명철보신(明哲保身) 사상의 노정 등 세간의 다양한 현상과 개인적 감정을 남김없이 드러내 보인다. “목청껏 감회를 토로하여[抗音吐懷]” 우렁찬 가락을 이루는(陳祚明 『采菽堂古詩選』) 것도 이 부류의 특색이다. 자연을 제재로 한 것은 당시 성행한 산수시(山水詩)를 비롯하여 영물시(詠物詩)와 기행시(紀行詩) 등이 해당하는데, 안식 희구와 선계 동경, 고적감과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 진퇴의 갈등 등을 읽을 수 있다.
성당의 대시인 두보는 747년 봄 장안에서 강남에 머물던 이백(李白, 701~762)을 그리며 지은 「봄날 이백을 그리며」 시에서 “초일절속(超逸絶俗)한 천재성”을 지닌 이백에 성심으로 감복하여(楊倫 『杜詩鏡銓』) “이백의 시는 대적할 사람이 없으니, 표연한 시상은 범인들과 다르다[白也詩無敵, 飄然思不群]”라고 하면서, 이백 시의 “청신함은 유신(庾信)과 같고, 준일함은 포조와 같다[淸新庾開府, 俊逸鮑參軍]”라고 한 바 있다. 두보가 말한 준일함은 주로 사회시에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시풍이다. 자연시의 주된 특색은 “경물의 형상을 잘 묘사하는[形狀寫物]”(鍾嶸 『詩品』) 것이다.
저자

포조

유송(劉宋)의시인이다.(鮑照,414~466)

목차

역자서문
머리말[前言]
책머리
전진륜서[錢序]
황절서[黃序]
우염서(虞炎序)
장부제사(張溥題辭)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
첨부:송본『포씨집』목차[宋本鮑氏集目錄]
포참군집
권5
시(詩)
복주산의연회에시종하여(1)[侍宴覆舟山(1)]
복주산의연회에시종하여(2)[侍宴覆舟山(2)]
배릉에시종하여경현산에올라서[從拜陵登京峴]
산산에서시흥왕의명으로짓다[蒜山被始興王命作]
여산에올라[登廬山]
여산에올라석문을바라보며[登廬山望石門]
향로봉을시종하여오르며[從登香爐峯]
유중랑을따라원산의석실에놀러가서[從庾中郎遊園山石室]
번거현에올라[登翻車峴]
황학기에올라[登黃鶴磯]
운양의구리보에올라[登雲陽九里埭]
여산에서동쪽으로진택을바라보며[自廬山東望震澤]
삼짇날남원을유람하며[三日遊南苑]
벗마자교에게(1)[贈故人馬子喬(1)]
벗마자교에게(2)[贈故人馬子喬(2)]
벗마자교에게(3)[贈故人馬子喬(3)]
벗마자교에게(4)[贈故人馬子喬(4)]
벗마자교에게(5)[贈故人馬子喬(5)]
벗마자교에게(6)[贈故人馬子喬(6)]
손님에게답함[答客]
왕비서승의시에화답하여[和王丞]
황혼녘강을바라보며-순좌승에게[日落望江贈荀丞]
가을날-혜휴스님에게[秋日示休上人]
혜휴스님에게답함[答休上人]
오흥황포정에서유중랑을송별하며[吳興黃浦亭庾中郎別]
오시랑과이별하며[與伍侍郞別]
선성태수왕승달(王僧達)을송별하며[送別王宣城]
종제포도수를송별하며[送從弟道秀別]
부도조와의이별에부쳐[贈傅都曹別]
부대농의「동료와이별하며」에화답하여[和傅大農與僚故別]
성시랑을전송하며후정에서전별연을베풀어[送盛侍郞餞候亭]
순중서와이별하며[與荀中書別]
시종하여옛궁궐에들러서[從過舊宮]
임해왕을시종하고형주로가려고막신저를출발하며[從臨海王上荊初發新渚]
서울로돌아오는길에(1)[還都道中(1)]
서울로돌아오는길에(2)[還都道中(2)]
서울로돌아오는길에(3)[還都道中(3)]
심양에서서울로돌아오는길에[上潯陽還都道中]
서울로돌아오는길에삼산에이르러석두성을바라보며[還都至三山望石頭城]
환도의송시[還都口號]
경구로가는길에죽리에이르러[行京口至竹里]
후저를출발하며[發後渚]
양기에서바람이잦아들기를기다리며[岐陽守風]
장송을출발하면서눈을만나[發長松遇雪]
역사를읊다[詠史]
촉의네현인을읊다[蜀四賢詠]

출판사 서평

칠언시의창작,잡목을뽑아평탄한길을개척하다
포조시의주목할만한또한가지의의는칠언시에있다.포조는칠언시가아직‘시가’로서제대로인정받기전에,누구보다도많은작품을지었을뿐만아니라,압운과구식면에서도진일보발전시켰다.특히「‘갈길은험난하고’를본떠[擬行路難]」18수를위시한가행체(歌行體)는내용면에서도충실하여,성당의이백,두보,잠삼(岑參,715?~770)과중당의백거이(白居易,772~846)등의선구가되었다.그래서청대초기의왕부지는,포조칠언시의초창(草創)의의의를“갈참나무와백유나무같은관목을처음으로뽑아서막평탄한큰길을개척한[柞棫初拔,卽開夷庚]”것으로비유하고“칠언시는포조로부터나온것이아니라면,모두돌피와피같은잡초일뿐”이라고하였다.

산문의경물묘사의정밀함,이사훈(李思訓)의산수화를앞선다
포조는시인이면서산문가여서적잖은산문작품을남겼는데,모두당시성행한변체(騈體)로되어있다.그중에는문학성이뛰어난작품도더러있다.예를들면,「황폐한성부[蕪城賦]」는광릉성(廣陵城)의황폐한경물묘사에“호매하고황량한기운이넘쳐마음을놀래고혼백을감동케하여”“부가(賦家)의최고경지에올랐다”(姚鼐『古文辭類纂』)라는평가를받았고,「대뢰안에올라서누이에게부친편지[登大雷岸與妹書]」는비유과장대우의기교를동원하여여산(廬山)의산수를형상적으로묘사한대목이있는데,검푸른산자락과산허리를감싼푸른구름,붉은저녁놀을받아황금빛으로보이는봉우리,하늘을붉게물들인저녁놀이색동의층을이룬가운데,골짜기에서봉우리로종으로이어지는희뿌연안개가어우러진한폭의산수화를이룬다.이어지는골짜기물에대한묘사에서는,과장을통해냇물의갖가지자태를동적으로형상화하여,정적인산의묘사와묘한대조를이루게함으로써생동감을살리고있다.청대의허련은이에대해“이사훈(李思訓)이몇달을그려도그림으로그려내기가아마어려울것”이라고극찬하였다.

『포참군집주』는시와부의번역은가능한한음수율과운각(韻脚)을고려하여정형의글이라는원작의특성을살리고낭송에도편하도록주의하였다.저본의주석은전거(典據)는서명만제시하고인용문에도오류가적지않은데,번역에서는전거의편명까지도상세히밝히고내용상의오류를수정보완하여,전고의원의(原義)뿐만아니라포조시문에대한이해의깊이를더하도록하였다.포조시문에관심있는일반독자뿐만아니라연구자에게도적잖은참고가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