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반일ㆍ혐한 시대에 돌아보는 한일 지식인 교류사
이 책은 반일과 혐한이라는 극단화된 단절의 시대에 한일 교류의 역사를 발굴하고 그것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살핀다. 특히 한일 지식인 교류에 초점을 맞춰 그 안에서의 갈등과 협력, 대립과 타협, 이견과 조율의 면면을 드러냄으로써, 한일관계의 임계점을 확인하고 향방을 가늠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성과물이다.
이 책의 학술적 의미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한일 지식인 교류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라는 점이다. 1970년대 이후로 한일의 사회과학자들은 미국에 연원을 둔 비교정치학, 발전국가론, 아시아 사회론의 지적 자양분을 공유하며 지속적으로 교류해왔다. 1980년대에는 식민지 경제사를 둘러싸고 활발한 공동연구가 이루어졌다. 1990년대 이후로 인문학 영역에서 한일 간 교류와 공동연구가 급증했고 의제의 동조화(탈민족주의론, 제국론, 동아시아론)가 목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지식인 교류의 역사, 궤적, 의미에 관한 연구는 수행된 바가 없다.
이 책에서는 한일 지식인 교류의 흔적과 유산을 추적하고, 그것이 한일관계의 좁은 틈 속에서 지닐 수밖에 없었던 한일 양국 지식인 사이의 특수한 양가성(ambivalence)에 착목했다. 대화가 갈등을 낳고 교류 속에서 차이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동상이몽의 현장을 응시함으로써, 한일 관계에 대한 지리멸렬한 비관도 섣부른 낙관도 아닌 진지한 교류와 상호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었는지 성찰했다.
이 책에 실린 7편의 글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2000년대까지 한일 지식인 교류의 다양한 사례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각 글은 그 분석 시기마다 ‘지식인 교류’가 얼마나 뜨겁게 ‘정치적’이었는지 분석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책의 글을 모두 읽고 나면, 지금의 반일과 혐한은 그렇게 지나온 한일 양국 지식인의 ‘뜨거운 정치’의 결과물에 불과함이 드러나게 된다.
오타 오사무는 1968년 재한 원폭피해자의 월경 행위가 히로시마ㆍ나가사키의 원폭 피해를 ‘전후 일본인’의 희생으로만 생각하는 일본 시민의 일국주의적 ‘평화’를 성찰하고, 식민지 책임을 불문에 부치는 한일조약 체제를 다시 묻는 재한 원폭 피해자와의 연대를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박삼헌은 1970년대 일본에서 지한파로 평가받던 다나카 아키라를 일본(인)의 속죄의식을 전제로 한 반공주의와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로 규정하고, 1982년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를 일본 국가에 대한 주권 침해로 인식하고 더 이상 속죄를 전제로 한 ‘좋은 일본인’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는 했던 그의 역사 인식이 현재 일본 사회의 혐한론의 원형을 이루는 기본 논리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김인수는 1977년 7월에 일본에서 한국과 일본의 사회과학자들이 모였던 제1차 한일지식인교류회의(Korea-Japan Intellectual Exchange, KJIE)를 분석했다. 그 결과 KJIE는 한일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역사’와 ‘영토’ 담론을 배제하고 이를 상쇄하는 ‘안보’와 ‘경제’ 위주의 상호협력 담론을 생산하는 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한국 사회학자들의 불신을 온전히 해소시키지 못하는 한계점을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조수일은 1972년 7ㆍ4 남북공동성명에 촉발된 재일 지식인들이 주체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계간 삼천리』야말로 동시대 한국의 현대사적 과제 및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현안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여 역사적 합의를 위한 ‘한일교류사’를 시도한 일본어 공론장이라 분석한다.
홍종욱은 1985년 안병직의 일본 유학을 계기로 한국 경제 발전의 역사적 조건을 탐구하려는 한일 공동연구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 공동연구를 식민지근대화론의 발원지로 단순화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다는 한편, 식민지에 대한 다양한 실증적, 이론적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1990년대 이후 본격화하는 식민지 연구의 원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도베 히데아키는 일본의 국제관계사 연구자 아라이 신이치를 통해서 전후 일본의 지식인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심화시켰는지 분석했다. 또한 아라이의 실천적 활동이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공동 토론장 형성에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심정명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걸친 한일 지식인의 교류를 내셔널리즘 비판/탈민족주의라는 맥락에서 분석했다. 특히 『당대비평』과 같은 잡지는 일본의 논의를 한국에 소개하는 매개로서 기능하는 동시에,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지면을 통해 만나는 장을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들의 교류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라는 역사적 경험의 차이가 이러한 대화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계점으로 지적한다.
이 책의 학술적 의미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한일 지식인 교류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라는 점이다. 1970년대 이후로 한일의 사회과학자들은 미국에 연원을 둔 비교정치학, 발전국가론, 아시아 사회론의 지적 자양분을 공유하며 지속적으로 교류해왔다. 1980년대에는 식민지 경제사를 둘러싸고 활발한 공동연구가 이루어졌다. 1990년대 이후로 인문학 영역에서 한일 간 교류와 공동연구가 급증했고 의제의 동조화(탈민족주의론, 제국론, 동아시아론)가 목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지식인 교류의 역사, 궤적, 의미에 관한 연구는 수행된 바가 없다.
이 책에서는 한일 지식인 교류의 흔적과 유산을 추적하고, 그것이 한일관계의 좁은 틈 속에서 지닐 수밖에 없었던 한일 양국 지식인 사이의 특수한 양가성(ambivalence)에 착목했다. 대화가 갈등을 낳고 교류 속에서 차이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동상이몽의 현장을 응시함으로써, 한일 관계에 대한 지리멸렬한 비관도 섣부른 낙관도 아닌 진지한 교류와 상호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었는지 성찰했다.
이 책에 실린 7편의 글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2000년대까지 한일 지식인 교류의 다양한 사례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각 글은 그 분석 시기마다 ‘지식인 교류’가 얼마나 뜨겁게 ‘정치적’이었는지 분석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책의 글을 모두 읽고 나면, 지금의 반일과 혐한은 그렇게 지나온 한일 양국 지식인의 ‘뜨거운 정치’의 결과물에 불과함이 드러나게 된다.
오타 오사무는 1968년 재한 원폭피해자의 월경 행위가 히로시마ㆍ나가사키의 원폭 피해를 ‘전후 일본인’의 희생으로만 생각하는 일본 시민의 일국주의적 ‘평화’를 성찰하고, 식민지 책임을 불문에 부치는 한일조약 체제를 다시 묻는 재한 원폭 피해자와의 연대를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박삼헌은 1970년대 일본에서 지한파로 평가받던 다나카 아키라를 일본(인)의 속죄의식을 전제로 한 반공주의와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로 규정하고, 1982년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를 일본 국가에 대한 주권 침해로 인식하고 더 이상 속죄를 전제로 한 ‘좋은 일본인’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는 했던 그의 역사 인식이 현재 일본 사회의 혐한론의 원형을 이루는 기본 논리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김인수는 1977년 7월에 일본에서 한국과 일본의 사회과학자들이 모였던 제1차 한일지식인교류회의(Korea-Japan Intellectual Exchange, KJIE)를 분석했다. 그 결과 KJIE는 한일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역사’와 ‘영토’ 담론을 배제하고 이를 상쇄하는 ‘안보’와 ‘경제’ 위주의 상호협력 담론을 생산하는 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한국 사회학자들의 불신을 온전히 해소시키지 못하는 한계점을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조수일은 1972년 7ㆍ4 남북공동성명에 촉발된 재일 지식인들이 주체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계간 삼천리』야말로 동시대 한국의 현대사적 과제 및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현안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여 역사적 합의를 위한 ‘한일교류사’를 시도한 일본어 공론장이라 분석한다.
홍종욱은 1985년 안병직의 일본 유학을 계기로 한국 경제 발전의 역사적 조건을 탐구하려는 한일 공동연구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 공동연구를 식민지근대화론의 발원지로 단순화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다는 한편, 식민지에 대한 다양한 실증적, 이론적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1990년대 이후 본격화하는 식민지 연구의 원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도베 히데아키는 일본의 국제관계사 연구자 아라이 신이치를 통해서 전후 일본의 지식인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심화시켰는지 분석했다. 또한 아라이의 실천적 활동이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공동 토론장 형성에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심정명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걸친 한일 지식인의 교류를 내셔널리즘 비판/탈민족주의라는 맥락에서 분석했다. 특히 『당대비평』과 같은 잡지는 일본의 논의를 한국에 소개하는 매개로서 기능하는 동시에,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지면을 통해 만나는 장을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들의 교류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라는 역사적 경험의 차이가 이러한 대화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계점으로 지적한다.
교차와 접합의 지(知) -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 동아시아 모더니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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