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견시집주 5 (양장본 Hardcover)

황정견시집주 5 (양장본 Hardcover)

$38.00
Description
송시다운 시가 시대, 그 중심에 있던 황정견
송나라는 개국(開國) 왕조인 태조부터 인종조(仁宗朝)를 거치면서 만당(晩唐)·오대(五代)의 장기간 혼란했던 국면이 정리되어 나라가 안정되었고, 백성들의 생활환경 또한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전대(前代)의 가혹했던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농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였고, 안정된 농업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상공업이 번창하고, 번화한 도시가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에 비해 상당한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발전함에 따라 일반 백성들은 단조로운 것보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시대적·사회적 환경은 곧 문학 출현의 배경이고, 문학은 사회생활이 반영된 예술이라고 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유협(劉勰)이 “문학의 변천은 사회 정황에 따르다[文變染乎世情, 興廢繫乎時序]”고 한 것처럼, 사회의 각종 요인은 문학적 현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문학 풍조의 변혁을 동반한다. 송초 시체(詩體)의 변천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특히 송대에는 일찍부터 학문이 중시되었다. 이는 주로 군주들의 독서열과 학문 제창으로 하나의 사회적 풍조로 자리 잡게 되어 송대의 중문중학(重文重學)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황정견은 바로 이때 전성기를 구가하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중국시가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당대(唐代)를 뒤이어 등장한 북송의 시인들에게는 당시에서 벗어난 송시만의 특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 있었다. 이러한 숙명은 북송 초 서곤체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북송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기에 이르렀다. 황정견이 그 중심에 있었다.
저자

황정견

북송(北宋)을대표하는시인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시집주
산곡시집주권제십육(山谷詩集注卷第十六)
1.고자면에게차운하다.10수(次韻高子勉.十首)
2.고자면에게보내다.4수(贈高子勉.四首)
3.다시앞의운자를써서자면에게보내다.4수(再用前韻贈子勉.四首)
4.형남의첨판향화경이내가지은육언시의운자를이용해시를지어보내주었기에다시차운하여삼가드리다.4수(荊南簽判向和卿用予六言見惠,次韻奉酬.四首)
5.의접도(蟻蝶圖)
6.호장지가율렵미로그린유마를보내왔기에사례하다.2수(謝胡藏之送栗巤尾畫維摩.二首)
7.향화경이송자현에갔다가추천석과밤에남극정에대해말한작품에차운하다.2수(次韻向和卿行松滋縣,與鄒天錫夜語南極亭.二首)
8.형주왕충도가끓인차를보내왔기에장난스레답하다.4수【구본에서“거사는술꾼이라서차마시는것을좋아하지않는다.그래서장난스레지은구절이많다”라고했다】(戲答荊州王充道烹茶.四首【舊本云,居士酒徒,不喜茗飮,故多戲句】)
9.빗속에악양루에올라군산을바라보다.2수(雨中登岳陽樓望君山.二首)
10.파릉약평강으로부터상강에다달아통성으로들어갔는데하루도비가내리지않은날이없었다.황룡에이르러삼가청선사를배알했고이어저물녘날이개이자선객대도순을만나정겹게말을나누었다.장구의작품을지어도순에게드리다(自巴陵略平江臨湘入通城,無日不雨.至黃龍,奉謁淸禪師,繼而晩晴,邂逅禪客戴道純欵語,作長句呈道純)
11.서씨의서원에쓰다(題徐氏書院)
12.석민약에게보내다【석무의자는민약이다】(贈石敏若【石懋字敏若】)
13.호일로의치허암에쓰다(題胡逸老致虛庵)
14.연화사에쓰다(題蓮華寺)
15.비를맞고만재로가는도중에이리저리둘러보다가마침내장난스레쓰다(衝雨向萬載道中,得逍遙觀,遂戲題)
16.죽존자의집에쓰다(題竹尊者軒)
17.밀로가오봉에거주하려가기에헤어지다【밀로는대개법창의후손이다】(送密老住五峯【密老蓋法昌之嗣】)
18.신유가는길에원명에게‘상’자의운자로시를써서보내다(新喻道中,寄元明用觴字韻)

산곡시집주권제십칠(山谷詩集注卷第十七)
1.유응지의화상을배알하다(拜劉凝之畫像)
2.호구사람이정신이기이한돌로아홉봉우리를만들었는데,동파소식선생이‘호중구화’라고이름붙이고더불어이를위해시를썼다.8년이지난뒤에해외로부터돌아와호구를지났는데,그돌은이미호사가들이가져갔기에이전에지은작품에화운하면서웃어넘기었다.그때가건중정국원년4월16일이었다.다음해인숭녕원년5월20일,황정견이호구에배를대자,이정신이이시를가지고찾아왔다.돌은이미다시볼수가없었고동파소식도또한세상을떠났었다.이에감동하고탄식함을마지못하여앞작품에차운한다(湖口人李正臣蓄異石九峯,東坡先生名曰壺中九華,幷爲作詩.後八年,自海外歸,湖口,石已爲好事者所取,乃和前篇,以爲笑.實建中靖國元年四月十六日.明年當崇寧之元五月二十日,庭堅繫舟湖口,李正臣持此詩來.石旣不可復見,東玻亦下世矣.感歎不足,因次前韻)
3.고숙성을떠나면서원명元明에게‘상’자운을써서보내다【『통전』에서“당도현은곧진땅고숙성이다”라고했다.살펴보건대,당도는지금태평주가되었다】(罷姑熟,寄元明用觴字韻【通典曰,當塗縣卽晉姑熟城.按當塗今爲太平州】)
4.자첨소식이태백이백의「심양자극궁감추」라는시의운자에화운한작품에차운하여,이백과소식을회억하다(次蘇子瞻和李太白潯陽紫極宮感秋詩韻,追懷太白子瞻)
5.경지헌(瓊芝軒)
6.귀각헌(龜殻軒)
7.추성헌(秋聲軒)
8.설월이지은원공을읊조린작품을장난스레흉내내다【서문을덧붙이다】(戱效禪月作遠公詠【幷序】)
9.자첨소식이도잠의시에화운한것에발문을달다【동파소식이연명도잠의시에화운한것은109수이다.옛사람의작품을회억하며화운한것은동파소식에게서시작되었다】(跋子瞻和陶詩【東坡和陶淵明詩,凡一百有九篇.追和古人,自東坡始】)
10.이량공의『대숭우도』에쓰다(題李亮功戴嵩牛圖)
11.동파소식이이량공의『귀래도』에쓴작품에뒤미쳐화운하다(追和東坡題李亮功歸來圖)
12.서중거가동원달의방문을기뻐하며지은남곽편사운에차운하다【서적의자는중거로위의주에보인다.원달의이름은규이다】(次韻徐仲車喜董元達訪之作南郭篇四韻【徐積字仲車,見上注.元達名逵】)
13.중거가원달을위해술을마련하면서지은사운에차운하다(次韻仲車爲元達置酒四韻)
14.중거가누행보가보내온작품에차운한작품에차운하다(次韻仲車因婁行父見寄之詩)
15.무창의송풍각【무창은지금의악주현이다】(武昌松風閣【武昌,今鄂州縣】)
16.문잠의작품에차운하다(次韻文潛)
17.문잠이배가운데서지은작품에화운하다(和文潛舟中所題)
18.군자천에쓰다(題君子泉)
19.황주관음원종루위에서자다(宿黃州觀音院鐘樓上)
20.하십삼이게를보내왔기에사례하다【산곡이협주를나온후에병때문에자못고기와술을삼가했었다】(謝何十三送蟹【山谷出峽後,以病故,頗開葷酒之戒】)
21.또한「답송해」의운자를빌려서더불어소하를희롱하다【세수는모두『수수집』에보이는데,지금이곳에덧붙인다】(又借答送蟹韻,幷戱小何【三首皆見修水集,今附于此】)
22.두집게발을대신하여조롱을해명하다(代二螯解嘲)
23.또한앞작품의운자를빌려마음을드러내다(又借前韻見意)
24.문잠의「입춘일삼절구」에차운하다(次韻文潛立春日三絶句)
25.재차앞작품의운자에차운하다(再次前韻)

산곡시집주권제십팔(山谷詩集注卷第十八)
1.꿈속에서‘상’자운에화운하다【서문을덧붙이다】(夢中和觴字韻【幷序】)
2.오가권이여간현백운정에쓴작품에차운하다【여간은지금의예요주이다】(次韻吳可權題餘干縣白雲亭【餘干今隸饒州】)
3.요명략이오명부와백운정에모여잔치하며지은작품에차운하다(次韻廖明略同吳明府白雲亭宴集)
4.병들어열흘동안술을마시지못했다.2수(病來十日不擧酒.二首)
5.소경의부채에쓰다(題小景扇)
6.악주남루에서쓰다.4수(鄂州南樓書事.四首)
7.남루화각에서방공열의두편의짧은시를보고장난스레차운하다(南樓畵閣觀方公悅二小詩戱次韻)
8.내가지난해9월악주에이르러남루에올라갔다가지어놓은것이아름다워탄복했다.이에장구를지어오래도록멀리까지전하고자했다.지금에서야장구를써서공열에게드린다(庭堅以去歲九月至鄂,登南樓,歎其制作之美,成長句,久欲寄遠,因循至今,書呈公悅)
9.싸움닭을키우다(養鬪雞)
10.안도의빈락재.2수【안도의성은황이고이름은우안으로시어사황조의셋째아들이다.산곡황정견이수첩을쓰면서종맹의우호를서술했었다】(顔徒貧樂齋.二首【顔徒姓黃,名友顔,侍御史照之第三子.山谷有手帖,敘宗盟之好】)
11.화량헌.2수(和涼軒.二首)
12.묵헌화준노인에대해쓰다(題黙軒和遵老)
13.문안국의「기몽」이란작품에차운하다【자유소철의『난성후집』권1에도또한이작품이수록되어있는데,다만작품의제목을고쳐「증요도인」이라고했다.마땅히자세히살펴보아야한다】(次韻文安國紀夢【蘇子由欒城後集第一卷亦載此詩,更其題云贈姚道人,當細考之】)
14.하방회에게부치다(寄賀方回)
15.문안국에대한만사.2수【문훈의자는안국이다】(文安國挽詞.二首【文勛字安國】)
16.악주의절도추관진영서가은혜롭게「수양도중」이라는6편의작품을격문에딸려보내왔는데,내가늙고게을러곧바로차운하지못하다가문득절로그운자를취하여화답하여드리다(鄂州節推陳榮緒惠示㳂檄崇陽道中六詩,老懶不能追韻,輒自取韻奉和)
17.진영서가‘지’자운으로지은시를은혜롭게보여주면서이에화답하기를요청했으나나의실력이이에미치지못해감당할수있는바가아니었다.문득멋진운자에차운한다.3수(陳榮緒惠示之字韻詩推獎,過實非所敢當,輒次高韻.三首)

산곡시집주권제십구(山谷詩集注卷第十九)
1.덕유오장이‘지’자에화운하였는데,시의운자가어려울수록더욱공교로웠다.이에다시화운하여작품을지으니한번웃을만하다【범덕유에대해서는위의주에보인다】(德孺五丈和之字,詩韻難而愈工,輒復和成,可發一笑【范德孺見上注】)
2.덕유의「신거병기」라는작품에차운하다(次韻德孺新居病起)
3.덕유의「감흥」이란작품에차운하다.2수(次韻德孺感興.二首)
4.덕유가은혜롭게보내준‘추’자운의구절에차운하다(次韻德孺惠貺秋字之句)
5.범자묵에게물들인아청지를구하다.2수(求范子黙染鴉靑紙.二首)
6.영서가은혜롭게선즉을보내주었기에사례하다(謝榮緒惠貺鮮鯽)
7.영서가노루고기를잘라보내주었기에사례하다.2수(謝榮緒割麞見貽.二首)
8.오집중에게두마리거위가있었는데,나를위해삶아주었다.이에장난스레써서보내주다(吳執中有兩鵝,爲余烹之,戱贈)
9.가을과겨울사이악주물가의시장에서게가사라졌다.그러나오늘우연히몇마리보았는데거품을토하면서서로를적셔주고있었는데불쌍했다.이에웃으며장난스레칠언절구를짓는다.3수(秋冬之間,鄂渚絶市無蟹,今日偶得數枚,吐沫相濡,乃可憫.笑戱成小詩.三首)
10.영자여가내가지은「악양루」라는작품에뒤미쳐화운하였기에,다시그운자에차운하다.2수(甯子與追和予岳陽樓詩,復次韻.二首)
11.영자여의「백록사」라는작품에화운하다【백록사는담주에있다】(和甯子與白鹿寺【寺在潭州】)
12.어떤이가은혜롭게묘두순을보내왔기에사례하다(謝人惠貓頭笋)
13.짧은시로납매를삼가구하다(短韻奉乞臘梅)
14.두보의‘줄갈애강청’이란구절로다섯수를지를요명략학사에게보내고더불어초화보주부에게편지로보내다【두보의「군주우치가기심팔유수」에서“술마셔갈증나면강물맑음사랑했고,실컷취하면저물녘강물로이닦았네”라고했다】(以酒渴愛江淸作五小詩,寄廖明略學土兼簡初和父主簿【老杜詩,酒渴愛江淸,餘酣潄晩汀】)
15.사휴거사시【서문을덧붙이다】(四休居士詩【幷序】)
16.12월19일밤에악저를출발하여새벽에한양에도착했다.벗들이술을가지고송별해준것에뒤미쳐애오라지단구를지었다(十二月十九日,夜中發鄂渚,曉泊漢陽,親舊携酒追送,聊爲短句)
17.진영서와함께종루에기대석양을바라보았는데,헤어진다음날보내온작품에차운하다(次韻陳榮緒同倚鐘樓晩望,別後明日,見寄之作)
18.동정청초호를지나다(過洞庭靑草湖)
19.토산채를지나다(過土山寨)
20.저물녘장사에이르러,처도진담과원실범온에게명략과화보에게보내준작품의운자에차운하여보여주다.5수(晩泊長沙,示秦處度【湛】范元實【溫】用寄明略和父韻.五首)
21.원실이지은「병목」이란작품에차운하다(韻元實病目)
22.승업사의열정에서(勝業寺悅亭)
23.복암을떠나면서(離福嚴)
24.화광중인이진관과소식의시권을꺼냈는데,두국사를다시볼수없다는생각에책을열면서탄식했다.인하여하광이나를위해매화두세가지를만들고안개밖에있는먼산을그림으로그렸다.이에뒤미쳐소유진관의운자에차운하여시권끝에기록한다【중인은형주화광산의장로인데,산곡황정견이그를위해「천보송명」을지은바있다】(花光仲仁出秦蘇詩卷,思兩國士不可復見,開卷絶歎,因花光爲我作梅數枝及畫煙外遠山,追少游韻,記卷末【仲仁蓋衡州花光山長老,山谷爲作天保松銘云】)
25.화광의그림에쓰다(題花光畫)

출판사 서평

후대까지영향을미친황정견의시론

황정견은시를지을때시의표현을다지고시법을엄격히지켜한마디한글자도가벼이쓰지않았다.황정견은수많은대가들을본받으려고했지만,그중에서도두보(杜甫)를가장존중했다.황정견은두보시의예술적인성취나사회시(社會詩)같은내용측면에서의계승보다는,엄정한시율과교묘(巧妙)한표현등시의형식적측면을본받으려했다.황정견시론의요점을정리하면대략다음과같다.
첫째,시의조구법(造句法)으로서의환골법(換骨法)과탈태법(奪胎法)이다.이에대해황정견은“시의의미는무궁한데사람의재주는한계가있다.한계가있는재주로무궁한의미를좇으려고하니,비록도잠과두보라고하더라도공교롭기어렵다.원시의의미를바꾸지않고그시어를짓는것을환골법이라고하고,원시의의미를본떠서형용하는것을탈태법이라고한다[詩意無窮,而人才有限.以有限之才,追無窮之意,雖淵明少陵,不得工也.不易其意而造其語,謂之換骨法.規摹其意而形容之,謂之奪胎法]”(『시인옥설(詩人玉屑)』)라고한바있다.이로보건대,황정견이언급한환골법은의경을유사하게하면서어휘만조금바꾼것을일컫고,탈태법은의경을변형하여사용하는방법이라고할수있다.
둘째,진부한표현이나속된말을배척하고특이한말과기이한표현을추구했다.구체적으로는술어를중심으로평이한글자를기이하게단련(鍛鍊)시켰고조자(助字)의사용에힘을특히기울였으며,매우궁벽하고어려운글자를사용했고기이한풍격을형성하기위해전대(前代)시에서잘쓰지않던비속(非俗)한표현을시어로구사하여참신한의경을만들어내곤했다.
셋째,전고(典故)의정밀한사용을추구했다.이는황정견시론의“한글자도유래가없는것은없다[無一字無來處]”와연관된다.강서시파는독서를중시했는데,이것은구법의차원에서전대시의장점을수용하기위한것이지만,이는전고의교묘(巧妙)한활용이라는결과로표현되기도했다.그러면서전인의전고를그대로답습하지않고자신의의도에맞게변용했다.
이와같은황정견의창작법에대해부정적평가도적지않다.그러나이러한부정적평가는황정견시의파급력에대한반증이기도하다.황정견을중심으로한강서시파가당대(當代)는물론후대및조선의문인들에도적지않은영향을미쳤기때문이다.

황정견의시를세밀히소개하다

황정견은현존하는가장공신력있는중화서국(中華書局)본에따르면총1,916수의시작품을남겼다.북경(北京)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2007년에출간한전5책의『황정견시집주』에는총1,260제(題)1,916수(首)의시작품이수록되어있다.황정견작품의구절및시어(詩語)하나하나가갖는전례와창작배경그리고구절의의미및전체적인의미를상세하게주석을통해소개해,황정견작품의세밀한이해를돕고있다.이책에서는『황정견시집주』에소개된모든주석을꼼꼼하게번역하였으며,주석의내용을시의자구(字句)해석에최대한반영하고자노력하였다.그러나황정견시가워낙난해하여,경우에따라서는주석이시본문과어떤연계성이있는지조차이해가되지않는부분도있었다.이러한경우에도연결관계를최대한찾아시본문번역에녹여내고자노력하였다.
황정견에대한연구는지금까지꾸준히진행되어왔다.그러나아직까지황정견시작품에대한전체적인번역이이루어지지않았기에,구체적인실상의일면만을위주로하거나혹은피상적으로연구가진행되었다는점에서아쉬움이남는다.이에상세한주석을통해작품에대한이해를돕는『황정견시집주』에대한완역은,부족하나마후학들에게황정견시를이해하기위한초석을다지는역할을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