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견시집주 8 (양장본 Hardcover)

황정견시집주 8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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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송시다운 시가 시대, 그 중심에 있던 황정견
송나라는 개국(開國) 왕조인 태조부터 인종조(仁宗朝)를 거치면서 만당(晩唐)·오대(五代)의 장기간 혼란했던 국면이 정리되어 나라가 안정되었고, 백성들의 생활환경 또한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전대(前代)의 가혹했던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농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였고, 안정된 농업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상공업이 번창하고, 번화한 도시가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에 비해 상당한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발전함에 따라 일반 백성들은 단조로운 것보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시대적·사회적 환경은 곧 문학 출현의 배경이고, 문학은 사회생활이 반영된 예술이라고 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유협(劉勰)이 “문학의 변천은 사회 정황에 따르다[文變染乎世情, 興廢繫乎時序]”고 한 것처럼, 사회의 각종 요인은 문학적 현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문학 풍조의 변혁을 동반한다. 송초 시체(詩體)의 변천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특히 송대에는 일찍부터 학문이 중시되었다. 이는 주로 군주들의 독서열과 학문 제창으로 하나의 사회적 풍조로 자리 잡게 되어 송대의 중문중학(重文重學)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황정견은 바로 이때 전성기를 구가하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중국시가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당대(唐代)를 뒤이어 등장한 북송의 시인들에게는 당시에서 벗어난 송시만의 특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 있었다. 이러한 숙명은 북송 초 서곤체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북송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기에 이르렀다. 황정견이 그 중심에 있었다.
저자

황정견

북송(北宋)을대표하는시인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외시집주
산곡외집시주권제칠(山谷外集詩注卷第七)
1.임위지가붓을보냈기에장난삼아시를지어주다(林爲之送筆戲贈)
2.위지에게다시화답하다(再和答爲之)
3.다시운자를써서위지에게화답하다(再和答爲之)
4.조에게주는말(贈趙言)
5.수노객정에적힌시에차운하여원시뒤에쓰다(次韻題粹老客亭詩後)
6.장중모에게주다(贈張仲謀)
7.고양이를요청하다【산곡이손수이시를썼는데,「종수주부걸묘」라고제목하였다】(乞貓【山谷手書此詩,題云從隨主簿乞貓】)
8.주문지가새끼고양이를보낸것에사례하다(謝周文之送貓兒)
9.장태백이노란참새젓갈을보내준것에사례하다(謝張泰伯惠黄雀鮓)
10.조차응에게답하여주다(贈答晁次膺)
11.양박의묘(楊朴墓)
12.공저작랑의「조행」에차운하다(次韻孔著作早行)
13.공저작랑의「북행호타」에차운하다(次韻孔四著作北行滹沱)
14.진군의가「태진외전」을읽고쓴시에화운하다.5수(和陳君儀讀太眞外傳.五首)
15.조공전을읽고서【서문을함께싣다】(讀曹公傳【并序】)
16.잡시(雜詩)
17.위남에서【위남은단주에속하니,북경과이웃한다】(衛南【衛南屬澶州,與北京爲鄰】)
18.술(酒)
19.유통수가밭을구하고집을묻는시에차운하여답하다(次韻答柳通叟求田問舍之詩)
20.부채에쓰다(書扇)
21.숙원이적조방에와서치천에게올린시에차운하여답하다(次韻答叔原會寂照房呈稚川)
22.왕치천,안숙원과적조방에서함께식사하다【방(房)자운으로짓다】(同王稚川晏叔原飯寂照房【得房字】)
23.적조방에서만난숙원이지은시에차운하다【조照자운으로짓다】(次韻叔原會寂照房【得照字】)
24.치천의운자에차운하다【‘적(寂)’자운으로짓다】(次韻稚川【得寂字】)
25.서울에서기쁘게도여덟번째숙부를뵙고서(都下喜見八叔父八)
26.숙부이중이하군옥이영릉의주부로가는것을전송한시에차운하다(次韻叔父夷仲送夏君玉赴零陵主簿)
27.병에서일어나치천과진숙이수창한시에차운하여화답하다(病起次韻和稚川進叔倡酬之什)
28.치천과저물녘진숙을찾아가기로약속하였는데,전운에차운하여치천에게주고아울러진숙에게올리다(稚川約晚過進叔次前韻贈稚川并呈進叔)
29.변경의강가에술을차려놓고황십칠에게시를지어주다【다음작품인「효방변주」와같은때에지은작품이다.황의이름은기복이다】(汴岸置酒贈黄十七【與後篇曉放汴舟同時作.黄名幾復】)

산곡외집시주권제팔(山谷外集詩注卷第八)
1.새벽에변수에배를띄우며(曉放汴舟)
2.우이에머물며앞의운자를사용하여짓다(次盱眙同前韻)
3.장인손신노가소주자사로있으면서시를두야정에남겼는데,경신년10월에정견은화답하다(外舅孫莘老守蘇州留詩斗野亭庚申十月庭堅和)
4.10월13일에백사강구에배를정박하고【원주에서“진주는당나라시기영정현의백사진이다】(十月十三日泊舟白沙江口【元注云,眞州,唐永正縣之白沙鎭也】)
5.백사강구에서출발하여장로에머무르며(發白沙口次長蘆)
6.거센바람에막혀장로사에들어가다【장로사는진주에있다】(阻風入長蘆寺【長蘆寺,屬眞州】)
7.큰형님의「장로사하」에차운하다(次韻伯氏長蘆寺下)
8.금릉(金陵)
9.이단숙과이별하며주다(贈别李端叔)
10.동릉에서바람에막혀【동릉현은또한예지주에속한다.당나라때는동관현이었고오대때에는동릉으로고쳤다】(阻風銅陵【銅陵縣亦隸池州,唐爲銅官縣,五代改銅陵】)
11.물에막혀서죽산아래에배를정박하다(阻水泊舟竹山下)
12.지구에서비바람에사흘을머물다(池口風雨留三日)
13.귀지(貴池)
14.대뢰구에서바람에막혀【경인년.살펴보건대『동안지』에서“대뢰구는서주망강현에속하니,현에서30리떨어져있다”라고했다】(大雷口阻風【庚寅.按同安志云,大雷口屬舒州望江縣,去縣三十里】)
15.경인,을미일에도여전히대뢰구에정박하며【『국사』를살펴보니,원풍3년12월은기축일이초하루이다.경인일은초이틀이다】(庚寅乙未猶泊大雷口【按國史,元豊三年十二月己丑朔.庚寅,蓋初二日也】)
16.을미일에배를저어서나오다(乙未移舟出)
17.병신일에동류현에정박하다(丙申泊東流縣)
18.석우계옆의큰바위위에쓰다(書石牛溪旁大石上)
19.산곡의큰바위에쓰다(題山谷大石)
20.소자평,이덕수와함께탁수각에오르다(同蘇子平李德叟登擢秀閣)
21.영귀천에서(靈龜泉上)
22.구십사에게한유의책을빌리다.2수(從丘十四借韓文.二首)
23.서주를떠나환구로가는도중에지어서이덕수에게보내다【『동안지』에서“환구진은주에서80리떨어져있다”라고했다】(發舒州向皖口道中作寄李德叟【同安志云,皖口鎭去州八】)
24.정견이태화고을의수령이되었으며여섯번째외숙이안절사로동안에나가다가환공의시내입구에서우연히만났는데,비바람에머물며열흘동안책상을마주하고밤에이야기를나누면서,인하여“누가알랴!비바람치는밤에,다시이렇게침상에서마주하며잘줄을([誰知風雨夜復此對牀眠])”이란시를읊었다.이별한뒤에이시어가더욱생각이나서10글자를배치하여운자로삼아여덟구의열수를지어외숙에게보내다(庭堅得邑太和六舅按節出同安邂逅於皖公溪口風雨阻留十日對榻夜語因詠誰知風雨夜復此對牀眠别後更覺斯言可念列置十字字爲八句寄呈十首)
25.마당산노망정에쓰다.4수【원주에서“팽택의옛날치소이다”라고했다】(題馬當山魯望亭四首【元注云,彭澤舊治所】)
26.대고산에정박하며짓다(泊大孤山作)
27.낙성사에쓰다.4수(題落星寺.四首)

산곡외집시주권제구(山谷外集詩注卷第九)
1.옥경헌(玉京軒)
2.치정둔전의유공이은거하던집을지나며(過致政屯田劉公隱廬)
3.수성관도사황지명이소은헌을열어주니태수서공이쾌헌이라고썼다.정견은구를모아읊었다(夀聖觀道士黄至明開小隱軒太守徐公爲題曰快軒庭堅集句詠)
4.수레를세우고사람을보내후산의진덕방집을찾아보게하다(駐輿遣人尋訪後山陳德方家)
5.이부인이그린「언죽」에쓰다(題李夫人偃竹)
6.장우직이개원사에서벽에그린그림을보고지은시에차운하며,아울러이덕소에게편지삼아보내다(次韻章禹直開元寺觀畫壁兼簡李德素)
7.풍성에서(豊城)
8.소가협을올라가다(上蕭家峽)
9.하씨와소씨두집안(何蕭二族)
10.위부인의제단(魏夫人壇)
11.매복이은거하던곳(隱梅福處)
12.소자운의집(蕭子雲宅)
13.진나라를피한열사람(避秦十人)
14.노란참새(黄雀)
15.관사에도착하니고향으로돌아갈생각이깊이일어.2수【관사에도착했다는것은태화에막도착한것을이른다.이후의작품은모두태화에서지은것이다】(到官歸志浩然二絶句【到官盖初至太和也,此後皆太和所作】)
16.길주의승천원청량헌에쓰다(題吉州承天院淸涼軒)
17.양자의「문견증」에차운하여답하다(次韻答楊子聞見贈)
18.치정호조청이장서를많이지니고있음을듣고서시를지어서목을빌리다(聞致政胡朝請多藏書以詩借書目)
19.남안수령유조산에게희롱하여주다(戲贈南安倅柳朝散)
20.괴안각에쓰다【서문을함께싣다.동선은건주에속한다.산곡이태화에서남안에시험을감독하러갈때건주를지나면서지은작품이다】(題槐安閣【并序.東禪屬虔州,山谷自太和考試南安過䖍州】)
21.여홍범이「불합속인」으로청사의벽에두절구를써놓으니,그시에차운하여화답하다(洪範以不合俗人題廳壁二絶句次韻和之)
22.공상을떠나면서여홍범에게부치다(發贛上寄余洪範)
23.원명의운자에차운하여자유에게보내다(次元明韻寄子由)
24.다시차운하여자유에게답하다(再次韻奉答子由)
25.다시차운하여자유에게보내다(再次韻寄子由)
26.앞의시에차운하여일곱번째형에게올리다(次韻寄上七兄)
27.일곱번째형의「산여탕」에화운하다(和七兄山蕷湯)
28.원명형과지명아우의「구일상억」에같은운자를써서화답하다.2수(同韻和元明兄知命弟九日相憶.二首)
29.대신짓다(代書)
30.쌍간사.2수【절은태화현의안에있다】(雙澗寺.二首【寺在太和境內】)
31.잠에서깨어(睡起)
32.주원옹이길주사법청을닫고예부의시험에가는것을전송하다(奉送周元翁鎻吉州司法㕔赴禮部試)
33.윤보의집에서술을마시다(飲潤父家)
34.앞의시에차운하여윤보에게보내다(次韻寄潤父)
35.술을보내며주법조에게앞의운자를사용하여지은시를주다【길주사법주원옹이다】(酒與周法曺用前韻【吉州司法周元翁也】)

출판사 서평

후대까지영향을미친황정견의시론

황정견은시를지을때시의표현을다지고시법을엄격히지켜한마디한글자도가벼이쓰지않았다.황정견은수많은대가들을본받으려고했지만,그중에서도두보(杜甫)를가장존중했다.황정견은두보시의예술적인성취나사회시(社會詩)같은내용측면에서의계승보다는,엄정한시율과교묘(巧妙)한표현등시의형식적측면을본받으려했다.황정견시론의요점을정리하면대략다음과같다.
첫째,시의조구법(造句法)으로서의환골법(換骨法)과탈태법(奪胎法)이다.이에대해황정견은“시의의미는무궁한데사람의재주는한계가있다.한계가있는재주로무궁한의미를좇으려고하니,비록도잠과두보라고하더라도공교롭기어렵다.원시의의미를바꾸지않고그시어를짓는것을환골법이라고하고,원시의의미를본떠서형용하는것을탈태법이라고한다[詩意無窮,而人才有限.以有限之才,追無窮之意,雖淵明少陵,不得工也.不易其意而造其語,謂之換骨法.規摹其意而形容之,謂之奪胎法]”(『시인옥설(詩人玉屑)』)라고한바있다.이로보건대,황정견이언급한환골법은의경을유사하게하면서어휘만조금바꾼것을일컫고,탈태법은의경을변형하여사용하는방법이라고할수있다.
둘째,진부한표현이나속된말을배척하고특이한말과기이한표현을추구했다.구체적으로는술어를중심으로평이한글자를기이하게단련(鍛鍊)시켰고조자(助字)의사용에힘을특히기울였으며,매우궁벽하고어려운글자를사용했고기이한풍격을형성하기위해전대(前代)시에서잘쓰지않던비속(非俗)한표현을시어로구사하여참신한의경을만들어내곤했다.
셋째,전고(典故)의정밀한사용을추구했다.이는황정견시론의“한글자도유래가없는것은없다[無一字無來處]”와연관된다.강서시파는독서를중시했는데,이것은구법의차원에서전대시의장점을수용하기위한것이지만,이는전고의교묘(巧妙)한활용이라는결과로표현되기도했다.그러면서전인의전고를그대로답습하지않고자신의의도에맞게변용했다.
이와같은황정견의창작법에대해부정적평가도적지않다.그러나이러한부정적평가는황정견시의파급력에대한반증이기도하다.황정견을중심으로한강서시파가당대(當代)는물론후대및조선의문인들에도적지않은영향을미쳤기때문이다.

황정견의시를세밀히소개하다

황정견은현존하는가장공신력있는중화서국(中華書局)본에따르면총1,916수의시작품을남겼다.북경(北京)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2007년에출간한전5책의『황정견시집주』에는총1,260제(題)1,916수(首)의시작품이수록되어있다.황정견작품의구절및시어(詩語)하나하나가갖는전례와창작배경그리고구절의의미및전체적인의미를상세하게주석을통해소개해,황정견작품의세밀한이해를돕고있다.이책에서는『황정견시집주』에소개된모든주석을꼼꼼하게번역하였으며,주석의내용을시의자구(字句)해석에최대한반영하고자노력하였다.그러나황정견시가워낙난해하여,경우에따라서는주석이시본문과어떤연계성이있는지조차이해가되지않는부분도있었다.이러한경우에도연결관계를최대한찾아시본문번역에녹여내고자노력하였다.
황정견에대한연구는지금까지꾸준히진행되어왔다.그러나아직까지황정견시작품에대한전체적인번역이이루어지지않았기에,구체적인실상의일면만을위주로하거나혹은피상적으로연구가진행되었다는점에서아쉬움이남는다.이에상세한주석을통해작품에대한이해를돕는『황정견시집주』에대한완역은,부족하나마후학들에게황정견시를이해하기위한초석을다지는역할을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