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견시집주 9 (양장본 Hardcover)

황정견시집주 9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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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송시다운 시가 시대, 그 중심에 있던 황정견
송나라는 개국(開國) 왕조인 태조부터 인종조(仁宗朝)를 거치면서 만당(晩唐)·오대(五代)의 장기간 혼란했던 국면이 정리되어 나라가 안정되었고, 백성들의 생활환경 또한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전대(前代)의 가혹했던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농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였고, 안정된 농업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상공업이 번창하고, 번화한 도시가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에 비해 상당한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발전함에 따라 일반 백성들은 단조로운 것보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시대적·사회적 환경은 곧 문학 출현의 배경이고, 문학은 사회생활이 반영된 예술이라고 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유협(劉勰)이 “문학의 변천은 사회 정황에 따르다[文變染乎世情, 興廢繫乎時序]”고 한 것처럼, 사회의 각종 요인은 문학적 현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문학 풍조의 변혁을 동반한다. 송초 시체(詩體)의 변천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특히 송대에는 일찍부터 학문이 중시되었다. 이는 주로 군주들의 독서열과 학문 제창으로 하나의 사회적 풍조로 자리 잡게 되어 송대의 중문중학(重文重學)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황정견은 바로 이때 전성기를 구가하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중국시가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당대(唐代)를 뒤이어 등장한 북송의 시인들에게는 당시에서 벗어난 송시만의 특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 있었다. 이러한 숙명은 북송 초 서곤체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북송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기에 이르렀다. 황정견이 그 중심에 있었다.
저자

황정견

북송(北宋)을대표하는시인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외시집주
산곡외집시주권제십(山谷外集詩注卷第十)
1.나가서사신을맞이하였는데,사신이새벽에배를띄워떠나자와요에서돌아오다(出迎使客質明放船自瓦窑歸)
2.공의보의시에차운하여화답하다【의보는일찍이길주의수령을지냈다】(次韻和答孔毅甫【毅甫嘗爲吉倅】)
3.다시이전운자를사용하여공의보에게보내다(再用舊韻寄孔毅甫)
4.2월2일새벽에여릉의서제에서만나는꿈을꾸고서진적용에게기별을보내다【진적용의이름은여기로,당시여릉현령으로있었다】(二月二日曉夢會於廬陵西齋作寄陳適用【適用名汝器,時知廬】)
5.진적용이오남웅이준종이를보내준것에대해장구를지어사례하다(長句謝陳適用惠送吳南雄所贈紙)
6.진적용에게부치다(寄陳適用)
7.회원옹에게보내다(寄懐元翁)
8.술을마주하고앞의시운자에차운하여회원옹에게보내다(對酒次前韻寄懐元翁)
9.후위가길수에갔는데3일내린진흙탕비에돌아오지않은것을알고서장난삼아지어서보내다(侯尉之吉水覆按未歸三日泥雨戲成寄之)
10.후위의집에서비파연주를듣다(侯尉家聽琵琶)
11.원주수령료헌경에게보내다(寄袁守廖獻卿)
12.원주자사요헌경이차운하여답하면서아울러황정국의『재생전』을보내왔는데,그시에차운하여보내다(廖袁州次韻見答并寄黄靖國再生傳次韻寄之)
13.원주유사법도또한나의‘마(摩)’자운의시에화답하니,인하여다시차운하여보내다(袁州劉司法亦和予摩字詩因次韻寄之)
14.앞시에차운하여길노에게답하고아울러하군용에게보내다(次韻奉答吉老并寄何君庸)
15.원주자사요헌경의「회구은」의시에차운하다(次韻奉答廖袁州懐舊隱之詩)
16.군수손승의에게올리다(上權郡孫承議)
17.손봉의의시에화운하여채소를보낸것에사례하다(奉和孫奉議謝送菜)
18.손공선과이중동이금빛앵이를읊은것에화운하다.2수(和孫公善李仲同金櫻餌唱酬.二首)
19.여홍범에게답하다.2수(答余洪範.二首)
20.삼월을사일에만세향에와서소금세를징수하면서세금을내지않은집을징수하는데,그집에서늦게밥을먹다가마침내유숙하였다.이날바람에세게불어버들(국화)싹을따서국수에넣어먹었다.2수(三月乙巳來賦鹽萬歲鄕且蒐獮匿賦之家晏飯此舍遂留宿是日大自采菊苖薦湯餅.二首)
21.고군의정적헌에쓰다(題高君正適軒)
22.이차옹에게보내다(寄李次翁)
23.4월무신에만세산에서소금세를부과하다가우러러외숙사사후를그리워하다(四月戊申賦鹽萬歲山中仰懷外舅謝師厚)
24.계축일에조화도의절간에서유숙하다【임술년4월계축일부터신유일까지만세산과금도갱에서소금세를거두면서모두열편을지었다】(癸丑宿早禾渡僧舍【壬戌四月癸丑至辛酉,賦鹽萬嵗山及金刀坑凡十篇】)
25.관산에서유숙하다(宿觀山)
26.대몽롱에오르다【을묘년새벽에일어나다】(上大蒙籠【乙卯晨起】)
27.노강에서앞성으로들어가다【을묘식사후에】(勞坑入前城【乙卯飯後】)
28.을묘일에청천사에서묵다(乙卯宿淸泉寺)
29.병진일에도계속청천사에머물다(丙辰仍宿清泉寺)
30.정사일에보석사에서묵다(丁巳宿寳石寺)

산곡외집시주권제십일(山谷外集詩注卷第十一)
1.기미일에태호의사원을지나다가종여위의편지와산마로만든백주를받고서장편시를읊어화답시를보내다(己未過太湖僧寺得宗汝爲書寄山蕷白酒長韻詩寄答)
2.경신일에관음원에서묵다(庚申宿觀音院)
3.신유일에도갱구에서쉬다(辛酉憇刀坑口)
4.금도갱의객관에서추장갱의10여가구산농을기다렸으나오지않자,인하여그벽에쓰다(金刀坑迎將家待追漿坑十餘戶山農不至因題其壁)
5.한공의「초칠형」에차운하다(次韻漢公招七兄)
6.안복이수령의적헌을읊어보내다【안복현은길주에속한다】(寄題安福李令適軒【安福縣隸吉州】)
7.안복이령의선춘각을읊어보내다(寄題安福李令先春閣)
8.안복이령의애죽당을읊어보내다(寄題安福李令愛竹堂)
9.안복이령의조화정을읊다(題安福李令朝華亭)
10.쾌각에오르다(登快閣)
11.이재보선배의「쾌각」에화답하다.5수(和李才甫先軰快閣.五首)
12.8월14일밤에도갱구에서달을마주하고왕자난과왕자문,그리고진적용(陳適用)에게보내다(八月十四日夜刀坑口對月奉寄王子難子聞適用)
13.조피에서(彫陂)
14.기복이빈랑을부치고또한답시를보내와나에게같은종류의빈랑을권하니그시에차운하여보내다(幾復寄檳榔且答詩勸予同種次韻寄之)
15.황기복이바닷길로고맙게도금물30냥을보내주면서“이것은덕이있는선비가마땅히복용하여장차음사를물리치고진화를지켜야하니바라건대평범한약물로건강을기르지말라”라고하니,장난스럽게답하였다(黄幾復自海上寄惠金液三十兩且曰此有德之士宜享將以排蕩陰邪守衛眞火幸不以凡物畜之戲答)
16.기복에게말하여빈량을요구하다(道復覓㯽榔)
17.기복이내가준세물건에대해답한시에차운하다.3수(韻幾復答予所贈三物.三首)
18.술을보내필대부에게주다(酒與畢大夫)
19.태수필이조산대부로벼슬에서물러난것을기뻐하다(太守畢朝散致政)
20.위도보(魏道輔)가쌍령에서보낸삼첩시에차운하다(次韻道輔雙嶺見寄三疊)
21.장우직과위도보의증답시에차운하다(次韻章禹直魏道輔贈答之詩)
22.도보가나그네회포를읊어보낸시에차운하다(次韻道輔旅懷見寄)
23.위도보의「기회」에화답하다.10수(和答魏道輔寄懷.十首)
24.창고뒤주정청은옛날임부가폄적되었을때지은것이다.11월기묘일에내가가을세금을바치러왔는데,담장너머부용꽃이만발하였다(倉後酒正㕔昔日林夫謫官所作十一月己卯余納秋租隔牆芙蓉盛開)
25.길노가가을세금을걷기에곧바로장구를짓다(吉老受秋租輙成長句)
26.길노의시에차운하여화답하다(次韻和吉老)
27.길노자범을초대하여매화를보다(招吉老子範觀梅花)
28.자범이순제향포를맞이하여군도를쫓아내니도둑이거의사라졌다.이에장구를지어여행의노고를위로하였다(範徼廵諸鄕捕逐羣盗幾盡輙作長句勞苦行李)
29.서은보가여간의수령으로가는것을전송하다(送徐隱父宰餘干)

산곡외집시주권제십이(山谷外集詩注卷第十二)
1.군용이자운사에우거하면서소혜전을기다렸으나오지않자읊은시에차운하다(次韻君庸寓慈雲寺待韶惠錢不至)
2.차운하여도존주부에게받들어답하다(次韻奉答存道主簿)
3.시중에게포단을달라고하다(從時中乞蒲團)
4.동조옥연을맡게된시중을전송하다(奉送時中攝東曹獄掾)
5.무형이종이를보내주면서지은장구에받들어화답하다(奉答茂衡惠紙長句)
6.잡다한말을읊어나무형에게주다(雜言贈羅茂衡)
7.조원충에게보내다.10수(寄晁元忠.十首)
8.조원충의「서귀」에차운하다.10수(次韻晁元忠西歸.十首)
9.죽순을먹다(食筍十韻)
10.소손과갈민수두학자가나의「식순시」에화답하니,그시에차운하여답하다(蕭巽葛敏修二學子和予食筍詩次韻答之)
11.호조청이화운시를보내오자다시그시에차운하다(胡朝請見和復次韻)
12.입춘(立春)
13.호조의서신지에게보내다(寄舒申之户曹)
14.두중관의시에차운하다(次韻杜仲觀二絶)
15.다시두중관의시에차운하다(再次韻杜仲觀二絶)
16.사일에군용주부에게받들어보내다(社日奉寄君庸主簿)
17.왕주부의집에서도미화를보다(觀王主簿家酴醿)
18.도미화(酴醿)
19.공사가왕기옥의집에서술을마시며지은장운에내가화답하여보내었는데,그시를보고원옹이좌중에서다시차운하였다.인하여내가다시그시에차운하면서원옹을이끌어함께지어서분성으로보내다(元翁坐中見次元寄到和孔四飲王䕫玉家長韻因次韻率元翁同作寄湓城)
20.공사의운에다시차운하여화원옹형제에게보내고아울러의보에게안부삼아묻다(再次孔四韻寄懷元翁兄弟幷致問毅甫)
21.원옹이왕기옥에게서책을빌리면서지은시에차운하다(次韻元翁從王䕫玉借書)
22.원옹을본받아「여아포구시」를짓다(學元翁作女兒浦口詩)
23.지난해원옹이거듭쌍간사에가서내형제가지은시편을보고지은시에화답하였는데,수록하는것을완전히잊고있다가병중에기억하고이시를짓다(去歲和元翁重到雙澗寺觀余兄弟題詩之篇總忘收錄病中記憶成此詩)
24.주법조가청원사에서노닌시에차운하다(次韻周法曹遊靑原寺)
25.증도조의「희우」에차운하다(次韻曾都曹喜雨)
26.증처선의위청에장난스레제하다.2수(戲題曾處善尉廳二首)
27.상고의이회도공에게부치다【상고는균주에속한다】(寄上高李令懷道【上高,隸筠州】)

출판사 서평

후대까지영향을미친황정견의시론

황정견은시를지을때시의표현을다지고시법을엄격히지켜한마디한글자도가벼이쓰지않았다.황정견은수많은대가들을본받으려고했지만,그중에서도두보(杜甫)를가장존중했다.황정견은두보시의예술적인성취나사회시(社會詩)같은내용측면에서의계승보다는,엄정한시율과교묘(巧妙)한표현등시의형식적측면을본받으려했다.황정견시론의요점을정리하면대략다음과같다.
첫째,시의조구법(造句法)으로서의환골법(換骨法)과탈태법(奪胎法)이다.이에대해황정견은“시의의미는무궁한데사람의재주는한계가있다.한계가있는재주로무궁한의미를좇으려고하니,비록도잠과두보라고하더라도공교롭기어렵다.원시의의미를바꾸지않고그시어를짓는것을환골법이라고하고,원시의의미를본떠서형용하는것을탈태법이라고한다[詩意無窮,而人才有限.以有限之才,追無窮之意,雖淵明少陵,不得工也.不易其意而造其語,謂之換骨法.規摹其意而形容之,謂之奪胎法]”(『시인옥설(詩人玉屑)』)라고한바있다.이로보건대,황정견이언급한환골법은의경을유사하게하면서어휘만조금바꾼것을일컫고,탈태법은의경을변형하여사용하는방법이라고할수있다.
둘째,진부한표현이나속된말을배척하고특이한말과기이한표현을추구했다.구체적으로는술어를중심으로평이한글자를기이하게단련(鍛鍊)시켰고조자(助字)의사용에힘을특히기울였으며,매우궁벽하고어려운글자를사용했고기이한풍격을형성하기위해전대(前代)시에서잘쓰지않던비속(非俗)한표현을시어로구사하여참신한의경을만들어내곤했다.
셋째,전고(典故)의정밀한사용을추구했다.이는황정견시론의“한글자도유래가없는것은없다[無一字無來處]”와연관된다.강서시파는독서를중시했는데,이것은구법의차원에서전대시의장점을수용하기위한것이지만,이는전고의교묘(巧妙)한활용이라는결과로표현되기도했다.그러면서전인의전고를그대로답습하지않고자신의의도에맞게변용했다.
이와같은황정견의창작법에대해부정적평가도적지않다.그러나이러한부정적평가는황정견시의파급력에대한반증이기도하다.황정견을중심으로한강서시파가당대(當代)는물론후대및조선의문인들에도적지않은영향을미쳤기때문이다.

황정견의시를세밀히소개하다

황정견은현존하는가장공신력있는중화서국(中華書局)본에따르면총1,916수의시작품을남겼다.북경(北京)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2007년에출간한전5책의『황정견시집주』에는총1,260제(題)1,916수(首)의시작품이수록되어있다.황정견작품의구절및시어(詩語)하나하나가갖는전례와창작배경그리고구절의의미및전체적인의미를상세하게주석을통해소개해,황정견작품의세밀한이해를돕고있다.이책에서는『황정견시집주』에소개된모든주석을꼼꼼하게번역하였으며,주석의내용을시의자구(字句)해석에최대한반영하고자노력하였다.그러나황정견시가워낙난해하여,경우에따라서는주석이시본문과어떤연계성이있는지조차이해가되지않는부분도있었다.이러한경우에도연결관계를최대한찾아시본문번역에녹여내고자노력하였다.
황정견에대한연구는지금까지꾸준히진행되어왔다.그러나아직까지황정견시작품에대한전체적인번역이이루어지지않았기에,구체적인실상의일면만을위주로하거나혹은피상적으로연구가진행되었다는점에서아쉬움이남는다.이에상세한주석을통해작품에대한이해를돕는『황정견시집주』에대한완역은,부족하나마후학들에게황정견시를이해하기위한초석을다지는역할을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