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견시집주 13 (양장본 Hardcover)

황정견시집주 13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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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송시다운 시가 시대, 그 중심에 있던 황정견
송나라는 개국(開國) 왕조인 태조부터 인종조(仁宗朝)를 거치면서 만당(晩唐)·오대(五代)의 장기간 혼란했던 국면이 정리되어 나라가 안정되었고, 백성들의 생활환경 또한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전대(前代)의 가혹했던 정세가 완화됨에 따라 농업이 급속도로 발달하였고, 안정된 농업의 경제적 기초 위에서 상공업이 번창하고, 번화한 도시가 등장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전대에 비해 상당한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 전체가 안정되고 발전함에 따라 일반 백성들은 단조로운 것보다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게 되었다. 시대적·사회적 환경은 곧 문학 출현의 배경이고, 문학은 사회생활이 반영된 예술이라고 할 만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유협(劉勰)이 “문학의 변천은 사회 정황에 따르다[文變染乎世情, 興廢繫乎時序]”고 한 것처럼, 사회의 각종 요인은 문학적 현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문학 풍조의 변혁을 동반한다. 송초 시체(詩體)의 변천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특히 송대에는 일찍부터 학문이 중시되었다. 이는 주로 군주들의 독서열과 학문 제창으로 하나의 사회적 풍조로 자리 잡게 되어 송대의 중문중학(重文重學)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황정견은 바로 이때 전성기를 구가하여 북송(北宋)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중국시가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당대(唐代)를 뒤이어 등장한 북송의 시인들에게는 당시에서 벗어난 송시만의 특징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종의 숙명이 있었다. 이러한 숙명은 북송 초 서곤체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북송 중기에 이르러 비로소 송시다운 시가 시대를 풍미하기에 이르렀다. 황정견이 그 중심에 있었다.
저자

황정견

북송(北宋)을대표하는시인

목차

해제
황진시집주서

황정견시집주
산곡시외집보
산곡시외집보권제일(山谷詩外集補卷第一)
1.유수(流水)
2.호랑이가남산에서울부짖다(虎號南山)
3.국화를따다(采菊)
4.날이선선하기시작하니동학에게보이다(新涼示同學)
5.산가에서묵으며맹호연의시체를본떠짓다(宿山家效孟浩然)
6.병들어게으르다(病懶)
7.영탕문의방에서묵다(宿靈湯文室)
8.장난삼아여러벗에게주다(戲贈諸友)
9.낮잠(午寢)
10.서씨의고모수안군의수매정에제하다(題徐氏姑壽安君壽梅亭)
11.숙부의대원가에차운하다(次韻叔父臺源歌)
12.식서암(息暑巖)
13.박산대(博山臺)
14.심양강어귀에서삼일동안바람에막혀있었다(潯陽江口阻風三日)
15.백리대부의무덤을지나다(過百里大夫冢)
16.포성도중에그리운백씨에게부치다(蒲城道中寄懐伯氏)
17.뱃사공(舟子)
18.어진이를생각하다(思賢)
19.만위(漫尉)
20.밭을감독하다(按田)
21.석성으로돌아가는소태축을전송하다(送蘇太祝歸石城)
22.계장에게보내다(寄季張)
23.진공익에게주다(贈陳公益)
24.장차섭현으로돌아가려할때먼저명복과계상에게부치다(將歸葉先寄明復季常)
25.송중모를전송하다(送張仲謀)
26.「군자는하늘의운행을본받는다」는시에상정하여짓다(擬君子法天運)
27.상가행.4수(傷歌行.四首)
28.「행행중행행」을지어이지의에게주다(行行重行行贈別李之儀)
29.봄생각(春思)
30.공익의「춘사」에장난스레답하다.2수(戲答公益春思.二首)
31.뭇사람이광대를보다(衆人觀俳優)
32.임공점의「감매화십오운」에차운하다(次韻任公漸感梅花十五韻)
33.왕회지가보내준시에답하다(答王晦之見寄)
34.연평에있는그리운남육에게부치다(寄懷藍六在延平)
35.초준명을전송하다(送焦浚明)
36.신채에서남으로돌아가는객을전별하다(新寨餞南歸客)
37.새벽에일어나여수를바라보며(曉起臨汝)
38.염구인에게답하다(答閻求仁)
39.낙양으로돌아가는진계상을전송하다(送陳季常歸洛)
40.비가개어석당을지나다가유숙하고서공봉대중에게주다(雨晴過石塘留宿贈大中供奉)
41.설낙도의시에차운하여답하다(次韻答薛樂道)
42.진계장에게장난삼아주다(戲贈陳季張)
43.진씨에게시집간누이와헤어지며주다(寄別陳氏妹)
44.왕회지에게장난삼아주다(戲贈王晦之)
45.숭덕죽묵가를보다(觀崇德墨竹歌)
46.진소현을전송하다(送陳蕭縣)
47.벼슬에서물러난왕전승의소요정에서(致政王殿丞逍遙亭)
48.공석으로올라가는하군용을전송하다(送何君庸上贛石)
49.그리운봉의조정부에게보내다(寄懐趙正夫奉議)
50.4월정묘일에빗속에서조정부에게부치다(四月丁卯對雨寄趙正夫)

산곡시외집보권제이(山谷詩外集補卷第二)
1.진계장의북헌앵화를읊다(賦陳季張北軒杏花)
2.남쪽으로돌아가는포원례를전송하다(送蒲元禮南歸)
3.자리에나아가며(卽席)
4.이언심에게주다(贈李彦深)
5.장중모와진순익형제에게다시화운하여답하다(再和答張仲謀陳純益兄弟)
6.성남에서술을마시며즉흥적으로짓다(飲城南卽事)
7.선구집에서눈을읊다(宣九家賦雪)
8.아우의「중추월」에화운하다(和舍弟中秋月)
9.세필의「중추월영회」에화운하다(和世弼中秋月詠懷)
10.상보와세필두사람이추관을싫어하여서애초부터울울하여불평하였으므로내가시를지어군자가옳고그른일에대처한것에대해많이언급하였다(次韻答常甫世弼二君不利秋官鬱鬱初不平故予詩多及君子處得失事)
11.숙천을맡아떠나는위유지군을전송하다(送魏君俞知宿遷)
12.추회.2수(秋懷.二首)
13.이문백의「서시」에화운하다.5수(和李文伯暑時.五首)
14.전씨집안첫번째고경을전송하다(送錢一杲卿)
15.도를보다.2편(觀道二篇)
16.송성의수령으로가는중윤송황을전송하다(送朱貺中允宰宋城)
17.채로돌아가는순부를전송하다(送醇父歸蔡)
18.일곱번째형이청양역서조수에서보낸시에차운하다(次韻七兄靑陽驛西阻水見寄)
19.술을들어세필과이별하다(酌別世弼)
20.정회가큰벼루를주다(庭誨惠鉅硯)
21.숙회가이전부터불렀는데호상에서유람하였기에결국가지못하였다(叔誨宿邀湖上之遊以故不果往)
22.자진의「회영원묘하지정」에차운하다(次韻子眞會靈源廟下池亭)
23.기복이『장자』를읽기에장난삼아주다(幾復讀莊子戲贈)
24.탄부가고맙게보내준장구에차운하다(次韻坦夫見惠長句)
25.신사사승의「태강전사상봉」에화운하고아울러부구정태승,위씨손저작랑에게보내다(奉和愼思寺丞太康傳舍相逢幷寄扶溝程太丞尉氏孫著作二十韻)
26.진씨다섯번째어른의「상압사사이화」에차운하다(次韻晉之五丈賞壓沙寺梨花)
27.왕도제사승이허도녕의산수도를보고지은시에답하다(答王道濟寺丞觀許道寧山水圖)
28.왕희숙의당본초서가를보다(觀王熈叔唐本草書歌)
29.의고잡언(擬古雜言)
30.「고호협행」을지어위린기에게주다(古豪俠行贈魏鄰幾)
31.얽매인선비가대도를비웃다(拘士笑大方)
32.의고악부「장상사」를지어황기복에게부치다(擬古樂府長相思寄黄幾復)
33.고악부백저사시가(古樂府白紵四時歌)
34.한신(韓信)
35.회음후(淮陰侯)
36.안합(顔闔)
37.희효에게주다(贈希孝)
38.후원공이강학의뜻을묻다(侯元功問講學之意)
39.장난삼아장숙보에게주다(戲贈張叔甫)
40.우군의글씨두어종을구십사에게주다(以右軍書數種贈邱十四)
41.이황군이자신의조부서대학사의초서글씨와서첩한권과세축을보여주기에시를지어서돌려주다(李君貺借示其祖西臺學士草聖幷書帖一編三軸以詩還之)
42.삼지당(三至堂)
43.옥조천(玉照泉)
44.연수사승소헌이대단히소쇄하기에내가임낙이라명명하였으니,이는장자가말한‘갖가지수풀이한데어울려노래하므로형체가없다’는말에서취한것이다.아울러시를지었다(延壽寺僧小軒極蕭灑予爲名曰林樂取莊生所謂林樂而無形者幷爲賦詩)
45.길노가고맙게도이북해석실비를보내주기로하여시로써재촉하다(吉老許惠李北海石室碑以詩促之)
46.길노가두번화답하기에장난삼아답하다(吉老兩和示戲答)
47.나산인박휘루에제하다(題羅山人覽輝樓)
48.고풍으로지어주원옹에게보내다(古風寄周元翁)
49.서선에서대도사가거문고타는것을듣다(西禪聽戴道士彈琴)
50.안석석류두잎에제하다(題安石榴雙葉)
51.절구(絶句)
52.건주동선원조사가새로지은어서각에제하다(題䖍州東禪圎照師新作御書閣)
53.의춘으로돌아가는권군과손승의를전송하다(送權郡孫承議歸宜春)
54.장난삼아짓다(戲題)
55.무오일밤에보석사에유숙하다가보석을보고장난삼아읊다(戊午夜宿寶石寺視寶石戲題)
56.승천사법당앞잣나무를장난삼아읊다(戲題承天寺法堂前栢)
57.진길노현승과동지명의아우가청원에서노닐다가사선사를찾아갔는데,나는부령으로가지못하였다.두공이비로인해오랫동안돌아오지않자장난삼아이십운의「백가의」한수를지어불렀다(陳吉老縣丞同知命弟游靑原謁思禪師予以簿領不得往二公雨久不歸戲作百家衣一首二十韻招之)
58.길노와함께청평주를마시며장난삼아집구시를짓다(同吉老飲淸平戲作集句)
59.공문거가유성공에게준시를본떠짓다.3수(效孔文舉贈柳聖功.三首)
60.약명시를지어청강으로부모님을뵈러가는영자문을전송하다(藥名詩奉送楊十三子問省親淸江)
61.친아우의「희우」에차운하다(次韻舍弟喜雨)
62.하표군의「감고총」에답하다(答何君表感古冢)
63.회계죽맹에서기춘의부위를위해짓다(會稽竹萌爲蘄春傅尉作)
64.같은해과거에합격한심보형의시권을돌려주다(還深父同年兄詩卷)
65.종여위가초여름에보내준시에차운하여답하다(次韻答宗汝爲初夏見寄)
66.주덕부가보낸시에답하다(答周德夫見寄)
67.「초은」을지어서이원중에게보내다(招隱寄李元中)
68.조도부의숙질을전송하다(送晁道夫叔侄)
69.장난삼아반공봉에게주다(戲贈潘供奉)
70.차운하여범생을애석하게여기다(次韻惜范生)
71.진사시험본면중관에화운하다(和冕仲觀試進士)

출판사 서평

후대까지영향을미친황정견의시론

황정견은시를지을때시의표현을다지고시법을엄격히지켜한마디한글자도가벼이쓰지않았다.황정견은수많은대가들을본받으려고했지만,그중에서도두보(杜甫)를가장존중했다.황정견은두보시의예술적인성취나사회시(社會詩)같은내용측면에서의계승보다는,엄정한시율과교묘(巧妙)한표현등시의형식적측면을본받으려했다.황정견시론의요점을정리하면대략다음과같다.
첫째,시의조구법(造句法)으로서의환골법(換骨法)과탈태법(奪胎法)이다.이에대해황정견은“시의의미는무궁한데사람의재주는한계가있다.한계가있는재주로무궁한의미를좇으려고하니,비록도잠과두보라고하더라도공교롭기어렵다.원시의의미를바꾸지않고그시어를짓는것을환골법이라고하고,원시의의미를본떠서형용하는것을탈태법이라고한다[詩意無窮,而人才有限.以有限之才,追無窮之意,雖淵明少陵,不得工也.不易其意而造其語,謂之換骨法.規摹其意而形容之,謂之奪胎法]”(『시인옥설(詩人玉屑)』)라고한바있다.이로보건대,황정견이언급한환골법은의경을유사하게하면서어휘만조금바꾼것을일컫고,탈태법은의경을변형하여사용하는방법이라고할수있다.
둘째,진부한표현이나속된말을배척하고특이한말과기이한표현을추구했다.구체적으로는술어를중심으로평이한글자를기이하게단련(鍛鍊)시켰고조자(助字)의사용에힘을특히기울였으며,매우궁벽하고어려운글자를사용했고기이한풍격을형성하기위해전대(前代)시에서잘쓰지않던비속(非俗)한표현을시어로구사하여참신한의경을만들어내곤했다.
셋째,전고(典故)의정밀한사용을추구했다.이는황정견시론의“한글자도유래가없는것은없다[無一字無來處]”와연관된다.강서시파는독서를중시했는데,이것은구법의차원에서전대시의장점을수용하기위한것이지만,이는전고의교묘(巧妙)한활용이라는결과로표현되기도했다.그러면서전인의전고를그대로답습하지않고자신의의도에맞게변용했다.
이와같은황정견의창작법에대해부정적평가도적지않다.그러나이러한부정적평가는황정견시의파급력에대한반증이기도하다.황정견을중심으로한강서시파가당대(當代)는물론후대및조선의문인들에도적지않은영향을미쳤기때문이다.

황정견의시를세밀히소개하다

황정견은현존하는가장공신력있는중화서국(中華書局)본에따르면총1,916수의시작품을남겼다.북경(北京)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2007년에출간한전5책의『황정견시집주』에는총1,260제(題)1,916수(首)의시작품이수록되어있다.황정견작품의구절및시어(詩語)하나하나가갖는전례와창작배경그리고구절의의미및전체적인의미를상세하게주석을통해소개해,황정견작품의세밀한이해를돕고있다.이책에서는『황정견시집주』에소개된모든주석을꼼꼼하게번역하였으며,주석의내용을시의자구(字句)해석에최대한반영하고자노력하였다.그러나황정견시가워낙난해하여,경우에따라서는주석이시본문과어떤연계성이있는지조차이해가되지않는부분도있었다.이러한경우에도연결관계를최대한찾아시본문번역에녹여내고자노력하였다.
황정견에대한연구는지금까지꾸준히진행되어왔다.그러나아직까지황정견시작품에대한전체적인번역이이루어지지않았기에,구체적인실상의일면만을위주로하거나혹은피상적으로연구가진행되었다는점에서아쉬움이남는다.이에상세한주석을통해작품에대한이해를돕는『황정견시집주』에대한완역은,부족하나마후학들에게황정견시를이해하기위한초석을다지는역할을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