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시조 영역의 태동과 성장

한국 고시조 영역의 태동과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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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형식으로서의 형식이 아닌 문학적 감동으로서의 형식
시조는 그 내용과 형식이 함께 번역되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번역자가 외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형시로서 시조의 형식은 서정적 전환과 완결이 효과적으로 수행되도록 구조적으로 보장해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시조가 오랜 역사를 통해 면면히 이어져 오며 문학적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초, 중장에서 율격적 반복을 통해 정서를 고양시키다가 종장에서 전환시키며 완결 짓는 독특한 형식 덕분이다. 따라서 번역시에서도 이러한 반복과 전환의 미적 구조가 드러나야 한다.
시조를 영시의 형태로 번역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 세기가 넘는 동안 많은 번역자들이 여러 가지 방법을 창출해 냈지만, 서구인들에게 잘 읽히면서 시조의 특성까지 잘 드러내는 번역은 아직 찾기 어렵다. 많은 번역자들이 6행시를 선호하여 마치 6행시가 영역 시조의 전범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조의 3장 6구를 바탕으로 한 6행시는 각 행의 길이가 적당하여 영시로 볼 때도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6행시에는 시조의 형식적 특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영어권 독자들에게 시조를 6행시로 오해하게 만들 소지도 있기에 만족스러운 형태라고 보기 어렵다.
영어와 한국어의 언어적 특성이 다르며, 시조와 영시의 형식이 다르기에 완벽한 번역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역 시조의 형식을 마련하는 것은 시조 번역의 시작이며 핵심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저자

강혜정

姜惠貞,KangHye-jung
이화여자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한뒤,고려대학교에서고전문학전공으로석사,박사학위를받았다.2015년부터고려대학교에서강의하고있다.한국고전시가를공부하면서,조선후기가집의편찬양상과20세기초정재창사의변화,그리고20세기초고전시가의영어번역에관심을두고연구해왔다.2014년박사논문「20세기전반기고시조영역의전개양상」으로제1회한민족어문학회학술상을받았고,2021년논문「일제강점기,전통정재창사의계승과변용-박순호소장이계향홀기를중심으로」로제1회한국시가학회우수논문상을수상하였다.『백제가요정읍사논총』(사단법인정읍사문화제제전위원회,2021),『선교사와한국학』(숭실대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2022)에공동저자로참여하였고,TaleofStudentJu,TaleofWiGyeongcheon,TaleofChoeCheok(Kong&Park,2023)에전임연구원으로참여하였다.현재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연구교수로재직하며‘문학적관점에서본게일의AHistoryoftheKoreanPeople(『한국민족사』)’를연구하고있다.

목차

서문

제1장/들어가며
1.왜고시조(古時調)의영역(英譯)을살펴야하는가
2.어떤영역시조를다룰것인가
3.영역시조에대해어떻게서술할것인가

제2장/영역시조의등장과다양한형식의실험-1895~1920년대
1.고시조영역의선구자제임스게일(JamesS.Gale)
2.의미와감흥을부각한호머헐버트(HomerB.Hulbert)
3.심미적가치에주목한조앤그릭스비(JoanS.Grigsby)
4.시조의특수성을보여준마크트롤로프(MarkN.Trollope)

제3장/시조영역의확대와번역모형의정립-1930~1950년대이전
1.보편성과특수성간균형을추구한강용흘(姜鏞訖)
2.영역시조를공론화한변영로(卞榮魯)
3.영역시조의형식을논한정인섭(鄭寅燮)
4.정형시로구조화한변영태(卞榮泰)

제4장/20세기전기고시조영역의특징과의의
1.20세기전기고시조영역의특징
2.번역의양상별특징과후대에미친영향
3.시조번역의방향과가능성

제5장/나가며

부록
참고문헌
찾아보기
영문초록

출판사 서평

한국문학의영역,그출발점에있는시조

영역시조가추구해야할형식은어떻게만들어져야할까?이질문에대한실마리를찾기위해저자는초창기의번역으로눈을돌린다.이시기번역자들은실험하듯이다양한형태의영역시조를선보였고,심지어1930년대에는신문에서영역시조의형식을공론화하며더나은형식을모색하였다.하지만오늘날우리는이러한성찰이있었다는사실조차알지못해과거번역자들의고민을계승하지못하였다.과거보다더나은번역을위해서는과거의번역을돌아보는데에서시작해야한다.이를위해저자는오늘날영역시조의전범으로불리는형식이등장하기이전,영역시조가밟아온궤적을추적한다.
일반적으로학계에서는한국문학의본격적인번역이1980년대,즉문예진흥원을통한정부의지원이후에서야시작되었다고본다.20세기초반에영역된자료가풍성하지못하고그빈약한자료조차쉽게모습을드러내지않았기때문이다.하지만1888년선교사로입국한제임스게일은1895년KoreanRepository에4편의영역시조를발표하였고,이후다양한지면에100여편을추가적으로소개하였다.
소설과달리길이가짧은시조의경우,번역이되더라도단행본의형태가아니라신문이나잡지에산발적으로흩어져있는경우가대부분이다.짤막한형태의영역시조는잡지의권두시로놓이기도했고,신문의여백을메우기위해간간이삽입되기도하였다.또한,소설이나역사서와같은산문속에삽입시로존재하기도하였다.이렇게다양한지면에존재하는영역시조중19세기말부터1950년무렵까지영역된작품이무려414편이며,이중거듭인용된163편을제외하면신출작이251편이나된다.이수치는추정되는원작과의비료를통해시조를번역한것이라고확신할수있는작품들만계수한것으로추후새로운자료가보강될수있다는것까지감안하면,영역시조의역사는기존에알려진것보다100년이상을앞당겨야한다.
급격한서구화속에서전근대적유산인고시조가영어로번역되었다는것은일종의아이러니이기도하다.하지만19세기말서구와의접촉이후,가장먼저서구사회에번역소개된것은고전문학이었으며,20세기초반까지도한국문학의영역은고전문학을중심으로이루어져왔다.

서구중심적시각에서벗어나세계에진면목을드러내는시조

처음시조번역을담당했던집단은모두외국인선교사였다.19세기말타자에의한근대화가시작되면서시조번역역시외국인들이주체가되어이루어졌다.당시선교사들은한국을미개한국가로바라보았으며,설령그들이한국에대해우호적인태도를지녔더라도서구중심의시각을벗어나긴어려웠다.따라서그들의번역에서시조의독특한특성은감춰졌고,시조는그들에게익숙한형식에담겨소개되었다.그들은시조와영시의차이를목도하며시조의낯설음을거세시키고마치그들의문화배경에서탄생한열매인양탈바꿈시켰다.다만게일의경우,국내에40년을체류하며한국문화에대한이해가깊어짐에따라번역시의형태또한달라지는모습을보인다.초기에는영시의규범을갖춘형태로번역하였고,1920년대에시조의특성을반영한번역시를선보였다.
1930년무렵이되자,국내외의한국인들이시조영역의담당층으로부상하였다.이무렵에는한국문학에관심을가졌던외국인선교사들이모두본국으로돌아가고새로운선교사들은더이상내한하지않았다.이시기번역자들은모두식민지역사를경험하며문화민족으로서의면모를드러내기위해시조를번역하였다.이들은음악으로든문학으로든원작인시조에익숙하였기에다수의작품을번역할수있었다.게다가선교사들이남겨놓은번역의선례를돌아보며영역시조의형식에대해진지하게성찰할수있었다.이들은영역시조를신문이라는공론의장으로가져와서본격적인논의를이어갔으며,이러한모색의결과,20세기후반기에는6행시가일반화되었다.
이처럼20세기전반기고시조영역은1930년을기점으로번역담당층이바뀌면서서구중심적시각에서벗어나크게성장할수있는계기를마련하였다.저자는이변화를따라가며분석할뿐만아니라,최종적으로는고전문학을바탕으로한한국문화가참모습을드러내며다른문화와소통할수있길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