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 박안경기 6 (양장본 Hardcover)

이각 박안경기 6 (양장본 Hardcover)

$34.00
Description
이야기꾼이 된 지식인, 능몽초의 소설집
송대에는 저잣거리 공연장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 행위를 ‘설화(說話)’라고 불렀다. 당시에 설화는 시각적인 효과도 중시되었지만 주로 청각에 호소하는 서사예술이었다. 명대의 경우 건국 초기에는 대부분 이른바 ‘정통문학’으로 일컬어지던 시가·산문을 다룬 도서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기인 가정(嘉靖) 연간부터 상업경제가 발전하면서 크고 작은 도시들이 도처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글자를 읽을 줄 알고 제법 구매력을 갖춘 도시인들이 유력한 사회계층으로 정착하게 된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희곡·민요 등의 통속 예술이 그 유례(類例)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번성기를 맞이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지식인은 지식인들대로 독서시장의 그 같은 추세에 발맞추어 당시 민간에 전해지던 화본을 수집해 소설집을 엮고 거기에 자신들의 의견이나 해설을 붙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도 많아졌다. 그 ‘고상한’ 화본소설집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풍몽룡(馮夢龍)이 엮은 『유세명언(喩世明言)』·『경세통언(警世通言)』·『성세항언(醒世恒言)』이다. 이 소설집들이 독자들에게서 큰 인기를 끌자 학식이 풍부한 지식인이 송·원대 화본의 틀을 모방하여 비슷한 성격의 소설을 짓는 풍조가 유행하게 되는데, 그 서막을 연 것이 바로 ‘즉공관주인(卽空觀主人)’ 능몽초였다.
능몽초(凌濛初, 1580~1644)는 생전에 활발한 저술활동을 벌여 역사서나 문학이론서는 물론이고 시문·산곡·희곡·소설 등의 방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송·원대 화본(話本)의 문체를 모방해 지은 이야기들(‘의화본’)을 모아 놓은 소설집 『박안경기』와 『이각 박안경기』가 가장 유명하다.
중국문학사에서 ‘이박’으로 일컬어지는 이 두 소설집은 서면체 중국어고문로 지어진 송·원·명대에 소설집들에서 참신하고 흥미로운 소재로 당시 독서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화본의 양식을 모방하여 구어체 중국어백화로 새로 지은 2차 창작의 결과물이다. 특히 『이각 박안경기』는 당·송·원·명 등 언어 층위가 서로 다른 역대 왕조의 서면체와 구어체의 표현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시대와 층위에서 상이한 표현들이 뒤섞여 있다 보니 언어적인 견지에서는 『박안경기』에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지만, 문학적인 견지에서 이야기한다면 그 평가는 사뭇 달라진다. ‘설화’를 생업으로 하는 이야기꾼이 아닌 정통 지식인이 송·원대 화본을 모방해 창작한 최초의 의화본 소설집일 뿐만 아니라, 저잣거리의 공연예술에서 서재의 읽을거리로 이행하는 중국소설의 발전과정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산 증거이다.
저자

능몽초

저자:능몽초
명대의소설가,극작가이자출판가.절강浙江오정현烏程縣사람으로,자는현방玄房이며,호로는초성初成,능파凌波,현관玄觀,즉공관주인卽空觀主人등을사용하였다.문예를중시한가정환경과당시번창하던강남출판업의영향을받아어려서부터남다른재능을발휘하였다.그러나과거와는인연이없어서매번뜻을이루지못하자그열정을가업(출판업)에쏟아부어각종도서의창작,출판에매진하였다.생전에시문,경학,역사등다방면에서다양한저술,창작을남겼으며,가장두각을나타낸분야는소설,희곡,가요집,문예이론등의통속문학이었다.대표작으로꼽히는의화본소설집《박안경기拍案驚奇》와후속작《이각박안경기二刻拍案驚奇》는나중에‘이박二拍’으로일컬어지면서강남의독서시장에서큰인기와반향을불러일으켰다.55살때에상해현승上海縣丞으로기용된것을계기로출판업을접고서주통판徐州通判,초중감군첨사楚中監軍僉事를거치며선정을베푸는등유가의정통파경륜가로서도큰족적을남겼다.

역자:문성재
우리역사연구재단책임연구원,국제PEN한국본부번역원중국어권번역위원장.고려대학교중어중문학과를졸업하고국비로중국에유학하여남경대학교(중국)와서울대학교에서문학과어학으로각각박사학위를받았다.그동안옮기거나지은책으로는『중국고전희곡10선』·『고우영일지매』(4권,중역)·『도화선』(2권)·『간전노』·『회란기』·『진시황은몽골어를하는여진족이었다』·『조선사연구』(2권)·『경본통속소설』·『한국의전통연희』(중역)·『처음부터새로읽는노자도덕경』·『루쉰의사람들』·『한사군은중국에있었다』·『한국고대사와한중일의역사왜곡』·『정역중국정사조선·동이전』1~4·『격강투지』·『남채화』등이있다.
2012년에케이블T채널이기획한고대사다큐멘터리『북방대기행』(5부작)에학술자문으로출연했으며,현대어로쉽게풀이한정인보『조선사연구』가대한민국학술원‘2014년우수학술도서’(한국학부문1위),『루쉰의사람들』이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2017년세종도서’(교양부문),『한국고대사와한중일의역사왜곡』이롯데장학재단의‘2019년도롯데출판문화대상’(일반출판부문본상)을수상했으며,작년에는『박안경기』가대한민국학술원‘2023년우수학술도서’(인문학부문)로선정되었다.현재는『금관총의주인공이사지왕은누구인가』의저술과함께『정역중국정사조선·동이전』5(신당서권)의역주작업을진행중이다.

목차

『이각박안경기』완역본출판에즈음하여

『이각박안경기』서
『이각박안경기』소인

제28권정조봉은혼자머리없는여인을만나고왕통판이미제의억울한사건을동시에풀어주다
(程朝奉單遇無頭婦王通判雙雪不明寃)

제29권선물받은깨로둔갑한본색을간파하고약초다발로진짜짝과기막히게혼인하다
(贈芝識破假形草藥巧諧眞偶)

제30권유해거두어진왕옥영이남편을만나고예물에들인돈갚은한수재가아들을되찾다
(遺骸王玉英配夫償聘金韓秀才贖子)

제31권효도하는아들이끝까지검시를거절하고절개지킨아내가때기다려순사를택하다
(行孝子到底不簡屍殉節婦留待雙出柩)

제32권장복낭이한마음으로절개를지키고주천석이만리너머에서이름을올리다
(張福娘一心貞守朱天錫萬里符名)

제33권양추마가곤장치기를기꺼이바라고부잣집도령이크게놀라다(楊抽馬甘請杖富家郞浪受驚)

『이각박안경기』해제
부록_능몽초연보

출판사 서평

“보고듣는범위이내및일상에서생활하는영역”,사실주의창작의시작

능몽초는유가에서금기시하는‘괴·력·난·신(怪力亂神)’의귀신이야기와지나친음담패설을다룬책들이당시의독서시장에범람하면서사람들에게부정적인영향을끼치는데에상당한불만을토로하고있다.그런그에게소설을통해어리석인사람들을계도하는것은중요한일이었다.「박안경기서」에서밝힌바에따르면,사실능몽초가『박안경기』를짓게된가장큰이유도당시사람들의땅에떨어진도덕관에경종을울리고,나아가잘못된가치관을바로잡는데에있었다.

능몽초가‘이박’을선보이면서사실주의를창작의대전제로표방한것도바로이때문이었다.그는그대안으로기존의퇴폐적인창작풍토와는상반되는접근방법,즉“보고듣는범위이내및일상에서생활하는영역”,즉일상생활을토대로한소설창작을제안하였다.이같은사실주의적접근방법은「이각박안경기서」에서수향거사가당시의소설가들에게눈앞에펼쳐지는‘만물의상태와인간의감정(物態人情)’에주목하면서사실주의(眞)의예술적경지를지향할것을역설한것과도궤를같이한다.『박안경기』의서문·범례와상우당의패기(牌記)등에“교화의죄인이되지않겠다”는몇번이나다짐이등장하는것은소설의사회적교화에대한그의각성과의지가얼마나확고했는지잘보여준다.능몽초의이같은창작원칙은실제로『박안경기』에이어『이각박안경기』에서도일관되게고수되었다.

책속에서

『이각박안경기』에대한번역작업은중국에서처음으로시도되었다.30여년전(1992)에경관교육(警官敎育)출판사를통하여『백화이각박안경기상석(白話二刻拍案驚奇賞析)』이라는제목으로현대중국어로의완역이이루어졌다.그로부터10년뒤(2003)에는외문(外文)출판사를통하여마문겸(馬文謙)이『놀라운이야기들(Amazingtales)』이라는제목으로영문판번역이이루어졌다.그러나전자에서는장르가다른희곡인제40권이번역대상에서제외되었고후자에서는수록작품의절반수준인19편만번역되었다.게다가,정도의차이는있지만,두번역본모두작품줄거리를이해하는데에단서를제공하는시가나은유적인성묘사가등장하는대목들이맥락을무시한채일률적으로배제되었다.번역의수준이나책의완성도등여러면에서완역으로보기어려운것이다.이같은기계적인배제는줄거리의맥락과스토리텔링의리듬을파괴하여독자들이능몽초가제시한메시지에다가서는것을방해한다.그런점에서본다면,역자가이번에선보이는『이각박안경기』는능몽초원작의진면목(眞面目)그대로최대한보전(保全)했으니그야말로명·실(名實)이상부(相符)하는최초의완역본이라고하겠다.
-「『이각박안경기』출판에즈음하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