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야기꾼이 된 지식인, 능몽초의 소설집
송대에는 저잣거리 공연장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 행위를 ‘설화(說話)’라고 불렀다. 당시에 설화는 시각적인 효과도 중시되었지만 주로 청각에 호소하는 서사예술이었다. 명대의 경우 건국 초기에는 대부분 이른바 ‘정통문학’으로 일컬어지던 시가·산문을 다룬 도서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기인 가정(嘉靖) 연간부터 상업경제가 발전하면서 크고 작은 도시들이 도처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글자를 읽을 줄 알고 제법 구매력을 갖춘 도시인들이 유력한 사회계층으로 정착하게 된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희곡·민요 등의 통속 예술이 그 유례(類例)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번성기를 맞이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지식인은 지식인들대로 독서시장의 그 같은 추세에 발맞추어 당시 민간에 전해지던 화본을 수집해 소설집을 엮고 거기에 자신들의 의견이나 해설을 붙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도 많아졌다. 그 ‘고상한’ 화본소설집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풍몽룡(馮夢龍)이 엮은 『유세명언(喩世明言)』·『경세통언(警世通言)』·『성세항언(醒世恒言)』이다. 이 소설집들이 독자들에게서 큰 인기를 끌자 학식이 풍부한 지식인이 송·원대 화본의 틀을 모방하여 비슷한 성격의 소설을 짓는 풍조가 유행하게 되는데, 그 서막을 연 것이 바로 ‘즉공관주인(卽空觀主人)’ 능몽초였다.
능몽초(凌濛初, 1580~1644)는 생전에 활발한 저술활동을 벌여 역사서나 문학이론서는 물론이고 시문·산곡·희곡·소설 등의 방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송·원대 화본(話本)의 문체를 모방해 지은 이야기들(‘의화본’)을 모아 놓은 소설집 『박안경기』와 『이각 박안경기』가 가장 유명하다.
중국문학사에서 ‘이박’으로 일컬어지는 이 두 소설집은 서면체 중국어고문로 지어진 송·원·명대에 소설집들에서 참신하고 흥미로운 소재로 당시 독서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화본의 양식을 모방하여 구어체 중국어백화로 새로 지은 2차 창작의 결과물이다. 특히 『이각 박안경기』는 당·송·원·명 등 언어 층위가 서로 다른 역대 왕조의 서면체와 구어체의 표현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시대와 층위에서 상이한 표현들이 뒤섞여 있다 보니 언어적인 견지에서는 『박안경기』에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지만, 문학적인 견지에서 이야기한다면 그 평가는 사뭇 달라진다. ‘설화’를 생업으로 하는 이야기꾼이 아닌 정통 지식인이 송·원대 화본을 모방해 창작한 최초의 의화본 소설집일 뿐만 아니라, 저잣거리의 공연예술에서 서재의 읽을거리로 이행하는 중국소설의 발전과정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산 증거이다.
“보고 듣는 범위 이내 및 일상에서 생활하는 영역”, 사실주의 창작의 시작
능몽초는 유가에서 금기시하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의 귀신 이야기와 지나친 음담패설을 다룬 책들이 당시의 독서시장에 범람하면서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데에 상당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소설을 통해 어리석인 사람들을 계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박안경기 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사실 능몽초가 『박안경기』를 짓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당시 사람들의 땅에 떨어진 도덕관에 경종을 울리고, 나아가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잡는 데에 있었다.
능몽초가 ‘이박’을 선보이면서 사실주의를 창작의 대전제로 표방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는 그 대안으로 기존의 퇴폐적인 창작 풍토와는 상반되는 접근방법, 즉 “보고 듣는 범위 이내 및 일상에서 생활하는 영역”, 즉 일상생활을 토대로 한 소설 창작을 제안하였다. 이같은 사실주의적 접근방법은 「이각 박안경기 서」에서 수향거사가 당시의 소설가들에게 눈앞에 펼쳐지는 ‘만물의 상태와 인간의 감정(物態人情)’에 주목하면서 사실주의(眞)의 예술적 경지를 지향할 것을 역설한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박안경기』의 서문·범례와 상우당의 패기(牌記) 등에 “교화의 죄인이 되지 않겠다”는 몇 번이나 다짐이 등장하는 것은 소설의 사회적 교화에 대한 그의 각성과 의지가 얼마나 확고했는지 잘 보여 준다. 능몽초의 이 같은 창작 원칙은 실제로 『박안경기』에 이어 『이각 박안경기』에서도 일관되게 고수되었다.
송대에는 저잣거리 공연장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 행위를 ‘설화(說話)’라고 불렀다. 당시에 설화는 시각적인 효과도 중시되었지만 주로 청각에 호소하는 서사예술이었다. 명대의 경우 건국 초기에는 대부분 이른바 ‘정통문학’으로 일컬어지던 시가·산문을 다룬 도서들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기인 가정(嘉靖) 연간부터 상업경제가 발전하면서 크고 작은 도시들이 도처에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글자를 읽을 줄 알고 제법 구매력을 갖춘 도시인들이 유력한 사회계층으로 정착하게 된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희곡·민요 등의 통속 예술이 그 유례(類例)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번성기를 맞이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지식인은 지식인들대로 독서시장의 그 같은 추세에 발맞추어 당시 민간에 전해지던 화본을 수집해 소설집을 엮고 거기에 자신들의 의견이나 해설을 붙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도 많아졌다. 그 ‘고상한’ 화본소설집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풍몽룡(馮夢龍)이 엮은 『유세명언(喩世明言)』·『경세통언(警世通言)』·『성세항언(醒世恒言)』이다. 이 소설집들이 독자들에게서 큰 인기를 끌자 학식이 풍부한 지식인이 송·원대 화본의 틀을 모방하여 비슷한 성격의 소설을 짓는 풍조가 유행하게 되는데, 그 서막을 연 것이 바로 ‘즉공관주인(卽空觀主人)’ 능몽초였다.
능몽초(凌濛初, 1580~1644)는 생전에 활발한 저술활동을 벌여 역사서나 문학이론서는 물론이고 시문·산곡·희곡·소설 등의 방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송·원대 화본(話本)의 문체를 모방해 지은 이야기들(‘의화본’)을 모아 놓은 소설집 『박안경기』와 『이각 박안경기』가 가장 유명하다.
중국문학사에서 ‘이박’으로 일컬어지는 이 두 소설집은 서면체 중국어고문로 지어진 송·원·명대에 소설집들에서 참신하고 흥미로운 소재로 당시 독서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화본의 양식을 모방하여 구어체 중국어백화로 새로 지은 2차 창작의 결과물이다. 특히 『이각 박안경기』는 당·송·원·명 등 언어 층위가 서로 다른 역대 왕조의 서면체와 구어체의 표현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시대와 층위에서 상이한 표현들이 뒤섞여 있다 보니 언어적인 견지에서는 『박안경기』에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지만, 문학적인 견지에서 이야기한다면 그 평가는 사뭇 달라진다. ‘설화’를 생업으로 하는 이야기꾼이 아닌 정통 지식인이 송·원대 화본을 모방해 창작한 최초의 의화본 소설집일 뿐만 아니라, 저잣거리의 공연예술에서 서재의 읽을거리로 이행하는 중국소설의 발전과정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산 증거이다.
“보고 듣는 범위 이내 및 일상에서 생활하는 영역”, 사실주의 창작의 시작
능몽초는 유가에서 금기시하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의 귀신 이야기와 지나친 음담패설을 다룬 책들이 당시의 독서시장에 범람하면서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데에 상당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소설을 통해 어리석인 사람들을 계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박안경기 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사실 능몽초가 『박안경기』를 짓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당시 사람들의 땅에 떨어진 도덕관에 경종을 울리고, 나아가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잡는 데에 있었다.
능몽초가 ‘이박’을 선보이면서 사실주의를 창작의 대전제로 표방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는 그 대안으로 기존의 퇴폐적인 창작 풍토와는 상반되는 접근방법, 즉 “보고 듣는 범위 이내 및 일상에서 생활하는 영역”, 즉 일상생활을 토대로 한 소설 창작을 제안하였다. 이같은 사실주의적 접근방법은 「이각 박안경기 서」에서 수향거사가 당시의 소설가들에게 눈앞에 펼쳐지는 ‘만물의 상태와 인간의 감정(物態人情)’에 주목하면서 사실주의(眞)의 예술적 경지를 지향할 것을 역설한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박안경기』의 서문·범례와 상우당의 패기(牌記) 등에 “교화의 죄인이 되지 않겠다”는 몇 번이나 다짐이 등장하는 것은 소설의 사회적 교화에 대한 그의 각성과 의지가 얼마나 확고했는지 잘 보여 준다. 능몽초의 이 같은 창작 원칙은 실제로 『박안경기』에 이어 『이각 박안경기』에서도 일관되게 고수되었다.
이각 박안경기 8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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