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좋은 이야기들은 결국 다 사랑에 관한 무수한 질문들과 함께
이 책은 ‘사랑’을 키워드로 최근의 소설들을 읽고 있는 평론집이다. ‘사랑’은 말로 하기에는 너무나 거창하고 막막하고 실현하기에는 더더욱 난감하고 무거운 주제다. 더욱이 갈수록 뻔뻔해지는 욕망과 공고해지는 편견과 전쟁으로 치닫는 분노와 참혹한 폭력과 위선을 매 순간 마주하게 되는 지금, 사랑은 어처구니없는 단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책머리에’ 글이 “사랑이라니”, “언감생심 사랑이라니”를 반복하면서 시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폭력과 위선과 기만이 날로 더해가는 사랑 없는 시대를 새삼 확인시켜 주는 듯하던 소설들은,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 안에 들끓고 있는 참혹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랑을 지켜가야 하는지를 안간힘처럼 보여주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최대 과제다. 그리고 모든 좋은 이야기들은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은 언제나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란스럽고 혼란스럽고 무참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인가, 어리석고 사악하고 모순적인 내 안의 얼굴들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용서는, 사과는, 잊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랑은 얼마나 많은 겹의 이야기와 불안과 질문을 거느리는가. 좋은 이야기들은 결국 다 사랑에 관한 이 무수한 질문들 앞에 서 있다.
어렵게 사랑을 각오하고, 사랑의 기이하고 복잡한 단면들을 드러내고, 확인하고, 질문하다
용기를 낸다는 것은 언제나 사랑할 용기를 낸다는 뜻이라고 하는 김연수 인물이나, 악몽은 불가피하다 해도 꿈을 빼앗길 수는 없고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해도 사랑은 포기할 수 없고 어둠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빛은 포기할 수 없다고 믿는 한강 인물들, 지옥도 같은 풍경 속에서도 진심을 믿고 상냥함을 포기하지 않는 바늘 끝 위의 천사 같은 안보윤 인물들, 금단의 열매를 따 먹고 추방된 처지이면서도 씩씩하게 서로에게 사과를 건네며 웃는 김멜라 인물들, 중심을 향한 질주 끝에 마주한 상실의 풍경과 어긋나버린 계절 속에서도 세상을 향해 내민 손을 떠올리는 김애란 인물들은 모두 어렵게 사랑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깨우치게 되는 정지아 인물의 고백과, 사악하고 교활하고 동시에 상처도 많아 누군가 건네주는 새콤달콤 하나에 무너지기도 하는 장진영 인물들의 기이한 이야기와, 시간이 지나면서 몸과 마음과 죽음의 비밀을 알아가는 김영하 복제인간들의 혼란과, 신의 부당한 요구와 이에 승복한 구약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이승우 인물들이 떠올리는 무수한 질문들도 모두 사랑의 기이하고 복잡한 단면들을 드러내고 확인하고 질문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폭력이 일상의 이름이 되고 삶의 조건이 된 세계 속에서 그저 꿈틀거리는 벌레와도 같은 우리들은 언제 어떻게 사람이 되고 사랑은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되묻는다. 헤어질 때도 ‘결심’을 해야 하듯 사랑할 때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한강 소설에 대한 글의 제목이기도 했던 ‘사랑의 각오’가 책의 제목이 되었다. 사랑을 둘러싼 질문들과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안간힘과 사랑의 올바른 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중심으로 장이 나뉘었고,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나 고전 텍스트에 대한 글이 첨가되었다.
개별적인 주체로서 하나의 우주임을 보여주는 푸네스의 목소리
보르헤스의 이야기에 나오는 ‘푸네스’라는 인물이 있다. 몸을 다쳐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주위의 작은 것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읽고 기억하는 그는 모든 것들이 서로 다르고 새로운 이야기임을, 하나하나 사소한 것들이 모두 사소하지 않은 하나의 우주임을 알았던 인물이다. 사소한 차이를 그대로 듣고 이해하려 하고 하나하나의 대상들 모두가 개별적인 주체로서 하나의 우주임을 보여주는 푸네스의 목소리에 한동안 이끌렸다. 모름지기 글을 쓰는 이는, 그 글을 읽는 이는, 사랑하는 사람은, 푸네스의 목소리를 닮아야 하지 않을까.
황도경의 평론집, 『사랑의 각오』
황도경이 이전 평론집 『문체, 소설의 몸』, 『장면의 소설』 등에서 강조한 것처럼, 이야기/인간/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크고 요란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작고 소리 없고 구체적인 하나하나를 주시해야 한다는 믿음은 이 책에서도 이어진다. 이야기 속 작은 장면에, 사소해 보이는 인물의 몸짓에, 문장 속 미묘한 어조나 접속사에 이끌렸던 것도, 한동안 평생 무관으로 글을 쓰다 간 이옥이라는 사람이 마음에 머물렀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작은 것들이 모여 우주를 이루고, 소리 없는 것들 속에 엄청난 이야기와 비명이 들어 있고, 순간의 장면들이 모여 이야기를 이룬다. 대문자로 요약되는 것 속에 진실은 없다. 소설의 몸을, 이야기의 한 장면 한 장면을,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작은 것들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거기에 사랑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사랑’을 키워드로 최근의 소설들을 읽고 있는 평론집이다. ‘사랑’은 말로 하기에는 너무나 거창하고 막막하고 실현하기에는 더더욱 난감하고 무거운 주제다. 더욱이 갈수록 뻔뻔해지는 욕망과 공고해지는 편견과 전쟁으로 치닫는 분노와 참혹한 폭력과 위선을 매 순간 마주하게 되는 지금, 사랑은 어처구니없는 단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책머리에’ 글이 “사랑이라니”, “언감생심 사랑이라니”를 반복하면서 시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폭력과 위선과 기만이 날로 더해가는 사랑 없는 시대를 새삼 확인시켜 주는 듯하던 소설들은,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 안에 들끓고 있는 참혹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랑을 지켜가야 하는지를 안간힘처럼 보여주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최대 과제다. 그리고 모든 좋은 이야기들은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은 언제나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란스럽고 혼란스럽고 무참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인가, 어리석고 사악하고 모순적인 내 안의 얼굴들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용서는, 사과는, 잊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사랑은 얼마나 많은 겹의 이야기와 불안과 질문을 거느리는가. 좋은 이야기들은 결국 다 사랑에 관한 이 무수한 질문들 앞에 서 있다.
어렵게 사랑을 각오하고, 사랑의 기이하고 복잡한 단면들을 드러내고, 확인하고, 질문하다
용기를 낸다는 것은 언제나 사랑할 용기를 낸다는 뜻이라고 하는 김연수 인물이나, 악몽은 불가피하다 해도 꿈을 빼앗길 수는 없고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해도 사랑은 포기할 수 없고 어둠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빛은 포기할 수 없다고 믿는 한강 인물들, 지옥도 같은 풍경 속에서도 진심을 믿고 상냥함을 포기하지 않는 바늘 끝 위의 천사 같은 안보윤 인물들, 금단의 열매를 따 먹고 추방된 처지이면서도 씩씩하게 서로에게 사과를 건네며 웃는 김멜라 인물들, 중심을 향한 질주 끝에 마주한 상실의 풍경과 어긋나버린 계절 속에서도 세상을 향해 내민 손을 떠올리는 김애란 인물들은 모두 어렵게 사랑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깨우치게 되는 정지아 인물의 고백과, 사악하고 교활하고 동시에 상처도 많아 누군가 건네주는 새콤달콤 하나에 무너지기도 하는 장진영 인물들의 기이한 이야기와, 시간이 지나면서 몸과 마음과 죽음의 비밀을 알아가는 김영하 복제인간들의 혼란과, 신의 부당한 요구와 이에 승복한 구약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이승우 인물들이 떠올리는 무수한 질문들도 모두 사랑의 기이하고 복잡한 단면들을 드러내고 확인하고 질문하고 있었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폭력이 일상의 이름이 되고 삶의 조건이 된 세계 속에서 그저 꿈틀거리는 벌레와도 같은 우리들은 언제 어떻게 사람이 되고 사랑은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되묻는다. 헤어질 때도 ‘결심’을 해야 하듯 사랑할 때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한강 소설에 대한 글의 제목이기도 했던 ‘사랑의 각오’가 책의 제목이 되었다. 사랑을 둘러싼 질문들과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안간힘과 사랑의 올바른 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중심으로 장이 나뉘었고,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나 고전 텍스트에 대한 글이 첨가되었다.
개별적인 주체로서 하나의 우주임을 보여주는 푸네스의 목소리
보르헤스의 이야기에 나오는 ‘푸네스’라는 인물이 있다. 몸을 다쳐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주위의 작은 것 하나하나를 주시하고 읽고 기억하는 그는 모든 것들이 서로 다르고 새로운 이야기임을, 하나하나 사소한 것들이 모두 사소하지 않은 하나의 우주임을 알았던 인물이다. 사소한 차이를 그대로 듣고 이해하려 하고 하나하나의 대상들 모두가 개별적인 주체로서 하나의 우주임을 보여주는 푸네스의 목소리에 한동안 이끌렸다. 모름지기 글을 쓰는 이는, 그 글을 읽는 이는, 사랑하는 사람은, 푸네스의 목소리를 닮아야 하지 않을까.
황도경의 평론집, 『사랑의 각오』
황도경이 이전 평론집 『문체, 소설의 몸』, 『장면의 소설』 등에서 강조한 것처럼, 이야기/인간/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크고 요란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작고 소리 없고 구체적인 하나하나를 주시해야 한다는 믿음은 이 책에서도 이어진다. 이야기 속 작은 장면에, 사소해 보이는 인물의 몸짓에, 문장 속 미묘한 어조나 접속사에 이끌렸던 것도, 한동안 평생 무관으로 글을 쓰다 간 이옥이라는 사람이 마음에 머물렀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작은 것들이 모여 우주를 이루고, 소리 없는 것들 속에 엄청난 이야기와 비명이 들어 있고, 순간의 장면들이 모여 이야기를 이룬다. 대문자로 요약되는 것 속에 진실은 없다. 소설의 몸을, 이야기의 한 장면 한 장면을,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작은 것들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거기에 사랑이 있을 것이다.
사랑의 각오
$2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