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운명이란 원하지 않는 우연에 붙여진 이름일 뿐이라며, 겁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엔 한 점 흠없고 고르게 물든 단풍잎만 찾았다. 세월 따라 삶은 거부할 수 없는 외부의 힘과 자신의 작은 몸부림이 씨줄 날줄이 되어, 힌 올 한 올 짜가는 피륙 한 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딘가 상한 구석이 있는 낙엽을 집어든다. 상한 이파리가 건네는 야릇한 사연에 손길이 멈춘다. 아니 찬찬히 들여다 보면 티 없는 낙엽은 아예 없다. 어느 잎새도 봄날의 훈풍만 쏘인 건 아니다. 상한 흔적은 무더운 여름날의 따가운 열기와 폭풍우와 뭇 벌레들의 침략을 견뎌낸 고운 유적이다.
우연과 인연 (권재욱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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