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재구성 (한국 고전서사 속 여성 욕망 읽기)

악녀의 재구성 (한국 고전서사 속 여성 욕망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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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가부장 체제 아래에서 남성의 부속물처럼 살아갔던 옛 여인들의 욕망을 인정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 마음의 속살에서 엿보이는 욕망을 인정하고 나면 그 마음자리에 남는 것이 있다. ‘주체성’이란 비록 근대적인 서양학문을 빌려 와서야 우리에게 분명해진 말이고, ‘여성주체성’이란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지 않은 시대의 여인들을 대상으로는 논의가 불가능한 말이겠으나 이 책의 저자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 시대의 여성들이라고 자기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겠는가? 그들은 여성이 굳건한 언어로 삶의 의지를 표현할 수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탓에 ‘내 팔자가 이러하네’ ‘내 복이 여기까지인가 보네’ 하며 더 거대한 의지를 가진 것 같은 운명에 몸을 맡기는 듯 살았을 뿐이다. 이렇게 옛 여인들과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에서 이데올로기의 표피를 벗겨내고 나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속살은 바로 그들의 순수한 욕망, 팔자나 복이라는 말로 형상화된 주체성 그리고 소용돌이치듯 솟아나는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이다.
저자

홍나래

저자홍나래는이화여자대학교국어국문학과와같은대학대학원을졸업했다.「간통소재설화의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으며,건국대학교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에서박사후연수과정을거쳤다.현재성공회대학교신학연구원연구교수로있으면서설화,문화,종교에대해공부하고있다.

목차

머리말_마음을포개다

1장 모성(母性)으로부터의탈주

양사언의어머니―죽음으로이룬신분상승의꿈
손병사의어머니,광주안씨―귀신도내소신을꺾을수없으리
곰나루전설―인간남성을욕망한곰여성의이야기


2장 열(烈)로부터의탈주

이순지의딸이씨―여장남자사방지를끼고살다
성몽정의모친김씨·성세창의여종―꿈속의성교나귀신과의교접으로아들을낳은여인들
본부독살미인김정필―가부장시역범죄를일상의범죄로바라보게하다


3장 양처(良妻)의재구성

한명회의후처―정처의지위를차지한첩
이기축의처,우씨―위기는기회,살아남은자가승리하리라
방한림의처영혜빙―동성혼으로새로운부부상을꿈꾸다


4장 그녀,주체(主體)로서다

고구려왕후우씨―권력은나의힘,평생권력자로살아남는법
물긷는노비,수급비―정작중요한것은보이지않는다
춤추고노래하는덴동어미―과부,팔자가기구한여자일까?
‘내복에사는’막내딸―폭력과증오극복하기


5장 죽음을넘어,초월(超越)로

돌이된여인,박제상의처―사랑의환상,그집요함과어리석음
광청아기―나를버린자,대대로나를섬기게되리라
신립의그녀―여인의분노가탄금대의비극을만들다
이귀의딸이여순―여인들을매혹시킨화족華族영애令愛의파란만장한삶
분영―이별후이야기

에필로그_이야기를대하는두가지방식


감사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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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현모(賢母)도,양처(良妻)도,열녀(烈女)도,효녀(孝女)도아닌옛여인들이있다.지식인-남성이라는필터를거쳐살아남은옛서사속여자들을조명해보려는시도는계속되었으나,그런시도에서조차주목받지못했던기묘하고일그러진여인들이다.아들을죽이겠다고위협하는귀신에게‘잡아갈테면잡아가라’고받아치는어머니라든가,양성인(兩性人)이라는혐의를받는여장남자를옆에끼고사는사대부여인의모습은이시대의눈으로보아도어딘가불편하다.비정한어머니라거나음탕한여자라는비난을받기딱좋은인물들아닌가.고전문학을공부한세저자(홍나래?박성지?정경민)는이여인들의마음자리에주목하고,그들에게덧씌워진이데올로기를하나씩지워낸다.껍질을하나씩벗겨내고그마음의속살을들여다봤을때남은것은순수한‘욕망’이었다.

이야기로살아남은기묘한여자들에주목한다
마음속욕망을따라움직인그녀들은어쩌다악녀(惡女)혹은음녀(淫女)가되었나?
우리에게익숙한옛사람들,특히옛여인의이야기들이란이런것이다.현명하고어진어머니,남편의출세를위해앞날을내다볼줄아는‘내조의여왕’,남편을먼저보내고수절하는열녀,또효부,효녀…….후대에귀감이되는여인들의이야기는지식인,즉남성이라는권력과가부장체제라는이데올로기를거쳐살아남은것들이다.당대의지식인이나사대부들사이에서‘인기있던’이야기속여성들은이데올로기의껍질을덕지덕지뒤집어쓴채입에서입으로,혹은텍스트의형태로이어졌다.‘딸이여,이런여인이되거라.현모,양처,열녀,효녀…….’
특별히당대의이데올로기에들어맞는여인상은아니었다해도,‘시대’라는필터를감안하고도훌륭했던여자들의이야기또한살아남았다.이런방식으로옛여인들의이야기를전한이들은당대에남성못지않은역량과지혜를가졌던여인들의현명함,지략,인내심,인품,강인함을강조했다.‘이들은이렇게뛰어난여인이었으나,시대를잘못타고나불운할수밖에없었던운명이었으니…….’

옛여인들의이야기를즐겨소비하는방식이란위의두가지가다라고해도과언이아니다.그도그럴것이위의두가지분류에해당되지않는이야기속여인들은(이데올로기를거스른)악녀(惡女)취급을받거나음담패설의대상이되었다.이십년간동문수학해온세연구자(저자홍나래,박성지,정경민)는이런‘악녀’에주목했다.아름답지도,지혜롭지도,고고하지도않은일그러지고기묘한여자들.
예를들면이런식이다.‘곰나루전설’의곰여인은인간남성이자신을버리고도망치자그남성과의사이에낳은아이들을죽인다.모성(母性)은어디로갔는가?도망치는인간남성앞에서돌아오지않으면아이들을죽일거라협박하는곰여인은잔인한어머니에불과하지않은가?아니애초에인간남성을납치해동굴에가둔이여인은어떻게도정당화할수없는악녀아닌가.이지점에서저자들은여인의마음속욕망을들여다본다.여인의욕망은남성을향해있었다.모성이라는이데올로기를걷어내고나면남는것은순수한욕망,남자를얻고싶은욕망(사랑),그뿐이다.
일견뛰어난모성의소유자라고도보이는양사언의어머니가‘모성을발휘’하는모습을보자.양사언의어머니는서얼인아들이적자로인정받도록하기위해남편의관앞에서자결한다.자식을위해목숨마저내놓은‘희생서사’의아이콘이라할만하다.역사속양사언(1517~1584)은한석봉에비견되는서예가이자여러지역의수령을지낸청렴한관리였다.그렇다면사대부임이분명한데,설화속양사언은어머니의희생을통해적자의지위를획득한서자로그려진다.과연양사언의어머니는아들의출세를위해목숨을버린모성의소유자였을까?아니,일단‘모성이데올로기’를벗겨내고나면남는것은‘신분상승’을향한욕망이다.변방의평민소녀였던여인은우연히집에들른지체높은양반(양사언의아버지양희수)의눈에들어양반가에입성하는데성공한다음에는자결로써아들에게서서얼의흔적을지우고‘양반의어머니’로남았다.
이여인들의마음속에자식을위하는모성이아니라남성을향한욕망따위는없었노라고,아들의출세를위해희생하는모성이아니라본인의신분상승을갈구하는욕망따위는없었노라고,감히누가말할수있을까?이야기란읽는사람이읽고싶어하는대로그속살을드러내는법이다.모성이데올로기를성공적으로지워내고그여인들의마음속에남은욕망에집중했을때읽히는이야기의모습이란이렇게낯설다.세저자들이마음속욕망에집중하며벗겨내는이데올로기의껍질은모성(母性)을시작으로양처(良妻)와열(熱)로부터탈주하는것으로이어진다.

이데올로기는말한다.그녀는훌륭한어머니였노라고.(혹은아내였노라고.)
하지만모성양처열로부터탈주해다다른곳은…
그렇다.일단은이들에게독하고집요한‘욕망’이란것이있었다고인정해야한다.가부장체제아래에서남성의부속물처럼살아갔던옛여인들의욕망을인정하는일이란(생각보다)쉽지않다.하지만일단마음의속살에서엿보이는욕망을인정하고나면그마음자리에남는것이있다.‘주체성(subjectivity)’이란비록근대적인서양학문을빌려와서야우리에게분명해진말이고,‘여성주체성’이란페미니즘의세례를받지않은시대의여인들을대상으로는논의가불가능한말이겠으나이책의저자들은그렇게말하지않는다.그시대의여성들이라고자기삶을개척하고자하는의지가없었겠는가?그들은여성이굳건한언어로삶의의지를표현할수없었던시대에살았던탓에‘내팔자가이러하네’‘내복이여기까지인가보네’하며더거대한의지를가진것같은운명에몸을맡기는듯살았을뿐이다.이렇게옛여인들과그들을주인공으로한이야기에서이데올로기의표피를벗겨내고나서우리가확인할수있는속살은바로그들의순수한욕망,팔자나복이라는말로형상화된주체성그리고소용돌이치듯솟아나는날것그대로의생명력이다.

‘여성주체성’은근대이후,페미니즘의세례를받고나서야비로소가능한말이아니다.페미니즘과거리가먼전근대에도여성은온갖억압에도휩쓸리지않고자기삶을개척해내는굳건한내면과이를표현해낼언어를가지고있었다.누군가는‘서발턴은말할수있는가?’질문한다.오,이런!우리에게그들의소리를들을귀가없었을뿐이다.그들은‘주체성’이라고말하지않고‘복’이나‘팔자’라고했다.(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