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마리아 릴케 (누가 릴케를 함부로 노래하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누가 릴케를 함부로 노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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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박홍규의 호모 크리티쿠스
어떤 인물을 ‘속속들이 안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한 인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시대는 물론 삶과 행적, 사상까지 꿰뚫어보아야 하고, 균형 잡힌 시각과 비판의식 또한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세기의 인물을 대할 때든, 새로운 사상을 접할 때든 남의 시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극단적인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정보를 선택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일상에 녹이는 것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박홍규의 호모 크리티쿠스>는 그럴듯한 정보와 일방적인 주장 속에서 방황하는 독자들에게 정신사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역사의 그물이라는 큰 틀 안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그 올바른 길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 시리즈는 진보적 법학자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르네상스맨 박홍규 교수의 총서로서 인류사에 족적을 남긴 위대한 사상가, 작가,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본다.
저자

박홍규

1952년경북에서태어나영남대법대와동대학원을졸업했다.일본오사카시립대학박사과정을수료했으며미국하버드법대,영국노팅엄법대,독일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법학을연구했다.세계에대한폭넓은이해를바탕으로글을쓰는저술가이자노동법을전공한진보적인법학자이며인문·예술의부활을꿈꾸는르네상스맨이다.걷거나자전거를타고,아내와함께작은농사를지으며자유·자연·자치의삶을실천하고있다.영남대백승숙교수와2020년부터〈이단아의책읽기〉라는유튜브를통해‘세상의거의모든책’에대한이야기를즐겁고자유롭게나누는중이다.1997년『법은무죄인가』로백상출판문화상을수상했고,2015년『독서독인』으로한국출판평론상을수상했다.『표트르크로포트킨평전』『비주류의이의신청』『저항하는지성,고야』『내친구톨스토이』『불편한인권』『인문학의거짓말』『놈촘스키』『오노레도미에』『내내읽다가늙었습니다』(공저)『수정의야인조지오웰』『카프카,권력과싸우다』『에드워드사이드』『메트로폴리탄게릴라루이스멈퍼드』외다수의책을집필했으며,『오리엔탈리즘』『간디자서전』『예술은무엇인가』『존스튜어트밀자서전』등을우리말로옮겼다.번역한『자서전』과집필한『영혼의지도자간디에게배우는리더의철학』은대한민국의책중유일하게인도의국립간디박물관에소장되어있다.

목차

저자의말
인용범례
여는글_누가릴케를함부로노래하나?

1장왜릴케인가?
과연릴케를읽어야하나?|한국인들은릴케를어떻게받아들였나?|릴케의삶은모순적이다|릴케고독의모순|릴케의사랑법|릴케는동성애자인가?|릴케‘여성성’의모순|릴케는신을어떻게이해했을까?|릴케‘내면성’의모순

2장영웅주의자소년군인
릴케의자기소개|시대배경|어린시절|육군소년학교|린츠시절|프라하시절|영웅주의|첫시집『가신에게바치는제물』|릴케작품에드러난민중멸시와현실도피|니체의영향

3장청년귀족
뮌헨시절|루살로메|릴케의초기예술론|『백의의후작부인』과『기수크리스토프릴케의사랑과죽음의노래』|『피렌체일기』|러시아여행|러시아여행은릴케에게어떤영향을주었을까?|『기도시집』제1부|결혼|『기도시집』제2부|『형상시집』|유겐트슈틸|소외된사람들

4장파리의반도시주의영웅
대도시파리를혐오하다|표범예찬과흑인혐오|『로댕』|『기도시집』제3부|로마와북구|『신시집』|세잔과유대인

5장반도시주의자영웅말테
『말테의수기』는어떤책인가?|두가지죽음|시인과빈민|새롭게보는법|어린시절,사랑,시간|대중,고독,빈민|소유하지않는사랑|돌아온탕아

6장두이노의성주영웅시인
두이노성|이슬람환상|제1비가|제2비가|제3비가

7장전쟁주의자시인영웅
전쟁예찬|사랑과징집|전후의영웅찬양|제4비가|제5비가|제6비가|제7비가|제8비가|제9비가|제10비가

8장최고의시인영웅오르페우스
소네트제1부|기념비를세우지마라|소네트제2부|「젊은노동자의편지」|고유한죽음|「묘비명」|「묘지에서의명상」|내가가장좋아하는릴케의시

9장왜다시릴케인가?
릴케삶과문학의개관|한국의릴케|김춘수

닫는글_‘마지막’이되어야할귀족영웅시인릴케

출판사 서평

릴케는우리의시대정신과정면으로맞서는반反민주시인이다!
독재와영웅주의를미화하고전쟁과죽음을숭배하며도시와시민을혐오했던릴케의실체를탐색한다!
흔히들릴케를20세기의가장위대한시인이라고한다.서양은물론우리나라에서도그렇다.외국시인으로서는보기드물게일제강점기부터많은시인과일반인에게영향을미쳤고,작품또한수없이번역되었으며,엄청난연구서들과함께방대한전집까지나왔고,그작품이교과서에까지실렸을만큼국내에서의명성은하늘을찌를정도다.그러나릴케는평민출신이었으면서도평생귀족을자처했고,거의언제나귀족들과함께살면서시인인자신을신이나영웅으로묘사했으며,그런영웅이주인공으로등장하는전쟁을예찬하면서민중과노동자를멸시했다.세상에산적해있는수많은문제를도외시하면서추상적인말들만늘어놓았다는비판이나온이유다.하지만그가반민주시인이라는점은문제다.특히그가쓴시가파시즘의냄새를짙게풍긴다는점,혹은최소한그것과통한다는점은매우심각하다.이제우리는‘독일서정시를완성한위대한시인’이라는무조건적인칭송을버리고신비화의그늘에가려진릴케의진면목을재검토해야한다.일제때부터소개된그가과연우리에게무슨의미가있는지,그때부터독일식의관념일변도로그를해석하여그를칭송했던것이과연옳은일인지,일본식죽음이나순간적사랑의탐미주의와유사한그의시가서양문화란이름으로남긴일제의흔적임을간과한것은아닌지물어봐야한다.그리하여이모든것을낱낱이파헤칠때‘20세기의가장지독한반민주시인’이라는그의참모습이드러날터다.이책은이같은의도에서릴케의재조명을시도한것으로한국최초로릴케를비판하는시도이다.하지만편협한이데올로기적매도가아니라릴케의삶과작품을일일이분석하면서충분한이해를바탕으로균형을잃지않고릴케를보려고노력했다.저자는“나는릴케전문가도아니고독문학자나문인도아니다.따라서분석과비판에한계가있을지도모른다.다만아마추어가거리를두고비판적으로바라보는릴케가반드시오독이아닐수도있다는정도로평가되기를기대한다”고말한다.그러면서“이책을기회로릴케에대한논의가더욱풍성해졌으면좋겠다”고덧붙인다.이책은총9장으로이루어졌다.1장에서는릴케시의본질이라고하는삶,사랑,고독,신,죽음의모순에대해개괄적으로살펴보고,2장에서8장까지는그가살아간순서대로삶과시에나타난모순을살펴본다.그리고마지막9장에서는릴케에대한저자의생각과한국에서의릴케문제를검토한다.우리나라에는유명인에대한자신의생각을당당하게드러낼용기를막아버리는숭배와신비의분위기가팽배하다.특히시인의경우에는더욱그렇다.이책은그런비민주의분위기에경종을울리면서시대착오적인분위기를일소하고,시를포함한모든것을자유롭게읽고논의하는새로운자유의분위기를만드는데일조할것이다.또하나의새로운시도는저자가책에인용되는시들을손수번역했다는점이다.한국에서한국어로쓰는책이라면의당번역된것을인용하는것이옳다는믿음아래필요한내용들을직접번역했는데,이점역시내용과더불어새로운시도로서충분히평가되어야할것이다.


삶의본질,사랑,고독,그리고신과죽음의문제에천착했던시인이라고?
한국인은대개청소년기에릴케를만난다.교과서에“주여지난가을은참으로위대했습니다”로시작되는그의<가을날>이라는시가소개되기때문이다.음악방송이나라디오에나오는청취자사연등에서도릴케의시는곧잘언급된다.‘장미의시인’이라는애칭과함께<묘비명>이회자되고,‘사랑의시인’이라는또다른별칭과함께“내눈빛을꺼다오,그래도나는너를볼수있으리……”라는저유명한사랑시도종종들을수있다.뿐만아니다.릴케는키가작고가냘픈외모와더불어백혈병으로죽은시인이라는에피소드의주인공으로마음이여린소년소녀들의감성을건드리기일쑤다.이책의저자가반세기도더전어느가을에릴케의<가을날>을처음읽고반한뒤로오랫동안그와그의시를사랑했던것처럼말이다.현실의릴케는어땠을까?우리가알고있는것처럼신과자연과사랑을찬미하고,인간으로서피할수없는운명인죽음이라는문제에맞서사색하면서고독하게살았을까?수많은릴케찬미자들에게는매우안타까운일이지만대답은“아니다”이다.그는오히려매우귀족적인성향을가진영웅주의자였으며,전쟁과군대를찬양했고,자연스레독재와영웅을미화하는시를썼던파시즘의시인이었다.사랑의시인이라는이미지역시상당부분왜곡된것이다.‘소유하지않는사랑’운운하는바람에자유롭고쿨한이미지의시인이라는인식이팽배하지만그가주장한사랑은책임을회피하는사랑이자순간에몰입하는사랑이며오직자신에게만집중하는이기적인사랑이었다.아내도하나뿐인딸도돌보지않았다는사실이이를입증한다.그런데도왜우리는릴케에게그토록호의적이며그를신비화하는데열과성을다하는것일까?머릿속에쏙들어오기는커녕난해하기그지없는그의시를널리소개하지못해안달하면서수많은논문을쓰는것일까?

릴케는귀족과영웅,남성의권위를찬미한지독한예술지상주의자였다
릴케는평민출신이었다.하지만그는평생귀족을자처했다.책에싣는자기소개에도자신이귀족출신임을강조했을정도다.그의아버지는중류철도공무원으로서원래군인이었으나군대에서출세하지못해철도공무원이되었던사람인데,릴케는‘군인이었던아버지’를특히자랑스러워했다.또한그는당시독일의문인들이그랬던것처럼프랑스적기질을사랑하여어머니쪽이알자스에서프라하로이주해왔다는사실을강조했다.하지만아버지와달리어머니에대해서는늘호되게비난했고,자신의병약한체질과어린시절부적응의원인을어머니탓으로돌리곤했다.그러나릴케는나이40에군대에징집될만큼건장한체질이었다.그가어머니를미워하며책임을전가한것은영웅시를즐겨쓰고영웅을찬미했던만큼현실에서영웅이되지못한데대한일종의분풀이였을것이다.이처럼귀족적인것과영웅주의에집착했던그는자연스레대중과노동자를멸시했다.신,천사,영웅,기사,군인,장군,왕,시인등과달리대중과노동자는이적저것따지고생각하느라삶과죽음을초월하지못한다는이유에서다.하다못해그는죽음마저도‘고유한죽음’과‘대량죽음’으로나누어영웅의죽음과달리병원에서임종을맞이하는대다수민중의죽음은‘대량죽음’이라며멸시했다.릴케는또한지독한남성중심주의자였다.그가쓴시에는남성의힘과권위를찬양하는수단으로혹은남성의완전성을위해도구화된여성이라는은유가수없이등장한다.게다가그는극도의예술지상주의자였다.진정한예술을위해서라면가족도,친구도,사회도,종교도,아니예술외에는세상의모든것을포기해야한다고생각했다.부모도아내도외동딸도다버려야진정한예술가가된다는것이다.그들에대한생각조차들지않게끔그들을철저히비판하여자기마음에서완전히도려내야만완벽한시를쓸수있으며,그럼으로써스스로절대의신이될수있다고믿었다.

릴케의삶과시는난해한모순덩어리다
릴케는‘창작의절대성’에사로잡혀모든것을버렸다.그는인간을포함한세상의모든것이무의미하고오직창조자인자신만이유일한인간,아니신이라고생각했다.그에게생활과예술은적(敵)이었다.창조를위해서는인간을포함한모든것이오로지방해물일뿐이므로예술가는수도사나선승처럼살아야한다고주장했다.그가『젊은시인에게보내는편지』에서“만일쓰는일을그만둘경우에는차라리죽기라도하겠는지스스로에게물어보”라고말한배경이기도하다.그는또한예술가에게는오로지창조를위한정신적욕구만이남아야하므로남에게자기작품에대한평을구하거나문학잡지사에작품을투고하는‘짓’을그만두라고누누이강조한다.하지만릴케는자신이그토록경멸했던‘짓’을누구보다열심히했다.릴케에게는물질이나명예도마찬가지였다.그는아무리어려워도다른직업을갖거나잡일을한적이없다.물론노동자로일한적도없다.20대후반부터시인으로조금씩유명해지고나서죽을때까지,부유한귀족에게빌붙어호화롭게살았다.릴케는학업콤플렉스도심했다.초등학교시절부터16년동안각종공부를했지만당시대부분의문인들이경험한김나지움이나대학공부엔훨씬못미치는수준이었다.그가평생천재나영웅을자처하고,교육받은중산층을멸시하고,자신의유식함을과시하기위해난해한시를썼던데엔그런열등감도한몫했을터다.게다가그는수많은여성편력을미화하면서이를영웅적사랑으로정당화했다.시에서는영웅을노래했지만현실에서는비영웅적으로살았다는모순,이것이야말로릴케의삶과시에드러나는가장큰모순이아닐까?

마지막이되어야할귀족영웅시인릴케
20세기시인중에서릴케와가장닮은사람을꼽는다면파블로네루다일것이다.그역시릴케처럼많은여인을사랑했고많은사랑시를남겼다.하지만네루다는남미의현실을직시한뒤릴케를떠났고,그결과위대한참여시를썼다.물론시에는좋은시와좋지못한시의구별이있을뿐참여시라느니순수시따위의구별이있을수없지만말이다.이책은한때릴케를한때좋아했다가싫어하게된저자의고백이다.따라서릴케를20세기의가장위대한시인으로칭하고,그의시를20세기의가장위대한시라고하는전제아래쓰인일반적인릴케주의자들의입장과전혀다르다.저자가릴케는물론그의시가좋지않다고생각하는이유는명백하다.그는귀족의시대가사라진것을통탄하고,귀족의시대를그리워하며,귀족의눈으로대중의시대를경멸하는시를써서귀족과그동류인자들의사랑을받았기때문이다.한국에서릴케를적극수용한사람들역시정신적으로그런기질을갖는사람들이었다.전통,농경사회,인간적다양성에무게중심을두기보다는비인간적획일성을긍정하는가운데근대적기술문명,도시문명,인간주의를부정하고있는탓이다.물론저자가그런것들의가치를전면부인하는것은아니지만근대적기술문명,도시문명,인간주의를비판한다고해서전근대적전통,고향으로상징되는농경사회,비인간적획일성으로돌아가자는주장까지찬성해야할까?따라서릴케는이제인류역사에남은마지막귀족영웅시인이되어야한다.지금우리에게필요한시인은영웅주의나귀족주의에빠져건강한민중의삶을멸시하는그런시인이아니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