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기억의 현상학 (안치운 연극론 | 양장본 Hardcover)

연극, 기억의 현상학 (안치운 연극론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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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연극은 시대의 축소판이요, 짧은 연대기다
연극의 위상은 퇴색했다. 21세기 대한민국, 효율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이 땅에서 쓸모없는 것이 무엇일까 목록을 작성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가장 윗자리께 연극이 있을 것이다. 연극평론가 안치운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연극이 이처럼 홀대받게 된 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파고든 ‘실용의 물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무차별적이고 전방위적인 실용의 물결이 우리나라를 천박하게 만들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영어 공부는 셰익스피어 희곡을 읽는 것이 아니라 상거래에 필요한 구문을 익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인문과 교양이 급속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연극의 퇴조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삶과 역사, 그리고 연극 사이에는 구획이 없다고 생각한다. 연극이 삶과 혈육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연극을 통해 오늘의 삶과 시대를 헤집고 진단한다. 그가 실용이 득세하는 시대에 연극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연극은 무대에서 관객을 앞에 두고 희곡 속 인물로 분하여 몸짓·동작·말로써 희곡이라는 텍스트를 전달하는 종합예술로 문학과 미술, 음악, 무용 등 인접 예술 분야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연극은 허구를 빌려 그 시대 사람들의 갈등과 염원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연극평론가로서 30년 넘는 세월을 극장 어두운 객석에 앉아, 시대의 모습이 반영된 연극의 의의와 미학적 가치를 소개해왔다. 그에게 연극비평은 단순히 연극을 소개하는 행위가 아니다. 시대정신이 연극에 어떻게 반영되어 드러났는지를 분석하여 기술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연극은 역사가 되고 기억의 현상학이 된다.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의 현대 유럽 연극까지, 피나 바우쉬에서부터 기국서에 이르기까지 동서와 고금을 오가며 연극의 큰 줄기를 훑어본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연극을 지탱하고 있는 이론적 배경과 개별 작품 분석한다. 특히 우리 연극에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오태석, 최인훈, 윤영선, 기국서의 작품을 시대의 고민과 함께 미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뿐만 아니라 연극을 본다는 행위가 지닌 의의와 무대가 가진 상징, 치유로서의 연극의 역할, 교육적 가치, 관객과의 호흡 등의 연극론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저자

안치운

저자안치운은중앙대학교연극학과를졸업한뒤프랑스정부장학생으로국립파리3대학(소르본누벨대학)연극연구원IET에서연극학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귀국해서《교수신문》편집기획위원,삼성문학상?대산문학상?경암학술상심사위원등을역임했다.파리3대학초빙교수로프랑스에일년동안체류하면서베르나르-마리콜테스를연구했다.PAF공연예술비평상,여석기연극평론가상을받았다.현재한국연극학회부회장?편집위원,국제대학연극학회AITU이사,이탈리아《연극과다양성TeatridelleDiversit?》편집위원을맡고있으며,연극평론가로글을쓰고있다.호서대학교연극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

목차

서문:사는동안의역사와죽은다음의연극

[1부]연극의기억:멀리서인듯이

1.오류에서진실로,죽음에서삶으로
-〈오이디푸스왕〉에나타난눈의이미지연구

2.기억의시학을통해본한국현대연극의글쓰기
-〈태〉와〈봄이오면산에들에〉를중심으로

3.기억과공간
-베르나르-마리콜테스〈사막으로의귀환〉을중심으로

4.슬픔을넘어서는응시
-피나바우쉬와타데우즈칸토르작품의시각적이미지연구

5.죽음과애도의글쓰기
-윤영선희곡연구

6.한국현대연극과죽음의언어
-기국서연구1

7.연극과글쓰기의실험
-기국서의미발표희곡을중심으로

[2부]기억의연극:저주받은몫

8.목소리의숨결에서빛으로
-관객의역할과의미에관한연구

9.연극의미래
-연극,인간,자연

10.현대연극과연극소통의문제
-몸과언어에서새로운미디어의언어로

11.연극치료에서기억의문제
-기억공간과극장공간

12.교육연극의제도화를위한연구
-허구와재현,그리고은유를중심으로

참고문헌550
찾아보기564

출판사 서평

생의절반을극장에서보낸이의연극론

문인보다글잘쓰는연극인
서랍에서잠자던글을꺼내놓다


니체는글은모름지기피로써야한다고했다.시인장정일은안치운을두고“그는피로글을쓰는사람이며그래서그의책을좋아한다”고했다.이것이비단장정일만의평가는아닌모양이다.그에게‘문인보다글잘쓰는연극인’이라는근사한별명이붙어있으니말이다.젊은시절연극을공부했으나‘생물학적’으로나‘심리적’으로배우가될수없었다고고백한안치운은몸에텍스트를썼다지우기를반복하는배우들과다른방식으로연극을받아들이기로한다.텍스트를읽고또읽어무대위공연을거울처럼비추고그안에서아름다움을느끼는방식을택한다.여기에서한걸음더나아가자신이발견한아름다움을소개하는방식으로연극을받아들인다.
그렇게소극장어두운객석에앉아무대에오른텍스트를곱씹으며시대의갈등과염원을글로한장,한장채워오기를30년,그는무대가주는벅찬감동과허구속에감추어둔우리시대의초상들을하나하나짚어가며촘촘한글로거울이되어연극을비추어왔다.이제인생의후반부를앞두고지난시간을정리하고앞으로하고싶은바,해야할바가무엇인지스스로되묻고가슴에새기는작업에들어간다.이책《연극,기억의현상학》은안치운이연극을공부하기시작하면서부터서랍에차곡차곡모아둔그간의연극론이자,위기를맞은우리연극을위해자신이무엇을해야할지에대한진지한고민이기도하다.

연극,과거이면서언제나
지금여기로다가오는현재


삶과연극에대해안치운은“삶이빵이라면연극은술이다”라고이야기한다.빵은생존을위한것이지만연극은술처럼시간속에서썩지않고변모하여삶을재현하기때문이다.과거형으로쓰인연극이현재의모습으로삶을재현하면관객들은술을마신것처럼몸과정신이황홀경에빠진다.연극은과거를단순히저장하고재연하는것이아니다.늘새롭게기억하고재생산하는장르의예술이다.이런방식으로과거와현재를연결하면서기억의변증법을완성해간다.기억의고리가하나씩새롭게형성될때마다삶의사슬은과거와이어진다.연극에서기억의저장장치는극장이고,희곡에서기억의저장장치는글이며배우그자체라고할수있다.극을형성하는이러한장치들이모여기억의공간을생성한다.연극은과거에서무엇인가를떠올리는역할에머무르지않는다.떠오른기억을통해서현재를바라보고미래를인식하는창이된다.
연극은시간을통해삶과관계맺는다.그렇게현재를살아가는사람들의갈등과염원을허구를빌려극장에서맺고풀어내는것이다.그래서연극은“시대의축소판이며짧은연대기”인것이다.

기억,연극이되다
연극,다시기억이되다


《연극,기억의현상학》은작품을분석한연극론과이론을토대로한연극론으로나뉘어있다.1부“연극의기억”에서그리스비극〈오이디푸스왕〉을통해보이지않는정신의위대함을찾는그리스비극의여정을따라간다.또현대연극의문법에큰영향을준베르나르-마리콜테스의작품분석을통해기억이현실에어떻게관여하는지를살핀다.이어서우리현대희곡을대표하는두작품,오태석의〈태〉와최인훈의〈봄이오면산에들에〉를통해과거의기억이현재를어떻게규정하는지돌아본다.윤영서의희곡집과기국서의〈관객모독〉등의대표작들을통해서는삶의기억으로서의글쓰기가어떻게희곡이되고연극이되어,무대에올랐는지분석한다.
2부“기억의연극”에서는연극을완성하는주체로서의관객의문제,급변하는미디어시대에맞는연극의언어는무엇이고어떻게소통의문제를풀어낼것인지고민한다.여기에최근의연구성과를바탕으로연극의치유능력과교육적가치에주목하면서연극의새로운미래에관해서도이야기한다.

개별작품들을분석한연극론은전적으로개인적인기억에기대어있다.연극평론가안치운이무대를바라보며작품에빠져독백을읊조리던관객으로서의기억이다.하지만이기억은그만의것이아니다.모두가공유하는삶으로서의기억이며역사이다.책곳곳에이런개인적인기억과공동의기억이소복하게내려앉아있다.그래서책에서다룬연극을본독자라면아마과거로시간여행을떠난것같은즐거움을만나게될것이다.


책속으로추가

-321쪽
시대가불안해보일수록,기국서가쓰고보여주었던작품들이되살아난다.그의작품들은자신이세상보다더이상나빠질수없다는자각에서온것으로보인다.그의이러한태도는삶의순정과이어지는예술의자각이라는문제를낳는다.
1970년대이후한국연극에서그의존재보다주목받은것은그가던지는연극의메시지였다.그는독특한글쓰기와연출을함께한연극작가임에틀림없다.그는처음부터지금까지악동처럼,머물지못하고배회하는떠돌이처럼,자신이만든가치만을긍정하면서사는무정부주의자처럼연극했다.연극이더는세상에깊이개입하지않는지금,세상에대한불만이불만같지않고,거부가거부같지않은오늘날,지난시절그가했던연극작업은새롭게조망될필요가있다.일상의삶에초연한기국서라는연출가와난장같은그의작품과바닥이흐려잘보이지않는세상이한통속으로혼란스럽고,그것들의원인이동질의것일때,우리에게그의연극은더욱절실해진다.그의연출은어두운세상나들이이고,삶전체를가로질러가는두려움이다.

-406쪽
관객이있어야연극이존재한다는면에서관객은연극의공모자,연극은관객의공모자이다.공모共謀(conivere/conniver)란함께co눈감는nivere것을뜻한다.그것은연극이관객의기대에부응하거나그기대에어긋나기이전에생성되는믿음과같은합의이다.그리고관객이연극을,연극이관객을미리생각했고느꼈다는암묵적인합의의신호이다.공모란가시적이며현실적존재인관객과비가시적꿈인공연의만남이며융합이다.공연의힘이대상인현실을변형하는것이라면,관객의힘은공연을봄으로써현실세계와는다른새로운상상력의세계를만들어내는것이다.그것이가능한까닭은공모가욕망이낳는믿음의한형태이기때문이다.
공연을향한관객의믿음은연극을통해존재하지않는새로운세계를보고싶다는욕망에근거한다.연극을생산하는작가의믿음은소유할수없는현실세계를무대위에달리세우려는욕망에근거한다.관객이지닌공모의힘은곧연극생산자가지닌꿈의또다른이름인상상력과등가이다.관객의욕망은부재하는대상을꿈꾸고,작가의상상력은무대위에그대상을그려내며,공모는그대상에실체성을부여한다.

-448쪽
한국의현대연극은앞으로만가는초고속산업사회의자취와하나도다르지않다.중심의,중심의한복판으로이어지는직선을긋고그위에서앞으로만나아간다.나아갈수록큰,더큰연극의땅과좋은,더좋은연극이있을것이라고믿는다.그러나불행하게도그순간연극은멈춘다.앞으로만나아가려는연극은아주작고작은것들의속삭임에귀를기울이지않는다.그결과연극의수명은줄어들고,작가들은상실된기억을되짚어보려는신경강박증에빠지고만다.
‘앞으로’라는방향과빠른속도주의야말로연극과작가들이경계해야할위험이다.앞으로내딛는발걸음에고개를뒤로젖히며시선을돌리기란쉬운일이아니다.공연과작가,그리고비평을포함해서지금한국의현대연극은중증의기억상실증으로고통받고있다.보이는것은뒤가아니라앞뿐이다.그러나앞은멈추어있지않고나아갈뿐이다.의지와관계없이몸은휩쓸려나아간다.

-479쪽
미디어의시대인오늘날,연극은전율하고있다.연극은세상이너무나많이,그것도빨리변화하고있다는것을실감하다.정보화사회,테크놀로지시대의미디어가삶의방식,나아가인간의존재방식을모두바꿔놓고있기때문이다.이가운데연극은제모습을가늠할수없을정도로불안하다.연극과미디어의관계는곧연극과자본주의,연극과첨단테크놀로지같은대립의문제들을낳는다.그것은이어서연극과현실,연극과가상현실이라는문제로확대된다.따라서연극과오늘날미디어와의관계는미디어만의문제에머무르는것이아니라연극의존재론적문제로귀결된다.
미디어가연극을변모시키고해체하는이유는,미디어가연극의현실을더욱가상성의세계로이끌어갈수있기때문이다.그러니까연극이란현실이전에어떤변모를뜻한다.미디어가연극을변모시키는문제는연극이이럴수도있고저럴수도있다는가능성이전의,말하자면연극의존재에관한근원적인문제일듯하다.미디어와연극의관계는곧연극이후의문제가아니라,연극이전의문제일듯하다.연극을아무도모르는것으로,규정할수없는것으로만들어놓을수있기때문이다.또한그것은다시연극의원점으로이끄는기획일듯하다.그렇게해서연극의새로운창조적변형을초래할수있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