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근대철학의아버지데카르트,전쟁의시대를‘성찰’하며철학의혁신을이루다
근대의출발점,근대철학의아버지로평가받는데카르트의형이상학을대표하는저작《성찰》(1641)의새로운완역본(라틴어원전번역으로는두번째)이다.데카르트는평생을프랑스종교내전과30년전쟁의틈바구니에서살면서철학대신학,구교대신교,구교내개혁과보수로대립하던사상의전선을마주해야했다.이성없는신앙은광기와살육으로이어진다는시대의교훈앞에서그는이성에기초한소통의단초를찾기위해인간내면을성찰했다.이책은모든것에대한의심에서출발해더이상의심할수없는학문의토대를발견하고,다시그모든것을의심에서해방시키는정신의자기성찰과정이다.이것은곧‘생각하는자아’를철학의제일원리이자근대적주체로서발견하는철학의혁신과정이기도하다.“나는생각한다,그러므로나는있다”라는코기토Cogito명제는데카르트의이상적인간관이자공동체구성원리였고정치관,종교관이자학문론이었다.이책을통해이전의철학적주제들은새롭게정비되었고,방법론적측면에서는누구도그이전으로돌아갈수없게하는사유의혁명이이루어졌다.데카르트의‘성찰’은현실의문제를근원적으로묻고따지는사유의방식이자고립된주체간의소통의길을모색하는철학의근본행위이다.이책은바로이러한과정과결실을보여준다.
또한옮긴이는해제에서데카르트의삶과시대와사유를총체적으로조감하는한편당대로부터20세기에이르기까지데카르트가유럽철학사에미친영향을소개함으로써데카르트철학의역사적·철학적의미를섬세하게드러내고있다.데카르트의전사(前史)에서시작해《성찰》의주제와방법론의혁신적의미를거쳐최근의연구동향및현재적의미로이어지는해제는그자체로또하나의완결된텍스트로서,데카르트철학및근대철학사이해를위한길잡이로손색이없다.
2.젊은학자의새로운번역,거인의어깨에올라선난장이를꿈꾸다
명확한논증구조를확보하라―인과관계에서부연설명으로
이책은데카르트의《성찰》의국내두번째라틴어원전번역본이다(1970년故최명관교수가처음번역출간한이후다양한번역서가출간되었으나라틴어원전번역은1997년출간된이현복교수의《성찰외》(문예출판사)가최초의것으로간주된다).이번번역은그동안출간된국내번역및연구성과를충분히활용하고데카르트가생전에직접교정을본프랑스어본및그외다양한현대어번역본들을참고함으로써기존의성과를바탕으로하되그것을발전적으로넘어서고자한젊은학자의노력과포부를담고있다.
이번번역의특징은기존번역서에비해논증구조를명확하게하기위해주력했다는데있다.논증과정에서전제와귀결,원인과결과사이의관계를더욱분명히한것이다.특히,기존번역서의경우‘(왜냐하면)~때문이다’라는원인문이자주등장하지만,앞문장과관계를따져보면두문장사이의인과관계를파악하기어려운경우가많다.이런대목들은라틴어접속사nam,enim등을강한원인문으로번역한예들이대부분인데,이접속사들은앞문장의정당화를위해사용하는접속사임에틀림없지만,결정적원인이나근거를제시함으로써앞문장을정당화하기보다는,주로앞문장을강조하거나상술및부연설명을함으로써정당화하는데에사용되며,경우에따라nam은예시를통한정당화목적(즉‘예컨대’)으로쓰이기도한다.더욱이데카르트는원인문을끌어올때확실히cum,quia,quod등의접속사를사용하기때문에본문내에서일관되게원인문과부연설명의용례를가려낼수있는편이다.
따라서이번번역에서는nam,enim의경우대개‘다시말해’,‘(자세히)말하자면’이나‘예컨대’로옮겼고,문맥이자연스럽게흘러가는경우에는아예생략하기도했다.이로써앞문장에대한상술이자연스럽게이어지게되었으며,원인문의경우상대적으로그필연성이돋보이게되었다.
새로운한글번역어채택-‘명석판명한’에서‘맑고또렷한’으로
이번번역의또다른특징은데카르트의사상과관련해기존에통용되던학술용어들가운데몇몇을좀더이해하기쉬운한글번역어로대치한데있다.
가장두드러진변화는그동안‘명석판명한’이라고옮겨왔던‘clarus&distinctus(영역clear&distinct)를‘맑고또렷한’으로,‘연장(延長)’으로옮겨왔던‘extensio(영역extension)’를‘펼쳐있음’으로옮긴것이다.
옮긴이는무엇보다데카르트의정의에더가까운표현이무엇인가를고민했다.“바라보는눈에현존하여눈을충분히강하고분명하게자극하는것들을우리가명석하게본다고말하듯이,나는집중하고있는정신에현존하며드러난지각을명석한지각이라고부른다.그리고나는명석하기때문에다른모든것과잘구별되어단지명석한것만담고있는지각을판명한지각이라고부른다.”(데카르트,《철학의원리》,원석영옮김,아카넷,2002).여기서보듯옛번역어와새번역어를대치해도의미에전혀손상이없으며,한자어의미에서도명석(明晳)은‘맑고밝음’,판명(判明)은‘다른것과구분되는분명함’을뜻하기때문에투명하고깨끗함을나타나는‘맑음’과흐리지않고분명함을뜻하는‘또렷함’으로대치되어도무방하다.특히각각의반대말을떠올릴때새번역어의설득력이높아진다.clarus&distinctus↔obscurus&confusus(영역obscure&confused).이반대말은‘어둡고흐리고탁한’및‘헛갈리고엉클어지고뒤섞인’을의미한다.한글번역어를사용할경우학술용어로서의지위가손상된다는비판이제기될수있으나,유럽의많은철학자들이일상용어를그대로가져와새로운의미를부여하면서학술용어로사용해왔고,이는데카르트의‘clarus&distinctus’도마찬가지다.오히려‘맑고또렷한’에철학적의미를부여함으로써기존한글표현을깊이있게만들수있을것이다.
‘extensio’(물질적사물의공간상에펼쳐져있는본질적특성)의번역어‘연장’→‘펼쳐있음’의경우도다양한관점에서정당성을부여할수있다.특히연장은‘시간’을길게늘이거나미루는의미까지포함하지만데카르트는extensio를엄격하게‘공간적’펼쳐있음으로제한하고있으며,시간적연장은‘지속성duratio’이라는표현을별도로사용하고있다.이밖에도여러용어들이새롭게옮겨졌으며,필요한경우옮긴이주를달아새로운번역의의미와근거를설명했다.
3.철학적방법론의혁명을통해형이상학을정비하고인식론의지평을열다
신의실존,영혼과신체의구분,영혼의실존과불멸등을다루는이책은주제로만보면이전의형이상학과크게다르지않다.그러나데카르트는책의구성과문체,기술방식,방법론등에서철학의역사를《성찰》이전과이후로나눌만큼큰혁신을이루었다.
그리고이러한방법론적혁신을통해‘생각하는자아’라는철학의제일원리를제시하고과거의형이상학을인식의순서에맞추어새롭게정비함으로써인식론이라는근대철학의새지평을열었다.
우선문체면에서데카르트는중세이후형이상학의전통으로굳어졌던아리스토텔레스의《형이상학》에관한주해서형식을탈피해권위에의존하지않은채자유로우면서도논리적으로자신의사유를개진했다.
이러한문체의특징은몽테뉴가창안한‘에세essai’형식에힘입은것인데,데카르트는인간의‘의식’경험을기술함으로써몽테뉴보다더깊이인간의내면으로침잠했다.
그리고데카르트는‘발견의순서’에따라,즉사유의가장쉬운단계에서점차어려운단계로이행하며기술하는방식을취함으로써이전의철학자들과다른순서로철학을했다.이는읽는사람이사유의상승을함께체험하고최종적깨달음에동승할수있도록안내하는글쓰기방식이다.
데카르트는또신,세계,자아를성찰하면서신의창조질서가아니라자신의지각순서를따랐다.형이상학적전통을답습하지않고,모든것을의심할수있다고가정한뒤자신이의심의여지없이확신할수있다고지각하는것을인식의출발점으로삼아,그밖의다른인식들로확장해나간것이다.
이‘방법적회의’로부터해방된최초의인식이바로“나는생각한다,그러므로나는있다”라는코기토명제이다.데카르트는코기토명제를진리의기준으로제시하고이것만큼맑고또렷하게지각되는것만을참된것으로인정함으로써존재의질서에기반을두고있던이전의형이상학을인식의순서에맞추어새롭게정비하고자했다.근대이후의철학을‘존재론’이아닌‘인식론’이라고부르는것은바로이러한까닭이다.
데카르트가인식의순서에따라철학을했다는것은그의신존재증명에서가장잘드러난다.그는신앙없는자들을설득하기위해이증명을수행한것이아니라의식의입장에서신의실존을의심할수있었기에다시의식의입장에서그것을증명했다.
그는여러신존재증명방식을인식의순서에따라재검토한끝에어떤것은개조하고(인과론적증명)어떤재활용했으며(존재론적증명)남은것은폐기했다(목적론적증명).
데카르트가가보기에인간의지성이다룰수있는대상이자한계는자신의지각과의식이며,이러한지각의순서를따르는것이인간이자아,세계,신에관해철학할수있는유일한길이다.데카르트는철학자로서《성찰》을저술했으며,그밖의길은신앙과신학에맡겼다.
데카르트는참,거짓을가리는이론적판단을지성이아니라‘의지’아래두었다.유럽철학사에서유례를찾기힘든이러한의지에대한강조는방법적회의와깊은관련이있다.방법적회의란지성이참으로증명하고긍정했던모든것을한꺼번에의심스러운것들로서철회하는극단적행위이다.
데카르트는지성자체에이런동력은들어있지않다고보아,‘무한한’의지에기대었다.의지의힘을빌려수학적확실성은물론신의본성과실존까지의심할수있었던것이다.이러한극단적인회의에도흔들리지않는것이있다면그것을가장확실한진리로삼겠다는것이데카르트의핵심전략이었다.
4.모든것을의심하라,그러나의심할수없는‘생각하는나’
데카르트는이책에서신의실존및영혼과신체의실재적구분을증명하고자했다.이증명의과정은모든것에대한의심에서출발해더이상의심할수없는학문의토대를발견하고,다시이토대에서출발해앞서의심받았던대상들을의심으로부터해방시키는정신의자기성찰과정이다.각성찰의내용을정리해보면다음과같다.
제1성찰-학문에확고부동한무언가를세우기위해모든것을뿌리째뒤집어최초의토대를발견하려는데카르트의원대한계획은모든것에대한의심으로시작한다.정당한근거에따라이전의모든진리,곧감각적지각,물체,자연과학및수학적대상,신의본성과실존까지의심하며,이후로는이로부터해방되는것만이진리로서받아들여진다.
제2성찰-데카르트는자신이아직의심하지않은것이남아있는지한번더검토한다.그가모든것의실존을의심했고또모든것이실제로의심스러웠다하더라도,그렇게의심하고있는저자신이있다는것은의심할수없었다.나의실존은언제어디서든참이다.그렇다면나는무엇인가?나는오직생각하는것이며,나의정신은오직지성으로써인식된다.
제3성찰-자아의깨달음을얻은데카르트는모든외적인것들을차단한채순수한자아속으로침잠해자신을다시검토한뒤“내가더없이맑고또렷하게지각하는모든것은참”이라는진리의일반규칙을수립한다.그리고뛰어난능력을지닌악령이자신을속이고있다는가정을마주하지만,인과론적신존재증명을통해신의실존을증명하고모든암흑을걷어낸다.
제4성찰-신이속지않도록창조한나의정신이왜실수를하고오류에빠지는지를해명한다.오류나실수는부정적인것이며헛것이기때문에신은이것들의원인이아니다.오류는내가의지를지성의범위안에묶어놓지않기때문에발생한다.오류의원인은자유의오용에있다.이를방지하기위해서는성찰을반복함으로써오류에빠지지않는습관을얻어야한다.
제5성찰-나의몸과남의몸,물체들의본성을묻는다.이물질적인것들의본성,예컨대크기,형태,운동등은맑고또렷하게지각되기때문에진리의규칙에따라참된것으로간주된다.물질적인것은본성상있을수도없을수도있는우연한실존을지닌다.반면신은본성상모든완전성을지니고,실존은하나의완전성이기때문에신은본성상실존을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