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모방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
1994년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학술단체 사단법인한배달창립 8주년 기념행사로 「천부경天符?」학술대회를 열었다. 그 당시에 이 단체에서 『한단고기桓檀古記』1)에 실린 「천부경?에 대하여 연구하는 연구자들을 모아 이 땅에서 처음으로 ?천부경?학술대회를 연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연구하여 쓴 논문을 한데 묶어서 『天符??究』라는 제목의 연구서를 간행하였다.
이 책의 연구자는 모두 28명이나 된다. 책을 간행한 후 9년(본서의 제1판을 출판한 해)이 지났으니까 아마 지금은 상당히 많은 새로운 연구자들이 나와 그때보다 더 다양하게 깊이 있는 연구를 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리라 생각 된다. 다시 학술대회가 열린다면 그 결과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고 조선사람의 근원적 사유』는 당시의 성과물을 토대로 하여 「천부경」2)을 보는 시각을 다양화 하고 깊이를 더하게 하기 위하여 쓴 저작물이다. 이런 이유로 사단법인 한배달에서 발간한 『天符??究』를 자료로 하여 논의를 시작하였다.
당시의 연구자들은 대학교수, 연구소 연구원, 향토사학자, 스님, 종교연구가, 단군교 종단 종사자, 대종교 종단 종사자 등 다양했다. 필자가 연구논문을 일별하니, 연구가 깊이 들어간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전혀 손을 대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필자의 관심이 우리 ‘고대천문’3)에 있으므로 그 쪽의 연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고대 천문 연구자의 시각으로 「천부경?에 접근해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대천문을 모르고 우리의 고대사에 접근해 들어간다는 것은 마치 문자를 모르면서 문자를 연구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천부경」연구에, 반드시 고대천문을 알아야 한다는 이유는, 고대 천문을 모르면. 경문이 의도하고 있는 바를 제대로 짚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천부경」을 연구하여 이해하고, 「천부경」에 쓰인 문자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들을 찾아내는 일은 「천부경」에 먼저 눈을 뜬 연구자들이 목숨을 걸고 해야 할 일이다. 이들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그가 본만큼 깨달은 「천부경」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천부경」의 논리체계4)를 알지 못하고 「천부경」을 논한다는 것이 장님이 코끼리의 코를 만지고 나서 뱀처럼 생겼다고 하거나, 다리를 만지고 나서 기둥처럼 생겼다고 하는 경우와 별로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 「천부경」을 보면 반드시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 된다. 그러므로 광범위한 학문의 섭렵을 필요로 한다. 동양은 물론이고 서양의 학문도 좋다. 학문의 폭이 넓고 깊을수록 좋다.
우리가 서양의 사유체계5)에 맞추어 「천부경」을 이해하려 한다면 이해하는 일을 접어 두고 우선 우리의 사유체계가 무엇인가부터 공부해야 한다. 우리의 사유체계에서 나온 것이 「천부경」이므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천부경」을 기존의 논리체계를 가지고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양이나 중국의 이분법적 논리로 「천부경」을 이해하려다간 「천부경」에서 무엇인가를 얻는 것은 고사하고 「천부경」을 망치기 십상이다.
원칙을 정해놓고 이 원칙에 맞지 않으면 이단자로 몰아가는 것이 서양의 형식적 논리체계이다.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변동논리를 주장한 사람들이 변증법논리를 내놓았다. 그러므로 고정논리와 변동논리는 서로 대립하고 갈등한다. 「천부경」은 이러한 대립하고 갈등하는 논리체계에 맞지 않는다, 순환과 조화와 버릴 것이 없는 균형의 논리체계이기 때문에 대상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려 드는 서양의 논리체계에 맞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논리체계는 생명이라는 논리의 핵을 찾아내고, 논리와 논리가 살아 있는 유기체가 되어 스스로 생존하게 한다.
한 가지 이치를 깨달으면 모든 것이 연줄에 연 걸리듯 주렁주렁 매달려있음을 알게 된다. 한의학을 공부하면 동양철학의 논리를 깨달아 알게 되고, 음악의 논리를 깨달아 알게 되고, 춤의 논리와 그림의 논리를 깨달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논리체계를 공부한 바가 없어 스스로 공부하고 깨닫지 않으면 알 방도가 없다.
이 책의 연구자는 모두 28명이나 된다. 책을 간행한 후 9년(본서의 제1판을 출판한 해)이 지났으니까 아마 지금은 상당히 많은 새로운 연구자들이 나와 그때보다 더 다양하게 깊이 있는 연구를 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리라 생각 된다. 다시 학술대회가 열린다면 그 결과를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고 조선사람의 근원적 사유』는 당시의 성과물을 토대로 하여 「천부경」2)을 보는 시각을 다양화 하고 깊이를 더하게 하기 위하여 쓴 저작물이다. 이런 이유로 사단법인 한배달에서 발간한 『天符??究』를 자료로 하여 논의를 시작하였다.
당시의 연구자들은 대학교수, 연구소 연구원, 향토사학자, 스님, 종교연구가, 단군교 종단 종사자, 대종교 종단 종사자 등 다양했다. 필자가 연구논문을 일별하니, 연구가 깊이 들어간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전혀 손을 대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필자의 관심이 우리 ‘고대천문’3)에 있으므로 그 쪽의 연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고대 천문 연구자의 시각으로 「천부경?에 접근해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대천문을 모르고 우리의 고대사에 접근해 들어간다는 것은 마치 문자를 모르면서 문자를 연구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천부경」연구에, 반드시 고대천문을 알아야 한다는 이유는, 고대 천문을 모르면. 경문이 의도하고 있는 바를 제대로 짚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천부경」을 연구하여 이해하고, 「천부경」에 쓰인 문자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들을 찾아내는 일은 「천부경」에 먼저 눈을 뜬 연구자들이 목숨을 걸고 해야 할 일이다. 이들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그가 본만큼 깨달은 「천부경」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천부경」의 논리체계4)를 알지 못하고 「천부경」을 논한다는 것이 장님이 코끼리의 코를 만지고 나서 뱀처럼 생겼다고 하거나, 다리를 만지고 나서 기둥처럼 생겼다고 하는 경우와 별로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 「천부경」을 보면 반드시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 된다. 그러므로 광범위한 학문의 섭렵을 필요로 한다. 동양은 물론이고 서양의 학문도 좋다. 학문의 폭이 넓고 깊을수록 좋다.
우리가 서양의 사유체계5)에 맞추어 「천부경」을 이해하려 한다면 이해하는 일을 접어 두고 우선 우리의 사유체계가 무엇인가부터 공부해야 한다. 우리의 사유체계에서 나온 것이 「천부경」이므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천부경」을 기존의 논리체계를 가지고 이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양이나 중국의 이분법적 논리로 「천부경」을 이해하려다간 「천부경」에서 무엇인가를 얻는 것은 고사하고 「천부경」을 망치기 십상이다.
원칙을 정해놓고 이 원칙에 맞지 않으면 이단자로 몰아가는 것이 서양의 형식적 논리체계이다.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변동논리를 주장한 사람들이 변증법논리를 내놓았다. 그러므로 고정논리와 변동논리는 서로 대립하고 갈등한다. 「천부경」은 이러한 대립하고 갈등하는 논리체계에 맞지 않는다, 순환과 조화와 버릴 것이 없는 균형의 논리체계이기 때문에 대상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려 드는 서양의 논리체계에 맞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논리체계는 생명이라는 논리의 핵을 찾아내고, 논리와 논리가 살아 있는 유기체가 되어 스스로 생존하게 한다.
한 가지 이치를 깨달으면 모든 것이 연줄에 연 걸리듯 주렁주렁 매달려있음을 알게 된다. 한의학을 공부하면 동양철학의 논리를 깨달아 알게 되고, 음악의 논리를 깨달아 알게 되고, 춤의 논리와 그림의 논리를 깨달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논리체계를 공부한 바가 없어 스스로 공부하고 깨닫지 않으면 알 방도가 없다.
고조선 사람의 근원적 사유 (인류의 첫 문명인 東夷의 사유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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