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계속된다 : The World Goes On - 알마 인코그니타 (양장)

세계는 계속된다 : The World Goes On - 알마 인코그니타 (양장)

$22.00
Description
아포칼립스의 대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마침표 없는 또 다른 이야기
절망과 종말 속에서도 세계는 계속된다
종말을 향해 질주하는 난해하고 방대한 이야기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러닝타임 438분의 롱테이크 영화의 걸작 〈사탄탱고〉의 원작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현대의 헝가리인 아포칼립스의 대가”라는 수전 손택의 언급이 가장 명확한 평가일 것이다. 이름만큼이나 어려운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이만큼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말은 없다.
‘아포칼립스의 대가’라는 평가와는 대조적인 제목의 이 책 《세계는 계속된다》는 참으로 라슬로다운 작품이다. 그의 문장은 길고, 마침표 대신 쉼표로 연결되며, 마치 이상의 《날개》를 떠올리게 하는 서사와 기술로 복잡하면서도 모호한 의식 상태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세계는 종말로 향해 가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굴러가고 계속 이어진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파국을 막기 위해 헛되이 저항하지만, 그 결과는 하찮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에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 세계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할 일은 무엇인가? 라슬로의 긴 이야기는 이 질문에 대한 종말론적 문학 탐구다. 그 대답은 독자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작가는 여기, 모든 것에서, 모든 이들을 두고 떠난다는 마지막 작별 인사에서도 무한한 끈기와 영원을 언급하며 마지막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하다. “앞으로 올 일을 이미 들여다보았기에,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작가는 마치 선지자처럼 홀연히, 사뿐한 손짓을 던지고 사라진다.

“크러스너호르카이 라슬로는 거침없이 생성하는 생명력을 지녔으며 확고한 해결을 거부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잊을 수 없이 강렬하고, 유쾌하게 기묘하며, 거주하는 세계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커다란 이야기들을.” - 제이콥 실버만, 〈뉴욕타임스〉

종말론적 감각, 그러나 계속되는 세계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무한한 미궁

종말의 작가 라슬로는 일관되게 종말과 파괴, 끝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제목과 같은 단편 〈세계는 계속된다〉는 9ㆍ11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의 이미지를 빌려 이 세계에 닥친 종말과 파괴에 대한 이야기다. 〈보편적 테세우스〉는 어딘가에 감금된 채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강연을 다루는데, 그 강연장 너머의 세계에서는 이미 종말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암시한다. 〈구룡주 교차로〉는 항상 거대한 폭포를 직접 보러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남자가 술에 취한 채 상하이의 구룡주 교차로에서 헤매다가 호텔로 돌아와 TV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이런저런 말 사이로 폭포의 환청을 듣고 인생이란 죽음으로 완결된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례 여행을 다룬다. 〈숲의 내리막길〉에서는 한순간의 방심이 연속되어 반드시 실현되는 파국을 그리고, 〈은행가들〉은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을 다룬다. 〈축복 없는 장소를 걸으며〉는 신성한 가르침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세운 성전이 무너지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렇듯 라슬로의 작품 속에서 세계는 모두 재난, 전쟁, 죽음, 파국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지닌다.
이런 세계에서 인물들은 탈출하려다가 그 세계에 묶이고야 마는 무한의 뫼비우스 띠에 놓여 있다. 그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방향을 잃거나 한자리를 빙빙 돈다. 〈서 있는 헤맴〉은 지금 있는 자리를 떠나려 하지만 그 자리에 멈춰 선 채로 전 세계를 도는 인물에 대해 언급한다. 〈언젠가 381고속도로에서〉에서는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채석장을 떠나 숲속에 있는 오아시스 같은 궁전을 발견하지만 결국 떠나온 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소년을 그린다. 〈저 가가린〉은 처음으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최초의 인간인 가가린을 추적하면서, 지구를 떠나려 하지만 결국은 창 아래로 떨어지고 마는 사람의 이야기다. 〈한 방울의 물〉에서는 바라나시에서 탈출하려 하지만 계속 탈출의 순간만 반복한다.
종말과 끝이 다가오고 있는, 혹은 다가온 이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탈출은 번번이 실패한다.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가거나 그 자리에 멈춰 서는 것만이 인간의 숙명인 것 같다.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 없기에
세계는 끝나도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이야기

이 책에서 계속 반복되는 모티프 중 하나인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 유전의 세계관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전체를 관통한다. 〈속도에 관하여〉는 지구의 자전 속도를 넘어서려 할수록 인간은 결국 지구의 속도에 맞추고 만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세계를 넘어서 존재할 수 없고, 결국 자신 앞에 주어진 현실, 이 순간, 세부 분야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우리는 현실이라는 미궁에 갇힌 존재다. 한 방울의 물 같은 개인이 모여 삶과 죽음의 강물을 이루고 그것이 흘러가 폭포로 떨어지지만, 정작 그에 속한 개인은 강물도, 폭포도 볼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다.
〈모두 다 해서 100명의 사람〉에서는 오래전 성인의 말씀도 100명의 입을 거치면 원래의 아우라를 잃고 말듯, 역사는 재해석과 재구성의 역사임을 보여준다. 인간이 전체를 볼 수 있는 순간은 죽음뿐이다. 그러나 라슬로는 인간은 이런 예측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이해하고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려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종말론적인 비관적 시선에 숭고한 역설이 깃든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인간의 한계를 통찰하면서도 그를 넘어서려 헛된 노력을 그치지 않는 문학에 대한 경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세계는 끝나도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난해할 수밖에 없다. “긴 문장이 내게는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몇 페이지에 걸쳐 펼쳐지는 한 문장을 쓸 때 커다란 자유를 느낀다”라는 라슬로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인칭이 분리되지 않고, 관점이 명확하지 않은 문체는 그렇기에 자연스럽다. 작품의 인물들이 미궁을 헤매듯, 문장도 출구 없이 질주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마침표로 끝난다. 이야기는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저자

크러스너호르커이라슬로

1954년헝가리줄러에서태어났다.1976년부터1983년까지부다페스트대학에서문학을공부했고,1987년독일에유학했다.이후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그리스,중국,몽골,일본(교토),미국(뉴욕)등세계여러나라에체류하며작품활동에매진해왔다.

헝가리현대문학의거장으로불리며고골,멜빌과자주비견되곤한다.수전손택은그를“현존하는묵시록문학의최고거장”으로일컫기도했다.크러스너호르커이는자신의작품세계를관통하는종말론적성향에대해“아마도나는지옥에서아름다움을추구하는독자들을위한작가인것같다”라고밝힌바있다.영화감독벨라타르등예술가와의협업을통해자신만의독특한세계관을확장하고있다.매년유력한노벨문학상후보로거론되는작가다.

주요작품으로는『사탄탱고』(1985),『저항의멜랑콜리TheMelancholyofResistance』(1989),『전쟁과전쟁WarandWar』(1999),『저아래서왕모SeioboThereBelow』(2008),『마지막늑대TheLastWolf』(2009),『세상은계속된다TheWorldGoesOn』(2013)등이있다.

그의소설은여러언어로번역되었으며다양한국내및국제문학상을수상했다.헝가리의TiborDery문학상(1992),독일의SWR-Bestenliste문학상(1993),대문호산도르마라이의이름을따제정한헝가리의SandorMarai문학상(1998),헝가리최고권위문학상인Kossuth문학상(2004),스위스의Spycher문학상(2010),독일의Bru?ckeBerlin문학상(2010)등을받았고,2015년에는맨부커인터내셔널상ManBookerInternationalPrize을수상했다.2018년《세상은계속된다TheWorldGoesOn》로맨부커상인터내셔널부문최종후보에또한번이름을올렸다.

*국내에알려진이름은‘라슬로크라스나호르카이’였으나국립국어원외래어표기법규정과헝가리어의성-이름순표기방식에따라‘크러스너호르커이라슬로’로표기했다.

목차

1부말하다
서있는헤맴
속도에관하여
잊고싶다
얼마나아름다운지
아무리늦어도,토리노에서는
세계는계속된다
보편적테세우스
모두다해서100명의사람
헤라클레이토스의길위가아니라

2부이야기하다
구룡주교차로
언젠가381고속도로에서
죄르지페허의헨리크몰나르
은행가들
한방울의물
숲의내리막길
청구서
저가가린
장애물이론
축복없는장소를걸으며
이스탄불의백조

3부작별을고하다
나는여기에서아무것도필요로하지않습니다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종말론적감각,그러나계속되는세계
뫼비우스의띠와같은무한한미궁

종말의작가라슬로는일관되게종말과파괴,끝에대해이야기한다.책의제목과같은단편〈세계는계속된다〉는9?11테러로무너진쌍둥이빌딩의이미지를빌려이세계에닥친종말과파괴에대한이야기다.〈보편적테세우스〉는어딘가에감금된채로자신의이야기를풀어내는강연을다루는데,그강연장너머의세계에서는이미종말에가까운상황이벌어지고있다고암시한다.〈구룡주교차로〉는항상거대한폭포를직접보러가고싶다고생각하면서도한번도가보지못한남자가술에취한채상하이의구룡주교차로에서헤매다가호텔로돌아와TV에서끝없이쏟아지는이런저런말사이로폭포의환청을듣고인생이란죽음으로완결된다는깨달음을얻는순례여행을다룬다.〈숲의내리막길〉에서는한순간의방심이연속되어반드시실현되는파국을그리고,〈은행가들〉은체르노빌원자력발전소사건이일어난장소로향하는사람들을다룬다.〈축복없는장소를걸으며〉는신성한가르침을잃어버린인간들이세운성전이무너지는장면을묘사한다.이렇듯라슬로의작품속에서세계는모두재난,전쟁,죽음,파국으로향할수밖에없는필연성을지닌다.
이런세계에서인물들은탈출하려다가그세계에묶이고야마는무한의뫼비우스띠에놓여있다.그의소설에서인물들은방향을잃거나한자리를빙빙돈다.〈서있는헤맴〉은지금있는자리를떠나려하지만그자리에멈춰선채로전세계를도는인물에대해언급한다.〈언젠가381고속도로에서〉에서는고된노동을해야하는채석장을떠나숲속에있는오아시스같은궁전을발견하지만결국떠나온자리로돌아오고야마는소년을그린다.〈저가가린〉은처음으로우주비행에성공한최초의인간인가가린을추적하면서,지구를떠나려하지만결국은창아래로떨어지고마는사람의이야기다.〈한방울의물〉에서는바라나시에서탈출하려하지만계속탈출의순간만반복한다.
종말과끝이다가오고있는,혹은다가온이세계에서우리는모두탈출을꿈꾼다.그러나탈출은번번이실패한다.다시있던자리로돌아가거나그자리에멈춰서는것만이인간의숙명인것같다.

똑같은강물에두번발담글수없기에
세계는끝나도앞으로나아가는인간의이야기

이책에서계속반복되는모티프중하나인헤라클레이토스의만물유전의세계관은개인의삶뿐아니라전체를관통한다.〈속도에관하여〉는지구의자전속도를넘어서려할수록인간은결국지구의속도에맞추고만다고설명한다.인간은세계를넘어서존재할수없고,결국자신앞에주어진현실,이순간,세부분야만을인식할수있을뿐이다.즉,우리는현실이라는미궁에갇힌존재다.한방울의물같은개인이모여삶과죽음의강물을이루고그것이흘러가폭포로떨어지지만,정작그에속한개인은강물도,폭포도볼수없고예측할수없다.
〈모두다해서100명의사람〉에서는오래전성인의말씀도100명의입을거치면원래의아우라를잃고말듯,역사는재해석과재구성의역사임을보여준다.인간이전체를볼수있는순간은죽음뿐이다.그러나라슬로는인간은이런예측불가능성에도불구하고전체를이해하고사회와역사를바라보려끊임없이노력하는존재라고말한다.그렇기에종말론적인비관적시선에숭고한역설이깃든다.그렇기에이소설은인간의한계를통찰하면서도그를넘어서려헛된노력을그치지않는문학에대한경의이기도하다.
그렇기에세계는끝나도앞으로나아가는인간에대한이야기는난해할수밖에없다.“긴문장이내게는더드라마틱하게느껴진다.몇페이지에걸쳐펼쳐지는한문장을쓸때커다란자유를느낀다”라는라슬로의말에공감하게된다.인칭이분리되지않고,관점이명확하지않은문체는그렇기에자연스럽다.작품의인물들이미궁을헤매듯,문장도출구없이질주하다가마지막에이르러서야마침표로끝난다.이야기는끝나도,끝나지않는다.

추천사

“이야기창작의거장”클레어코다헤이즐턴,-〈가디언〉

“스물한가지독특한이야기의보물창고,끊임없이흥미를자아낸다.”-BBC

책속에서

아니,역사는끝나지않았고,그무엇도끝나지않았다.우리는더이상무엇이끝나버렸는지를생각하면서스스로속일수는없게되었다.그저어떻게든유지해나가면서계속할뿐이다.무언가는계속되고,무언가는살아남는다.우리는여전히예술작품을생산하지만,이젠그방법에대해서는이야기하지도않고,희망을주는작품이라고할수도없다.지금까지는‘인간의조건’의본질을뜻했던것들을모두전제로삼아아무영문도모르는채로엄격한훈육에성실하게복종했지만,사실상낙담의구렁텅이에서침몰하며,다시한번인간존재의상상가능한전체성이라는흙탕물속으로가라앉는다.우리는이제우리의심판이최후의심판이거나여기가막다른길이라고선언함으로써,거친젊은이들같은실수도저지르지않는다.이젠그무엇도합리적이지않으므로,우리의예술작품이서사나시간을포함한다고주장할수도없고,다른사람들이무언가합리적이되는길을찾아낼수있을거라고주장할수도없다.우리는우리의환멸을무시해봤자쓸모없다는것이증명되었다고선언하고,좀더고상한목표를향해,더높은힘을향해나아가지만,우리의시도는수치스럽게도계속실패하고만다.헛되이우리는자연에대해이야기하지만,자연은이를원치않는다.신성에대해이야기해도소용없고,신도이를원치않는다.어쨌든아무리원한다해도,우리는우리자신외에는아무것도이야기하지못한다.오직역사에대해서만,인간조건에대해서만,본질상오로지기분좋게자극하는적절한불변의특성에대해서만이야기할능력이있기때문이다.그게아니라면,‘다른면으로는신성했을’관점으로보았을때우리의본질은실제로는영원히,그무엇이되었든전혀중요하지않을지도모른다.
_30~31쪽

이제우리는항구를표시한부표들사이로미끄러져들어오며어쨌든눈먼채로항해한다,등대지기들이잠이들어우리의조종을안내할수가없기에,그리하여우리는이더위대한전체가법의더고귀한의미를반영하는지에대한질문을즉각삼켜버리는흙탕물속에닻을내린다.그리고여기서우리는아무것도모르는채로기다린다,수천가지방향에서동료인간들이우리에게로천천히다가오는동안우리는그저지켜보기만한다.아무런메시지도보내지않고,그저지켜만보며공감으로가득한침묵을유지한다.우리는우리안에있는이런공감이그자체로적절하다고,그리고또다가오는이들에게도적절할것이라고믿는다.오늘은그렇지않다고해도,내일은그러할것이다……아니면10년후에라도……30년후에라도.

아무리늦어도,토리노에서는.
_40~41쪽

바로그때갑작스레끔찍한공포가서서히내게로기어들기시작하니,어디서왔는지는알수없지만그것이점점커져간다는것만은느낄수있었고,잠시동안이런공포는그정체를드러내지않고그저존재하면서커져가기만했으며,나는완전히무력하게그저앉아서내안에서커져가는공포만을바라보며기다렸으니,아마도잠시후에는이공포의본질을이해할수도있겠지,그러나그런일은일어나지않았으니,전혀일어나지않았으니,이런공포는계속커져가기만하면서도그속내에대해서는아무것도드러내지않았고,드러내기를거부했고,그리하여당연하게도나는다음에무엇을해야할지그로인해초조해지는데,내가자기속내를감춘이런공포를안고영원히여기계속앉아있을수있을지,그런데도나는감각을잃은채로창가옆에그저앉아있기만했는데,바깥에서는이쌍둥이빌딩이무너지고,무너지고,또무너지는데도,그때갑작스럽게내귀는삐걱대는소음을인식하는데,저멀리에서둔중한사슬이철컥거리듯이,또,내귀는약간득득긁는소리도인식하는데,단단히묶어놓은밧줄이서서히풀려나가듯이,내가들을수있는것이라고는이삐걱대는소리와이무섭게긁어대는소리뿐,다시한번나는내낡은언어를,그리고내가굴러떨어진완전한침묵을떠올리고,거기앉아서바깥을응시할뿐,완전한어둠이방안을채울때,오직한가지만이완전히확실해졌으니,그것이풀려나버렸다는것,그것이가까이다가오고있다는것,그것이벌써여기에있다는것.
_48~49쪽

그때여자가다시일어나더니세번째로창구로다가갔습니다.“또방해해서죄송한데요…….”여자는불안하게말을시작했습니다.“다썼는데……다만……뭔가덧붙이고싶어서요.이렇게쓰면괜찮을지…….”여자는창구구멍으로전보용지를건넸습니다.“한단어만더붙이고싶어서……하지만알수가없어서……다새로써야할까요?”(중략)
직원은두팔을무력하게펼치며공모하는동지의눈빛으로줄에선다음사람,젊은군인을한번보더니얼굴을찡그리고“뭘도와드릴까요?”라고말하고전보를받아그위로몸을숙였습니다.“말씀을하세요,무슨단어인지.제가써넣어드릴테니까요.이거,끝내버리죠.”
여자는들릴락말락한목소리로대답했습니다.
“여기,‘쓸모없는’이라는말을덧붙이고싶어요.”(중략)
“이런미치광이들은참을수가없어요.이런사람들은진절머리가난다니까요.한명만더만나면……그냥이것좀보세요!”여자는젊은군인을향하며역겹다는듯손바닥으로전보를내려쳤다.“이걸로대체뭘하란말이에요?”
“뭐죠?뭐가잘못됐습니까?”청년이물었다.
분개한손짓으로직원은전보를그에게내밀며주먹을쥐어구겨버렸다.
“수취인이없잖아요.”
_119~121쪽

그100명후에는또다른이를언급해도실제로는그사람에게절대로가닿을수없다는사실조차깨닫는사람마저도나타나지않게되어,오로지이제는말만이남게되니,또한번의2,500년동안인간의말은,이전에도그러했듯아무짝에도쓸모없게될것,사람들이과거부터지금까지무엇에의해매개되지않고신성하게지켜진수조,수억의사실속에새겨진것을해독해낼수없기때문만이아니라,이말들이우리를이끌어야하는곳에서벗어나다른곳으로돌아가게할뿐아니라,우리가이제는바로원래의말로돌아갈길도없다는상실로슬퍼해도그를위로하기에적합한말이아니었고앞으로도못할것이기때문에,그리고우리에게이런경고도주지못하기에,우리는무언가말해지기라도한다면그말에아주조심스럽게귀를기울여야한다는것,그말은한번,오직딱한번만말해질테니까.
_147쪽

그저그는이런행복을감추지못하고그저환히발산하며보안검색대를통과하고,환히웃는얼굴로비행기에탑승하며,눈동자를빛내며좌석에앉아안전벨트를맸다,꿈꾸어왔던선물을마침내받은아이처럼,그는실로행복했기때문이었다,다만그에대해말할수없을뿐이었다,그가상하이에서깨달은건말로할수없는것이기때문이었다,실로,비행기창문너머로눈이멀정도로찬란한푸른하늘을바라보며심오한침묵을지키는것말고는달리할일이없었다,어느폭포였는지는이제는더는중요하지않았다,그폭포중하나를보게될까하는것도더는중요하지않았다,모두마찬가지였기때문이었다,그소리를들은것만으로충분했다,그는구름높이,대략1만미터고도에서시속900킬로미터의속도로북북서방향으로빠르게날아갔다,눈이멀것같이푸른하늘,언젠가는죽으리라는희망을향해서.
_196~197쪽

그는생각했다,도망가?바라나시에서도망가?!하지만망할,젠장!바라나시가세계였다.최대로신중하게,먼저그는주위를살핀후문으로쓱빠져나와발꿈치를들고계단을내려와서텅빈호텔의접수대를몰래지나서,거리에발을내디딘후맨처음보이는모퉁이를돌았다,그런후에는바로다음에나오는모퉁이를또돌았다,네번돌지않도록주의하고,늘왼쪽이나오른쪽으로돌지않도록했다,이것이,이생각이그의머릿속에경보등처럼울려퍼졌다,네번은안돼,같은방향은안돼,그랬다가는탈출구는없어,떠났던자리로돌아올거야.
_334쪽

나는지구를떠난다는건“내가평소앉는창문”에서는되지않는다는사실은이미안다,즉내가창문을열고바깥으로발을내디뎌내몸을밀어떨어뜨리면그걸로끝,나는위로올라간다,이렇게는되지않는다는것이다,그래서대신에나는모든것을끝낸후에(그리고내공책을이스트반간호사에게줄것이다),여기6층의창문을열것이다,나는창틀에서서내몸을밀어낼것이다,무엇이든위로올라가지못하는건확실히아래로내려가기때문에.그때가왔기때문에.6층에서낙원으로.
_418쪽

나는여기모든것에서부터떠납니다:골짜기,언덕,길,그리고정원의어치새들,나는여기술통과사제,하늘과땅,봄과가을을두고떠납니다,나는여기출구경로,부엌의저녁,마지막연인의눈길,부르르몸이떨리던모든도시행을두고떠납니다,나는여기땅위에떨어지는짙은황혼,중력,희망,매혹,평온을두고떠납니다,나는여기사랑하는이들과내게가까웠던이들을,나를감동시켰던모든것,내게충격을주었던모든것,나를매혹시키고고양시켰던모든것을두고떠납니다,나는여기에고귀한이들,자애로운이들,유쾌한이들,악마적으로아름다운이들을두고떠납니다,나는여기에새로돋는새순,모든탄생과존재를두고떠납니다,나는여기에주문,불가사의,거리로인한도취,무한한끈기,영원을두고떠납니다:여기에나는이땅과이별을두고갑니다,나는여기서아무것도가지고갈수없기때문입니다,나는앞으로올일을이미들여다보았기에,여기에서는아무것도필요로하지않습니다.
_467~4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