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괴물이살았다.허무맹랑한이야기가아니다.《조선왕조실록》을보면삼천리강산을누빈괴물들의이야기가계속해서등장한다.그기록이매우구체적이어서눈길이간다.어떤괴물은백성의마음을흔들었고,어떤괴물은궁궐을뒤집어놓았으며,어떤괴물은이역만리에서흘러와백두대간의산중왕으로군림했다.왕과신하,백성은누가어떤상황에서괴물을만났는지,그괴물은왜나타났고어떻게다루어야하는지등을놓고고민했다.그래서조선의괴물기록을보면당시사람들의생활상과사회상,세상을이해하는관념과문제의식등이자연스럽게드러난다.
이책은《조선왕조실록》부터《열하일기》까지각종사료에서발굴한스무괴물을중심으로조선을이야기한다.2007년부터한국괴물들을채집,소개해오고있는작가곽재식이기존의백과사전식서술에서벗어나,조선을만나는새로운소재로서괴물이야기를풀어간다.‘도깨비’,‘흰여우’등친숙한괴물들뿐아니라‘삼구일두귀(三口一頭鬼)’,‘녹족부인(鹿足婦人)’등낯선괴물들의이야기를통해그속에담긴조선의다양한풍경을그린다.
여기에조선팔도어디에괴물이살았는지한눈에보여주는〈조선괴물지도〉와각국의신화를한국풍으로재해석해표현하는삽화가곰곰e(김진영)의그림이더해져보는맛을더한다.
“삶의현장에서만나다”
백성을웃고울린괴물들
이책은총3장으로구성되는데,각각의주제는‘백성과괴물들’,‘왕과괴물들’,‘외국에서온괴물들’이다.수많은백성이조선각지에서괴물을만났다.이때의만남은단순한목격이나조우가아니었다.백성은세상을이해하고예측하기위해괴물의존재를믿었고,그믿음이강할수록괴물은백성의삶에큰영향을미쳤다.
이러한상호작용은먹고사는일을놓고가장활발히벌어졌다.농업이나어업과관련된괴물이야기가많이전해지는이유다.하늘에서내려와밥을많이얻어먹은대가로일기를예보해준삼구일두귀,가뭄과홍수를불러와재앙으로받아들여진‘강철(?鐵)’,바다를붉게물들여물고기를죽이는‘천구성(天狗星)’,양질의기름을짜낼수있어좋은돈벌이수단이된‘인어(人魚)’등이대표적이다.
흥미로운점은괴물들의이야기가매우입체적이라는것이다.먹고사는일에더해삶의현장에서겪고느낀것들이괴물이야기에녹아있다.예를들어강철이야기는임진왜란으로형성된피폐한정서가깔려있다.“강철이지나간곳은가을도봄과같다”라는속담은아무리공들인일이라도큰재앙이닥치면별수없다는뜻으로,전쟁이라는파괴적상황에부닥친백성의허무함이느껴진다.
이처럼괴물이야기는백성의처지에서조선을바라보게한다.옛사람들은자신의세상을어떻게이해했는지,그실마리를사람아닌존재,즉괴물이품고있는것이다.
“궁궐의담을넘다”
임금의마음을어지럽힌괴물들
임금이라고괴물에게서자유로운것은아니었다.예를들어성종은영의정정창손과호조좌랑이두의집에나타난귀신‘지하지인(地下之人)’의처리를놓고신하들과열띤토론을벌였다.이외에도《조선왕조실록》에는인종이눈을감은날검은기운인‘물괴야행(物怪夜行)’이서울을휘감아백성이두려움에떤이야기,일군의인물이도깨비를동원해사도세자를암살하려다가적발되어영조의분노를산이야기등이실려있다.
그중가장눈에띄는것은아무래도중종을시름에잠기게한‘수괴(獸怪)’다.영화〈물괴〉의소재로도유명한수괴는1511년과1527년궁궐한복판에갑자기나타나조정을발칵뒤집었다.기록을보면개처럼생겼고말처럼컸다고하는데,정현왕후가무서워해거처를옮기면서소문이널리퍼졌다고한다.
이책의저자는수괴의등장을연산군과연관짓는다.정현왕후는연산군을친자식처럼키웠지만,결정적인순간그를몰아내는데가담했다.삐뚤어진연산군에대한죄책감과절대권력자라도하루아침에쫓겨날수있다는두려움이뒤섞여복잡한감정을품었을법하다.수괴의등장은이러한감정이폭발하는데방아쇠처럼작용,정현왕후를공포에떨게한것아닐까.저자는‘개처럼생겼다’는기록에도주목한다.연산군은궁궐에서수많은동물과사냥개를키웠는데,그중몇마리가주인을잃으며근처산이나숲으로달아났다가돌아온것아니겠냐는것이다.
저자는마지막으로한가지더그럴듯한추측을한다.1511년수괴가처음등장하기며칠전기록을보면궁궐근처민가들에서큰불이났다고쓰여있다.이때백성의절망은뒷전이고권력을둘러싼아귀다툼을벌이느라정신없던높으신분들의눈에불을피해궁궐로들어온떠돌이개가괴물처럼보인것이라면어떨까.
이처럼괴물이야기는권력자들의생각과감정을드러내는동시에,권력은누구를위해어떻게쓰여야하는지에대한백성의바람을담고있다.
“괴물에게국경은없다”
바다건너,사막건너조선에온괴물들
아무리폐쇄적인국가여도문화의흐름은막을수없다.괴물이야기도마찬가지다.외국괴물이야기가한국에전해지며어떻게변형되었고무엇이유행했는지밝힐수있다면,당시한국인의성향과문화를이해하는데큰도움이될것이다.
그렇다면조선에는어떤외국괴물들이들어왔을까.가장먼저‘금두꺼비’를꼽을수있다.부의상징으로너무나익숙해대개우리토종괴물로생각하지만,금두꺼비는고대중국의‘항아(嫦娥)’설화가원조다.‘산예(?猊,사자)’도마찬가지다.북청사자놀음같은전통사자춤속사자의모습은인도의불교문헌에영향받은것이다.
자연스러운문화교류라기보다는국가정책의결과로조선에소개된괴물도있다.바로사람1만명을잡아먹었다는‘만인사(萬人蛇)’다.이괴물은원래여진족계통의북방이민족사이에서유명했다.그런데세종의북방개척으로조선에그이야기가흘러들어온것이다.만인사는사람1만명의피가뭉친‘만인혈석(萬人血石)’을품었다는데,다양한세력이끊임없이충돌한북방의처절한역사가녹아있는듯하다.
이처럼괴물이야기는당시국가간문화교류의흔적과그역사적맥락을품고있다.이는주변과상호작용하는,흔히생각하지못한조선의색다른모습을잘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