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기독교 신앙은 아브라함의 언약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통하여 인류구원의 역사를 계획하시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운영 계획, 즉 하나님의 경륜이다.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이해할 때, 이 아브라함의 언약의 틀 안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여호와와 아브라함 상호간의 언약이다. 여호와 켠에서의 언약조항은 “내가 너를 축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창 12:2a)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에 주어진 언약조항은 “너는 복이 되라”(창 12:2b)였다. 이렇게 양자의 언약실행을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열방이 복을 받게 하신다. 이때, 우리는 여호와 켠에서의 언약조항보다 아브라함 켠에서의 언약조항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아브라함에게 부여된 언약조항은 계속해서 발전을 하는데, 창세기 12장 2절b에서의 “너는 복이 되라”의 그 ‘복’은 ‘베라카(hk;r;B, 축복함)’로서 ‘축복하다’의 능동형 동사에 명사형 어미가 붙어서 형성된 단어이다. 그래서 그 ‘복’은 “축복함, 혹은 축복하는 자”를 의미한다. 수동형 동사의 명사화라면, “축복 받는 자”라고 해야 하지만, 여기에서의 ‘복’은 “축복함, 혹은 축복하는 자”를 의미한다. 이 ‘복’이 창세기 15장에 이르러서는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매”(창 15:6)로 표현되어 ‘믿음’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이때의 믿음은 ‘완전한 위탁’을 의미하였는데, 그것은 엘리에셀을 포기하는 ‘완전한 자기부인’을 내포한 개념이었다. 더 나아가 창세기 17장에 이 ‘믿음’은 자손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는 ‘할례’의 믿음으로 발전한다. 이때도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포기하여야 한다. 심지어 창세기 22장에서 이 ‘믿음’은 ‘이삭 번제’의 믿음으로까지 발전한다. 심지어는 독자까지도 포기하는 믿음이었다. 결국 아브라함의 “복, 축복함, 축복하는 자”는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치는 “순교적 믿음”을 의미하였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결국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번제로 발전하였는데, 이때 이삭의 모든 후손이 이삭 안에서 번제의 제물로 바쳐졌다. 이 이삭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모형이 되었다. 상당히 세월이 흘러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출애굽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출애굽기 19장 4-6절에 이르러서 시내산 언약이 여호와와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사이에 체결이 되는데, 이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제 그의 후손들과 승계하여 맺는 언약이다. 먼저, 여호와의 언약조항은 이제 성취된 언약조항으로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고 하였는데, 이제 이것이 성취되어서 ‘큰 민족’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언약조항은 이제 출애굽기 19장 4절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너희를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다”로 대체된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이라는 언약조항을 이루신 것이다. 이제 아브라함 켠의 언약조항은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향하여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출애굽기 19장 5절의 ‘십계명’이었다. 즉, 아브라함의 ‘축복함’ ‘믿음’의 언약조항이 이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십계명’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이스라엘의 5대 제사로 발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이 ‘할례’와 ‘이삭번제’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렇게 여호와와 아브라함 후손간의 언약이 실행될 때, 열방이 복을 받는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 19장 6절의 “열방을 위한 제사장 나라”의 개념인 것이다. 그리고 이 제사장나라가 되기 위해서 출애굽기 25장에서 40장에 이르기까지 여호와께서 거하신 ‘성막’이 지어지고, 이곳에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강림하신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언약의 승계와 갱신으로서의 시내산언약이다. 신명기는 모압언약이라고 한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성전이 이스라엘 진중에 건립됨을 통해서 실현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심각한 패역이 또 다시 드러났으며, 이에 대하여 모세는 모압에서 다시금 이 시내산 언약을 보완하는 계약을 맺게 되었는데, 이것은 바로 ‘마음의 할례’에 관한 것이었다. 먼저, 모세는 신명기 5장 22절에서 33절에서 십계명을 받는 시내산에서의 40일의 금식기간에 여호와께로부터 들은 말씀을 전하지 못한 것(혹은 가르치라고 위임을 받은 것)이 있다는 것을 밝힌다. 이 말씀을 이제 40년 후에 비로소 말하게 되는 셈이 된다. 첫 번째 ‘쉐마, 이스라엘’은 첫 번째 40일 금식 기간 중의 내용으로 보여지는데, 그것은 “여호와를 마음으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십계명을 실행하는 방법론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첫 번째 ‘쉐마,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깊이 하여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십계명 실행의 방법론으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두 번째 ‘쉐마,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사건과 관련하여서 두 번째 40일 금식의 주요이슈였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이 목이 곧은 백성이다”는 것이었으며,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세는 그의 세 번째 설교를 통해서, 이 ‘마음의 할례’의 언약 성취의 시기를 예언한다. 그러면서 그 ‘마음의 할례’는 모세 뒤에 오는 ‘그 선지자’가 행할 할례였다. 어떻게 보면, 이미 신명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어서 ‘마음의 할례’를 베풂을 통하여 이러한 아브라함 언약, 시내산 언약이 성취될 것을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 언약에서 이삭번제 언약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그와 하나가 되어 십자가 번제의 제사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바쳐진다. 우리가 이 십자가 번제단에 참여할 때, 마음의 할례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이삭번제에 참여하는 것이다. 내가 실제로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아브라함 언약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부여된 언약조항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십자가 혹은 기독교 신앙을 이렇게 이해했으면 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아침마다 십자가 번제단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우리의 생명, 소유, 소득, 사업장, 인생, 재산을 바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여기에 기반하여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신앙지식을 접목시킬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이해할 때, 아브라함의 언약을 기반으로 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자기부인의 믿음”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건립하였으면 한다. 이렇게 하여 진정한 기독교의 모습을 회복하는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되었으면 한다.
모세오경의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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