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풍해장국 (오성일 시집)

미풍해장국 (오성일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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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안간힘 쓰는 풍경으로 향하는 시인의 방향 감각,
밤에 쓴 말들을 나르는 미풍의 언어 속으로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겠습니다 고요히 나에게만 묻겠습니다
하늘의 별빛에도 마음 흔들릴 수 있으니 우러르지 않겠습니다”

솔 시선 33번째 시집으로 오성일 시인의 『미풍해장국』이 출간되었다. 『미풍해장국』은 오성일 시인의 네 번째 시집으로, 우리가 삶에서 눈여겨보지 않는 사람과 풍경들을 오래 바라본 시인이,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되살려낸 시의 장소를 담고 있다.
시인은 자신이 걷는 세계의 자장을 민감하게 감지하는데, 해설을 쓴 박남희 문학평론가는, 오성일 시인이“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타인에게 활짝 열어 보이는” “산책자의 언어적 보폭”을 가졌으며, 대상에 다가가는 “염려하는 마음”을 시인의 특징적인 면모로 꼽고 있다. 산책자의 언어는, 은근하고 고요한 ‘미풍’처럼 온다. 가볍고 부드러운 시인의 마음은 바람이 닿듯이 우리 옆에 머물고 스며드는데, 시인은 기척도 없이 옆에 와 가느다란 숨에 실린 이들의 말을 살피고 되읊는다.
시인은, “매달리지도 않고 그냥 숨죽이듯 전화를” 끊는 보험판매원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숨을 죽이고」) “지방 공장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긴장된 얼굴로 가만히 펼쳐보는” “커다란 검은 눈의 네팔 청년”을,(「연착륙을 빌다」) “현수막을 걸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친 … 혜희의 아버지 길용 씨”를,(「길용 씨」) 밤늦게 퇴근하는 “주방보조의 젖어 있는 어깨”를(「주방보조급구」) 한참 바라본다. 그 모습은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오래된 천사의 모습을 닮은 듯도 하다.
오성일 시인은, 어느 도시에서 “거리를 돌며 가등마다 불을 켜는” “늙은 점등원”처럼 우리 마음을 밝히는데,(「정경」) 그 불빛은 시적 대상들뿐 아니라, 시인 자신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세상을 염려하면서, 동시에 “고개를 숙이고”(「밤에 쓴 말」) 자꾸 부끄러워한다. 염려하는 시인의 산책길 양쪽에는 타자를 향한 ‘염려’와 자신을 향한 ‘부끄러움’의 빛이 시인을 비추고 있다.
저자

오성일

1967년경기도안성에서태어나연세대학교를졸업했다.2011년『문학의봄』으로등단했다.〈작은詩앗채송화〉동인이다.시집으로『외로워서미안하다』,『문득,아픈고요』,『사이와간격』이있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밤에쓴말|미풍해장국|주방보조급구|아무개의빙부상|산촌|화장|뒤편|전봉덕할머니의인터뷰|봄밤|산역山驛|시인학교|그래도|소만|연착륙을빌다|죽값|잊혀진계절

제2부
염소아빠|정경|곰소|마지기|여름밤|아픈별|춘분|이별|항구,리스본|힘껏|화상|아무르|꿈|숨을죽이고|늙은닭|미역국

제3부
섭섭한저녁|예스터데이|겨울저녁의노래|덕담|장항선1|감꽃목걸이|촛불|산복도로|창호지에쓴가을동화|맞는말|재환이형|아뿔싸|초록선풍기|늙은군인의노래|지우개|아들걱정

제4부
집으로|티타임|비오는새벽|금산사에서|소설小雪|장항선3|무량사뒤꼍|열번에한번쯤|말도안되는이야기|나무야|열살에스더와눈먼엄마이야기|길용씨|비온아침|소한|당신도그러하신지|우화憂話

해설박남희_두개의거울속을걷는열린산책자의시학

출판사 서평

밤에쓴말들이만드는자리

오성일시인이세상에건네는목소리는,언어로대상을전유하는시의세계에서드물게조용하고담담하다.시인은말이전에먼저침묵으로지켜보고기다리며,버려지고갇힌것들,혼자앓는것들쪽으로걸어간다.시의언어가도착하기전에먼저그“안간힘같은풍경들”을살피고염려하는것이다.
거리를걷다시인이향하는곳은문닫힌한낮의단골식당“미풍해장국”이다.그는밝은한낮의거리에서그늘에잠긴식당을들여다본다.가라앉아있는그어둠에서시인은“비린내”를맡고,“악다구니”를듣는다.방향을잃은듯떠있는식당안기물들의막막한표정을두고시인은돌아설수가없다.며칠째닫혀있는‘미풍해장국’에대한섭섭함과걱정,막막함앞에서시인은“하루이틀더기다려보자고생각”한다.기다리자고마음먹은그는이렇게말한다.

그나저나이제초여름인데벌써공기가후줄근합니다/미풍이좀불었으면좋겠습니다/콜센터아가씨들에게도해장국집착한부부에게도/그리고,나에게도바람이좀…….(「미풍해장국」중에서)

식당안그늘에근심하던시인은,“미풍이좀불었으면좋겠습니다”,“나에게도바람이좀…….”하며그특유의심상함과가벼움으로,닫힌‘미풍해장국’과예상치못은방식으로만난다.시인이기다리는바람의방향은,갇혀있는‘미풍해장국’의시간,방향을잃은단골,‘그리고,나’모두를향해있기때문이다.그기다리는마음에는열린방향으로의개시가담겨있다.하지만시인은어떤기대를내비치기보다는,응시하고기다린다.이때의기다림은‘미풍해장국’가게가열리기를수동적으로기다리는상태가아니라,닫힌가게와거리를매개하는열린공간이된다.그러다문득어떤전환을맞기도하는데,그것은“바람이방향을바꾸어부는”그런순간으로온다.(「당신도그러하신지」)오성일시인이만드는시의자리는이토록자연스럽고우연적이며조용하지만,무언가가달라진그런자리인것이다.
시인은물난리가난남쪽마을뉴스를보다가할머니인터뷰를듣는다.“하도비오는소리가짜락짜락나.그래서인자요리와서문을열어보니께넘실넘실혀그냥.죽겄어깐딱하면…….”할머니말을가만듣다가시인은이렇게말한다.

세상은아직황톳빛난리가그치지않았는데,나는참철이없게도
남도여자의육자배기대목이나얻어들은듯짜락짜락빗소리가하도넘실넘실가슴문턱을넘쳐들어와깐딱하면이쁜시한줄을토할뻔했다(「전봉덕할머니의인터뷰」부분)

시인은하마터면철없이시를써“깐딱하면”일낼뻔했다고말한다.시인에게는시한줄보다전봉덕할머니의말이먼저다.그리고할머니의말의자리에온‘깐딱하면죽겄어’하는물난리가,애초에시인이쓰려고했던시의자리에서생겨나는것이다.

세상어디에제몸하나숨기지못한이름들을호명하며

시인은거리를걷다과속방지턱앞에선할머니의리어카를본다.그곳에는할머니의리어카를밀어주는공사장신호수가있고,길건너에서할머니와리어커와신호수를건너다보는환자복입은노인이있다.(「힘껏」)시인은,할머니몸의몇배나커다란리어카를중심으로거리전체를조망하는데,그조망의꼭지점에는“세상어디에제몸하나숨기지못한이름들”이있다.
한번은시인이계약이끝난직원에게밥을사주며위로를건네고돌아섰는데,시인은“무슨만고의교훈이라고세상의진리라고”건넨자신의“부드러운목소리”가어쩐지씁쓸하다.(「덕담」)시인은자신의부드러움과조용하게건네는말들에마음이편치않다.그는“마음의강바닥에구르는돌들,물결에몸닳아둥글어지지않겠노라고부딪쳐날을”(「겨울저녁의노래」)세우며,부끄러움을감추고있기때문이다.
그부끄러움은“어느날밤하루쯤은안들어갈까,생각도했던집으로나는얼굴반쪽을가린채”들어가게하는마음이다.“세상어디에제몸하나숨기지못해떠돌다간이름들”앞에서살아있는시인은저도모르게고개를숙인다.시인은감기한번에도“간봄에잘못한짓들을생각”(「이별」)하고,“어쩐지누구에게미안하단생각이자꾸”떠오른다.(「비오는새벽」)“나를걱정시키는사람이있어잠못드는밤이있으나,또그런나의불면을걱정하는오랜사람이있어나는걱정이많다”(「우화憂話」).
그래서시인이“고개를숙이고생각하겠습니다고요히나에게만묻겠습니다”(「밤에쓴말」)하고말할때,시인이지닌이내성(內省)의힘은사적인것이아니다.시인의말들이향하는대상에대한염려의다른한편에는이렇듯시인스스로묻는‘부끄러움’의감각이있으며,그것은대상을살피면서기다리는중에나타나는일이다.이순간대상과시인은누가먼저랄것없이같은자리에오게되는것이다.
이렇듯대상에대한염려와자성의공간이오성일시의자리이다.시인이비워둔이름들의자리는,이대상에대한염려와내성의부끄러움이라는역학속에서만들어진긴장의공간이다.
세상속에서조심스러운마음으로,조용한말들을건네며오성일시인이만들어가는이사랑의연대는,오래들여다봐야할우리시의깊은자리가아닐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