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신라편 3: 풍수의 탄생과 확산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신라편 3: 풍수의 탄생과 확산

$16.63
Description
풍수는 신라의 정치, 사상, 문화 개혁의 산물이다
풍수는 자연스런 토속신앙도, 도선 국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것도 아니다. 풍수는 삼국 시대 신라 법흥왕 때 탄생한다. 정치 개혁에 이어 불교를 받아들인 사상 개혁을 통해 경주 도심 한복판에 거대한 무덤을 짓던 왕들의 풍습에서 벗어나, 법흥왕은 자신의 무덤부터 산속에 짓도록 유언한다.
이렇게 해서 ‘산’을 매개로 한 ‘하늘에서 부여받은 권위’을 보여 주는 풍경인 ‘하늘-산-무덤’이란 풍수의 구조가 탄생한다. 이후 풍수는 무덤으로, 사찰로 확산하고 후삼국과 고려를 거쳐 조선 경복궁에 전해진다.
〈역사 인물 환생 인터뷰〉 시리즈 세 번째 책은 통일 전후기 신라 경주로 간다. 무덤에서 풍수의 탄생은 법흥왕, 신라 왕경의 도시계획은 진흥왕, 무덤에서 사찰로 풍수의 확산 과정은 선덕여왕과 문무왕, 사찰 건물의 자연미는 김대성에게 듣는다. 불교 공인과 함께 무덤을 도시 밖에 짓는 개혁이 있었고, 풍수가 사찰로 확산되면서 산속에 푹 안긴 우리 건축물의 특성이 자리 잡게 되었다.
저자

이기봉

경기도화성시비봉면쌍학리의아끔말에서태어났다.서울대학교지리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교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규장각한국학연구원책임연구원으로활동했고현재국립중앙도서관학예연구관으로있다.저자는인류문명의보편적흐름을한국사에서살피고,독특한우리도시와지방문화가어떻게탄생하고이어왔는지를밝히고자한다.
저서로는『우리고을명당이라오』『산을품은왕들의도시1,2』『조선최고의개발자김정호』『하늘의나라신화의나라』『잃어버린우리말땅이름』『우산도는왜독도인가』『임금의도시』『천년의길』『땅과사람을담은우리옛지도』『조선의지도천재들』『근대를들어올린거인,김정호』『평민김정호의꿈』『조선의도시,권위와상징의공간』『지리학교실』『고대도시경주의탄생』이있고,공저로『육백리퇴계길을걷다』『퇴계의길에서길을묻다』『독도는환상의섬인가?』『난고3아빠고파이팅을맡고있어』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

1부_법흥왕인터뷰:
아버지와아들,강국신라를향한개혁의깃발을높이들다

풍수는개혁의산물이다
지증마립간,신라개혁의횃불을들다
법흥왕,아버지의개혁정책을확대계승하다
강국신라를향한개혁의방점을찍다

2부_법흥왕인터뷰:
급진개혁의마지막산물,무덤조영의풍습을혁신하다

돌무지덧널무덤,거대한봉분과화려한껴묻거리
내무덤을산아래에만들어라
법흥왕릉여행,풍수의원형을만나다
신라왕경도시계획의기반을마련하다

3부_진흥왕인터뷰:
신라왕경의풍경과도시계획,새로운역사상식을세우다

높고웅장하고화려한월성의건축물,상상해본적있는가?
황룡사,세계의중심에높고웅장하며화려하게만들다
신라왕경의도시계획,사고의사대주의를버려라
경주시내도시계획의확장토대를만들다

4부_선덕여왕,문무왕인터뷰:
풍수가사찰로,크고웅장한목탑에서작은석탑으로바뀌다

북천의수호신,분황사를만들다
거대한황룡사구층목탑을세우다
감은사의건설,탑이작아지다
하늘-산-감은사의3단계풍경

5부_문무왕,김대성인터뷰:
풍수사찰의확산,신라의전형적인삼층석탑이만들어지다

월지정원,조선에선볼수없는최고수준의인공정원
밖에서보이지않는,산속에폭안긴불국사
삼층석탑이늘씬해지다
다듬는것보다자연스러움을추구하다

도판출처

출판사 서평

-풍수는신라의정치,사상개혁의산물로법흥왕때탄생했다
-‘하늘-산-무덤ㆍ사찰’로왕의권위를풍경에조영한‘풍수’의탄생

『산을품은왕들의도시3:신라편』은한국의독특한풍수개념,즉'하늘-산-궁궐'의의미구조가역사적으로어떻게탄생하고확산되었는지를추적한다.1권과2권에서조선경복궁을비롯한궁궐들과도시의풍경에‘산’이있었고,커다란‘산’보다상대적으로작은궁궐을어떻게임금을상징하는권위를갖도록조성했는지를항공지도와궁궐배치도를꼼꼼히살펴알아보았다.

이번세번째책역시역사인물인법흥왕,진흥왕,선덕여왕,김대문을환생시켜묻고답하는가상인터뷰형식을빌린다.법흥왕은고구려의위협에서벗어나국제적인기준에맞춘강국신라의기틀을마련하기위해다양한개혁정책을시행한다.시호사용,율령반포,병부설치,중국과외교관계복원,불교공인,골품제와화백제도개혁등당시토호와귀족들에맞서‘임금을정점으로한일원적통치체제’를구축했다.저자이기봉박사는환생한법흥왕의말을빌려,이런급진적인개혁의마지막산물이‘풍수의탄생’이라고말한다.이전에황남대총,봉황대총처럼경주왕경한복판에거대한봉분을만들고순장과함께많은깨묻거리를묻던‘돌무지덧널무덤’전통을개혁해,자신의무덤을도시를벗어나경주서쪽선도산아래‘굴식돌방무덤’으로조성하라고유언한다.이후후대왕들의무덤은대체로‘굴식동방무덤’으로산속과산아래에짓고무덤의규모도작아지게되었다.무덤은작아졌지만‘산’이그역할을대신함으로서임금의권위를알렸다.‘풍수’즉전통사회에서하늘로부터받은임금의권위를산을매개로조성하는한국의독특한문화가형성된것이다.이기봉박사는법흥왕의무덤은현재의경주서악동무덤군의앞자리에배치되어있고,풍수의주산-좌청룡-우백호구조를볼수있다고말한다.

이기봉박사는이런무덤구조의개혁이진흥왕,선덕여왕을거치면서경주주변을에워싼선도산,명활산,소금강산이직선으로만나는곳에거대한신궁을당나라의장안처럼조성하는왕경의도시계획을수립했지만,신라의융성을상징하는사찰인황룡사로짓게된다.또백성들이고통스러워했던매년반복되던경주북천과남천의홍수를예방하는지점에분황사,영묘사등사찰을지어예방함으로써임금의권위를사찰에투영했다.나아가삼국통일을이룬문무왕을기리는사찰인감은사를산을배경으로조성해먼거리에서는산이보이고가까이가면사찰이점점크게다가오는구조로지었다.이는1권에서다뤘는데,조선초경복궁과한성을지을때,종각에서출발해광화문사거리에서꺾으면북악산을배경으로광화문을보게하고,경복궁에가까이갈수록산보다광화문이더크게보이는권위를느끼게하는시각적효과를여기서도엿볼수있다.

김대문의인터뷰를통해,‘토함산불국사’라고이름하듯산속에사찰이폭안기는사찰풍수가자리잡게되었음을살피고,크고웅장한목탑들이단아한늘씬한삼층석탑으로변화하는과정도살펴본다.또불국사자하문앞석축들의그렝이질,동궁과월지의조성등직선의인공과부드러운곡선의절묘한조화로,인공을자연에맞추는한국건축양식의특징을살펴본다.

[내용요약]
1부
법흥왕의개혁은네가지로요약된다.첫째,지증마립간의개혁을계승해시호제도를도입하고왕권을강화하였다.둘째,병부를설치해사병체제를약화하고국가중심의군사체계를확립하였다.셋째,율령반포와백관의공복제정을통해법치주의기반을다졌다.마지막으로불교를공인해신라의정신적토대를마련하였다.

2부
법흥왕은지증마립간의개혁을이어받아신라를강국으로만들기위해개혁을추진했다.무덤을평지에서산아래로옮겨왕권의상징성을강화하고자했으며,이를통해신라의도시계획과무덤배치의원칙을세웠다.경주를재편해무덤,궁궐,사찰을하늘-산-궁궐구조로배치하고,돌무지덧널무덤을도입해왕실의권위를나타내려했다.

3부
진흥왕은법흥왕의개혁을이어받아신라의국력을강화하고도시계획을추진했다.고구려와백제에대한공세를시작해영토를확장하고,551년에연호를'개국'으로변경하였다.553년에는월성동북쪽에새로운궁궐을건설하여왕권을상징적으로드러내고자했다.경주를설계하고사찰을세워정치적권위를확산시켰으며,그의개혁은신라의도시와사회질서에큰영향을미쳤다.

4부
선덕여왕은분황사와황룡사구층목탑을건설해왕권을종교적상징으로강화했다.분황사는경주지역을보호하기위한사찰로,풍수와종교가결합된사례이며,황룡사구층목탑은신라의국력을상징적으로표현했다.문무왕은이를이어받아감은사를건설하고,소박한구조를통해부처님께귀의하려는소망을반영했다.감은사는'하늘-산-감은사'의3단계구조로신라의권위를자연에녹여내고자했다.

5부
문무왕은감은사를통해신라왕권의상징을표현하고,자신의유골을바다에묻어백성을수호하겠다고결단했다.김대성은불국사의석가탑을세련되게설계하고,불국사를자연속에위치시켜신라의권위를자연과조화롭게표현하고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