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답게 시작하는 황혼

詩답게 시작하는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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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해방둥이로 태어난 시인에게도 현대사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동네 친구의 아버지가 보도연맹 사건으로 연루되어 주검으로 돌아오자, 시인의 아버지는 그날로 집을 나갔다. 빨치산이 되었다는 소문만 무성하고 그 이후로 시인은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시인은 그 동네 친구와 백년가약을 맺었지만 이 젊은 부부의 앞날은 험하기만 했다.
시인은 삶을 살아왔고 너무 늦지 않은 때에 시를 썼다. 내내 토하지 못하고, 웅크려 왔던 아버지를 보내 주고 싶었다. 또 누가 받을까 무서워 누를 수 없는 ‘휴대전화 단축 번호 1번’이었던 그이를 맘껏 그리워하고 싶었다. 늘 석탑처럼 서 있던 할머니와 늘 내일을 좋아하셨던 어미의 한평생을 풀어헤치고 싶었다. 이렇게 시인은 총 80편의 시들을 펴놓았다.

저자

권문자

저자:권문자
충남논산에서해방둥이로태어났다.영유아기에서유년기로넘어설무렵한국전쟁이발발했고,친구아버지의주검을아버지가소달구지에싣고동네로모셔왔다.
이른바보도연맹사건에연루되어목숨을잃은친구의주검을모셔온아버지는그날로집을나가셨고,산으로들어가빨치산이되었다는소문만무성했다.그후론아버지얼굴을뵌적이없다.
다만그렇게인연이되어그동네친구와백년가약을맺었다.그러나주홍글씨가새겨진젊은부부의앞날은험난했다.버텨내는삶을살자고의기투합해상경했고,삼남매를낳아시집장가보냈다.자식들이모나지않게자라동량이된것같아흐뭇하고,손주들도제몫을하고있어든든하다.
이젠황혼에시작한詩作이부끄럽지만않으면좋겠다고소망한다.

목차



1부거진항사람들
거진항사람들인생생명,나비되어날다노인목사길1길2봉평에는메밀꽃이피었더냐을왕리에서건져올린달꽃의사연별나무들의이야기잡초책꽃밭이된담장매미의일생정각사의봄오늘은가을을쓴다열매들의생각까치발쪽파

2부흑백사진한장
흑백사진한장초임지국화빵1국화빵2우연이가르쳐준것혼자생각12월의달력가을에꾸는꿈소풍가던날꽃이되어내시계는고장나지않았다삼양동친구친구지금도그립다마음이머무는곳나의여름오늘

3부꽃이피는언덕
꽃이피는언덕능소화단축번호1번오후의명상그대내심장의눈금엽서벌초자화상토요일그날산책로명상아직도꿈을꾼다그사람잊힌사람마지막이사

4부할머니의방
할머니의방소금꽃나를슬프게하는것들어머니손복숭아밭뒤돌아보며달빛아래고향의가을가을과함께떠나는어머니의세월어머니가기다리던내일나의슬픈이야기젖은별아버지는아침이슬쓸쓸한날의기도내게주어진축복영정사진기쁜일도만들어지는구나캐나다에있는딸

5부변할수없는약속을믿으며
변할수없는약속을믿으며돌아온4월북한산에서보이는5월불사조의겨울꿈길위에쓰는역사백두산독립문공원에서의사색태풍공주공산성에서걱정스러운것들

해설삶은비극이지만인생은아름다웠네-박제영

출판사 서평

시로씻어낸주홍글씨

이시집은해설을쓴박제영시인의말처럼“자전적시집”이다.그렇다고오해는마시라.서사시는아니다.
시인이해방둥이로태어나고여섯살이되었을때한국전쟁이발발했다는사실은이미비극을배태하고있었다.한국전쟁당시남한사회전역에는마녀사냥의광기가휩쓸던시대다.주지하듯보도연맹사건이그것.
그광기는시인의삶에직격탄을날렸다.전쟁이일어나고채일주일이지나지않아제사를모시던시아버지가보도연맹사건에연루되어목숨을잃고만것.이소식을접한시인의아버지는친구의시신이라도집으로모셔오려고학살현장을찾았다.그렇게시아버지시신을고향으로모셔온아버지는그길로집을나가셨다.
사람들은“성당마당에서은행잎을쓸던이가닮았다하고/대둔산굴속에서싸리잎에불을지펴/밥을짓던이가영락없다하고”(「아버지는아침이슬」부분)수군댔다.
이런일이있고나서할머니와어머니는돌아가실때까지논산경찰서광석지서를찾아가“○○○이는집에오지않았다.○○○에대한들려오는소문도없다”라는각서를써야했다.어떤날은밤샘조사를받고오는일도있었다.
이두친구의아들과딸은연좌제가시퍼렇던시절교사와군인이자신들의안위를지켜줄것이란막연한믿음으로,어쩌면지푸라기라도잡는심정으로각자의미래를설계했다.시인은공주사범학교로시인의남편은충남대축산학과로진학해ROTC가되었다.
시인의교사생활은눈칫밥이이만저만이아니었다.경주송정초등학교는물론고향으로돌아와두곳의초등학교에서근무할때조그마한소요라도있을라치면교장실로불려가기일쑤였다.초급장교를택한남편에대한압박은더심했다.결국시인도남편도자신들의안위를지켜줄것이라믿었던교사와군인이란직업을포기했다.
괴나리봇짐들고무작정상경했다.그후서울변두리를전전하며세남매를키웠다.이제는가훈은아니지만“남에게모질게굴지말라”는부모의가르침을잘따르며성장한아이들이고맙고,손주들의어리광도마냥즐겁다.
그러던2018년의어느여름날친구이자동지로고통을함께짊어졌던남편은시인의곁을떠났다.남편의1주기추도예배때부터시인은예배순서지를직접만들었다.이순서지로예배를드리고난자식들은이구동성으로“어머니이순서지는그어떤성직자의예전문안보다도훌륭해요.문학성도있고요.본격적으로글을써보시는건어때요?”했다.
그후어머니와아버지,할아버지와할머니,특히젊은시절의남편을추억하며시편들을써내려갔다.또문학소녀시절을떠올리며친구들의이야기도수놓았다.이시집은그렇게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