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방랑

동양방랑

$28.00
Description
여행의 끝, 인간의 끝, 세계의 끝에 선 그가
온몸의 감각으로 목도한 ‘동양극장’의 무대가 시작된다

압도적인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글과 사진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여행서의 전설이 된 『인도방랑』, 『티베트방랑』의 저자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방랑』(1982~1983)이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제23회 마이니치예술상을 받은 『동양방랑』은 작가이자 사진가, 사상가, 평론가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해온 후지와라 신야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동양의 전모를 파악하고자 길을 나선 400여 일간의 기록이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시리아, 이란, 파키스탄, 인도, 티베트, 미얀마, 태국, 중국, 홍콩, 한국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기록한 이 책은 사람 사는 세상의 거짓 없는 모습을 좀 더 적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작가 나름의 육체적, 정신적 훈련의 결과물이다.
『인도방랑』, 『티베트방랑』의 번역을 맡은 바 있는 이윤정의 새로운 번역으로 선보이는 『동양방랑』은 이번 개정판 출간을 기념해 소설가이자 서평가인 장정일의 날카로운 혜안이 담긴 해설을 수록하였으며, 탁월한 문명 감식가로서의 면모를 조명하고 있다.
후지와라 신야의 원점이 되는 동양 여행기를 결산하면서, 그를 영원한 청춘의 구루로 자리매김한 ‘방랑’ 3부작의 대미를 완성한 책이다.
저자

후지와라신야

저자후지와라신야
1944년일본후쿠오카현모지시(현재기타큐슈시모지구)의여관을운영하는부모에게서태어났다.
여관이파산하자고교졸업후여러직업을전전하다명문인도쿄예술대학미술학부회화과에입학하지만학교에서배우는예술에흥미를느끼지못하고중퇴,1969년스물다섯살되던해에인도로떠난다.이후서른아홉살때까지인도,티베트,중근동,유럽과미국등을방랑한다.1972년에펴낸처녀작『인도방랑』은당시청년층에게커다란호응을불러일으켰고,8년의인도방랑후의여정을그린『티베트방랑』은『인도방랑』과더불어저자의원점이되는대표작으로사랑받고있다.
동양여행기3부작의대미를장식하는『동양방랑』은1980년에서1981년까지터키,시리아,인도,티베트,미얀마,중국,홍콩,한국등을거쳐일본에이르는400여일간의여정으로,삶의임계점에도달한저자가다시금존재의의미를되찾게한‘동양극장’이라는무대위의“비할데없이인간적인곡예”를기록하고있다.
1977년『소요유기』로제3회기무라이헤에사진상,1982년『동양방랑』으로제23회마이니치예술상을받는다.그밖의주요저서로『아메리카기행』『도쿄표류』『메멘토모리』『침사방황』『시부야』『바람의플루트』『황천의개』,소설『딩글의후미』,자전소설『기차바퀴』등이있다.

목차

01

1장겨울해협/이스탄불
2장양창자수프/앙카라
3장장미의나날/지중해ㆍ앙카라
4장몽해항로/흑해
5장이슬람사색기행/시리아ㆍ이란ㆍ파키스탄
6장동양의재즈가들린다/콜카타

02

7장심산/티베트
8장황금빛최면술/버마
9장풀의창루/치앙마이
10장신이없는대성당/상하이
11장보름달밤,바다의둥근돼지/홍콩
12장붉은꽃,검은눈/한반도
종장여행,결국사상이다/고야산ㆍ도쿄

작품해설/장정일(소설가)

출판사 서평

“누구에게나‘빙점’은있다.반드시찾아온다.
인간의빙점을녹이는것은인간이다.
인간의체온이다.”

후지와라신야는1969년여름스물다섯살때에떠난인도여행을시작으로이후10여년간인도,티베트,중근동,유럽과미국등을방랑했다.모국인일본이2차대전원폭이후서구물질문명으로인해민족적자의식을완전히상실했다판단하고이에대한타개책을궁구하던끝에오른방랑길이었지만,그는이내끝모를무력감과회의에빠지고만다.눈이흐려지고,혀가,귀가,코가무감각해지는상태,그는그것을여행과삶의임계점에도달하여마침내는얼어붙는단계,즉‘빙점’이라이름한다.그리하여살아있는모든것,그가운데특히인간이귀찮았고,당연히글이나사진에서도인간은보이지않게된다.인간이인간에게흥미를잃어버린정신과육체의쇠약상태에시달린저자가인간성의회복과존재의의미를찾기위해선택한것이바로,아시아의서쪽끝터키에서동쪽끝일본에이르는‘동양방랑’이다.

“눈이펑펑쏟아지고있었다.창밖을보면서동양에대해생각했다.
온갖냄새가코끝에들러붙어있다.”

“그리스아테네에서에게해와마르마라해를따라기차로40시간,동양이시작되는이스탄불로향하는동안시시각각다가온것은냄새였다.”(45쪽)썩은오렌지껍질,돼지머리,송장,광인,전염병환자,만취한사람.
에게해서쪽,서양의땅에서는눈가림되거나포장되어말살되고마는,모든무르익고썩어가는것들의냄새가바로동양그자체였던것이다.
그가기사회생하기위해동양을택한이유는,애초에방랑을시작한곳도,에세이스트가된곳도,사진작가가된곳도모두동양이었기때문이다.후지와라신야는그런동양에대해“혈액이요동치는,선악과미추가뒤섞인세계”(48쪽)라고일컫는다.
아시아의여러도시에서벌어지는,우스꽝스럽고어리석고못난보통사람들의생활의식(儀式)속으로섞여들어간저자가목도한것은이들이저마다의모습으로흔적을새겨나가는삶의한복판,다름아닌‘일상’이었다.
식당의낯선손님에게접근해게걸스럽게음식을먹어치운후사례금을받는거식녀,지중해에수장된트랜스젠더하산타스데미르,한밤에처절하게불경을외기시작하더니새벽이되어속세로떠난마흔네살의파계승,목을매는게특기라는치망마이의실성한매춘녀,돼지방광을부낭처럼매달고바다를헤엄쳐홍콩으로밀입국한셰이형제…….
창녀부터승려에이르기까지다양한군상들의남루한일상이자리한공간속에서그가발견한것은인간의온기그이상의‘살아있다’는뜨거운열망의목소리였고,자신의정신과육체를관통해흐르는‘피’의역사였다.
생동하는삶의활기로요동치는내면을,후지와라신야는스스로“그저‘길을걷는자’였고보고느낀것들을‘보고하는자’”(477쪽)라고고백한것처럼,빼거나보탬없이날것그대로의모습으로기록한다.
그렇게방랑10년만에찾아온‘빙점’에서시작된여행은,동양곳곳의기저깊숙이침투하는발걸음이더해질수록인간에대한흥미와호기심으로뒤바뀐다.희로애락의감정으로가득찬육체를가진존재들은인간의본성과욕망을더절실하게자각하도록이끌었고,그것을순시(瞬視)에간파하는찰나의과정안에서그는자신의빙점이서서히녹아내리는것을느낀다.정체모를냄새가감도는양창자수프의시큼한맛을혀가반기기시작하고,인간적인슬픔과분노가담긴판소리가락과비오는날처마밑에서부르던치앙마이창부의벼베기노래가울려퍼진다.
먼도시의불빛하나하나는누군가의영혼처럼반짝이고,고요한산사에내리는눈송이들은관음처럼빛난다.마침내온몸의감각이깨어나기시작한그는이‘동양극장’이라는이름의길위에서“비할데없이인간적인곡예”를펼쳐보인사람들을향해,‘인간천재들’이라는찬사를아끼지않는다.

인간의표정너머에서
역사성과사회성을포착해내는생생함

후지와라신야의글과사진은그의장년기에지나쳐온객지들을담아낸기록임에도여전히분방하고거침없는청춘을닮았다.그는여정을옮길때마다벼린칼날처럼날카로운언어와사유를통해현지의삶을그려낸다.터키사람들의심각하고검소한표정에서가난을견뎌야하는사회상황을읽어내고,시리아에서파키스탄에이르는이슬람국가사람들에게서분노의표정을발견한다.후지와라신야는이것을사막이라는토양을기조로하는추상적풍토에서기인한다고본다.사막과같은황량하고삭막한자연환경에서코란이라는강력한종교적법률이출현했다는것이다.
반면구상적인자연환경에속하는인도사람들의표정은삶의표준만을강요하는풍토의이슬람과는대비된다.사소하고경박한물질조차도‘신’의색깔로물들여버리는인도인들에게는시대착오적이다싶을만큼유구한자족의표정이어려있다.
동양의서쪽끝과동쪽끝을오가며인간의표정들을속속들이파헤친후지와라신야가매료된것은바로이표정에담겨있는역사성과사회성이다.불교국인미얀마,태국사람들에게서는공통적으로조용한미소를발견한다.중국사람들은포커페이스다.
중국인만큼어떤장면에서도민족적정체성을잃지않는인종도드물다.필리핀사람들에게서는일본다음가는백치의표정을읽어낸다.그리고한반도는불교적염화미소라기보다는유교적박애에서오는미소를가지고있다.
후지와라신야는인간성의발견에대한고백에서나아가,기후나지형같은환경적영향을통해문명의특징을통찰해내는대목에이른다.그는인도를경계로나뉘는동양의상반된두가지풍토에대해성찰하기도하고,미얀마국경을경계로태국에서부터인간적정서가결여된환경을마주하고는대량생산과이윤추구에몰두하는‘일본주의’가유입되어있음을읽어내기도한다.한발더나아가작가는동양의서쪽에서동쪽까지정신과물질의채도가다름을간파한다.가령,‘노인혐오’라는사회적현상은일본에서두드러지지만,동양의동쪽전반에서공통된현상이다.
근대화를맹목적으로추구해온중국,한국,일본등은‘새것’을향한강박에휩싸여있다는것이다.새롭고,미래적이고,급진적인것에절대적가치기준을두는테크놀로지사회에서노인혐오는어쩌면자연스럽고숙명적인현상이다.
후지와라신야는이러한성찰속에서,인간은누구나늙어가는존재라는사실을직시하고미래형도시사회가유포하는물질적에테르를경계할때,괴롭고불안한현실에서벗어나역동적이고풍요한삶이가능해진다고진단한다.

“나는그‘동양극장’의무대위천재적인인생연기자들속에서언제나단역이었다.”
동양의보통사람들이연기하는비할데없이인간적인곡예

30여년전그의성찰대로,동양의서쪽과동쪽은여전히서로다른채도를보여주고있다.동양의서쪽은‘아랍의봄’이후종교적·정치적분쟁에휩싸여있고,동양의동쪽은더욱강고해진물질의갑각류로무장하고있다.
이러한상황을예견이라도한듯작가의목소리에는,“동양을머리부터발끝까지두눈으로똑똑히”(48쪽)보겠다는각오처럼,미래까지의여정을계획하려는웅숭깊은의지가담겨있다.동양의방방곡곡에서‘피’와‘표정’과‘정신’까지독해한끝에,작가는모국일본에대해비판적으로사유한다.
개인차원의이념(도덕)과집단차원의이념(종교)가운데선택의기로에서있는일본인을통해후지와라신야는불균형과모순을발견하고,우리는그들과크게다르지않은자화상을발견한다.동양의전역에감춰진생의이면들을아우르며자기반성에도달하는그의시선을따라가다보면,현재를돌아보고미래를가꿀힘을수확할수있을것이다.동양을관통하는사유의동공들로빼곡히수놓인이책은,후지와라신야를그자신에게로이끌었듯,우리를우리자신에게로이끄는하나의방대한지도이자청명한거울이다.

[작품해설]
후지와라신야가구루인지아닌지는독자마다생각이다를수있다.중요한것은수많은세상사람가운데어느한명이그를구루로불렀다는것이다.이사실이왜중요한지를따로설명할필요가있을까.저사실은후지와라신야를‘나의구루’라고과감하게고백하지못한수줍은열명,백명,천명의숨어있는추종자가있다고암시해준다.
(……)이여행기에서독자가맡아보지못할냄새는하나도없다.냄새는국경이라는이름의분별이얼마나의미없는것인지웅변해준다.대변이혹은음식이그런것처럼,인간의생물학적원초성과직결되어있는냄새는이질적인신과낯선인종과무수한국경을하나로묶어준다.이제아무런과장없이이렇게말할수있다.후지와라신야는냄새를맡기위해방랑한것이다.지은이는스스로를“그저‘길을걷는자’”,“보고느낀것들을‘보고하는자’”라고말하지만,그에게독특한개성과후광을부여하는것은여행기곳곳에서찾아볼수있는문명감식안이다.
ㅡ장정일(소설가)

[책속으로추가]
이긴여행에서나는인간을만나는것을과제로삼았다.
멍청한인간이든고귀한인간이든
눈앞에나타나는모든인간을
일생일대의인연으로여기고소중히대하기로했다.
변두리유곽의창녀에서심산에틀어박힌스님까지
그어떤인간이든철저히사귀기로했다.
여행의중반,콜카타에도착했을무렵
갑자기나는회생했다.
또다시인간이한없이재미있어졌다.
얼어붙은여행이녹기시작했다.나자신을되찾았다.
누구에게나‘빙점’은있다.
반드시찾아온다.
인간의빙점을녹이는것은
인간이다.인간의체온이다.
_5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