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영원한이웃,
박완서를다시만나는시간!
박완서소설가는한국어로소설을읽는사람이
남아있는한,언제까지고읽힐것이다.
_정세랑
『나의아름다운이웃』은고(故)박완서작가가처음으로펴낸짧은소설집이자,1970년대사회의단면을예리하게담아내고평범한삶속에숨이있는기막힌인생의낌새를포착한작품이다.우리에게인생의가치는어디에있는것인지,사랑과결혼의잣대란도대체무엇이며,진실이란우리에게얼마만한기쁨이고슬픔인지를작가특유의신랄하고도친근한문체로보여준다.
박완서작가의장녀이자수필가이기도한호원숙은이번책의「개정판을펴내며」에서“재미속에쿵하고가슴을흔들어대고부끄러움에얼굴을붉히게합니다.……낭만적사랑의꿈을버리지않으셨던,그러나‘너의삶의주인은너’라고끊임없이일깨워주는어머니”라고회고한다.짧은분량의단숨에읽히는이야기지만여운의뒷맛은더길고강하다.자기기만과허위의식에찬속물근성이까발려진듯해뜨끔하고,목표의식없이내달리는헛헛한내면이들킨것같아부끄럽다.담하나를사이에두고담소를나누던이웃간의정을찾아볼수없게된작금의사태가떠올라씁쓸하고,그럼에도놓을수없는사랑이라는감정에는가슴이뜨거워진다.「그때그사람」,「마른꽃잎의추억」,「아직끝나지않은음모」,「그림의가위」,「어떤유린」등48편의이야기가실린이짧은소설집은평생에걸쳐선생의화두였던‘사랑과자유’에대한희구를때론낭만적으로,자주희망적으로펼쳐보인다.사랑과자유를꿈꾸는한나자신을포함한인간은,즉우리의이웃들은진정‘아름다운’존재가될수있지않을까하는.
“사람사는집은다비슷하단사실이놀랍고유쾌했습니다.”
방안에들어앉아바늘구멍으로바라본바깥세상이야기
짧은48편의소설들의배경이되는1970년대한국사회는산업화정책으로이룩한경제성장으로물질적풍요는이루었으나,세상을살아가는사람들의심리적빈곤을면할수는없었다.전원주택대신곳곳에아파트가들어서고,집집마다전화기와텔레비전같은가전제품을들여놓으면서생활은편리해졌지만그들의삶이윤택해진것은아니었다.빽빽하게줄지어늘어선아파트들로이웃간거리는더욱가까워졌지만마주치는사람들사이에오고가는인사가사라졌고,열쇠만있으면언제든문을열고집으로들어올수있었지만한집안에모여사는가족의수는점차줄어들었다.타인의권리와사생활을필요이상으로침해하는행위는물론경계해야하지만,그것이오히려소통의부재가되어삶을더욱각박하고황량하게만들지는않았는가.『나의아름다운이웃』은우리주변어디에나있을법한이웃들의모습을통해어두운사회의단면을예리하게포착하여,재치있게그러나결코가볍지만은않은삶의진실을다룬다.
「달나라의꿈」속주인공은낮은담장을사이에두고도교류가없는이웃,상수엄마에게불만을가진다.언제나수심가득한얼굴을한상수엄마는어쩌다이웃을마주쳐도인사는커녕눈길한번주지않고지나친다.어쩐이유에서인지그집아이들도정원에서공을가지고놀다가공이담을넘어가도넘겨달라고부탁하지않는다.‘나’는담장을넘어온공을차곡차곡모아두다한바가지를다채울때쯤,모아둔공을들고정식으로이웃집을방문한다.그리고그곳에서상수엄마가숨기고있던상수네의비밀을목격하게된다.
“무심히바라보던세상의온갖사물들이
다아름답고정겹게살아났다”
이시대의잃어버린‘낭만’을찾아서
이시대를가리켜‘낭만’은종말되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박완서작가가아프게진단했던자본주의속인간은기계의부속물처럼평가절하되고,이유없는살인과폭행,망상또는피해의식에서비롯된성적혐오로인한사건사고들을하루에도몇번씩접하고듣는다.지금의세태를미리내다보기라도한듯『나의아름다웃이웃』에서작가는불합리한사회구조속에서불가피하게소외되고차별받을수밖에없는여성과노인등‘사회적약자’의삶에집중한다.그리고그들의입을통하여인정과환대가점점가물어가는와중에도자신만의방법으로고난과역경을헤쳐나가며묵묵히살아가는인물군상을통해,위태로운토대위에선우리사회의병폐를진단하는동시에그럼에도싹트는희망의빛을결코잃지말자고이야기한다.연작소설「아직끝나지않은음모」에서는분희,경숙,그리고후남에이르기까지3대에걸쳐결혼생활로인한여성의삶의애환을잔잔하게그리고있다.특히후남은「아직끝나지않은음모3」초반에김승옥의「야행」을읽으며할머니,어머니시대에태어나지않아감사하다고감격하지만,작품후반에서는여전히기혼여성에게만무겁게짓누르는사회적억압과가부장제의잔재를실감하고홀로쓸쓸히고배를들이킨다.
이책의「책머리에」에서박완서작가는“마치방안에숨어앉아창호지에바늘구멍을내고바깥세상을엿보다가그협소한시야안에기막힌인생의낌새가잡힌듯한짜릿한매력때문에썼다”고밝힌바있다.사소한일부터삶의방향을결정짓는커다란전환점에이르기까지,시종작가는눈을크게뜨고직시하면서우리로하여금생의결과주름을현미경으로들여다보듯세밀하고적확한시각으로바라볼것을요청한다.“바늘구멍으로내다보았음에도불구하고멀리,적어도이삼십년은앞을내다보았다고으스대고싶은치기”를솔직하게고백한다는작가의말처럼,『나의아름다운이웃』은그보다더오랜시간이흐른지금까지도삶의소중한가치와의미를잊지말자고우리스스로를분연히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