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 소설 향 (양장)

붕대 감기 - 소설 향 (양장)

$12.00
Description
이해하고 싶었어, 너의 그 단호함을, 너의 편협함까지도.
제5회, 제6회 젊은작가상, 제5회 문지문학상, 201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윤이형의 소설 『붕대 감기』. 소수자의 감각과 서사에 끈기 있게 천착해온 저자의 자각과 다짐의 연장선상에 있는 소설로서, 우정이라는 관계 안에서 휘몰아치는 복잡하고 내밀한 감정들을 첨예한 문제의식과 섬세한 문체로 묘파하며 저자가 현재 몰두하는 여성 서사라는 화두를 가장 적실하게 그려 보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소설에서는 계층, 학력, 나이, 직업 등이 모두 다른 다양한 여성들의 개별적인 서사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불법촬영 동영상 피해자였던 친구를 보고도 도움을 주지 못했던 미용사 지현, 영화 홍보기획사에 다니는 워킹맘이자 의식불명에 빠진 아들 서균을 둔 은정, 그런 서균과 한반인 딸 율아의 엄마 진경, 진경의 절친한 친구이자 출판기획자인 세연 등 바톤터치를 하듯 연결되는 이들 각자의 사연은 개인의 상처에서 나아가 사각지대에 자리한 우리 사회의 환부에까지 가 닿는다.
저자

윤이형

1976년서울에서태어났고연세대학교영어영문학과를졸업했다.대학졸업후직장생활을하다가그만두고2005년중앙신인문학상에단편소설「검은불가사리」가당선되어등단했다.2014년,2015년젊은작가상,2015년문지문학상,2019년이상문학상을받았다.저서로는소설집『셋을위한왈츠』,『큰늑대파랑』,『러브레플리카』,『작은마음동호회』,중편소설『개인적기억』,『붕대감기』,청...

목차

붕대감기7
‘진짜페미니즘’을넘어서|심진경171
작가의말197

출판사 서평

서로의마음가장깊숙한곳에
바톤터치하듯이어지는
너와나,우리모두의이야기

영화홍보기획사에서일하는은정은육아와직장을병행하는워킹맘이다.은정은“세상과의끈을놓아버리고‘무식한아이엄마’로만남지않겠다”고거듭다짐하며타인과의감정섞인교류없이강퍅하고완고하게스스로를가둬왔다.그러나8개월전그녀의고성에도균열이가기시작된다.아들서균이교회수련회에서눈썰매를타다의식분명상태에빠진것이다.8개월이라는시간은온화한성정의남편을비롯해결코변하지않을것같던주변의모든것들을무너져내리게만들었고,이제그녀는무참한현실에맞닥뜨린자신에게누구도안부를묻지않는다는사실에“초점없는혼잣말과욕설”을“방언처럼줄줄”내뱉는다.

“하지만누구라도,누구한아이의엄마라도,인사치레로라도갑작스레전화를걸어,많이힘드시지요?서균이는좀어떤가요?하고말을걸어준다면좋을텐데.우정이라는적금을필요할때찾아쓰려면평소에조금씩이라도적립을해뒀어야했다.”_본문23쪽

그러나은정이눈치채지못한따스한응원과위안의기미가,실은존재했다.그가다니는미용실의헤어디자이너인두사람.미용실실장인해미는“지독하게말수가없”고,“언제나온몸과마음이잔뜩긴장”해있는것처럼보이는은정에게,자신의‘인생책’인할레드호세이니의『천개의찬란한태양』을선물하고는8개월전마지막염색이후로발길을끊은그녀를걱정한다.같은미용실의지현또한내내마음이무겁다.8개월전,지현은은정의아이서균이너무얄미웠다.미용실안을헤집고난리를피우는데도엄마는피로한표정으로아이를말리는시늉만할뿐이었고,겨우자리에서일어나아이엉덩이를때렸을땐염색약을엎지른후였다.은정은그순간트위터앱을켜고“화가나서폭발할것같은상태”로‘속이터진다ㅅㅂㅅㅂ’같은글을썼고,아이가아프다는말을전해듣고죄책감에빠진것이다.은정의죄책감은사실그보다더깊은뿌리를갖고있다.지금은연락이끊긴대학동기미진이불법촬영동영상의피해자였는데,지현은친구의불행을위로하다그녀가감당하고있는정신적무게가버거워그만손을놓아버렸다.그녀는친구미진과순간적인화를참지못해악의적인감정을품었던아이서균의안위와평안을간절하게빌어본다.


‘우정’에바라는기대와허상,실망과환멸
그리고그것을다시회복해가려는마음

이어서균과한반인딸율아를둔진경과,그의친구인세연의사연이시작된다.고등학교3년내내단짝이었던진경과세연은각자다른대학에진학해서도살가운관계를유지했다.진경이직장에들어가면서연락이끊어졌지만,진경은전업주부가,세연은출판기획자가되어둘은페이스북에서다시만난다.처음두사람이친해지게된계기는특별했다.교련시간에2인1조로붕대감기실기시험을치르다세연이실수로진경의머리를잡아당기면서였는데두사람에게친해질만한공통분모라곤없었다.그러나“모두의사랑을받는아이”진경과“고립된문제아”세연은서로가간절히누군가를필요로한다는것을알았기에오래도록곁을지켜주었다.

둘은자주만나지는못했지만네트워크로언제나이어져있었고,서로에게가장먼저댓글을달아주는사이였다.서로가지닌빛에,어둠에,즐거움에,슬픔에,한심함에._본문60쪽

하지만3년전쯤부터세연은점차진경과멀어진다.세연은더이상페이스북에일상포스팅을하지않았고,글에서자신을드러내는일도극히드물었을뿐아니라진경이셀피를올리면‘좋아요’만누를뿐댓글은달지않는다.세연은짧고정확한성격의글만적어올린다.자신이현재기획하고있는책이나앞으로나올책의출간소식또는여성주의관련글과이슈들에대해서만.그들은어디서부터이렇게멀어진걸까.그리고그렇게멀어진뒤에도왜계속서로의움직임에,마음상태에,변화에신경이곤두서는것일까.


“너는나를알고싶은거였구나!
나를싫어하는게아니었어”
서로기대고,덧대어지고,때론교차하면서펼치는
아름답고정교한태피스트리

이처럼『붕대감기』는친구에게거는기대와허상,그허상이깨졌을때의실망과환멸,그리고이를다시회복해가려는마음과미묘한갈등을오늘을살아가는여성들의핍진한현실위에서펼쳐보인다.그것은“가정과직장이라는제한된공간밖에서아무런이해관계없이새로운친밀감의영역”이자“순수하게관계내적인속성에따라형성되고지속되는”(심진경,「작품해설」)관계다.
동료이거나동지이거나친구인,이해관계너머에있는‘순수한’관계들의유형은진경과세연을중심으로뻗어나가는다른인물들의사연을통해제시된다.세연이‘여성들의우정’이라는출간물을기획하며취재를요청한대학교수경혜는제자에게‘페미니스트투사’라는영광을얻으려는‘꼰대’로비춰진다.채이는경혜에게친구가되자고먼저손을내민당찬학생이었지만,A교수의추행사실을고발하는대자보를쓴뒤보복을당할까두려움에떤다.그리고그런채이를안타깝게바라보는친구형은,형은의엄마인명옥,그녀의동반자인효령까지많은인물들의사연은서로기대고,간극을벌렸다가,다시금교차하면서태피스트리처럼아름답고정교하게직조되어간다.
여성이겪는현실적인문제들,즉가부장제,성폭력,피해자와가해자,미러링,탈코르셋등페미니즘이슈는물론,우리사회를둘러싼온갖억압과폭력의문제들은자연스레수면위로떠오른다.나이많은,나이어린,대학교수인,고등학생인,워킹맘인,전업주부인그들이던지는질문들은,우리는우리의친구들과“어떤연유로서로멀어지고또그갈등을어떻게극복하는지,혹은극복이안되었는지”,그리고관계의속성과본질이란과연무엇인지를반추하게만든다.소설에따르면이들은저마다삶의무게와피로를지니고있지만그럼에도“같은버스”를탄사람들이다.운전자는수시로바뀌지만버스에탄일원들은버스가잘운행되도록독려와관심을놓지않아야한다.그들은서로끊임없이비교하며스스로를갉아먹는경쟁자이자적이아니다.“돌려받지못할것을걱정하지도않고”열심히책을소개하고빌려주면서함께읽거나,“오직서로에게만지어보일수있던”미소를지닌존재,즉친구인것이다.


우정의전제조건은같아지는게아니라
상처받을준비가되어있다는것

작가는“여성들이같이억압받고있는데도동지로보기보다는서로의고통과억압을비교”하는데우리가“서로미워할필요가없고힘을합쳐야하지않나하는생각이들었”다고밝힌바있다.(2019.01.22.《경향신문》인터뷰)소설속에도등장하는‘친구’라는이름의전통춤처럼,때론앞사람의등만보는춤을주게될지라도,그가준비가될때까지단절의휴지를감내하고기다려주는것.그런의미에서“연대에서가장중요한것은같아지는것이아니라상처받을준비가되어있다는것”이라는진단은(심진경,「작품해설」)의미심장하다.
이야기의릴레이는소설이끝나고난뒤에도독자의마음깊숙한곳에환한빛을비추며다시금말을걸어올것이다.내이야기를털어놓을존재가어딘가있다는것을잊지말자고,그것만으로도삶은앞으로나아가볼만한것이라고작가가힘주어이야기하는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