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영 ZERO 零 : 김사과 소설  - 소설, 향 (양장)

0 영 ZERO 零 : 김사과 소설 - 소설, 향 (양장)

$14.00
Description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
그것은 진실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소설, 향〉 시리즈 첫 번째
김사과의 『0 영 ZERO 零』 어텀 에디션 출간,
선善도 악惡도 교훈도 없는, 이 세계는 텅 빈 ‘제로’다!
작가정신 〈소설, 향〉 시리즈의 문을 연 첫 작품, 김사과 작가의 『0 영 ZERO 零』의 어텀 에디션이 출간되었다. 전위적인 서사, 파격적인 형식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를 낯설게 인지하게끔 만드는 작가 김사과. 폭력과 범죄, 자본과 권력이 매섭게 휘몰아치는 양상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거칠 것 없이 파멸까지 나아가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던 ‘김사과 월드’는 이제 이 세계의 균열과 모순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더욱 확장된 시야로 비추며, 새로운 환상이 작동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한 바 있다. 『0 영 ZERO 零』에서 김사과가 선보이는 것은 더욱 사소하고, 더더욱 은밀해서 명확히 짚어내고 명명할 수조차 없는 폭력이다. 그리고 그 폭력이, 특수한 악惡함이 평범성으로 전환되는 도시의 익명성에 숨어 소리 없이 이 한 사람의 생 전체를 휘감고 무너뜨리는 방식에 대해서다.
『0 영 ZERO 零』의 주인공인 ‘나’는 타인을 먼저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고 만다는 식인食人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란 내가 누군가에게 먹잇감이 되어 망가지기 전에 먼저 타인을 내외면적으로 망가뜨리는 것뿐이다. 한쪽이 포식자가 됨에 따라 다른 한쪽이 피식자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승부의 세계에서 ‘나’는 사소하고도 은밀한 행위들을 통해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림에 따라 살아남고자 한다. 마치 세계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듯한 태도로 이 세계의 부질없음과, 그러므로 오로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 ‘나’의 목소리는 마치 독자를 향한 유혹의 밀어蜜語처럼 소설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이 책의 말미에는 김사과 작가와 황예인 평론가의 대담이 수록되었다. ‘더 나쁜 쪽으로’ 진화한 김사과의 문제적인 인물과 폭력적인 일상사에 대하여 보다 열린 지평에서 논의하는 장으로,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해석보다는 ‘나’의 세계를 둘러싼 역학 관계와, 식인하는 세계관 내에서 악이 곧 구원이 되는 아이러니에 대해 사유한다.

작가정신 〈소설, 향〉
소설, 향香을 담다 : 소설, 반향響을 일으키다 : 소설, 향向하다

저자

김사과

1984년서울에서태어나한국예술종합학교서사창작과를졸업했다.2005년단편「영이」로제8회창비신인소설상을수상하며등단했다.소설집『02』『더나쁜쪽으로』,장편소설『미나』『풀이눕는다』『나b책』『풀이눕는다』『테러의시』『천국에서』『NEW』,산문집『설탕의맛』『0이하의날들』등이있다.

목차

1부09
2부97
텅빈세계,맹독성의구원자―김사과×황예인대화189

출판사 서평

타인의불행을커튼삼아
자신에게드리운불행의그림자를가리는사람들
“내가너를잡아먹지않으면,
네가나를통째로집어삼킨다.
경계하고또경계하라.”

한낮도심의한가한스타벅스에서주인공인‘나’는남자친구인성연우와이별중이다.성연우는‘나’가“오만하며고압적이기짝이없는세상을향한시선,그의주변사람들에대한지속적인무례를포함한온갖무례,더럽고무가치한협잡,도대체무엇을위해서펼치는지모르겠는역겨운장난질들”을일삼는다며비난을성급하게늘어놓지만,정작그앞에서‘나’가의식하고있는것은그가말하는비난의내용이아닌자신과성연우의모양새가외부의시선에비치는방식이다.마음속으로는성연우를조롱하면서도마치연극속의주인공이대사를읊듯순진하고무결한인물을연기하는‘나’는현재의모든상황을자기의주도권하에주조해간다고생각하며완벽하게스스로를치장한다.

나는스스로도믿기지도않을정도로맑고또차분한목소리로그에게사과하기시작했다.내가무엇을잘못했는지모르겠지만,미안하다고,아마도연애라는관계에대해서내가많이서툴렀던것같다고,하지만그것은내본심만은아니었다고,오빠를향한내마음은진심,그것만은,꼭믿어달라고……(18p)

『0영ZERO零』의주인공인‘나’는식인食人의세계관을지니고있다.‘나’에게이세계란누군가를잡아먹지않으면잡아먹히는필연적인승부의세계다.그렇기에‘나’는도시에서“가장쉽고싸고안전한”데다감정까지지닌재화인인간을적절히이용하여이세계에서살아남고자한다.독일문학을전공한명문대출신의프리랜서번역가이자독립문학잡지의편집위원이라는타이틀,그타이틀을통해타인으로부터얻는맹목적인신뢰,이세계의본질을꿰뚫고있다는듯한견자見者적인태도,이모든것들이합쳐져‘나’는“개화,문명화된도시의식인종”으로서사냥감을찾아헤매고,세련되고우아한태도로은밀하고도사소한방법을통해타인의삶을불행에빠뜨린다.

인간은기본적으로식인食人하는종족이다.일단그것을인정해야한다.윤리와감정에앞서서현실을받아들여야한다.무슨말인고하니,세상은먹고먹히는게임이라는것이다.내가너를잡아먹지않으면,네가나를통째로집어삼킨다.조심하고,또경계하라.(46p)

“네인생이불행한것도,네인생이행복한것도,
전부다,너자신에게달렸다.
한마디로죄다네탓이라는말이다.”

‘나’의사냥행위,즉먹잇감을찾아헤매고덫을놓으며결국그사람의인생을망가뜨리는전반의과정이아주사소하고도은밀하게이루어지기때문에타인에게‘나’는쉽사리간파되지않는다.이런상황에서‘나’가자처하는것은바로구원자이다.‘나’는어릴적아버지를따라이주한독일프랑크푸르트에서친구‘김명훈’을만나는데,99퍼센트백인으로채워진학급에서명훈은적응하지못하고그의삶에서‘완벽한바닥의시점’에위치하고있다.이런명훈에게,‘나’가다가선다.타인과관계를맺게하고자신만의세상밖으로나올수있도록용기를북돋아주는‘나’의모습은일면명훈을돕는것처럼보이기도한다.하지만‘나’의이러한행위는타인의더완벽한추락을위한하나의실험과다름없다.명훈의자살,즉명훈의‘피식’을통해연쇄먹이사슬을연상하듯주변사람들의포식단계를짚어가며‘나’가하는생각은“하나의인간이견딜수있는고통의한계는어디까지일까”하는것이다.

명훈이아버지와명훈이는산채로먹혔다.독일이라는음침한나라가꿀걱삼켜버렸다.아니면,마리아슐츠씨가잡아먹은건가?그리고마리아슐츠씨는토마스슐츠씨한테잡아먹혔다.(...)그렇다면나는어떻게살아남을것인가?즉,누구를잡아먹을것인가?(46-47p)

‘나’의교양강의수업을듣는학생‘박세영’에게도마찬가지다.‘나’는명훈이후세영에게다시한번구원자의역할을맡기로하지만‘나’의구원적행위란“자신에게미래가없음을인정하지않”는밀레니얼세대인세영에게재능이빛을발할수없는길을안내함으로써길을잃게하는것이다.‘나’는친밀한친구로,좋은선배이자선생으로,그리고유순함을지닌여자친구로보이지않는투명한학살을이어가며사냥감들에게은밀하게속삭인다.당신의인생이망가지는것은“내탓이전―혀아니”라고.

진실된자기고백,혹은거짓농락
더‘나쁜쪽으로’진화한김사과월드

『0영ZERO零』는시종일관‘나’의입장에서서술되는자기고백적서사로이루어진일인칭소설이다.‘나’는내밀한속마음을털어놓듯우리에게끊임없이속삭인다.‘잡아먹히지않기위해서는먼저잡아먹어야한다.’‘행복과불행은모두당신의선택에달렸다.’‘타인을이용해평범하고소박한수준에서행복을바라는건상식적인수준의요구다.’오로지삶의소소한즐거움을위해타인을사용할것을제안하는‘나’의목소리는마치독자를향한유혹의밀어蜜語처럼소설곳곳에서울려퍼진다.남자친구,동료,제자,가족등주위사람들을향한악마적인‘나’의시선을따라우리의시선도함께이동하다가,‘나’의내밀한고백에경악하면서도우리는어느새타당성과합리성을찾고자하며,이윽고는직접적으로사냥감이되기전에먼저사냥꾼이될것을제안하는‘나’와우리의거리는이미좁혀져있다.“김사과소설을읽을때의가장큰쾌감은이상한인물을생상하게체험하는데서온다”는황예인평론가의말처럼우리는‘나’와동질감을느끼기도하고,순식간에위화감을느끼기도하면서선과악,진실과거짓사이에서끊임없이혼동하며소설속에서헤매고,또헤매게된다.너도사실은그렇게느끼지않느냐고,나도너랑같은평범한사람이라는‘나’의속삭임을듣는채로.

세상사람들이다내불행을바란다.그것은진실이다.어쩌면세상에대한유일한진실이다.김지영선배는미친것이아니라진실을말했다.좀더정확하게서술하자면,사람들은누군가각별한타인의불행을바란다.각별한타인의불행을커튼삼아자신의방에짙게드리워진불행의그림자를가리고자한다._120p

기괴할정도로살의와적의뿐인세계,
우리안의숨쉬는‘제로’의이야기

‘나’는모든것이찰나로스쳐지나가는도시에서‘아무도죽지않는사냥’,그리고‘피가없는전쟁’을계속해나가며이세계의공허함을폭로한다.인생은영원히되풀이될수밖에없는포식과피식의과정일뿐이며,‘세간의소문과는달리교훈으로이루어져있지않다’고선언하는‘나’는이세계의무의미함과가치없음을깨닫게하는‘맹독성의구원자’이다.김사과소설의특성이독자들을작품속세계에깊숙이끌어들여독자로하여금작품내외의경계를허무는것인만큼우리는김사과의『0영ZERO零』을통해지금우리가살고있는이불온한세계를,다시금낯설게인지하게될것이다.

줄거리
‘나’는남자친구성연우에게서이별통보를받는다.4년남짓한교제기간동안‘나’의무책임하고이기적인행위들로인해겪어온괴로움을토로하는그앞에서나는커피숍안의다른손님들을,그리고방금커피숍으로들어선남자를의식하고있다.마치사람들이관객처럼자신과성연우의이별상황을관망하고있는듯하지만이모든상황을본인이설계했다는견자見者적인식으로세상을받아들이며결백한여자친구역할을완벽하게수행한다.
이런방식으로‘나’의삶은이루어진다.누군가를잡아먹지않으면잡아먹힌다는식인食人의세계관을지닌‘나’는사소하고은밀한방식들로주위사람들의삶을하나둘씩몰락시켜나간다.추락이더욱완벽할수있도록과도하게타인의위상을드높이고,타인의불행을커튼삼아자신의불행을가리며,마치장난감을가지고놀듯타인을가지고놀다가흥미가떨어지면밖으로치워버린다.암,자살,강제입원등하나둘씩몰락해가는주위사람들의모습을보며‘나’에게남은것은‘그렇다면나는어떻게살아남을것인가,누구를잡아먹을것인가’하는질문이다.
그러던어느날,헤어진남자친구성연우에게‘나’는전화를한통받는다.‘나’가타인을향한협잡을어떻게꾸며왔는지,세상을향해내보이는순진무구한태도가얼마나인공적인지,‘나’의정체가,실체가무엇인지간파한듯그간‘나’가꾸며온악행을폭로하는그의발화사이로어디선가목소리가들려온다.“하나하나차근차근따져보라구.네가성연우를가지고논것같아,아니면그반대인것같아?”그리고내앞에‘나’의사냥감이었던박세영이나타난다.‘나’의완벽한희생자로서이미치워버린줄알았던박세영이악마의형상으로눈앞에나타나자‘나’는가면을내려두고내면의악을마구쏟아내기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