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 소설, 잇다 1 (양장)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 소설, 잇다 1 (양장)

$15.00
Description
‘소설, 잇다’의 첫 번째 책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백신애와 최진영,
시대를 넘어 이어나가는
여자들의 사랑의 실험
‘소설, 잇다’의 첫 번째 책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가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소설, 잇다’ 시리즈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시, 또 함께’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강경애, 나혜석, 백신애, 지하련, 이선희 등 근대 대표 여성 작가들의 중요 작품을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현대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변주함으로써, 근대 여성 작가의 마땅한 제 위치를 찾아내고,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현대 작가가 어떻게 그 궤적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확인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서는 백신애 작가와 최진영 작가의 소설을 담았다.
백신애는 식민지 조국을 떠나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방황하는 실향민들을 그린 「꺼래이」(1934), 현모양처의 삶을 살았음에도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인의 심정을 담아낸 「광인수기」(1938), 「아름다운 노을」에서는 소년을 사랑하는 화가를 통해 여성의 애욕을 그려내는 등 민중의 궁핍한 삶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여성의 능동성을 금기하는 사회적 억압을 의문시하는 데까지 다양한 문제에 걸쳐 있었다.
최진영은 제13회 백신애문학상 수상자로 여성, 비정규직, 실업 청년 등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왔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15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비롯해, 죽은 연인의 몸을 먹는 애도의 방식을 통한 처절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구의 증명』)와 친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여성의 일기(『이제야 언니에게』) 등을 통해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이 자기 삶을 찾아가며 끝까지 살아내는 방식을 그렸다.

이 책에 실린 백신애의 소설 「광인수기」(1938), 「혼명에서」(1939), 「아름다운 노을」(1939)은 작가의 생애 마지막에 쓴 후기 주요 작품으로, 실제로 이혼과 고통스러운 투병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발표된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전향 지식인의 부인으로서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며 미쳐버린 여성이거나, 가부장제 가족제도로부터의 탈피를 부르짖는 이혼한 신여성이거나, 13세 연하의 소년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예술적 욕망으로 치환하려는 화가이다.
표제작인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서 최진영은 백신애가 백 년 전에 제기했던 여성 억압의 문제를 “사랑이 주는 다정함과 위안, 설렘과 따뜻함”으로 풀어낸다. 이번 소설에서 그는 백신애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강렬한 정념에 이끌리는 사랑이 아닌 “서서히 사로잡히는” 사랑을 그린다. 사십 대 여성과 이십 대 여성의 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금지된 욕망’도 ‘파격적인’ 무엇도 아니기에 “가장 편안하고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두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은 백신애가 살던 백 년 전과 동일하게 21세기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여성을 비롯하여 소수자를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분노와 공포”와 멀리 있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사랑은 “직장과 가정이 주는 피로감” 안에서 나를 나이게 하는 자유로운 순간이 되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 안에서 ‘반짝 빛을 내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백신애가 선택했던 사랑의 ‘정체’와 최진영이 선택한 사랑의 ‘힘’이, 그리고 두 사람이 그려낸 ‘사랑의 연대’가 “천천히,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며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저자

백신애,최진영

1908년경북영천에서태어났다.집과향교에서한학을공부하다가영천공립보통학교4년과정을졸업하고,경북사범학교강습과를나와2년동안교사로지냈다.1926년교사시절,북풍파인‘경성여자청년동맹’‘조선여성동우회’에가입하여비밀리에여성운동을한것이탄로나권고사직을당하고서울로올라가여성운동에뛰어들었다.1929년조선일보신춘문예에필명박계화(朴啓華)로「나의어머니」를발표하면서등단했고,신춘문예첫여성작가라는기록을세웠다.결혼후경산군반야월의과수원에기거하면서본격적으로작품을발표했다.이때체험한가난한농민들의생활이「복선이」(1934),「채색교(彩色橋)」(1934),「악부자(顎富者)」(1935),「식인(食因)」(1936)등의바탕이되었다.식민지조국을떠나만주와시베리아에서방황하는실향민들을그린「꺼래이」(1934)와현모양처의삶을살았음에도미쳐버릴수밖에없었던여인의심정을담아낸「광인수기」(1938)를포함해5년남짓한기간동안소설20여편과수필및기행문등30여편의작품을남겼으며,1939년6월23일췌장암으로세상을떠났다.주요작품으로는『꺼래이』,『채색교』,『적빈』,『악부자』,『소독부』를비롯해소설22편,수필,기행문등33편을남겼으며2008년고향영천에문학비가세워지고‘백신애문학상’이제정되었다.

목차

이책에대하여

백신애
소설
광인수기
혼명에서
아름다운노을

최진영
소설
우리는천천히오래오래
에세이
절반의가능성,절반의희망

해설
미친여자들의사랑의실험_이지은(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이제내몸에서삶의먼지를활활털고
쉬지않고달려가리다”
백신애에게‘자유’이자‘신념’이자
‘예술혼’이었던,사랑

「광인수기」는광인(狂人)이넋두리를풀어내는형식으로서술된다.비가쏟아지는날자신의팔자를한탄하는주인공‘나’는동경유학을다녀온남편을두고“교묘하게이론만갖다붙여서그저합리화하려고만하는재주만늘어”간다고비판한다.광인과비광인의어투를오가는‘믿을수없는화자’인‘나’는남편의불륜현장을급습한대가로정신병원에감금되어사회와격리되었다가‘탈출’한다.그럼에도화자가돌아가는곳은,남편에의해빼앗긴아이들이있는‘가정’이다.

「혼명에서」의주인공‘나’는이혼을통해“평화와안심”을얻게되었지만,가족들은조용히근신하며여성으로서의명예를회복시키기를요구한다.‘나’에게그들이보이는관심과보호는외부와자신을차단시킬압박일뿐이며,또한구속이다.‘나’는결국집을떠나S를처음만나게되는데,그는‘나’에게신념과정체성을찾도록인도자역할을한다.하지만곧S의부고가들려오고,‘나’는그에게보내는마지막편지를쓴다.

작가사후에발표된유작인「아름다운노을」에서순희는아들또래의소년정규를연모하고있지만이를인정하기를거부한다.게다가아들석주는손이없는시댁에양자로보냈으며,따라서순희는친정의대를이을아들을다시낳아야한다.소년은정혼자가아들처럼키운친동생이다.가부장제에종속된자신의처지와소년에대한사랑을예술적욕망으로치환하려는순희는자신의감정을토해내려다가도아들의목소리가귀에들리는듯싶다.

“내가좋아하는사람이나를보고웃는것.
비슷한마음으로서로를바라보는것.”
평범한일상속에서반짝빛을내는사랑의순간

최진영의소설「우리는천천히오래오래」의이십대취준생인‘나’는낮엔도서관에서공부를,저녁엔편의점과펍에서아르바이트를한다.‘나’는미래를위해최선을다하고있으면서도불안감이수시로찾아든다.‘내가원하는건취직,월급,적금,월세에서전세로.근데그런건삶의기본조건아닌가?’하고자문하면서.그리고‘나’는편의점에서아르바이트를하던중에순희를만난다.무례한한남자손님때문에곤란을겪고있을때순희는말을거들어도와주었다.그날순희는딸의가출한친구의행방을수소문하고자편의점에들렀었다.그뒤‘나’는순희와또한번의우연한만남을갖는다.주말아르바이트장소인펍에서였다.우체국을다니는순희는퇴근후펍에서맥주를한잔씩하곤했다.거기서‘나’와순희는통성명을하고서로의이름을부르며음악이나영화,잠자기전하는생각등에관해이야기를나눈다.‘나’는자기말에웃음을터뜨리는순희를,간간이생각에골몰한표정을짓는순희를보면서‘매혹’이라는단어를떠올린다.그것은“서로를뚫어져라바라보며무언가”를전하려는순간이었다.그날이후그순간은내내‘나’의의식을휩싸고,그렇게‘나’는“순희씨를기다리는사람”이된다.

백신애와최진영이선택한
‘사랑의연대’가우리곁에서
“천천히,오래오래”이어지기를

최진영작가의소설「우리는천천히오래오래」의주인공은우체국을다니는사십대‘순희’와취준생인이십대여성청년‘정규’다.두주인공의이름과나이차이등은백신애의「아름다운노을」에서가져왔으나,「광인수기」와「혼명에서」에서착안한듯한설정도엿보인다.순희와정규는「광인수기」의‘나’와같이현실의모순을거침없이폭로하기도하고,「혼명에서」에서‘나’가‘S’와의반복되는세번의우연한만남으로흠모의마음을품게되는것처럼,이들또한세번의만남을통해서로를향한이끌림을확인한다.다만최진영작가는「아름다운노을」에서와같이강렬한정념에이끌리는사랑이아닌“서서히사로잡히는”사랑을그린다.

최진영작가는이번작업에대한소회를담은에세이「절반의가능성,절반의희망」에서1938년에발표한「광인수기」의여성화자를두고시간적배경을현대로바꾸어도전혀이질감이없을것같은인물이었다고말한다.작가는소설도입부에나오는문장인“나를영사람으로여기지않더라”에여러번밑줄을그으면서“현재에도어떤자들에게여성은사람이아닙니다.여성을무시하고억압하려는자들은여전히있습니다”라고덧붙인다.그럼에도최진영은포기하지않고글을쓸수있었다.백신애를비롯한많은여성작가들이앞서글을써주었기에,현재에도여전히소설을읽고공감하는누군가가있기에.그리고그것은‘기적’이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