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내몸에서삶의먼지를활활털고
쉬지않고달려가리다”
백신애에게‘자유’이자‘신념’이자
‘예술혼’이었던,사랑
「광인수기」는광인(狂人)이넋두리를풀어내는형식으로서술된다.비가쏟아지는날자신의팔자를한탄하는주인공‘나’는동경유학을다녀온남편을두고“교묘하게이론만갖다붙여서그저합리화하려고만하는재주만늘어”간다고비판한다.광인과비광인의어투를오가는‘믿을수없는화자’인‘나’는남편의불륜현장을급습한대가로정신병원에감금되어사회와격리되었다가‘탈출’한다.그럼에도화자가돌아가는곳은,남편에의해빼앗긴아이들이있는‘가정’이다.
「혼명에서」의주인공‘나’는이혼을통해“평화와안심”을얻게되었지만,가족들은조용히근신하며여성으로서의명예를회복시키기를요구한다.‘나’에게그들이보이는관심과보호는외부와자신을차단시킬압박일뿐이며,또한구속이다.‘나’는결국집을떠나S를처음만나게되는데,그는‘나’에게신념과정체성을찾도록인도자역할을한다.하지만곧S의부고가들려오고,‘나’는그에게보내는마지막편지를쓴다.
작가사후에발표된유작인「아름다운노을」에서순희는아들또래의소년정규를연모하고있지만이를인정하기를거부한다.게다가아들석주는손이없는시댁에양자로보냈으며,따라서순희는친정의대를이을아들을다시낳아야한다.소년은정혼자가아들처럼키운친동생이다.가부장제에종속된자신의처지와소년에대한사랑을예술적욕망으로치환하려는순희는자신의감정을토해내려다가도아들의목소리가귀에들리는듯싶다.
“내가좋아하는사람이나를보고웃는것.
비슷한마음으로서로를바라보는것.”
평범한일상속에서반짝빛을내는사랑의순간
최진영의소설「우리는천천히오래오래」의이십대취준생인‘나’는낮엔도서관에서공부를,저녁엔편의점과펍에서아르바이트를한다.‘나’는미래를위해최선을다하고있으면서도불안감이수시로찾아든다.‘내가원하는건취직,월급,적금,월세에서전세로.근데그런건삶의기본조건아닌가?’하고자문하면서.그리고‘나’는편의점에서아르바이트를하던중에순희를만난다.무례한한남자손님때문에곤란을겪고있을때순희는말을거들어도와주었다.그날순희는딸의가출한친구의행방을수소문하고자편의점에들렀었다.그뒤‘나’는순희와또한번의우연한만남을갖는다.주말아르바이트장소인펍에서였다.우체국을다니는순희는퇴근후펍에서맥주를한잔씩하곤했다.거기서‘나’와순희는통성명을하고서로의이름을부르며음악이나영화,잠자기전하는생각등에관해이야기를나눈다.‘나’는자기말에웃음을터뜨리는순희를,간간이생각에골몰한표정을짓는순희를보면서‘매혹’이라는단어를떠올린다.그것은“서로를뚫어져라바라보며무언가”를전하려는순간이었다.그날이후그순간은내내‘나’의의식을휩싸고,그렇게‘나’는“순희씨를기다리는사람”이된다.
백신애와최진영이선택한
‘사랑의연대’가우리곁에서
“천천히,오래오래”이어지기를
최진영작가의소설「우리는천천히오래오래」의주인공은우체국을다니는사십대‘순희’와취준생인이십대여성청년‘정규’다.두주인공의이름과나이차이등은백신애의「아름다운노을」에서가져왔으나,「광인수기」와「혼명에서」에서착안한듯한설정도엿보인다.순희와정규는「광인수기」의‘나’와같이현실의모순을거침없이폭로하기도하고,「혼명에서」에서‘나’가‘S’와의반복되는세번의우연한만남으로흠모의마음을품게되는것처럼,이들또한세번의만남을통해서로를향한이끌림을확인한다.다만최진영작가는「아름다운노을」에서와같이강렬한정념에이끌리는사랑이아닌“서서히사로잡히는”사랑을그린다.
최진영작가는이번작업에대한소회를담은에세이「절반의가능성,절반의희망」에서1938년에발표한「광인수기」의여성화자를두고시간적배경을현대로바꾸어도전혀이질감이없을것같은인물이었다고말한다.작가는소설도입부에나오는문장인“나를영사람으로여기지않더라”에여러번밑줄을그으면서“현재에도어떤자들에게여성은사람이아닙니다.여성을무시하고억압하려는자들은여전히있습니다”라고덧붙인다.그럼에도최진영은포기하지않고글을쓸수있었다.백신애를비롯한많은여성작가들이앞서글을써주었기에,현재에도여전히소설을읽고공감하는누군가가있기에.그리고그것은‘기적’이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