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엄숙한 얼굴 - 소설, 잇다 2

제법 엄숙한 얼굴 - 소설, 잇다 2

$16.00
Description
지하련과 임솔아가 함께 그려내는
인간의 가장 진실한 표정
외로움을 아는 사람의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얼굴 하나
‘소설, 잇다’의 두 번째 책 『제법 엄숙한 얼굴』이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소설, 잇다’ 시리즈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시, 또 함께’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제법 엄숙한 얼굴』에서는 지하련과 임솔아의 소설을 함께 실었다. 지하련은 1940년대 활발히 활동하며 식민지 지식인의 위선과 무기력을 지적인 언어로 분석하는 작품들로 당대의 주목을 받았으나, 임화의 아내이자 사상적 조력자로 좁게 해석되고 월북 이력으로 인해 우리 문학사에 충분히 기록되지 못한 작가다.
젊은작가상 대상, 문지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수상 작가 임솔아는 늘 우리 시대의 가장 치열한 질문을 쥐고서 특유의 단단한 언어로 우리 사회의 허위와 폭력을 직시해왔다. 임솔아가 일상의 작은 틈새를 담담하게 가리키는 동시에 그 균열의 근원을 좇아 탐구하는 방식과, 식민지 조선의 피폐를 끊임없이 관찰하면서도 기약 없는 절망이나 손쉬운 반성으로 빠지지 않았던 지하련의 회의는 서로 다른 시대임에도 매우 닮아 있다.

이 책의 실린 「결별」(1940) 「가을」(1941)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중심으로 가부장제의 모순과 억압을 예리하게 분석해내는 지하련의 작품 세계의 한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한편 「체향초」(1941) 「종매」(1948)에서 살펴볼 수 있는 지식인 혹은 전향자 ‘오라버니’와 ‘누이’의 구도는 실제로 그의 오빠들과 자신이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한 사실과 연관이 깊다. 그의 작품 속‘아내’와 ‘누이’는 지하련이 그러했듯 가부장제 속 여성으로서, 식민지하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매 순간 끊임없이 고민하는 인물들이다.
임솔아의 소설 「제법 엄숙한 얼굴」의 제목은 「체향초」에서 가져온 것으로, 무기력한 지식인 오라버니와 대비되며“남성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태일이라는 지식인 청년의 인상을 주인공인 삼희가 묘사하며 등장하는 표현이다. 임솔아는 지하련이 예리하게 분석해낸 식민지 지식인 남성의 허위의식과 오늘날의 남성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약간의 다름과 미묘한 같음”(임솔아 에세이)에 주목하여 과거와 비교해 보다 교묘해지고 겹겹의 구조를 이루게 된 차별과 폭력의 양상을 소설 속에 탁월하게 그려낸다.

지하련과 임솔아는 모두 현실의 모순과 억압을 직시하면서도 비관에 머물지 않고, 소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움이 무엇일지 궁리하며 계속해서 움직여왔다. 지하련과 임솔아가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출발해 만들어낸 이 처음 만나는 길 위에서 우리가 새로운 길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자

지하련,임솔아

본명이현욱(李現郁).지하련은이선희ㆍ최정희와함께1940년대여성문학의한축을담당한작가로,임화의두번째부인으로도알려져있다.평론가백철(白鐵.1908~1985.)의추천으로[문장]에단편「결별」을발표하며등단하였는데,백철은이작품을두고참신하고도능숙한작품이며“능히당대문단수준을육박하고넘칠것”이라평했다.지하련은작품활동기간은길지않았지만,「체향초」「가을」「산길」등의작품에서젊은남녀의미세한감정의움직임을섬세하게묘사함으로써작가로서의개성을확고히했다.1946년에조선문학가동맹의기관지인[문학]창간호에발표한단편「도정」은해방직후의소란스러운공간속에서한양심적인지식인이느끼는소회와,사회적모순을앞두고갈등하는내면을그려낸작품이다.당시조선문학가동맹이선정한제1회조선문학상을수상했으며,이태준의『해방이후』와함께1945년이후한국사회의모습을증언하는주요한작품으로평가된다.1947년임화와함께월북하였으나1953년임화가숙청된후행방이묘연해졌다.1960년평안북도희천부근의교화소에서병사한것으로추정된다.

목차

지하련
소설
「결별」
「체향초」
「가을」
「종매」

임솔아
소설
「제법엄숙한얼굴」
에세이
「약간의다름과미묘한같음」

해설
가장깊은사랑,가장깊은사람_박혜진(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후회하지않는얼굴……싸늘히밝은눈으로행위했고
그눈으로내일을피하지않는얼굴”
지하련의누이와아내들이똑똑히말하는
사랑의긍지,이념의고독

지하련의「결별」은기혼여성형예가친구정희의결혼식축하연에서보내는하루를중심으로이야기가펼쳐진다.남편과다툰이후자신이그를사랑하지않는것인지의심하던형예는결혼으로들뜨고순수한성격의정희와예의바르고차분한면모를지닌그의남편과어울리며우정과사랑의아름다움을떠올리는동시에결혼제도의모순과가부장제의억압을느끼게된다.늦은밤집으로돌아온형예는일방적으로소통을차단하는남편에게모멸감을느끼며내면에서진정한‘결별’을이루게된다.
「체향초」는주인공삼희가요양차고향의오라버니의집에머물며오라버니와오라버니의친구태일을관찰하게되는이야기다.오라버니는낙향해농사를짓는인물로세상을등진지식인혹은전향한사회주의자로보인다.삼희는그에게“생활표정”이보이지않는다고느끼며좌절한지식인으로서의무기력과패배의식을감지한다.태일이라는청년은오라버니가흠모하는지식인으로“생명과,육체와,또훌륭한‘사나이’란자랑”을지녔다는오라버니의평과같이,무기력한오라버니와대비되는특성을지닌인물이다.그자신도지식인인삼희는두남성을곁에서주의깊게관찰하며당대의식민지지식인들의위선과모순을예리하게통찰하고이를넘어설새로운가능성에대해고민한다.
「가을」은친구의남편석재를사랑하는정예의이야기가석재의시점을통해전개되는소설이다.병으로아내가세상을떠난이후,석재는오랜만에찾아온정예를만나지난날을회상한다.정예는아내의가장친한친구였지만석재에게만남을청하는등의행동으로아내가세상을떠나기전일종의연적으로여겨지기도했으며,또다른복잡한연애관계에대한풍문등으로인해석재에게는병적으로고백을일삼는“고백병”을지닌불쾌한인물로여겨진다.그러나석재는“후회하지않는얼굴”을하고서그에게자신의진심을솔직히이야기하는정예를대면하게되면서정예의용기와긍지,그리고자신의편견에대해새롭게생각하게된다.
「종매」에는병을앓고있는철재라는화가와그와함께생활하게된세명의지식인청년이등장한다.유학을중단하고고향으로돌아오게된석희는사촌여동생정원의부탁으로사찰에서철재를간호하며셋이서함께생활하게된다.이후석희의유학시절친구이자야망을지닌청년인태식이절에합류한다.작은암자에서생활하는병든철재,큰절에서생활하며화려함을지향하는태식,그리고이둘사이를오가는석희와정원은무기력하면서도언제무너질지모르는긴장감을지닌“어떤공동한생활분위기”를형성한다.소설은이념과가치에대한공통된지향없이오로지연민으로만이어진이들의공동체를통해좌절하고무기력한지식인집단을환기시키며계속해서방황하는석희를중심으로성찰을요구한다.

“저인간은외로움조차모르는것이다.
영원히결단코모를것이다.”
임솔아의단단한질문이응시하는겹겹의모순과위선

임솔아의「제법엄숙한얼굴」은「체향초」를중심으로지하련의소설속인물들이지닌다양한얼굴들을담고있다.강릉에서에어비앤비청소와카페아르바이트를하는중국동포영애는국적을이유로일터에서계속해서차별을당하자말투를교정해한국사람처럼보이도록말하고행동한다.카페사장제이는자신이호주에서인종차별을받은경험을이유로카페창업당시부터중국동포를고용해야겠다고계획세우고영애를고용한인물이다.제이는“당당하게자신의언어로말하고,정당한임금을받는경험이필요”하다고말하며,표준말을쓸수있는영애에게채용조건으로연변말로서빙을할것을요구한다.또다른인물인수경은카페협력업체직원으로제이의요구로매일카페로미팅을나와제이가자랑과우울을‘토로’하는것을들으며고통을겪는다.어느날영애는수경으로부터미팅시간에일부러사무실로들어와달라는요청을받는다.영애는제이가외로움을털어놓는순간의모습을목격하고싶다는생각에이에흔쾌히응하고제이의우울에대해상상하며자신이지금껏일을하며들어야했던자랑과모욕들을떠올리게된다.
제법엄숙하지만결코진정한외로움에대해서는알지못하는제이의얼굴에서우리는「체향초」의오라버니와태일이반복해서보여주는허황된자랑그리고그뒤에오는씁쓸한열패감을읽어낼수있다.임솔아와지하련은모두이들의모순적인내면을세밀하게묘사하는데그치지않고,인물들이그러한표정을짓게될수밖에없는차별적구조와폭력의근원을파고든다.우리는이들의소설을읽으며수많은맨스플레인,자랑과모욕들을차례차례연상하는동시에모순되면서도진실한얼굴과도같은현실을찬찬히마주하게된다.

“그곳이어디든,지하련작가가더는
어느‘그늘’에가려진곳에있지않기를”

지하련은마지막소설「도정」(1946)에이르러서는“국내에서발흥한민주주의운동에있어서의양심의문제를취급한거의유일한작품”(‘해방기념문학상’후보작심사평)이라고높은평가를받는작가였지만,오랜시간잊혀왔다.임솔아는수록에세이「약간의다름과미묘한같음」에서“한명의작가가그늘에가려진다는것은개인의문제가아니”며그의글을읽지못하는독자에게까지그늘이함께드리워진다고말한다.이제우리는임솔아와함께지하련의소설을,그가“‘그늘’에가려져있던시간”까지함께기억하며만날수있다.오랫동안임화와월북문인이라는그늘에가려져왔지만,우리는지하련의소설속끊임없이고민하는인물들의표정을통해엄혹했던일제말기,해방정국에서신념을지키기위해저항하고또좌절하기를반복했을지하련의떳떳하고맑은얼굴을떠올릴수있다.이제다시,지하련은과거속에서그늘진채잊혀온작가인동시에스스로지켜낸아름다움만으로형형히빛나며끊임없이새롭게읽힐미래의작가다.

추천사

임솔아소설에등장하는인물들의얼굴에서우리는앞서읽은네편의소설에등장하는인물들의얼굴을다시조우하게된다.1940년대에쓰인얼굴들에비하면훨씬복잡한맥락과그럴듯한명분이있지만맥락과명분아래에는80년동안더교묘해진얼굴이숨겨져있다.(…)사랑없는이념은공허하고이념없는사랑은부박하다.쉽게공허해지고그보다쉽게부박해지는것이인간의삶일진대,사랑이동반된이념을실천하고이념을잊지않은채사랑하기위해지하련은우리에게“가장독립한인간”이될것을요청한다.그에게가장독립한인간이란스스로가허락하지않으면결코타협하지않는인간이었다.사랑에있어서도,사람에있어서도._박혜진「가장깊은사랑,가장깊은사람」(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