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과 박서련의 - 소설, 잇다 6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과 박서련의 - 소설, 잇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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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창작 기간 60년, 한국 여성문학사상 가장 오랜 활동을 한 박화성과
폭넓은 스펙트럼의 서사와 상상력을 지닌 박서련 작가가 만나다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 김명순이 데뷔한 지 한 세기가 지났다. ‘소설, 잇다’는 이 시점에서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백 년 시공을 뛰어넘는 만남을 통해 한국문학의 또 다른 근원과 현재를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그 여섯 번째 책으로,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오랜 시간 활동해온 여성 작가인 박화성과 장르와 형식을 넘나들며 새로운 서사와 상상력을 선보여온 박서련의 작품을 담은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가 출간되었다. ‘소설, 잇다’는 강경애와 한유주, 나혜석과 백수린의 소설들을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1932년 《동아일보》에 『백화』를 연재하면서 한국 문학사상 최초로 장편소설을 쓴 여성 작가로 기록된 박화성. 그는 데뷔작 「추석전야」를 비롯해 「하수도 공사」, 「홍수전후」 등을 통해 노동자와 민중, 여성 들이 억압받는 부조리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근대 한국문학의 출발점에 큰 시사점을 던진다”는(김주연 평론가) 평을 받은 작가다. 선구자적 면모를 지녔지만 당시 문단은 그에게 ‘여류작가’라는 굴레를 씌웠는데 그럼에도 그는 사회적 역사적 약자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높였으며, 온전히 ‘작가’로 바로서기 위해 많은 한계와 장벽에 맞서 싸웠다.
첫 장편 『체공녀 강주룡』으로 제23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전혀 다른 여성 서사”(서영인 평론가)라는 상찬과 함께 등장한 박서련은 역사소설, SF, 판타지, 청소년문학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자신만의 서사를 갱신해왔다. 매년 한 권 이상의 작품을 선보이는 왕성한 기량을 발휘해온 그는 최초의 고공농성 노동자 ‘강주룡’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것을 시작으로, 성폭력 가해자에게 응징을 가하는 청년 여성 ‘수아’(『마르타의 일』), 사랑의 연대를 실천하는 스무 살 ‘설희’(『더 셜리 클럽』), 욕망하는 주체로 구현한 삼국지의 미녀 ‘초선’에(『폐월; 초선전』)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여성 인물들을 선보였다.

박화성의 문학은 주로 해방 전과 해방 후로 나뉘는데, 이 책에는 해방 전 그가 가장 활발하게 집필하던 시기의 대표 중단편 「하수도 공사」(1932), 「홍수전후」(1934), 「호박」(1937)이 수록되어 있다. 세 편의 소설들은 모두 빈궁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가부장제라는 이중의 고초를 겪는 여성 인물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수도 공사」는 실업구제라는 명목하에 벌인 하수도 공사의 동맹파업을 다룬 작품으로, 노동자 대표 서동권의 애인인 ‘용희’를 통해 계급의식의 각성과 그로 인한 갈등 및 모순을 보여준다. 「홍수전후」에서는 35년 만의 대홍수로 목숨을 잃은 어린 딸 ‘쌀례’를 등장시켜 빈부격차에 비례하는 자연재해의 피해와 농민들의 참상을 드러낸다. 「호박」의 ‘음전’은 대흉년이 들어 시멘트 공장이 있는 객지로 내몰린 약혼자를 하염없이 기다리지만, 전해 온 것은 함께 떠난 약혼자의 형수가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박서련의 소설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는 박화성의 「하수도 공사」를 변주한 작품이다. 인문학 독서 동아리 ‘유독’의 회장인 진은 총여학생회의 재건이라는 포부를 안고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진의 레즈비언 애인인 림도 그를 적극 돕지만 선거 당선을 위해 둘의 관계를 비밀에 부쳐야만 하는 현실에 불만을 느낀다. 일제의 착취에 저항하는 동맹 파업이라는 「하수도 공사」의 “민족적 대의”는 이 소설에서 “총여학생회 재건”이란 화두로 옮겨지는데, 작품의 큰 문제의식은 “여성의 인권과 권리”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전청림 평론가) 그리고 소설은 박화성의 시대부터 대의명분 아래 배제해온 ‘여성’의 얼굴을, 퀴어를 벽장 속에 가두는 세계의 폭력성 안으로 옮겨 가면서 다시금 또렷이 비춘다. 백 년 전 박화성의 소설에서 거듭 묻고도 거듭 그 대답이 좌절되었던 식민지 청년 여성 용희의 질문은, 이처럼 박서련에게로 건너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재를 관통하는 물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저자

박화성,박서련

저자:박화성
1903년전남목포에서태어났다.1915년목포정명여학교를졸업하고서울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거쳐1926년일본여자대학영문학부에입학,수료했다.1925년춘원이광수의추천을받아《조선문단》에단편「추석전야」를발표하며등단했으며,1932년중편「하수도공사」를《동광》에발표하면서본격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일본유학시절부터집필해온『백화』는1932년6월부터11월까지《동아일보》에연재되었으며,여성작가최초의장편소설로기록된다.그밖에도『북국의여명』『고개를넘으면』『사랑』등장편17편과「비탈」「홍수전후」「한귀」「고향없는사람들」「호박」「휴화산」등중단편60여편을비롯해희곡,동화,수필,평론에이르기까지방대한작품을남겼다.예술원문학상,한국문학상,목포시문화상,은관문화훈장,삼일문화상등을받았다.1985년단편「마지막편지」「달리는아침에」를발표하고,1988년85세를일기로타계했다.이후박화성문학기념관이개관되고,『박화성문학전집』이출간되었다.

저자:박서련
철원에서태어났다.2015년《실천문학》신인상을받으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호르몬이그랬어』『당신엄마가당신보다잘하는게임』『나,나,마들렌』『고백루프』,장편소설『체공녀강주룡』『마르타의일』『더셜리클럽』『마법소녀은퇴합니다』『프로젝트브이』『카카듀』『폐월;초선전』,짧은소설집『코믹헤븐에어서오세요』,산문집『오늘은예쁜걸먹어야겠어요』등이있다.한겨레문학상,문학동네젊은작가상,이상문학상우수상등을받았다.

목차

박화성
소설
「하수도공사」
「홍수전후」
「호박」

박서련
소설
「정세에합당한우리연애」
에세이
「총화」

해설
물의시간과고요한약속_전청림(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박화성>

사회주의리얼리즘으로근대한국문학의시작을열다
박화성대표중단편「하수도공사」,「홍수전후」,「호박」

「하수도공사」는지도자적인물인서동권,수탈자인일본인관리와공사책임자들,피지배자인하수도공사노동자등세계층의인물들을중심으로이야기가진행된다.공사를청부받은일본인‘중정’은공사비의4할을먼저챙긴뒤교묘한방법으로노동자들의임금을착취한다.노동자들은계약된임금보다적은돈을받으며일했고그마저도석달이나밀리게된다.참다못한노동자들은서동권의지도를받으며경찰서로가서투쟁을벌이게되고결국밀린임금을받아낸다.동권은소련의지도자인부하린의서적을읽으며동료들에게유물사관이나계급의식을심어주려고하였으며,사상적스승인정과정의부인에게서정신적지원을받고있었다.한편동생의친구인용희와는서로사랑하는사이지만동권은사회변혁의이상을실현하고자떠날준비를한다.만일년만에하수도공사는완전히끝이나고,노동자들이서로헤어질때는이미동고동락의공동체의식을갖게된다.

「홍수전후」에서일곱식구의가장인송명칠(송서방)은소작인의아들로태어나나주영산강가에서어업과농업을하며근근이살아간다.사람의운수복력이다팔자소관이며천리란어길수없다고믿어온송서방은십사년간해마다장마철이면집이물에잠기는수난을당해왔다.이번홍수에도집에서벗어나화를피하라는친구들의권고를물리쳐버리고식구들을배에태워물빠지기만을기다리지만,35년만에든대홍수는집과곡식,가축과어린딸‘쌀례’마저집어삼키고만다.사흘을굶으며포플러나무에매달려가까스로목숨을부지하던식구들은명칠이‘불한당’이라비난했던아들윤성의친구들의도움을받아구출된다.명칠은이제야비로소농민들이처한현실에눈뜨며개혁의의지를다잡는다.

「호박」의음전은호박을간직하며객지에나간약혼자윤수를기다리고있다.울타리에나란히열린호박두개를보고긴것은윤수를,둥근것은자기를닮았다하여애지중지보관해온호박이다.윤수네가족은올해대흉년이들어함경북도고무산시멘트공장으로차출을갔는데,윤수도형네부부와함께고향을떠나게된것이다.음전과윤수는일곱달만서로떨어져지내다가내년에는꼭혼례를올리자고굳게약속한참이다.그러던어느날윤수에게서편지한통이오는데,평소병약했던윤수의형수가간지석달만에늑막염에걸려사망했다는소식이적혀있다.그동안길바닥에서취식하며지냈다는것을알게된음전은춥고낯선땅에서윤수가겪었을고통을떠올리며괴로워한다.제대로먹지도입지도못하는그에게셔츠를사서보내기로결심한음전은이제하나남은호박을꺼낸다.

<박서련>

“저요.저,할말이있어요.
정세에합하지않는연애같은건세상에없어요”
박서련,박화성의「하수도공사」를다시읽고쓰고상상하다

「정세에합당한우리연애」의대학생림은자신이보기에‘완벽한’여성인진의여자친구다.림과진은인문학독서동아리‘유독’의회원으로,림의선배이기도한진은동아리의운영을맡고있다.겉보기엔건전해보이는교내중앙동아리‘유독’.그러나모임은기실지난학기해산된총여학생회재건을위한것으로,진이동아리활동을기반삼아총학생회선거에출마하고,총학생회장이되어총여재건의안건을상정하겠다는것이그목표다.한편림은선거운동본부원및지지자를포섭하려과내소모임‘영상-문학연구회’에나가는등진의출마를적극돕는다.림은두사람의관계를동아리회원들에게밝히자고제안하지만,진은커밍아웃이선거의걸림돌이될지도모른다며망설인다.그리고돌아온독서토론의시간.대상작품인박화성의「하수도공사」에대한열띤의견이오가던중림은자신을향해서인지,진을향해서인지모를말을던진다.백년전쓰인소설에서실마리를찾아서.

「정세에합당한우리연애」는‘총여학생회재건’을위한비밀결사체와도같은대학교독서동아리를통해여성이면서퀴어인소수자를향한억압의양상을그려보인다.림과진을둘러싼현실의‘정세’는남자와의헛짓거리를막으려고통금시간을정한엄마,여성을성역화하는텍스트,레즈비언공표에따른사회적불이익등남성중심주의와이성애주의로가득하다.박서련은「하수도공사」에서용희가품었던의문을받아서,‘정세’란결코객관적인것이아니고가부장적가치판단의영역에있다는사실을일깨우며여성의삶을옭아매는차별과통제,배제의문제를짚고있다.

박화성과박서련,
백년의간극을넘어‘물의시간’으로공명하다

박화성은“여류로서는드물게사상성을띤작가”,“남성에게지지않는늠름한여유”라는평가들로작품성을인정받았지만‘여류작가’로만불리기를원치않았다.이책의해설을맡은전청림평론가는그의작품에대해서‘여성이쓰는계급문학’이라는인상아래서읽지않기란어렵다면서도‘그런데……여성과계급은그토록멀리떨어져있는것인가’하고묻는다.나아가그의작품은“안개처럼표표히싸여있는물의축축함”을지니고있으며,“계급과젠더,민족성이긴밀하게공명”하는“이채로운결”을보여준다고말한다.

계급의식의경향성을넘어,지극히내밀하면서도또한편사회와역사의물결에소용돌이치는인간사의지도를그려온박화성작가.박서련작가는박화성의소설에새겨진그섬세한‘결’에주목하며,백년이지난뒤에도우리의정세주위를흐르는“생의아이러니”를입체적으로형상화한다.그리고우리는공명하듯흐르는두물줄기의맑고선명한연속선상에서박화성과박서련의소설을새롭게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