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

바라건대

$16.80
Description
‘빈궁’의 극한으로 나아가며 근대 리얼리즘 문학을 개척한 강경애와
소설 쓰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온 한유주 작가가 만나다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 김명순이 데뷔한 지 한 세기가 지났다. ‘소설, 잇다’는 이 시점에서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백 년 시공을 뛰어넘는 만남을 통해 한국문학의 또 다른 근원과 현재를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그 일곱 번째 책으로, 근대 리얼리즘 문학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강경애와 실험적 글쓰기로 언어의 가능성을 탐색해온 한유주의 작품을 담은 『바라건대』가 출간되었다. 이번 책은 올해로 강경애 작가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되새겨볼 수 있어서 더욱 뜻깊다.
저자

강경애

1906년황해도송화에서태어났다.네살무렵아버지를여의고개가한어머니를따라장연으로이주했다.1921년평양숭의여학교에입학하고2년뒤동맹휴학에가담한관계로퇴학을당했으며,이후동덕여학교에편입하여약1년간수학했다.1924년잡지《금성》에‘강가마’라는필명으로작품을발표하고,1927년신간회에참여하면서여성독립운동단체근우회의장연지회간부로활동하기도했다.1931년《조선일보》에단편「파금」을연재하고,잡지《혜성》에장편소설『어머니와딸』을발표하면서문단에데뷔했다.이듬해간도로이주,잡지《북향》의동인이되었으며본격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1932년「그여자」,1933년「부자」「채전」을발표하고1934년《신가정》에간도이주민여성의빈궁한현실을그린「소금」을연재했다.8월부터는노동자계층의삶을통해인간다움을강조한장편『인간문제』를《동아일보》에연재했다.그밖의작품으로「모자」「원고료이백원」「지하촌」「마약」「검둥이」등이있다.

목차

강경애
소설
「소금」
「원고료이백원」
「지하촌」

한유주
소설
「바라건대」
에세이
「소금을머리에인여자들」

해설
희구의시선_소유정(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강경애에대하여
빈궁문학,간도문학의대표주자로일컬어지는강경애는식민치하궁핍에내몰린하층민노동자와여성의삶을사실적으로그려낸작가다.일찍이사회적모순과불합리를체감해온그는간도로이주하면서는,이주민의열악한환경속에서차별과소외를직접목격했다.이처럼강경애는여성,하층민,이주민이라는다중적경계에서글을쓰면서억압과착취의현실을작품속에서주로다루었다.「지하촌」을두고“한국어가감당할수있는가장대담하고도엄청난모험을처음으로시도한소설”(故김윤식평론가)이라는평을받았던것과같이,그의작품은소름이끼칠만큼핍진하게묘사하는것이특징이다.그러나단순히학대받고고통받는상황을보여주는데그치지않고시대적맥락에서입체적으로들여다보고이를타개해갈전망을제시하고있다.

강경애소설「소금」,「원고료이백원」,「지하촌」
강경애의문학은주로계급갈등과불평등의문제를다루고있는데수록작인「소금」(1934),「원고료이백원」(1935),「지하촌」(1936)에도이러한주제의식이잘나타나있다.세편의소설들에는모두식민지조선을살아가는하층민의삶이그려지는데,중편「소금」과「지하촌」에적나라하게드러난“불행과궁핍”은계급적·성적으로착취당하는여성의고통을극대화하고있다.「원고료이백원」은신문연재소설고료로받은이백여원의용도를논의하다가남편과다투게된일의내막을밝히는자전소설로,개인의욕망과공동체적대의의대립속에서현실에대한올바른자각의중요성을일깨우는작품이다.

◎한유주에대하여
한유주는기존의서사에서벗어난새로운언어와형식을탐구하는작가다.대학재학중첫습작이었던「달로」로《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을받으며놀라운등장을알린그는“이야기과잉시대에(…)이야기자체의진실성을정면으로문제삼고있는소설”(한국일보문학상심사평),“새로운문체를창출하고한국어의표현가능성을확장”(김현문학패심사평)했다는평가와함께독보적인문학적행보를보여왔다.주체도,시점도,사건도무화된『얼음의책』부터‘쓰고지우기’를끊임없이반복하고상술하는『연대기』에이르기까지서사와비서사,현실과상상,주체와타자의경계가흐려지는새로운형식을통해소설쓰기란무엇인지,나아가인간에게‘쓴다’는행위는무엇인지꾸준하고일관되게탐색해오고있다.

한유주소설「바라건대」
한유주의소설「바라건대」는강경애의「소금」을읽고떠올린“그간목격해온짐진여자들”을중심으로,금요일저녁도심의정경을세밀하게그리고있다.저녁6시57분부터9시5분에이르는두시간여동안의한강이남지역을배경으로하는이소설은일견개연성없는장면들의나열같지만각이야기의중심화자들은시간과공간을공유하며‘겹침’의순간을갖는다.이처럼소설이하나의인물이이끄는서사를통해진행되지않고,여러인물들의“우연한마주침”으로이루어진까닭은그들각각의서사가“미미”해보일지라도“그것들이모여또하나의서사”를만들어낸다는사실때문이다.이때개인은‘여러겹으로이루어진역사적주체’가된다.(소유정평론가)이러한‘겹침’과‘우연’을통해한유주는강경애시대여자들과의백년간극을이어가며‘지금여기’에있는여자들의서사로펼쳐보이고있다.

〈강경애〉

암울한시대를통과하며“불길”같은메시지를전하다
강경애대표중단편「소금」,「원고료이백원」,「지하촌」

「소금」은간도이주민여성의비참한삶을그려낸중편소설이다.봉염이가족은빚에쫓겨만주로건너가중국인지주팡둥의소작농으로생계를이어가지만날마다중국군대보위단에게위협을당하고자위단의수탈에도시달린다.그러던중남편이공산당에게죽임을당하자큰아들봉식마저집을나가버리고,결국팡둥의집에기거하게된봉염어머니는그에게겁탈을당해임신하게된다.막달이다가오던날,팡둥은봉식이공산당이라는이유로처형당했다고말하며이들을매몰차게내쫓는다.봉염어머니는차라리아기를낳아죽일생각을하다가도이내모성애를느끼며살아야겠다고다짐한다.이후봉염어머니는‘젖유모’로돈벌이를하지만,열병에걸린아이들은오지않는어머니를기다리다죽고만다.봉염어머니는자식을다잃고도일신이나마보전해야겠다는생존욕구를느끼며몸서리친다.마침내소금을밀수하기위해길을나서는데,무거운소금을이고돌아온그에게들이닥친것은관염(官鹽)을증명하는‘소금표’를내놓으라는순사의호령이다.

「원고료이백원」은자전소설로졸업을앞둔동생K에게쓰는편지형식의작품이다.‘나’는신문연재장편고료로받은이백원을어떻게사용할지고심하며생활고로힘들었던지난날을떠올린다.학창시절동무의필기구를훔쳐‘도적년’이라놀림받던일,남편친구의아내가신던구두를받고설움을삼키던일등등.그러나이돈으로가난과질병에고통받는친구를돕자는남편을향해‘나’는울분을터뜨린다.결국문밖으로쫓겨난‘나’는자신의처지와도리를자각하고동지의생명을구하는일이얼마나“떳떳한일”인지깨닫는다.이처럼‘나’는K에게원고료이백원을둘러싼곡절을들려주며고향을떠나유랑하는군중과굶주린무산대중을결코잊지말것을당부한다.또한지금은사사로운이상에서벗어나“실천으로말미암은참된지식”을얻어야할때라면서지식인으로서갖추어야할태도를강조하며편지를마친다.

「지하촌」에서주인공칠성은어릴적경풍을앓아다리가성치않은장애인으로동냥으로생계를이어나간다.아버지를일찍여읜그는갖은수모를당하면서도동냥을계속하고어머니역시해산한이튿날에도일을하지만궁핍한생활은나아지지않는다.칠성이흠모하는큰년이네집도형편이다르지않은데큰년이또한시각장애인으로가난때문에어느장사꾼의첩으로시집을가게된다.이렇듯지하촌사람들은노동으로는극복할수없는극한의빈곤속에서장애를지니고살아가고있지만,본래그렇게태어난것이아니라가난으로인해병을앓다제때치료받지못한까닭이다.칠성은혼사를막고자큰년의옷감을끊으러읍에가게되고,자신처럼다리를저는걸인을만난다.그는칠성에게“우리가왜이꼴이되었는지알아야하지않”느냐고역설하는데,돌아와보니마을은폭우에둑이터져난리가나고큰년은이미시집간뒤다.칠성의눈앞에펼쳐진지하촌의세계는더욱생경하면서도참담하게다가온다.


〈한유주〉

“소금을머리에이고온생의무게를감당해야하는여자들”
그때보다지금은과연괜찮은삶인가,
한유주,강경애의「소금」을현대적으로재해석하다

「바라건대」에서눈에띄는것은화자들의“지켜봄”,즉‘시선’이다.그것은단순히관찰에만머물지않고적극적인‘관심’과‘개입’으로까지나아가기도한다.예인에서인화로화영으로영경으로,경미에서미아로이어지는장면속에서화자들은어떤대상또는풍경을바라보거나그자신또한대상또는풍경이되기도한다.정확한나이도직업도알수없는그들에게“사건”이나“사태”라할만한것은다만기억속에서발생한것으로,현재상황에서일어나는것은아니다.그러나‘기억’을통해누군가는십여년전어느여름날연인의이별통보를환기하고,누군가는빛바랜잡지를보다심장이세게뛰는신체적반응을경험한다.기억은지나간것에머물지않고현재를파고들며또다른‘여자들’을비춘다.
커다란짐가방에몸을기댄채벤치에서잠든여성을지켜보는이가있는가하면,또다른이는이십여년전지하철에서헤매던한소녀를떠올리며회한에잠긴다.그리고“이제다른삶을꿈꾸기에는너무늦었”다고중얼거리는누군가는무거운가방을든여자를돕겠다고나선다.한쪽이처진여자의어깨가마치“온인생을담은것처럼”무거워보였기때문이다.소설의시간이“동선위에동선,사람위에사람,무덤위에무덤”의모습으로흐르는것처럼,강경애의「소금」에서불러온‘짐진여자’들은그렇게‘금요일저녁한강이남지역’,즉현대의시공간으로옮겨진다.그리고소설은도심한복판에서언젠가지나쳤을‘동선’과‘사람’과‘죽음’들을가늠하면서우리를다음과같은질문으로이끈다.‘그때와지금은어떻게다른가’,‘그때보다지금은과연괜찮은삶인가’하고.


강경애와한유주,백년의시간을이어
‘지금여기’에서써내려간여자들의서사

해산한지얼마안되어차고뻣뻣한파뿌리를씹어먹는여인.중국인지주와일제의경찰에학대받고죽임을당한남자.먹은것이없어피똥을누는아기.다리를절고눈이먼사람들.모두강경애의소설속인물들이다.그러나절절하게그려진비극들이현재에도크게다르지않은모습으로,주변의멀지않은곳에서벌어지고있음을부정할수없을것이다.
한유주는「바라건대」를쓰고난후에세이에서“소금을머리에이고온생의무게를감당해야하는여자들”을많이생각했고,“그럴수밖에없었다”는소회를남긴바있다.강경애의소설을읽고다시금써내려간한유주의소설은이렇게묻고답한다.“미아는어디로가고있을까?누군가가미아의호위가되어줄까?알수없는일이다”라고.미아는등장인물중한명이지만,소설을읽는‘우리’를대입해볼수도있을것이다.우리가어디로가고있는지,누군가가우리의호위가되어줄지는알수없다.하지만우리는위태로운걸음을내딛는누군가를계속시야에담을수있고,혹시도움이필요한건아닌지물어볼수있을것이다.그것은“서로가서로의호위”가되어주기를바라는소설속인물들의‘바람’이자,어쩌면작가강경애와한유주가오래도록품어온‘바람’이라고이책은말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