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숭이들

벌거숭이들

$15.66
Description
조심스러우리만큼 예리하게 펼쳐낸 사람과 사람 사이, 그 관계 속의 민감한 역학!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 『벌거숭이들』. 불투명한 관계들 사이를 이리저리 떠돌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당혹감과 고독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거리낄 것 없이 당당한 벌거숭이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치과의사 모모를 둘러싼 주변 인물 간의 잔잔한 듯 격렬한 일상을 11월에서 시작해 2월, 5월, 8월, 9월, 11월, 그리고 이듬해 2월까지 그려냈다.

수더분하고 말 많은 아줌마인 줄로만 알았던 엄마가 사실은 인터넷상에서 ‘로잘리’라는 닉네임으로 로맨틱한 만남을 가져왔단 걸 알게 된 딸, 수십 년간 부부로 살아왔지만 단 한 번도 서로에게 진심으로 관심 가져본 일이 없었다는 걸 중년이 지나서야 깨달은 부부, 바람 상대에게 푹 빠져 오래 만난 약혼자에게 이별을 고했지만 바람 상대 또한 온전히 마음을 채워주는 애인은 될 수 없단 걸 알게 된 여자 등 어림잡아 열 명이 넘는 조연들은 단순히 주변인으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주인공 못지않은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등장한다.

남자 친구, 여자 친구, 절친한 친구, 부인, 남편, 엄마, 아빠…… 관계에 이름을 붙여 서로를 안전하게 규정하려 하지만 누군가를 완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고, 다 알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관계 속에서 모두 어떻게든 이리 엮이고 저리 엮여 살아가야 하기에, 엇갈림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저자는 섬세한 문장들로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심리를 깊이 파고들며 이름 붙일 수 없는 관계들에 대해 깊이 통찰한다.
작품 속에서 서로 무수히 얽혀 등장하는 인물들은 때로 가까운 사람의 낯선 얼굴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워하기도 하며 모두 어떻게든 엮여 살아간다. 언제든, 어떤 사이로든 변할 수 있기에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혼자가 될 수 있고 그렇기에 서로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부분’뿐이다. 저자는 이처럼 혼란스러운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진정 서로를 알았던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저자

에쿠니가오리

저자에쿠니가오리는청아한문체와세련된감성화법으로사랑받는에쿠니가오리는1964년도쿄에서태어나미국델라웨어대학을졸업하고1989년『409래드클리프』로페미나상을수상했다.동화부터소설,에세이까지폭넓은집필활동을해나가면서참신한감각과세련미를겸비한독자적인작품세계를구축하고있다.『반짝반짝빛나는』으로무라사키시키부문학상(1992),『나의작은새』로로보노이시문학상(1999),『울준비는되어있다』로나오키상(2004),『잡동사니』로시마세연애문학상(2007),『한낮인데어두운방』으로중앙공론문예상(2010)을받았다.일본문학최고의감성작가로서요시모토바나나,야마다에이미와함께일본의3대여류작가로불리는그녀는『냉정과열정사이Rosso』,『도쿄타워』,『언젠가기억에서사라진다해도』,『좌안1ㆍ2』,『달콤한작은거짓말』,『소란한보통날』,『부드러운양상추』,『수박향기』,『하느님의보트』,『우는어른』,『울지않는아이』,『등뒤의기억』,『포옹혹은라이스에는소금을』,『즐겁게살자,고민하지말고』등으로한국의많은독자들을사로잡고있다.

목차

11월
2월
5월
8월
9월
11월
2월

출판사 서평

섬세한문장들이능숙하게이끄는대로……
문학팬들의마음을춤추게할에쿠니가오리신작소설


2017년첫에쿠니가오리의신작이출간되었다.이책『벌거숭이들』은읽기조심스러우리만큼예리한책이다.사람과사람사이,다알것같으면서도어느순간생전처음보는사람처럼낯설게느껴지는관계속민감한역학을섬세한필치로그려냈다.등장인물하나하나의심리를깊이파고드는작풍이이번작품에서도역시빛을발한다.
11월에서시작해2월,5월,8월,9월,11월,그리고이듬해2월까지주인공인치과의사모모를둘러싼주변인물들간의잔잔한듯격렬한일상이펼쳐진다.어림잡아열명이넘는조연들은단순히주변인으로서만존재하지않고,주인공못지않은각자의스토리를가지고등장한다.특별한장치없이한인물의상황이끝나면한행을비운뒤다음사람이야기로바로넘어가는데,등장인물도많은데다일정한순서도없지만특별한설명없이도영상처럼자연스럽게머릿속에그려진다.
장면전환방식도주목해즐겨볼만하다.비오는날파스타소스냄새가공기중에섞여드는장면이끝난뒤에과자냄새가가득한차안에서대식구가떠들썩하게있는장면이시작되고,홀로흰쌀밥에간장을뿌려먹는은퇴한중년남자에서온통하얀스튜디오에서일하는젊은남자로시선이옮겨간다.같은음식냄새,같은색깔이라도확연히다른느낌이다.평화롭게만화책을읽다잠들어버린여대생의방에서불면증에시달리는중에낮잠에서불쾌하게깬나이든여자의방으로,목욕후젖은아버지의발에서비를맞아젖어있는딸의다리로,편의점샌드위치를먹고배가덜차마른미역을불려먹을까고민하는하숙생에서화이트와인과꼬치구이의조합을즐기는커리어우먼으로,유연하고능숙하게독자를리드한다.

우리는정말서로를알았을까?
이름붙일수없는관계들,그틈에서.


『벌거숭이들』속인물들은서로무수히얽혀등장한다.이들은때로가까운사람의낯선얼굴을발견하고혼란스러워하기도한다.이‘가까운사람’에는자기자신또한포함된다.수더분하고말많은아줌마인줄로만알았던엄마가사실은인터넷상에서‘로잘리’라는닉네임으로로맨틱한만남을가져왔단걸알게된딸,수십년간부부로살아왔지만단한번도서로에게진심으로관심가져본일이없었다는걸중년이지나서야깨달은부부,바람상대에게푹빠져오래만난약혼자에게이별을고했지만바람상대또한온전히마음을채워주는애인은될수없단걸알게된여자,무슨문제가생겨도살이닿기만하면풀리는속궁합을자랑하는부부지만마음으로건네는대화는통들어먹질않는남편을가진여자등등…….
각자처한상황과시점에따라타인에대해품는인상이다르다는점은보편적인사실이지만,독자로서제삼자가되어지켜보노라면다소난감하다.히비키가‘지적이고우아하며상냥하다’고하는유키(모모의엄마)는사실딸들로부터‘가식적이고독선적인고집불통’으로평가받으며외면당한다.그런데유키는남편에이스케에게는이해심많고한결같은아내이다.또인터넷채팅에서만난여자와바람이나서가족을버리고새살림을차린무정한아빠가,다른누군가에게는조용하고온순하며귀여운구석이있는초로의남자일뿐이다.자신을무시하고괴롭히는오빠가엄마의눈에는그저다정하고기특한아들이고,요령도없고고집세고반항적인딸이누군가의눈에는인정많고진중한사람이다.독자는점점등장인물들에대해어떻게판단내려야할지혼란스러워지고,이사람이좋은사람인지나쁜사람인지,안쓰러운사람인지행복한사람인지판단하기가곤란해진다.
남자친구,여자친구,절친한친구,부인,남편,엄마,아빠……관계에이름을붙여서로를안전하게규정하려하지만누군가를완전히아는것은불가능해보인다.모두어떻게든이리엮이고저리엮여살아가야하기에,엇갈림은끊임없이되풀이된다.언제든,어떤사이로든변할수있다면언제든,어떤방식으로든혼자가되는것은당연한일.그렇기에서로에게기대할수있는것은결국‘부분’뿐이다.연애도,결혼도,우정도,동료도,그‘부분’이전부인양기대어있다가도어느순간또다른‘부분’에실망하고절망해등을돌리기도한다.이렇게불투명한관계들사이를이리저리떠돌면서어쩔수없이마주하게되는당혹감과고독을피하지않고받아들이는,거리낄것없이당당한벌거숭이들을우리는이책『벌거숭이들』에서만나게된다.

*책속으로추가
사바사키는히비키를떠올리고있었다.(……)모모에게들었던사전정보로는좀더살림때가묻은여성이겠거니싶었다.남의평판따위신경쓰지않는시끄럽고독선적인여성을.하지만실제로본히비키는완전히달랐다.사춘기아이처럼어설프고,사춘기이전의아이처럼겁이많아보였다.모모짱도겁이많지만그이상이다.모모의두다리사이에서사바사키는생각한다.히비키를생각하고있지만,몸은자연스레모모와의행위에몰두할수있었다.호흡이맞는것이다.모모는거의무의식적으로무릎을세운다.목소리를내진않지만,몸을젖히는방식이나손의힘-모모는가끔침대를두드린다.사바사키에게매달릴때도있고두팔을위로올려헤드보드를움켜잡으려들때도있다-으로사바사키를몰아붙인다.모모의팔다리는매끄럽고피부는거리의비냄새비슷한냄새가난다.발톱은늘연한두가지색상으로나눠칠해져있다.직업상손톱에매니큐어를바를수없다며본인은아쉬운듯말하지만사바사키는모모의손이좋다.매니큐어를바르지않은손톱도.히비키는작은손을지니고있었다.마디라는것이느껴지지않는,화과자같은손이었다.절정으로치달은후,사바사키의가슴에맨먼저퍼진것은팔랑팔랑부지런히움직이는히비키의그작은손이었다.
_본문168~169쪽

“헤어져버리면되잖아.”남편이나갔을때딸미토코는그렇게말했다.“최악이야,이런거”라고불쾌한듯이.미사코는자신이비난받는기분이었다.애인을만든것도집을나간것도미사코는아닌데.분명사이좋은부부라고는보기어려웠을지도모른다.거의결혼직후부터다툼이끊이지않았고,그러는동안싸울기력조차사라져버렸다.하지만그렇다고해서살아온세월이없어지는건아닐터.체념과습관과타협의산물이었다해도켜켜이쌓여온이세월이.“아르고,이리와.”미사코는개를부르고현미차를마저마신다.차는둥글둥글한맛이났다.둥글둥글한,어릴적부터잘아는맛이.미사코는여름에도따뜻한음료가좋다.남편은차가운보리차나아이스커피를마시고싶어했지만.그러고보니요몇년,그런것들을만들지않았다는생각을멍하니떠올렸다.
_본문182~183쪽

“스캐너를사서데이터로만들어버리는건?”사바사키가말한다.“시디로구워버리면자리차지하지않고도보존해둘수있어요.”무슨말인지이해가가지않았다.“응?다시한번말해봐.”돌아보는데다시끌어안기고,이번엔입술도포개지고말았다.사바사키가같이가줘서정말많은도움이됐어.히비키는나중에모모에게그렇게보고할생각이었다.그랬는데,이제보고할수없게돼버렸다고,머리한구석으로생각했다.
_본문317~3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