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번째매거진《B》입니다.
그다지크지않은부티크에서과도한환대나경계의눈초리없이조용히집중해옷을고르는시간을좋아합니다.마치동네에자리한작은서점에서천천히책을탐색하는시간처럼요.이커머스시장이확장되고,이보다더편리할수없을정도로온라인쇼핑의배송과서비스가개선되고있지만좋은옷은직접눈으로보고손으로만져봐야아는것이라생각합니다.그렇다면여기서좋은옷의정의에대해질문을던져볼수있습니다.시대와환경에따라좋은옷에대한평가기준은변하게마련이지만,개인적으로는의복을구성하는기본요소에대해진지한태도를드러내며,은밀한방식으로디테일을다루는옷을좋은옷이라여깁니다.엔터테인먼트를이용한마케팅에옷이가려지고,브랜드가옷위에제왕적으로군림하는것이최근패션산업의성공문법이다보니사려깊은방식으로옷을대하는창작자들에게더마음이가는것은사실입니다.셰프의이름값보다식재료고유의성질을완성도높게드러내는요리에내심좋은평가를내리게되는것과비슷하죠.
프랑스의패션브랜드르메르를처음접했을때도비슷한종류의호감을느꼈던기억이납니다.컬러와소재,실루엣,디테일에서브랜드가어떤입장을취하는지가명확하게드러나는옷,그래서입었을때더욱진가를발휘하는옷,한번길들면계속옷장속에채워넣게되는옷으로요.이런르메르옷의특성을흔히미니멀리즘이나놈코어normcore라는키워드로설명하기도하지만,‘일상복’이야말로르메르가지향하는바를가장잘전달하는단어중하나가아닐까싶습니다.르메르식일상복은합리적가격이나빠른출시주기,개성과아이덴티티가거세된무색무취의캐릭터와는거리가멉니다.그간의패션트렌드가일상복을등급이낮은옷과동일시하기도했지만,르메르는일상복이야말로옷에내재된가능성을유연하게표현하는형식이라는것을보여주고있습니다.
르메르의창립자이자공동크리에이티브디렉터인크리스토프르메르는‘(사람들의)일상적인움직임’을토대로옷을구상한다며,“특정옷을입은사람이(일상에서)그옷을통해어떤느낌을받는지가중요하다”고말합니다.이러한연유로르메르의옷은판타지보다영화에가깝다는평을받기도하죠.종합해보면르메르가추구하는옷은매우도시적이라고도할수있습니다.대부분의도시인은자신이머무르는장소와공간속에자연스럽게스며들기를원하고,르메르옷이정확히그러합니다.그곳이프랑스파리의아침이든,한국서울의밤이든,식물이무성한야외공원이든,모던한가구가즐비한레스토랑이든누군가의피부처럼자연스럽게자리잡으니까요.
돌아보면우리는박물관이나미술관에벽화처럼걸려있는옷보다사람과사람이속한공간속에서조화를이루는옷에눈길을빼앗기곤합니다.한벌의옷이착용자의언어와몸짓,태도와연결될때비로소옷에생명력이부여되기때문입니다.바꿔말해어떤이의옷차림을관찰하고,그옷차림에호기심을갖는일은그사람을알아가는데중요한실마리가되죠.이처럼‘사적인옷’은생각보다많은언어와뉘앙스를품고있습니다.좋은옷은그뉘앙스를더욱풍성하게만들테고요.새해첫이슈인르메르호를준비하면서무엇보다흥미로웠던부분은바로이지점입니다.독자여러분도이책을읽고옷과옷이품은뉘앙스에대해더풍성한이야기를파생할수있길바랍니다.
편집장박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