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강 전숙희 (컸으나 섬세했고 대찼으나 가냘팠고 차갑고도 뜨거웠던 사람)

벽강 전숙희 (컸으나 섬세했고 대찼으나 가냘팠고 차갑고도 뜨거웠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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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생을 바친 벽강 전숙희 선생의 생애
스무 권의 수필집을 펴낸 한국을 대표하는 수필가, 30년간 문학잡지 발간, 사학재단의 설립과 운영, 국내 최초로 한국현대문학관 건립, 40년 가까이 ‘한국펜클럽’을 이끌며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헌신했고 한국인 최초로 국제펜클럽 런던본부 종신 부회장을 역임……. 이런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떠올릴 수가 없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바로, 벽강 전숙희다.『벽강 전숙희』는 한글과 한국문학의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50년대 후반부터 수없이 해외를 드나들며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생을 바친 벽강 전숙희 선생의 생애를 다룬 책이다.
저자

조은

저자조은은1960년경북안동에서태어나,1988년계간〈세계의문학〉에시를발표하며등단했다.시집으로《땅은주검을호락호락받아주지않는다》,《무덤을맴도는이유》,《따뜻한흙》,《생의빗살》등이있다.시를쓰는틈틈이동화책《햇볕따뜻한집》,《다락방의괴짜들》,《동생》등과산문집《벼랑에서살다》,《조용한열정》,《마음이여걸어라》,《낯선길로돌아오다》,《또또》를펴낸바있다.2014년수필집《또또》로‘제4회전숙희문학상’을수상했다.오늘도사직동한옥집에서걸어가듯글을쓰며살고있다.

목차

1.문학의자양분으로충만하다-어린시절
솟을대문집손녀
금강산을뛰놀다
추억의송도원

2.고난의시절도당당하게-성장기
일본말을쓰지않는학교를고집하다
처음겪은가난
우정을지키려다감옥까지
실습용수술대에오르다

3.장르를넘나들며글쓰기에빠지다-습작기
에피소드가많았던이화여전시절
소설창작과등단
사라진1천장의원고

4.힘겹게인생의전환점을돌다-결혼과육아
우여곡절많았던결혼
무산시절의행복
수필창작으로목마름을채우다
해방과함께달라진삶

5.전쟁을딛고‘신여성’으로거듭나다-문학활동기
문인다방‘마돈나’와문학잡지《혜성》
6·25전쟁과피난시절
전쟁을겪으며깊어진사회적시선
첫수필집《탕자의변》출간
기자생활과미국문화탐방

6.공적미래를향해열정을바치다-펜(PEN)활동기
‘우리’라는폭넓은인식
세계화의초석,문예지《동서문화》창간
계원학원설립의지와실현
한국문학을세계로,펜활동

7.문학적삶의원천-가족과문우들
정신적지주,어머니와아버지
든든한조력자,동생전락원
사랑과회한,남편강순구
끝없는사랑,아들딸
가족같은문우들

8.문학을향한멈추지않는열정-황혼기
‘한국현대문학관’개관,오랜꿈을이루다
장편소설《사랑이그녀를쏘았다》출간
미처쓰지못한이야기

전숙희의문학세계
신앙과사랑으로세운문학의나라-김주연(문학평론가)
수필가전숙희의소설가시절-서정자(문학평론가)

벽강(璧江)전숙희(田淑禧)선생연보

출판사 서평

스무권의수필집을펴낸한국을대표하는수필가,30년간문학잡지발간,사학재단의설립과운영,국내최초로한국현대문학관건립,40년가까이‘한국펜클럽’을이끌며한국문학의세계화를위해헌신했고한국인최초로국제펜클럽런던본부종신부회장을역임…….이런많은업적에도불구하고우리는그가누구인지단번에떠올릴수가없다.그는과연누구일까?바로,벽강(璧江)전숙희다.
한글과한국문학의존재조차잘알려지지않았던1950년대후반부터수없이해외를드나들며한국문학을세계에알리는데일생을바친벽강전숙희선생의생애를다룬책이한겨레출판에서출간되었다.

스무권의수필집을펴낸한국을대표하는수필가

1916년생인전숙희는강원도통천군에서태어나원산바닷가에서어린시절을보낸다.이화여고시절부터문학에소질을보였던그는이화여자전문학교영문과에입학하면서본격적으로글을쓰기시작한다.1935년당시이화여전교수였던소설가이태준선생의지도아래〈시골로가는노파〉등네다섯편의단편소설을《여성》,《사상계》에발표하며등단한다.등단초기에십여편의소설을발표하나이후그는수필문학에주력한다.문학평론가서정자는그이유에대해이렇게말한다.이미소설에서부터자기폭로와고백에대담성을보인전숙희의특성이소설보다는자기고백적인수필에더어울렸다고말이다.20대초반에결혼하여사남매를낳아기르면서본격적인문학활동이어렵게되자마음을담은수필쓰기로마음의공허를메웠다고그는고백하기도한다.이후그는자신의수필쓰기방법과자세를솔직성과진정성으로천명하며그원칙을지켜나간다.
6·25전쟁을거치면서전숙희의수필은한층더깊어졌다.부산피난시절,마음이답답할때면그는무언가에홀린듯송도바닷가로나가곤했다.그시절쓴〈마음의행로〉에는현실을극대화하지않고담담하게썼음에도전쟁의비극적인기운이고스란히남아있다.전쟁이끝난1954년,전숙희는그동안쓴글들을모아첫수필집《탕자의변》을출간한다.소설가박종화는이책의서문에서“수필쓰는이가우리문단에수로는많았으나진정으로쓰는이는청천김진섭형과여류수필가전숙희여사두분이있을뿐”이라며첫책의출간을축하했다.《탕자의변》에는한수필가의눈에비친전쟁과평화,개인과국가,이념과갈등같은복잡다단한인간사가밀도있게담겨있다.
이후전숙희는이십여권의수필집을출간할만큼많은수필을썼으며,이는2007년《전숙희문학전집》(전7권)에집대성된다.그는특히언어의남용이없는간결한문체로수필을썼다.문학평론가김우종은그것을두고“교양있는문체”라일컬었다.김우종은전숙희의수필이시간의미학에바탕을두고있다면서“자주과거로돌아가며과거와현재의긴시간개념을도입할뿐만아니라다시돌이킬수없는세월의의미를통해서영원속에우리를끌어들이고”있다고평가하기도했다.
초창기를제외하고수필쓰기에주력했던전숙희는2002년뒤늦게장편소설을한편썼는데,여간첩김수임을소재로한《사랑이그녀를쏘았다》가그것이다.그가87세의고령에도마치평생간직한숙제를마치듯이소설을쓴데에는사연이있다.둘은이화여전선후배사이로전숙희가김수임의집에잠깐산적이있을만큼각별한사이였다.혼돈의시대에죄없이희생된‘김수임간첩사건’의진실을알고있던그는이소설을쓰기위해오랫동안자료를모아왔고마침내완성해냈다.여든일곱에장편소설을쓴다는것자체도대단한일인데이소설은나이든사람이쓴거라고는믿지못할정도로구성도문체도탄탄하다는평을얻었다.
전숙희는다양한대외활동을하면서도“이지상을떠나간후에도내명부는문학이라는울타리속에남으리라”는바람을되뇔만큼끝까지‘문학인’의자리에서고자했다.

한국펜클럽을이끌며한국문학의세계화에앞장서다

전숙희는해방후소설가손소희와함께명동에문인다방‘마돈나’를개업해문인들의사랑방역할을하는가하면문학잡지《혜성》을발간하며문단의중심부에발을들인다.발간3호만에6·25전쟁이일어나부산으로피난을가지만그곳에서도문인극을공연하고,김동리,김광섭,박목월등의문인들과꾸준히교류를이어간다.
전쟁이끝난후,전숙희는선배모윤숙의권유로한국펜클럽에가입하면서1957년도쿄국제펜대회를시작으로한국문학알리기에본격적으로나선다.이와함께1970년에는월간지《동서문화》를창간해국내외문학작품들을소개하는한편이를해외동포들에게배포해모국의소식을전하며그들을위로하기도한다.이후1985년《동서문학》으로제호를바꾼이잡지는2000년대초폐간할때까지삼십여년간동양과서양,국내와해외동포를이어주는다리역할을수행했다.
‘한국문학의세계화’에바친전숙희의열정은1988년‘서울국제펜대회’를개최하면서정점을찍는다.당시한국은민주화과정에서많은문인들이투옥되는등불안한정국이었다.국제펜클럽회원국들은한국의정치적불안과인권문제를들어서울대회를반대하고나섰다.비밀작전을방불케한문인들의노력으로서울대회가확정되자전숙희회장은정을병대회의장과함께대회준비에전력을다한다.한편으론구속문인석방을위해이들을면회하고정부에탄원서를내는등다양한노력을기울인다.
1988년8월28일열린‘서울국제펜대회’는성황리에개최되었다.미국을비롯해유치를반대했던나라들은말할것도없고당시거의왕래가없던소련이나중국작가들도다수참여했다.이대회를계기로세계여러나라와의교류가더욱활발해졌음은물론이고전숙희개인의활동영역도크게넓어졌다.그는해방이후우리나라작가로는처음으로소련작가동맹의초청을받아소련을방문했으며,1991년에는국제펜클럽런던본부종신부회장에선출되어세계무대에서활동하게된다.
이런전숙희를일컬어소설가이문열은“‘큰어머니’,혹은고대부족의여족장같은풍모를느꼈다”고말했으며,김원일은“가망이없을거라고고개를젓는사이이를성취해내는뚝심이달랐던큰사람”으로기억했다.
전숙희는그동안의펜클럽활동과잡지발간을바탕으로모아온자료를집대성해평생숙원이던‘한국현대문학관’을설립했다.2019년개관을목표로올해들어서야‘국립한국문학관’건립이추진되고있는걸감안하면,18년전인1997년개인의노력으로현대문학관(개관당시‘동서문학관’)을설립했다는사실은실로놀라운일이아닐수없다.또한,전숙희는동생전락원과함께부모의유지를받들어1979년경기도의왕시에계원예술고등학교와예술전문대학을설립하고2004년까지이사장을역임했다.하나의사학을건립하고그기반을다지는일또한당연히쉬운과정은아닐터.그만이지닌특유의뚝심이여기에서도발현된셈이다.

격동의시대를온몸으로헤쳐나간‘신여성’

전숙희는1916년에태어나2010년별세했다.그시대를살았던대부분의사람들이그렇듯선생의삶은또하나의현대사로읽힐만하다.특히‘신여성’으로살았던그의삶을뒤쫓아가면새로운무늬의역사를만나게된다.
해운업으로크게성공했던조부덕에풍족한어린시절을보낸전숙희는목사인아버지를따라서울로내려온다.종로소학교를거쳐이화여중에입학할때만해도무난한성장기를보내는듯했지만이후의생활은그리평탄하지않았다.전재산을교회에기증해버린아버지로인해결핵수술비가없어인턴실습용수술을받아야했으며,이화여고시절에는친구와의우정을지키려고동맹휴학에가담해40일동안감옥에갇히기도했다.
1933년문학적인재능을인정받아이화여전영문과에무시험장학생으로입학했으나졸업을앞두고뜻밖의일로인생의부침을겪게된다.당시연희전문의과출신인강순구를만나결혼전에큰딸강은엽을출산한것이다.때는1938년,모든것이순탄할리없었다.시부모의반대에부딪혀결혼이미뤄져마음고생을하다우여곡절끝에결혼을하고남편을따라국경지대인함경도무산에서신혼생활을시작한다.물론그곳에서큰아들을낳고행복한시간을보내나“문득창문을열고밖으로뛰어나가고싶은충동에견딜수없었다”거나“읽던책으로얼굴을가리고하염없이눈물에젖기도했다”는등의글에서보듯신혼의행복이그가가졌던떠나온곳에대한그리움과세상을향한호기심을막지는못한것같다.만주땅에가보고싶어어린아이를포대기에싸업고눈쌓인두만강을건너려했던에피소드만봐도이후그가이룬모든일들이단지우연은아니라는생각이든다.
일제의징집을피해이들부부는경상도안강으로내려오는데전숙희는이곳에서인생의커다란전환점을맞이한다.해방후포항,경주등에미군이주둔하면서영문과출신이었던그가미군정청통역관으로뽑힌것이다.이를시작으로,그는1950년대중반에는경향신문기자로활동하며미국,이란등세계여러나라를방문해한국의현실을전하고이들의문화를국내에소개하기도한다.
그가살았던시대를감안하면전숙희의모습은엄마로서주부로서낯설고파격적일수밖에없었다.이후전숙희는공적인일들에더욱매진한다.장성한사남매는훗날계원학원설립에힘을보태며,그가떠난후에도어머니의뜻을잇기위해노력한다.
전숙희가이렇게다양한활동을할수있었던건가족을비롯해많은이들의도움이있었기에가능했다.특히파라다이스그룹회장이었던동생전락원은물심양면으로도움을주었던가장든든한조력자였으며,소설가김원일,김남조등도오랜시간그와함께했던지원군이었다.

전숙희는아흔넷의나이로2010년세상을떠났다.불과몇달전까지도여전히써야할원고가많이남아있다며의지를불태웠던그였지만,그렇게나원했던글들을미처쓰지못하고결국생을마감했다.하지만,그가남긴문학정신을잇고자2010년‘전숙희추모위원회’가조직되었고,추모사업의하나로제정된‘전숙희문학상’이올해로6회째를맞고있다.이책의저자인조은시인은‘제4회전숙희문학상’수상자의인연으로선생의평전을쓰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