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세상의사이를잇는,
어느평론가의이토록성실하고아름다운가교(架橋)!
산문집《느낌의공동체》,영화에세이《정확한사랑의실험》등으로독자들의크나큰사랑을받았던문학평론가신형철이4년만에새로운산문집을출간한다.이번산문집은《한겨레21》에연재됐던〈신형철의문학사용법〉을비롯,각종일간지와문예지등에연재했던글과미발표원고를모아엮은것이다.시와소설에국한되지않고영화,노래,사진등다양한작품을정확히읽고듣고보면서온기를잃지않으려했던저자의노력이빼곡히담겨있다.
그간의글을매만지며,자신의글다수를관통하는주제가슬픔이었음을깨달은저자는,‘타인의슬픔’은결코이해될수없다는것을알면서도,그들의슬픔을이해하고,공부하기위한노력의결과를풀어놓는다.이책은평론가로서작품과세상사이에가교를놓고자했던저자의성실한삶이고스란히녹아있는산문집이다.우리는이책을통해비로소평론가신형철의삶과철학을보다면밀히들여다볼수있게되었다.
1부는‘슬픔’을공부한글을묶었다.헤로도토스《역사》에서부터헤밍웨이를지나박형준과김경후의시에이르기까지,작품속의슬픔,허무함,덧없음,상실등을꼼꼼히읽어간다.2부는‘소설’을중점적으로다루고있다.카뮈,보르헤스,제발트부터권여선,임철우,박완서,배수아,김사과,은희경,김숨까지국내외작품을읽고우리는문학을통해더좋은사람이될수있는지를묻는다.3부는참여적주제의글을싣고있다.이번대통령탄핵부터,태극기부대,성소수자문제와미소지니,트럼프,국정농단,멀리는박근혜대통령의당선과4대강사업,용산참사,희망버스,천안함사건까지사회적이슈를마주한평론가의희망과절망을오가는시선을담았다.4부는‘시’라는주제아래,우리는왜시를읽지않으면안되는지를행간으로권하는글을묶었다.릴케,김수영부터황인찬그리고비틀스노래〈노위전우드(NorwegianWood)〉까지,다양한시와노래를읽는다.여러출판사의시인선기념호에부치는글들도함께묶었다.마지막으로부록에는,읽을만한짧은소설을권하는〈노벨라베스트6〉,그간써온추천사모음〈추천사자선베스트10〉,경향신문에닷새간연재했던〈인생의책베스트5〉등을수정,보완해수록했다.
너는슬프지만나는지겹다
타인의슬픔을이해한다는것에관하여
책의큰축을이루는것은‘슬픔’이다.저자는영화〈킬링디어〉를통해타인의슬픔을결코제대로이해할수없는인간본연의한계를본다.그러나타인의슬픔을결코알수없으리란결말을알면서도,다른이의슬픔을공부하는것이인간이기도함을그는지적한다.제목‘슬픔을공부하는슬픔’은타인의슬픔을이해하는데실패할것을알면서도,이해하려애쓰는것에서오는역설적슬픔을의미하는것이다.
심장은언제나제주인만을위해뛰고,계속뛰기위해서만뛴다.타인의몸속에서뛸수없고타인의슬픔때문에멈추지도않는다.타인의슬픔에대해서라면인간은자신이자신에게한계다.그러나이한계를인정하되긍정하지는못하겠다.인간은자신의한계를슬퍼할줄아는생명이기도하니까.한계를슬퍼하면서,그슬픔의힘으로,타인의슬픔을향해가려고노력하니까.그럴때인간은심장이기만한것이아니라,슬픔을공부하는심장이다.아마도나는네가될수없겠지만,그러나시도해도실패할그일을계속시도하지않는다면,내가당신을사랑한다는말이도대체무슨의미를가질수있나.이기적이기도싫고그렇다고위선적이기도싫지만,자주둘다가되고마는심장의비참.이비참에진저리치면서나는오늘도당신의슬픔을공부한다.그래서슬픔에대한공부는,슬픈공부다._28쪽
이외에책에서말하는‘슬픔’의면모는다양하다.발터벤야민을통해패전국의왕프삼메니토스는왜가족의죽음이아닌시종의죽음에눈물을흘렸는지살피며슬픔을해석하는방법을고찰하기도하고,프로이트의“꿈은소원성취”라는명제를소개하며,그렇다면물속에잠긴아이들의꿈을꾸는유가족의꿈은어떻게봐야하는지되묻기도한다.문학이독자를위로하기위해갖춰야할조건을생각해보는가하면,트라우마는내가잊을수있는‘대상’이아니라나를놓아주는‘주체’가아닐까이야기하며현재진행형의역사적사건을꺼내기도한다.
그러한슬픔은궁극적으로는3부의참여적글과도맞닿아있다.그는문학작품과사회사이를오가며때로는슬픔을분노로표출한다.3부의〈굿바이,박정희〉는아름다운문장으로이름을알린저자가때로는이렇게도매섭고신랄할수있음을보여준다.
그리고12년뒤우리는그때와는다른탄핵을경험했다.전적으로국민의뜻대로된,국민의힘으로이룬대통령탄핵이므로,당연하게도이것은혁명이라고불려야한다.그렇다고우리가12년전의박근혜의원처럼웃을수는없었다.쌓인울화가많았으므로,이번에도눈물이났다._183쪽
가까스로생각해보면박근혜씨가행한가장위대한일은그가탄핵을당해주었다는것이다.이것이왜업적인가.실비아플라스의시〈아빠〉(1962)에는“만일제가한남자를죽였다면,그것은둘을죽인셈이에요”라는구절이있는데,(…)비슷하게말해보자면,박근혜씨는우리가한사람을탄핵하면서두사람을탄핵할수있도록했다._184쪽
“정확하게칭찬하는비평가”가되기위하여
또한편으로이책은저자특유의진진한작품해설외에도,그의‘문학관’을매우충실하게보여준다는점에서읽기즐겁다.그는“좋은소설의요건은무엇인가”,“평론가는왜대중의적이되었는가”,“어떤비평가가되고싶은가”등등그간받아온질문들에성실히응답한다.또한신춘문예당선작을읽고실망감을털어놓기도하고,노벨문학상을어떻게봐라봐야할것인지자신만의생각을정리하는등,평론가의생각과일상을동시에펼쳐보인다.
어떤비평가가되길원하느냐는질문을몇번받은이후나는간결하고명료한대답을준비해둬야겠다고생각했는데,마침최근어느대담에서같은질문을받고는이렇게답했다.“정확하게칭찬하는비평가.”이대답은곧바로두개의추가질문을유발할것이다.
첫째,왜칭찬인가.어떤텍스트건칭찬만하겠다는뜻이아니라,칭찬할수밖에없는텍스트에대해서만쓰고싶다는뜻이다.(…)
둘째,왜정확한칭찬인가.칭찬은‘좋은게좋은것’이라서하는일이아니다.칭찬은,칭찬의대상에게도그렇지만칭찬의주체에게도,위험할수있는일이다.부정확한비판이분노를낳는다면부정확한칭찬은조롱을산다.어설픈예술가만이정확하지않은칭찬에도웃는다.진지한예술가들은정확하지않은칭찬을받는순간자신이실패했다고느낄것이다.그러나정확한칭찬은자신이칭찬한작품과한몸이되어함께세월을견디고나아간다.그런칭찬은작품의육체에가장깊숙이새겨지는문신이된다.지워지지도않고지울필요도없다._324쪽
나에게‘이책을그만읽는게어떨까’하는유혹이찾아오는1차고비는처음10쪽부근,2차고비는3분의1지점이다.고비가두군데라는것은내가소설에기대하는최소한의어떤것이적어도두가지라는뜻이다._159쪽
이외에“인간은넙치와같아”서로의반쪽을찾아다닌다는플라톤의《향연》을통해,결여를통해온전함을향해가는것이사랑이라는,사랑고유의구조를도출하는〈넙치의온전함에대하여〉는삶과일상에대한그의고찰이빛을발하는,이책의또다른백미다.
여타의관계와는다른,사랑고유의교환구조라는것이있지않을까.나는그것이‘결여의교환’이라고생각했다.누구나결여를갖고있다.부끄러워서대개는감춘다.타인역시그러할것이다.그런데어떤결정적인순간에내가그의결여를발견하는때가있다.그리고그때이런일이일어날수있다.그의결여가못나보여서등을돌리게되는것이아니라오히려그결여때문에그를달리보게되는일.그발견과더불어,나의결여가,사라졌으면싶은어떤것이아니라오히려그의결여와나누어야할어떤것이된다.내가아니면그의결여를이해할사람이없다여겨지고,그야말로내결여를이해해줄사람으로다가온다.결여의교환구조가성립되는것이다._332쪽
서로의‘결여’를교환하는것이사랑이라는관계에대한고찰외에도,커뮤니케이션에무능한사람들이빠지게되는권력에대한집착,유행어를통한세태관찰등문학작품이외의세상전반을고찰하는저자의‘정확한’시선을통해우리는더욱더깊어진신형철평론가의생각과문장을만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