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 (박유리 장편소설)

은희 (박유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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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513명이 죽었는데,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참혹한 진실을 파헤치는 아름다운 데뷔작
“누구에게나 그림자처럼 결코 자를 수 없는 기억이 있다.”
*
한 시대가 만들어낸 폐허와 고통,
그 속에서 사라져간 이들을 위한 문학적 전언

한국 현대사에서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형제복지원 사건’의 참혹한 진실을 파헤친 소설 《은희》가 출간되었다. 작가는 기자로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직접 취재하고 조사한 기록 위에, 18살 소녀 ‘은희’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사실과 허구적 이야기를 뒤섞어 《은희》라는 값진 소설적 진실을 만들어낸다. 군사정권 당시 벌어진 국가적 유괴와 강제 실종을 취재하며 생겨난 인간 존엄에 대한 질문은 그녀를 폴란드의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으로 이끌게 되고, 결국 ‘은희’의 죽음을 파고드는 장편소설 《은희》를 쓰게끔 한다. 소설을 가득 채운 단단한 문장과 담담한 서술, 깊이 있는 묘사와 고통을 모른 체하지 않는 용기 있는 목소리는 사실을 전하는 정직함과 책임감을 밀어 올리며 깊은 문학적 울림을 완성해낸다. 또한, 절망이 희망을 앞서고 끔찍함이 아름다움을 짓누르는 한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작가의 용기는 우리가 모든 겁과 비겁을 버리고 진실에서 눈 돌리지 않게 돕는다. 문학평론가 박혜진의 말처럼, 《은희》는 우리에게 불행을 선사하지만 이 불행에 동참함으로써 가까스로 30년 전과 다른 존재로 거듭날 수 있게 한다.

술 먹고 취해 길에 뻗은 남자들, 여관비를 아끼려 기차역에서 밤을 새우는 사람들, 남루한 옷을 입고 떠도는 아이들. 내무부 훈령 410호가 잡아들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빈곤을 모아두면 풍요로워질 것으로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바퀴벌레와 쥐 퇴치 운동을 벌이듯이. 그렇게 우리는 청소됐다. _본문 중에서
저자

박유리

1983년부산에서태어났다.파괴되고외로운이들의침묵을듣는일이좋았다.흙바닥에서시가되어버린일기를쓰는시리아의난민소년,헤어지는날우산을내어준영등포집창촌의여인,매월5만원을상납해야주연배우의풍경이될수있었던이름없는드라마엑스트라,4차혁명시대에땅을잃고전국을헤매는화전민들에게서살아낸다는것의치열함과서글픔을보았다.가장비루한존재들의아름답고위대한시간을쓰는것이나의일이라고믿는다.〈국민일보〉에이어〈한겨레〉에이런글을썼다.

목차

1
2
3
4
5
6은수의기억
7
8
9방인곤의기억
10
11
12
131987년1월5일
14미연의기억
15무열의기억
16방인곤의기억
17
18
19
20
21
22
23
24
에필로그
은희의기억
작가의말
추천의말

출판사 서평

이해할수없기에겨우가능한이해

형제복지원은일정한거주지와직업없이돌아다니는사람들을보호하고선도한다는목적으로1975년부산에지어진우리나라최대규모의부랑인임시보호소였다.하지만,부랑인들만입소한것은아니었다.크게는국가와시의명령하에,작게는시청직원과파출소순경들,그리고몇몇시민들의묵인하에돌아갈집과가족이있는보통시민,장애인,심지어는어린아이들까지도끌려갔다.《은희》에나오는은희,미연,은수가모두그렇게잡혀온아이들이었으며,소대장무열과병호의아버지인문씨또한그런식으로청소된사람들이었다.
사람이사람답게살수있는조건을모두빼앗겨버린상황에서도사람은인간적존엄을지키기위해‘나라는존재가무엇인지’,‘내가정말인간이맞는지’를고민하고야만다고작가는《은희》에서말한다.온몸이텅비워지고,자기자신을잃게만드는공간에서은희는가장인간적이고,인간이고픈존재였다.“왜도망갔냐”는물음에“사람이되려고”라고답하는은희의모습은그렇기에더욱슬프면서아름답고,아름다우면서도끔찍하다.
엄마‘은희’를찾아서폴란드를떠나와한국땅을밟고도여전히은희가어떤사람이었는지어떻게살다가어떻게죽었는지알지못하는입양아준에게끝내진실을말하지못하는미연을우리는이해할수있다.하지만그이해란건사실진짜이해가아니다.우습게도그것은우리또한이나라를이해할수없기에겨우가능해진이해이다.

미연은그날일을준에게말하고싶지않았다.도망치던은희가죽을만큼맞던그날밤,사람의뼈가으스러지는소리가들렸다.짐승소리를내며진흙바닥을기어다니던그날,누구도왜우리가죽을만큼맞아야하는지묻지않았다.모든일에이유따위는필요치않았다.왜이곳에기약없이갇혀야하는지,왜집으로돌아갈수없는지,왜죽어야하는지._본문중에서

가짜노숙인까지만들었던나라를,그들을개조했다고국정을홍보했던나라를준이이해할수있을까._본문중에서

준과은희가경남양산의한요양원에있는형제의집원장방인곤을방문하고,가짜검안서를쓴의사조병국을찾아경북에위치한병원에가고,방인곤원장을수사했던검사주태석을만나러무덤마을에가는내내은희의대답과함께건네진‘인간됨이란무엇인가’란질문은깊은그림자가되어우리의발걸음을따라다닌다.은희가그랬듯이우리또한인간으로남기위해선무언가로부터도망해야하는걸까?아니,그런데은희는도망간게맞는걸까?자신의삶을걸고다른이들의삶을구하려던건아니었을까?끝없이이어지는질문은깊은우물이되어진실에목마른우리앞에멈춰선다.

2015년가을,그리고지금,
우리는어떤시간을살고있을까?

말들은쇳소리를내며조각조각찢겨나갔다.언어가아닌목소리로,울것같은얼굴로,부들거리는어깨로준은그들의이야기를짐작할뿐이었다.마이크를쥔남자는몇마디말을하고는울부짖기시작했다.1987년그때의아이처럼.말들은바람에날렸고사람들은바닥에떨어진울음을밟고지나갔다.밟힌울음은소리를내지못했다._본문중에서

소설은박인근원장의구속으로뒤늦게사건이드러나게된1987년과형제복지원특별법이통과되지못하고폐기를앞두고있던2015년가을을실제배경으로하고있다.그리고2020년현재,900일이넘게노숙농성을이어간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들의땀과눈물로과거사법개정안이통과되었다.소설속병호도현실에서처럼특별법통과를이뤄냈을까?은희의죽음을둘러싼진실을밝히기위한준과미연의동행은잘끝났을까?준과미연은진실의끝에결국닿았을까?수많은질문속에서그래도다행인건‘만약이번국회에서도법이통과되지못했다면,피해생존자와그가족들이앞으로어떤시간을보내게되었을까?’라는질문만은할필요가없어졌다는점이다.
《은희》는형제복지원에엮인실존인물들의삶에소설적상상력을더한,문제적이며치밀하면서도아름다운소설이다.기억때문에현실을제대로살아낼수없는생존자들과기억을잃었다는박인근원장사이의아이러니는소설의모티프가되며,은희의캐릭터는형제복지원에서도망치다붙잡혀매맞아숨진김계원의죽음에서기인하며,그런김계원에게안티프라민을발라주었다는윤우택의짧은진술은미연의일부분이된다.박인근원장을위해정부에탄원서를제출한문용기의글과복지정책의우수성을알린전두환전대통령의연설문,그리고MBC드라마〈탄생〉의제작일화등부랑인청소가사회적으로납득되고용인되었던시대배경들도소설여기저기에작은조각들로들어가있다.하지만작가가보여주고자했던건결코재현이아니다.결코드라마가아니다.군사정권시대가만들어낸폐허와고통위에서한낱위기로만존재가능했던인간의모습이,누구도의문을제기하지않는사회적묵인이,정말지금은없느냐고은희와미연그리고준을통해끊임없이되물을뿐이다.그리고그질문은소대장무열을지나,가짜의사조태석을지나,원장방인곤을지나결국우리에게로돌아온다.

난매일머릿속을청소해.쓸데없는것들을매일쓸어폐기처분하는거지.난병자가아냐.환자가아니라고.쓸데없는걸잊어가는건합리적인거야.아주합리적인증상인거지.(…)일상생활에지장이되는건없어.지나간시간가운데버리고싶은것들을자동폐기하는장치가내머리에생긴거뿐이지._본문중에서

형제복지원이운영되었던당시전국에는36곳의부랑인시설이있었다.하지만형제복지원을제외한35곳의시설에서벌어진유괴와감금,인권유린은여전히베일에싸여있다.바퀴벌레와쥐를청소하듯죄없는사람들을잡아가두던그기억들을모두잊은채살아가는우리의모습과기억을잃어버린건지기억하고싶지않은건지알수없는방인곤원장의모습은정말다른걸까?보고싶은것만보고듣고싶은것만듣기를원한다면,길을가다가아무이유도없이사라져도누구도의문을제기하지않던그빛없는시대로다시돌아가야할지도모른다.
우리가매일머릿속을청소하는대신,쓸데없다고여겨지는것들을쓸어처분하는대신버려지고은폐된것들을기억하고찾아낸다면,《은희》를읽으며우리의진심이고운봄날실내에드는햇볕처럼한데모인다면,아픔도,슬픔도,고통도,빛도,어떤이름없이도,찬란하고아름다웠던목소리를은희에게되돌려줄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