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바꾸고자했던세명의여성혁명가가있었다.
20세기초경성,상해,모스크바,평양을무대로그들이꿈꾸었던지옥너머봄날의기록!
이소설은한장의사진에서시작됐다.1920년대로추정되는식민지조선,청계천개울물에서단발을한세여자가물놀이를하는사진.1990년냉전시대의마침표를찍으며한소수교가이루어진그다음해,박헌영과주세죽의딸이며소련의모이세예프무용학교교수인비비안나박이서울에들어왔을때,그가들고온여러장의사진가운데하나였다.
작가가이소설을처음구상한것은사진의주인공가운데한명인허정숙을발견한힘이컸다.허정숙에흥미를가지고들여다보다가‘신여성이자독립운동가’라는새로운인물군상이눈에들어오게된것이다.
박헌영,임원근,김단야…
각각의무게감은다를지언정일제강점기독립운동과한국공산주의운동사에서빼놓을수없는이름들이다.그런데,이들의동지이자파트너였던주세죽,허정숙,고명자이여성들은왜한번도제대로조명되지못했을까.이소설은우리가몰랐던세명의여성혁명가,그들의존재를담담히보여주고있다.
또한소설은주인공세여자가살다간시대적배경이말해주듯이여성들을중심으로주변남자들의인생과함께1920년대에서1950년대에걸쳐한국공산주의운동사를폭넓게다루고있다.작가스스로세여자가주인공이지만역사가또다른주인공이라고말하는이유이다.디아스포라의시대에대륙으로흩뿌려졌던세여자의삶을,그세갈래의이야기를따라가다보니자연히1920년상해에서한국공산주의운동이시작돼서1955년주체사상의등장과1958년연안파숙청으로한국에서공산주의가소멸하기까지의과정을다루게되었다는것이다.한사람의인생처럼역사에도실수가있고착오가있고우연이있고행운도있다.목적과정반대의결과가빚어지고우연한실수가운명을바꾸기도함을소설은보여주고있다.
이소설에서주인공세여자를비롯해이름석자로나오는사람은모두실존인물이다.등장인물들에관한역사기록을기본으로했고그사이사이를상상력으로메웠다.작가는역사기록에반하는상상력은최대한자제했고‘소설’이‘역사’를배반하지않도록주의했다고밝힌다.
작가가작품속40년의시간에서가장에너지를쏟은부분은해방공간과한국전쟁이다.작가는지금한국사회의구조적인문제,그딜레마가근본적으로분단과전쟁에서시작되었고지금도해방공간의연장선위에있다고바라본다.그래서독자들이이소설을통해그시대를알고지금을이해하기를바라며,우리사회의근원을들여다보고마침내끊임없이반복되는해방공간의딜레마를넘어서기를기대하는것이다.
애도의궁극이자여성으로서의오연한자부심!(신수정,문학평론가)
이소설의세여자가살았던때는역사의가장음침한골짜기,비유나풍자가아니라말그대로‘헬조선’,조선이라는이름의지옥이었다.하지만세여자의인생이늘지옥은아니었다.여자들은씩씩했고운명에도전했고드라마틱한인생을살았다.우리는지금연봉이나승진문제로우울해하지만이여자들은현실의것들을그닥개의치않았고목숨조차가벼이여겼으며혼자몸으로역사를상대했다.새로운사상과이념이애드벌룬처럼떠오르던20세기초반에그들의인생은지옥속에서도가끔봄날이었다.
세여자는상해에서,경성에서20대를함께보낸후유라시아대륙의다른장소로흩어졌지만늘우리근대사의극명한현장한가운데있었다.가령,주세죽이스탈린치하에서한인강제이주의참담한현장에던져졌을때허정숙은연안에서모택동에게혁명전략을배우고있었고,고명자는경성에서친일잡지의기자노릇을했다.해방공간에허정숙과고명자는38선의북쪽과남쪽에있었고,허정숙은김일성의측근이었고,고명자는여운형옆에있었다.
이들은혁명의여정에서남편을잃고,투옥되고,고문을당하고,아이를잃고,마침내시베리아에서,평양에서,경성에서외롭게죽어갔다.자신들의의지와상관없이식민지조국의국민이되어일상은깨지고생활은투쟁이될수밖에없었던사람들,그래서세여자는자연스레삶을역사에‘올인’했고,재산도버렸고애인과가족도버렸고더버릴것이없을때는목숨을버렸다.그럼에도불구하고작가는세여자를영웅으로그리지않았다.상황과역할에충실했던그런여자들이,20세기초,이곳에,살았었다는것을그저보여줄뿐이다.평론가신수정에따르면그러나그것이오히려애도의궁극이자여성으로서의오연한자부심으로읽히기도한다.
방대한지식과높은통찰력,사건이붓끝에서솟아오르는듯한순탄함!(황현산,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황현산은한국의근세사에는개항,일한병탄,3·1운동,4·19,5·18등여러개의기원이있다며,이소설은이들세여자의운명이합쳐지고엇갈리는식민지시대한복판에근세의뿌리깊은기원하나가있음을알려준다고평했다.또한이소설은사건이붓끝에서솟아오르는것같은순탄함이강점인데,이는작가가지닌전후좌우의방대한지식과높은통찰력에서온다고보았다.실제이소설은작가가구상을시작한지12년만에출간된것으로방대한자료위에긴시간숙성기간을거쳐복잡다단한한국현대사가물흐르듯자연스럽게펼쳐진다.군더더기를허락하지않는작가특유의문체탓에이야기는박진감있고밀도있게전개된다.
작가가이소설을구상하고자료를모으기시작한것은2005년.그러나막집필에들어가려던2006년9월,작가는한국영상자료원원장이라는공직을맡아3년을보냈다.공직을끝내고초고를쓴다음수정과정을거치는동안다시뜻하지않은변수가생겼다.서울문화재단대표로일하면서4년이라는시간이또흘러갔다.지난해소설가로돌아와원주토지문화관에두달머물면서작품을갈무리해이번에드디어빛을보게된것이다.작가는여러가지이유로진행이늘어지는동안세여자의인생이머리와가슴속에서사과처럼천천히익어갈수있어서오히려결과적으로잘된일이었다고이야기한다.
사회주의계열의독립운동에몸바쳤던이들에대한복권도불과얼마되지않은일이지만그가운데특히여성들에대한대중적인조명은거의이루어지지못한것이현실이다.이번작품을계기로격랑의근현대사속에서치열하게살다간많은여성들의삶이오롯하게우리곁으로되돌아오길기대한다.
〈줄거리〉
주세죽과허정숙이처음만난곳은1920년상해.넓은바깥세상을구경하고새로운공부를하고자상해를찾은두여자는그러나그곳에서고려공산당청년동맹을이끌던박헌영을만나새로운인생에발을내딛게된다.이듬해주세죽은박헌영과결혼했고,귀국후허정숙을중심으로사회주의여성운동단체인조선여성동우회를결성하는한편고려공산청년회에가입해활동한다.이때이화여전을다니던고명자가참여하며,이들셋은‘조선공산당의여성트로이카’로불리운다.
1924년허정숙은동지였던임원근과결혼했고,고명자는애인이었던김단야의권유로모스크바유학을떠난다.1925년발생한제1차조선공산당사건,이른바‘101인사건’으로이들세여자와남자들은혹독한시련을맞이한다.이사건으로허정숙과주세죽,임원근,박헌영은투옥되고,김단야는조선을빠져나가모스크바로향한다.곧바로풀려난허정숙은미국유학길에오르고임원근과는부부의연을정리한다.임원근이감옥에있는동안또다른활동가송봉우와재혼하면서허정숙은‘조선의콜론타이’라는별명과함께이시대스캔들메이커가된다.
1928년,주세죽은뒤늦게출옥한박헌영과함께일제경찰의추적을피해소련으로탈출한다.모스크바에도착한이들부부의품에는북행길에낳은딸비비안나가안겨있었다.부부는모스크바에서자리잡고있던김단야,고명자와함께‘정치망명가들을위한집’에살며박헌영은레닌대학에서,주세죽은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공부한다.
1929년김단야와고명자는경성으로돌아와조선공산당재건을위해활동하다경찰이포위망을좁혀오자김단야홀로상해로떠나게된다.몇달후체포된고명자는심한고문과회유끝에전향을선택하고이로인해이후양쪽모두에서경계의대상이되며,한때친일잡지인〈동양지광〉에서일하기도한다.
주세죽과박헌영은1932년딸비비안나를모스크바보육원에놓고당재건운동을위해상해로갔으나1933년박헌영이체포돼국내로이송되면서이들부부는기나긴이별을맞는다.1934년딸을만나기위해모스크바로돌아온주세죽은이곳에서,역시홀로남은남편의친구이자동지인김단야와재혼한다.훗날주세죽은‘상황이우리를같이살게만들었다’고그때의선택을회고했다.
미국유학을마치고1927년귀국한허정숙은한국최초의전국적여성운동단체인근우회를이끌며활발한활동을벌이다1930년광주학생운동이후의서울여학생운동을지원하다투옥된다.허정숙은1932년출감뒤태양광선치료소를운영하다세번째남자최창익과함께중국무한으로넘어가조선의용대와함께항일무장투쟁에참여한다.
비록식민지조국이었지만경성의여성동우회에서뜻을모아활동하던때가이들에겐봄날이었을까.1930년대후반부터는서로너무도다른자리에서다른모습으로격랑의시대를맞는다.
1937년김단야가일제밀정이라는혐의를받아체포되면서세죽은가족이라는이유로5년유형에처해져중앙아시아의크질오르다로강제이주를떠난다.모스크바보육원에있는딸과기약없는이별을한세죽은설상가상단야와의사이에낳은6개월된아들도유형길에잃게된다.
1945년,세여자는각각서울과중국연안,카자흐스탄크질오르다에서해방을맞이한다.명자는여운형의건국준비위원회에참여해활동하고,허정숙은의용군들과함께사상의고향인평양으로향한다.그러나해방된조국의청사진을그리던것도잠시,남쪽은친탁반탁을둘러싼좌우대립으로,북쪽은만주빨치산출신김일성과조선공산당,연안파,소련파등정파간권력싸움으로한치앞을내다볼수없는상황이전개된다.고명자와허정숙은이런소용돌이한가운데서온몸으로시대를겪어낸다.주세죽은조국의해방에한가닥희망을품고스탈린에게유형해제를요청하는청원서를써보지만아무답변을듣지못한다.
남북모두불안한정세가계속되던중김일성이남조선해방이라는명목으로전쟁을일으키면서세여자의운명은또한번요동치게된다.
인민군이서울을점령하면서인민위원회활동을했던고명자는엎치락뒤치락하는전쟁의와중에서울에서홀로쓸쓸한죽음을맞이하고,북쪽의문화선전상을맡아전쟁의후방을책임졌던허정숙은민족끼리서로를갉아먹는전쟁의참상앞에숱한회의에휩싸이게된다.
전쟁이끝난후허정숙은북측에서요직을담당하며김일성곁에있었으나동지들의숙청과정과독재로진화해가는일인자를바라보며부침을겪는다.주세죽은전쟁이끝나고북쪽의부수상으로있던전남편박헌영에게도움의손길을내밀어보지만끝내외면당하고만다.그이유가불안한본인의입지때문이었는지,김단야와주세죽에대한배신감때문이었는지는알수없는일.결국세죽은1953년딸비비안나를만나러모스크바에갔다가병이악화돼생을마감한다.
작가는이소설을쓰면서1991년허정숙이북에서세상을떠날때까지명절방문을담당했던탈북자L씨를만났다.그와의만남을담은에필로그를통해공직에서물러나서도수상에게할말은했던허정숙의말년을엿볼수있다.
1990년한소수교후소련정부자료들이공개되고비비안나박이서울을방문하면서주세죽의유형사실과김단야의비극적최후도밝혀졌다.주세죽과김단야는고르바초프정권아래서복권됐으며,김단야는2005년소련에이어국내에서도복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