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평전 :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 - 한겨레역사인물평전 (양장)

이완용 평전 :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 - 한겨레역사인물평전 (양장)

$18.00
Description
우리 근대사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던 타자, 이완용의 실체를 들여다본다!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이완용 평전』. 이 책은 을사조약 체결과 함께 국망의 원인 제공자이자 매국노, 친일파 혹은 변신의 귀재로 낙인찍힌 이완용의 삶을 살펴보고,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사실들을 보여준다. 명문 반가에 양자로 들어가서 스물다섯에 과거에 급제한 이완용의 관직 생활부터 을미사변이 벌어졌을 때 아관파천을 감행하여 성공시킨 이야기, 을사조약 체결 즈음부터 조약 체결에 나선 을사5적과 함께 매국노로 호명된 이야기, 이완용의 죽음까지 그동안 숨겨져 있던 이완용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독자들은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이완용의 모습을 통해 그를 둘러싼 대한제국의 구조와 관계의 문제들까지 심도 있게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구한말 극왕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개혁 성향을 드러냈던 관료, 이완용의 모습에서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다. 냉혹한 현실과 부딪혔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기보다는 최대한 얻을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이완용의 모습을 통해 현실에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나약한 모습과 현실에 순응하며 실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오늘날의 세태를 꼬집고 있다.
저자

김윤희

저자김윤희는1967년서울에서태어났고,고려대학교사학과에서『대한제국기서울지역금융시장의변동과상업발전』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자본주의와근대국가의관계에관심을두고,세계자본주의와연결된국내시장의투자환경과국가경제정책의관련성에대해연구해왔다.현재경원대학교아시아문화연구소연구교수로재직하면서국가주권과인민의관계를규명하는연구를진행하고있다.지은책으로『마주보는한국사교실7』,『영화처럼읽는한국사』(공저),『조선의최후』(공저),『통계로본근현대사』(공저)가있고,주요논문으로는「동양담론그리고주권-정부-인민관계의균열과전복」,「근대국가구성원으로서의인민개념의형성」,「파산,식민지근대일상생활의기표」등이있다.

목차

발간의글_‘한겨레역사인물평전’을기획하며(정출헌|부산대학교한문학과교수,점필재연구소소장)
머리말_배제된타자의봉인을열다

1장관료로내딛은첫발,그신중한한걸음
당돌한아이,명문반가에발들이다|과거급제,고종과의첫만남|육영공원입학,신문물을익히다|급변하는정세속에결행한미국행|서양의눈에비친우리,그조선을돌아보다|자못신중한행보,뜻펼칠때를기다리다

2장충성스러운신하에서기민한정치인으로
갑오개혁,급박한정치적소용돌이가운데서|정동파의입각,그리고친일세력의척결|성균관개혁과근대적교육기관의설립|친미파수장으로정치적도박을시작하다|정쟁을가르며,축출과제휴를거듭하며

3장정계의중심에서세상과만나다
보수세력과고종의틈바구니에서|독립협회를중심으로세력결집을시도하다|정계의주도권다툼,그리고고종의환궁|고종과의대립,뒤이은중앙정계에서의퇴출|러시아견제의배후세력으로재기를노리다|상반된평판의기로에서서

4장정계밖에서설움을겪다
지방의부정부패와민심의이반가운데서|정계에서물러났으나무시할수없는정치인으로|시세를관망하며재기를기다리다|정계의혼란,그리고다시찾아온기회

5장애국과매국의갈림길에서
대한제국점령을위한일본의압박이시작되다|누구도찬성하지않았으나체결된을사조약|조약체결의책임은누구에게?|합리성과실용성을갖춘역적의논리,사회에침윤되다

6장현실주의와실용주의를표방하며친일로나아가다
노련한정치편력으로입지를강화하다|신중한개혁노선의표방,그리고제국의분열|대한제국통치권의상징,사법권이일제의손으로|정치적위기,칼을맞고쓰러지다|한달간의고민,그리고결단|의리와매국사이에서

7장권력의정점에서지탄의절정으로
병합의회오리속에서조선상류층의버팀목이되다|일본인과의인맥형성을통해구가한화려한시절|격렬한저항운동의발발,내선융화의논리가강고해지다|일상생활에대한이완용의소신|‘매국노’이완용의죽음

주요저술및참고도서목록|연보|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우리가몰랐던이완용?
구한말근왕적태도를견지하면서도개혁성향을드러냈던관료,이완용

일반적으로이완용은매국노,친일파,혹은변신의귀재등으로낙인찍혀있는인물이다.그러나이러한관점을잠시유보해두고그의이력을따라가다보면,이제까지잘알려져있지않았던흥미로운사실들을여럿발견할수있다.
명문반가에양자로들어가서스물다섯에과거에급제한이완용은관직생활을시작한지5개월이지나육영공원에입학한다.조선최초의근대식교육기관이었던육영공원은영어등신문물을가르쳤지만,이신식학교의입학생들은정부의명령이나주변사람의권유로들어온고위관료자제들이많았다.반면에이완용은전통학문만으로는시세의변화를따라갈수없다고판단하여자발적으로육영공원에입학했다.이러한식견은당시미국에대한짝사랑이대단했던고종의의중을꿰뚫는것이기도했다.
이후이완용은조선에서맨처음주미공사를파견했을때참찬관으로임명되어미국으로건너간다.그는미국이라는문명화된사회를목도하면서조선의현실에대한비판적안목을갖춰나갔다.귀국후제3차갑오내각때학부대신으로등용된이완용은미국에서얻은지식을바탕으로근대적인인민교육을위한체제를정비하고이를실행한다.그의손을거치면서근대적초등교육기관을비롯해우리나라최초의근대고등교육기관인한성사범학교의관제도개정되었다.
이완용은왕이부재하는미국의정치체제를일견하고돌아왔으나공화정이나입헌군주제같은변화를주장하는급진성을보이지는않았다.오히려그는정계가혼란스러울때주도세력과거리를두면서절대군주인왕의의중을헤아려자신의행보를조정할줄아는인물이었다.갑오내각당시그는명문반가출신답게군신(君臣)의예를지키는근왕적태도를견지하면서도,서양문명을받아들이고교육을진작시킴으로써조선의점진적개혁이가능하다는희망을품고있었다.이완용은당시조선정계에서개혁적관료로지목되는인물이었다.
이시기에이완용은러시아와미국을배후로삼으며반일적색채를띠었던정동파의수장으로부상한다.을미사변이벌어지면서일본세력이득세했을때,이완용을비롯한정동파는목숨을걸고아관파천을감행,이를성공시킨다.또한정동파는우리나라최초의근대적사회정치단체이자개혁세력의결집체인독립협회에도깊숙이개입한다.독립협회는정동파를지지하는여론을조성하는역할을했으며,정동파를이끌던이완용은독립협회의발기인이자초대위원장을지내기도했다.1898년정부의친러시아정책과비자주적외교에반발하여열렸던대중집회인만민공동회의배후에도이완용이있었다.그는자신이속해있는독립협회가대규모민중집회를주도한다는비난을피하기위해시전상인을만민공동회회장으로선출하는주도면밀함도갖고있었다.이처럼이완용은자파세력을결집ㆍ확대하면서활용가능한세력과연합을모색하는법도익혀갔고,아관파천처럼목숨을건정치도박을감행하는과감성도갖춘경륜있는정치인으로성장해갔다.

을사조약체결을주도한합리적현실주의자,이완용
그를둘러싼대한제국의구조와관계의문제들

이완용이관직생활에서항상승승장구했던것만은아니다.그는중앙정계에서배제되면서전라북도관찰사로내려가지방관으로서의설움을느끼기도했고,비록무죄로판결났지만탐학의죄를쓰고법부의재판을받기도했다.그러나그는시세를관망하면서재기를기다릴줄알았고,이완용의뒤에는그를신임하는고종이있었다.
이완용의행적을논할때고종과의관계를거론하지않을수없다.통치자로서개혁의필요성을느끼지만이로인해자신의권력이해체되는것을우려했던고종은,정치개혁의요구는차단하되경제적ㆍ사회적으로근대제도와문물을도입하고,이과정에서외세를끌어들여다른외세를견제하는위험한줄타기를하고있었다.그리고고종의정책에적극적으로조응한것이바로이완용이었다.유교적소양을갖춘그는국왕의권력을문제삼지않았고,그러면서도일본이협상파트너로받아들일수있는손색없는경력과연륜을갖추었기에고종의공식라인이될수있었다.
처음에이완용은을사조약체결에대한거부의지를갖고있었다.그러나일본정부의강력한관철의지를확인한후고종이이에대해분명한거절의사를표명하지못할것을알고서자신의역할을결정했다.그렇다면그의친일은자신의부귀영화와호의호식을위한것이라기보다는기존의권력가운데서자신의입지와역할을규정하는관료로서의태도에서비롯된것이라고보아야하지않을까?그는국가의위기앞에서울분과분노에치를떨기보다는,또현실을바꾸려고몸부림치기보다는,상황에자신을맞추는실용성을갖춘관료였던것이다.
을사조약체결즈음부터이완용은조약체결에나선을사5적과함께매국노로호명되었다.대한제국지식인들이지향했던입헌군주제를위해왕은여전히국민통합의구심으로존재해야했고,덕분에고종은매국의책임론에서구출될수있었다.유생들역시절대적인존재로추상화된왕에게국망의책임을물을수없었기에,조약반대상소를올리면서모든책임을을사5적에게돌렸다.이완용은상소를올려이에대응했다.대한제국이부강해지면권리를되찾을수있으며을사조약이한일의정서와신협약의결론에불과하다는그의변명은을사조약의의미를축소시키고자신의행동을합리화하는정치적발언이었다.현실주의적입장을견지한그의논리는의리와명분을중시하는유생들에게선뜻받아들여질수없는것이었다.
이완용의행동은그누구에게도용서받을수없는것이되어버렸다.그러나합리성과실용주의로포장된그의주장은조금씩대한제국지식인들에게받아들여지기시작한다.계몽운동단체들과유학파지식인들은한국이부강해질때까지일본이대한제국을보호하겠다는을사조약의문안에근거해부강을위한실력양성의기치를더욱높이내걸었다.저항과투쟁이사회의혼란을가중시키고일본의강압을더불러온다고생각했던지식인들은실력양성만이독립주권을되찾는유일한방법이라고주장했다.우리가부강해지면나라를되찾을날이있을것이라는이완용의주장은그렇게대한제국사회를지배하는논리가되어갔다.

매국의책임에갇힌배제된타자,이완용
그에게서발견하는지금우리의모습

우리가전혀불편하지않게비난할수있고“난너와는달라”라고자신있게말할수있는대상이란,반대급부로공동체의소속감을지속시켜주는존재일수있다.‘매국노’이완용은이런측면에서우리국가와민족의정체성을규정하는기제였는지도모른다.매국의책임에갇혀있던이완용이그자리에놓이게된배후에는그의현실주의와실용주의적인인생철학이있었다.엄혹한현실과맞부딪혔을때,모든것을포기하기보다는최대한얻을수있는것을고민하는것이이완용의선택이었다.을사조약을맺을것이라면수정할수있는것을요구해야하고,한일병합조약을체결할것이라면얻을수있는것을얻어내야한다는것이그의생각이었다.이는규정된법적절차를정확히수행하는관료의자세에서도구적합리성을발견하고서,그것이자본주의합리성의기본전제라고보았던막스베버의생각을떠올리게한다.주어진현실에서최대의결과를얻기위해효율성과실용성을최대의가치로삼아자신의활동과역할을규정하는,베버가말하는근대의합리적인개인상에서이완용의모습을엿볼수있는것이다.여기에서주어진현실에어쩔수없다고스스로를위안하는나약한인간의모습과함께,현실에순응하여실리적인선택을하는것이현명한세상살이라고생각하는오늘날의세태를발견하는것은지나친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