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의 미친 여자들 : 여성 잔혹사에 맞선 우리 고전 속 여성 영웅 열전

규방의 미친 여자들 : 여성 잔혹사에 맞선 우리 고전 속 여성 영웅 열전

$18.00
Description
조선의 ‘언니들’, 남자들이 금지한 세계로 진격하다

“생존을 위한 분투를 통해 자신, 나아가 타자와 세계를 구하는 영웅들의 이야기”_권김현영(여성학자)
“현대 여성 영웅 지침서로도 손색이 없는 책”_박서련(작가)
‘페미니즘 리부트’로 명명되는 2015년 이후의 페미니즘 붐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이 등장하는 ‘여성서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런 흐름을 타고 나온〈스트릿 우먼 파이터〉〈술꾼 도시 여자들〉〈닥터 차정숙〉 등은 새로운 여성서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멋지고 당당한 ‘언니들’은 현대물에만 있을까? 우리의 전통에서 이런 ‘언니들’을 찾아볼 수는 없을까?
장르문학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가려진 여성의 삶에 주목해 온 전혜진 작가는, 이 책에서 낡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쉬운 우리 신화와 고전 속 여성 영웅들을 재조명한다. 태초의 여성 신화 〈바리데기〉부터 ‘정상가족’에 도전한 《방한림전》까지, 다양한 우리 고전 속 여성 영웅들은 때론 시대의 제약을 뛰어넘어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때론 가부장제에 저항하며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간다. 이렇듯 멋진 ‘언니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이 책은 다양한 여성서사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낯익고도 새로운 여성서사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저자

전혜진

저자:전혜진
만화와웹툰,추리와스릴러,사극,SF와사회파호러,논픽션등매체와장르를넘나들며여성의삶에대한글을쓰고있다.특히논픽션분야에서가려진여성의서사에주목하는《여성,귀신이되다》《순정만화에서SF의계보를찾다》,여성수학자29명의삶을다룬《우리가수학을사랑한이유》등을썼다.이밖에소설집《바늘끝에사람이》,장편소설《280일》과《아틀란티스소녀》,앤솔러지《우리가다른귀신을불러오나니》《이토록아름다운세상에서》,논픽션《책숲작은집창가에》등다양한작품을발표했다.

목차

서문-진짜‘나’를찾아나선또다른영웅들의계보

1.바리,‘여성잔혹사’를전복하다:바리데기
‘타자화된별종’을넘어운명의주체로
지배자들도숨기지못한여성영웅의원형
바리의모험과영웅의여정

2.‘버림받은딸’을영웅으로만드는세어머니:《숙향전》
가부장제에굴복한친어머니
보호하고기르는수양어머니
이끌어주는여신어머니

3.아버지라는숙명적비극
‘자식사랑’으로포장된무능:《심청전》
사악한계모보다무서운무관심한아버지:《장화홍련전》《콩쥐팥쥐전》
아버지에겐자식보다가문이더중요했다

4.결혼,여성을구속하는족쇄가되다
가부장제가말살한여성의인격:《사씨남정기》
하늘의선녀라도시부모의인정없이는:《숙영낭자전》
며느리되기를강요당한여성들의조선판SNS:부요
틀을깬미혼모,여신이되다:〈당금애기〉

5.사랑으로낡은세계에균열을내다
운명에도전한궁녀의사랑:《운영전》
계급을뛰어넘은사랑의혁명:《춘향전》

6.당나귀가죽을벗는여성들
다시태어난소녀의인생2회차모험:《금방울전》
명예남성이길거부한여성영웅:《박씨전》

7.‘유리천장’을뚫기위해남자가된여성들
가부장제의혼란이낳은여성영웅:《홍계월전》
나라를구했지만가정은벗어나지못한불완전한혁명:《이학사전》
혈연을뛰어넘은대안가족을상상하다:《방한림전》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여성으로태어나는순간시작되는‘여성잔혹사’

영웅의‘웅’이수컷을뜻하는말이란사실에서알수있듯,기존의영웅이야기는“강철같은근육으로뒤덮인이상화된남성”(20쪽)들의활약으로가득한남성중심의서사다.따라서전형적인영웅상에서탈피한‘여성영웅’의이야기는남성영웅의이야기와는시작부터다르다.“가족과나라를위해외부의적에맞서용감하게나서는것이남성영웅의서사였다면여성의곤경은여자로태어나는순간가족안에서시작된다.”(여성학자권김현영)
우리의여성주인공들은여성이라는이유만으로겪게되는‘여성잔혹사’에맞서생존을위한분투를벌이면서영웅으로거듭난다.따라서우리고전속여성영웅의이야기는단지재미있는옛날이야기,특별한능력을갖춘한여성의성공담이아니라지금도여전히존재하는차별과제약에맞서하루하루를살아가는평범한여성들,곧우리의이야기이기도하다.
여성영웅들이가장먼저맞닥뜨리는걸림돌은아버지라는‘숙명적비극’이다.여성영웅의아버지들은대개가문의‘대를잇지못하는’딸에게큰관심이없기에딸의시련을방관하고,아들이아니라는이유만으로딸을버리는〈바리데기〉처럼비극의원인제공자가되기도한다.
《장화홍련전》과《콩쥐팥쥐전》은사악한계모가전처소생의딸을구박하는이야기로우리에게기억되지만,사실두소설에서딸에게정말위협적인존재는‘사악한계모’가아니라‘무관심한아버지’다.소설속가부장들은한정된재산이나집안의기득권을두고계모와전처소생의딸사이에생긴갈등을,자신이신경쓸필요없는‘집안일’로만여겨방관했다.두아버지는장화가처녀의몸으로임신해가문의명예를더럽혔다는누명을쓰자딸을살해하는것을묵인하고,팥쥐가콩쥐를살해하고감사부인행세를하느라집에없는데도딸을찾지않는다.이렇듯딸의고난에무관심했던아버지들,그리고아버지들의무관심을용인한당대사회가딸들의비극을낳았다.
성장한여성주인공들은이제결혼이라는또다른장애물을만난다.《숙영낭자전》의주인공은원래하늘의선녀로지상에귀양을왔지만,시부모의인정을받지못하는결혼을하면서온갖고초를겪는다.그녀는결혼한뒤8년이지났는데도여전히며느리로인정받지못해별당에머무르고,여기서비롯된오해때문에다른남자를만난다는누명을쓰자자신의결백을증명하려고자결한다.《숙영낭자전》은“설령하늘의선녀라해도시부모에게인정받지못한다면시집살이란죽기만큼힘든것”(161쪽)이라는당대여성들의수난을보여준다.
이런극단적인경우가아니어도조선의며느리들이마주친현실은대개가혹했다.고단한시집살이를소재로한부요(부녀자들이부른민요)를보면,시부모와시누이를모시느라“아홉솥에불을때고열두방에자리걷”(〈시집살이노래〉,경북경산지방)는고된노동을하면서도격려는커녕사소한실수하나에도불호령이떨어지기일쑤였다.이런며느리들의수난은“똑같이직장에서일을하다가왔지만남자들이TV를보는사이여자들은제사음식을준비”(163쪽)해야하는것과같은미묘한형태의차별로오늘날까지이어지고있다.

가부장제를교란하고전복하는상상력

그러나우리의여성주인공들은가부장제가설치한장애물들에가로막혀좌절하는대신당당히맞서싸우는쪽을선택한다.
《운영전》의주인공운영이꺼내든무기는사랑이다.성리학적질서가인간의자연스러운욕망을억압하던시대에그녀는자유로운사랑을꿈꾼다.권력자의소유물로여겨져다른남자와의사랑이철저하게금지된궁녀였지만,궁녀운영이아니라인간운영으로서살기위해김진사와의사랑에목숨을건다.둘의사랑을가로막았던안평대군의수성궁이몰락한뒤에도두사람이때때로그곳에서사랑을속삭인다는결말은“마침내는사랑이,인간됨이엄혹한권력을이겼음을보여주는것이다.”(196쪽)
여성으로서늘부딪히는‘유리천장’을뚫기위해남장을한뒤,공을세워입신양명하는여성영웅들도있다.《홍계월전》과《이학사전》의두주인공은전통적으로남성의영역으로여겨지던무예나군사면에서도남자들을압도하는능력을발휘해외적으로부터나라를구하고,높은벼슬을얻는다.
이런이야기는때론여성영웅들이생물학적성별만다른‘명예남성’이되어가부장제에편입되는이야기로보이기도한다.우리에게친숙한《박씨전》도그렇다.처음에는못생긴외모때문에남편에게무시당하던박씨는시아버지와국왕이라는두가부장의권위에힘입어마침내가문에서인정받는다.또한박씨는남편이밖에서국왕을모시는동안실질적으로가문을이끄는‘여성가장’이며,소설에서박씨의아버지는등장하지만박씨의어머니는모습을보이지않는다.말하자면박씨는“남성의세계에받아들여진여성,명예남성이자‘아버지의딸’이다.”(256쪽)이런점에서박씨는얼핏보기에가부장제에도전하는인물이아니라오히려가부장제의일부로보인다.
하지만이렇게만해석하기에는《박씨전》의서사가단순하지않다.《박씨전》에서박씨의대척점에선인물은적국의왕이아닌그아내,호귀비다.그리고박씨와호귀비는각각계화와기홍대라는유능한‘여성’후계자를길러낸다.남성영웅을대체하는단한명의탁월한여성영웅이아니라그를적대하는다른여성영웅과그들의제자등다양한여성영웅을함께보여주는것이다.따라서《박씨전》은남성영웅을대체한명예남성의성공담이아니라‘명예남성이길거부한여성영웅들의계보’를다룬작품으로볼수있다.
《방한림전》은오늘날에도논쟁적인동성혼이라는소재를통해,가부장제를전복하는당대의가장급진적인상상력을보여주는작품이다.방관주는어릴때부터남장하고사회에진출해열두살에장원급제하는데,“여자는모든일을제뜻대로하지못하고남편의뜻을따라야한다”는불만때문에비혼을선언했던영혜빙은방관주와함께라면평등한결혼생활이가능하겠다고생각해결혼을결심한다.부부가된둘은입양한아이를훌륭하게키우면서행복한결혼생활을누린다.정상가족이데올로기가여전히굳건한지금의한국사회에서도쉽지않은대안가족의꿈을,성리학적질서가지배하던조선시대에앞질러실현한것이다.

우리가‘규방의미친여자들’이다

우리고전속여성영웅들에게가장위협적인적은가문과국가라는이름의가부장제였다.《이학사전》의주인공이현경은나라를위기로몰아넣은외적은쉽게물리치지만,‘여자답게결혼해서남편에게순종하라’는가부장제의압력은이기지못한다.황제의주선으로원치않는결혼을한뒤에는시어머니의괴롭힘에시달리고,벼슬이더높은데도남편에대한굴종을강요당한다.
하지만그들은무기력하게순응하기를거부하고,가부장제가금지한세계로당당히진격한다.사랑으로낡은세계에균열을내고,담장밖의세계로나아가여성의몸으로장수가되며,정상가족에도전하는대안가족의가능성을보여준다.그리고오늘날의여성들도‘좋은며느리’에게요구되는임출육(임신출산육아)과가사노동의높은기준,그에따른경력단절등여성에게만유난히무거운짐들에맞서온전히나자신으로살기위해매일분투를벌인다.그렇게시대의한계를넘어서는자유를쟁취하려했던‘규방의미친여자들’의이야기는,또다른담장안에서끊임없이세계와불화하며2023년의한국사회를살아가는여성들의이야기가된다.

■추천사

이책은남성영웅못지않은여성영웅에대한책이아니다.영웅신화의이야기구조자체가남성중심의서사였다는것을밝히는동시에여성영웅에게맞는새로운서사구조를제안하는책이다.
가족과나라를위해외부의적에맞서용감하게나서는것이남성영웅의서사였다면여성의곤경은여자로태어나는순간가족안에서시작된다.앞길을가로막는것은가족과국가그자체이며이런조건에서여성은영웅이될수없었다.이책의저자는여성의생존을위한분투자체를영웅적서사로재배치한다.
바리데기는여자라는이유로태어나자마자버림받았으나스스로를구원하고자신을버린부모를살린뒤스스로신이되었다.이이야기만큼신화라는이름에걸맞은서사를들어본적이없다.이책은이처럼생존을위한분투를통해자신,나아가타자와세계를구하는여성영웅들의이야기로가득하다.
_권김현영(여성학자,《다시는그전으로돌아가지않을것이다》《여자들의사회》저자)

왕후장상의씨가따로있느냐던옛사람의말을따라묻는다,영웅이되는데에성별이따로있겠는가?우리에게친숙한이야기의겹겹을되짚으며,낯설고새로운고전의핵심을묘파하며전혜진은답한다.“여성영웅이라오히려좋아!”
탄생과소명의부여,역경과고난에이어마침내소명달성에이르는영웅담여정에서,우리고전속여성영웅들은성리학적세계관이놓은수많은함정까지돌파해낸다.다양한형식과문법을구사하며독자들을사로잡은글꾼전혜진은장르를횡행하는힘센상상력으로이야기속영웅들을이끌어독자앞에세운다.
낡고고루한이야기라고만여겼던고전속여성영웅들을우리는어떤자세로맞이해야할까.현대여성영웅지침서로도손색이없는이책에서답을구할수있을것이다.
_박서련(작가,《체공녀강주룡》《나,나,마들렌》저자)